< Verse 44.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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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넓고, 사람이 많으며, 문화예술에 많은 돈이 투자되는 나라다. 공연을 관람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고, 공연 관람에 사용하는 돈의 액수 역시 한국보다 훨씬 컸다.
이 말은 곧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굉장히 많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한국의 뮤지션들이 행사 단위로 공연활동을 진행한다면, 미국의 뮤지션들은 투어(Tour)를 통해 공연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사실 투어에는 두 종류의 방식이 있었다.
첫 번째는 대중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식의 투어였다.
‘마이클 잭슨 투어’, ‘비틀즈 투어’ 같이 뮤지션이 주체가 되어서 무대를 제작하고, 관객들을 불러 모아 입장 수익을 만드는 것.
‘업 인 스모크 투어 2002’나 상현이 참여했던 ‘커튼 콜 투어 2008’처럼 집단적으로 모여서 움직이는 투어도 여기에 속했다.
이러한 투어의 장점은 자신의 의도대로 무대를 제작할 수 있으며, 투어 일정을 정할 수가 있고, 투어의 경로를 꾸밀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단점은 투어의 수익 대부분이 입장수익이기 때문에, 뮤지션이 인기가 없어버리면 수익이 적다는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자신의 인기를 과신하고 투어를 시작했는데 관객이 너무 적어서 적자가 나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평생 음악을 하면서 첫 번째 방식의 투어 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하델 레인즈의 생각에, 미국의 모든 뮤지션을 표본으로 두면 그 중 99.9%는 평생 동안 ‘평범함 투어’밖에 경험하지 못할 것이었다.
‘아니, 투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려나?’
그럼 나머지 0.1%가 경험할 수 있는 투어는 무엇일까?
바로 무대를 제작하며 미국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작된 무대’에 오르며 미국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좋은 방식을 왜 쓰지 않는 걸까?
취사 선택권이 가수에게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인기가 있어서 전미의 각종 행사와 축제, 라디오 방송, TV 방송에서 먼저 섭외가 와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현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투어의 효율적인 동선을 짜고, 그 중에서도 페이가 높은 행사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했다.
‘뉴욕에서 공연을 하고, 옆 동네인 필라델피아로 갔다가 워싱턴 D.C에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볼까?’
상현은 특별히 신비주의를 채택한 가수는 아니었지만, 공연을 많이 하지 않는 가수로 통했다.
MTB 때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를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연을 했다하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장면을 남기고, 라인업에 오르면 관심을 불러 모으는 카드로 통하기도 했다.
때문에 상현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행사, 축제, 방송국의 수는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여기 있는 섭외 목록들을 다 하면 얼마에요?”
“정확히는 안 세어봤는데, 아마 억 단위가 될 걸?”
“1억 달러요?!”
“억 단위에 1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
“그럼 얼마나……?”
“한 3억 달러?”
상현의 입이 딱 벌어졌다.
3억 달러. 한화로 3000억 이상.
회귀 직전까지 일만 했음에도 만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이었다.
“흥분하지 마. 어차피 물리적으로 동시에 할 수 없는 공연이 절반은 넘으니까. 동시간대 공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식적으로 시애틀에서 공연하고 몇 시간 뒤에 뉴욕에서 공연을 할 수는 없잖아?”
“……안될까요? 시차를 절묘하게 이용하면…….”
“진짜 타이트하게 잡아줘? 잠은 이동 중인 비행기에서만 잔다고 치고, 이동시간과 공연-공연 사이의 텀을 딱 맞추면 삼분의 일 정도는 벌 수 있을 걸? 대신 24시간 중에 21시간 정도는 공중에서 머물러야 하겠지.”
“그럼 진짜 리얼하긴 하겠네요. 앨범 타이틀과 똑같은 인생이라니.”
상현의 말에 하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몸값은 올릴 대로 올리면서 좀 편하게 돌아다녀보자고. 그런 짓 안 해도 이미 일정은 빽빽하니까.”
“켄드릭이랑 제이콜은 어제 출발했죠? 그럼 하델은 절 따라다니시는 거예요?”
“꼭 그런 건 아니야. 투어 초반 일정은 널 따라다니겠지만 네가 벤쿠버로 갈 때쯤이면 난 켄드릭한테 가야해. 중요도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아, 그렇군요.”
하델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세 뮤지션의 사이를 오가며 상현보다 더욱 바쁜 나날들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게 있었는데,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상현을 따라다니는 일정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선택의 이유는 상현이 켄드릭이나 제이콜보다 엄청나게 소중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파이브, 요즘은 가사 안 쓰는 것 같던데?”
“안 쓰진 않는데 잘 안 나오네요. 이번 앨범을 너무 열심히 만들었나 봐요.”
“그래? 괜찮겠어?”
“이제 미국을 돌아다니면 또 하고 싶은 말이 생기겠죠. 저번에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미국에 처음 왔을 때도 여행을 오래 했었거든요. 그때 받은 영감들이 Touch The Sky 이전 음악들에 많이 녹아있죠.”
“어차피 음악 인생은 기니까 천천히 해봐. 같은 메가 히트 앨범은 2년이 넘게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데 아까 벤쿠버라고 하셨죠? 벤쿠버면 캐나다 아닌가? 제 일정에 캐나다도 있나요?”
“맞아. 왜? 캐나다 싫어?”
“아뇨. 그냥 미국만 도는 줄 알았죠. 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가 괜찮은가 봅니다.”
“시간 관계상 포기한 곳이긴 한데, 5일간 3회 공연을 하는 조건으로 80만 달러를 부른 곳이 있어. 심지어 세금을 거기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세후 팔십만 달러요? 그럼 거기서 지불하는 돈은 백만 달러가 훨씬 넘는 건데?”
“그렇지. 어딜 거 같아?”
“말씀하시는 느낌 상 미국은 아닌 거 같고……. 아, 혹시 한국?”
상현의 말에 하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중국.”
“중국이요?”
예상치 못했던 국가가 등장하자 상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곧 한류 스타들이 중국에서 엄청난 돈을 받는다는 기사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반응이 별로네? 백만 달러 이상이라니까?”
“원래 차이나가 스케일이 좀 차이나죠.”
“……뭐라는 거야? 혼자 왜 배를 잡고 웃어?”
상현의 실없는 농담과 함께 다른 뮤지션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3달간의 전미 투어가 시작되었다.
투어의 시작은 라스베이거스였다.
라스베이거스는 전 세계 MICE 산업의 메카인 만큼 다양한 포럼과 엑스포, 축제, 쇼가 365일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꺄아아아악!
-파이브식스!
-Yellow Real Nigga!
그리고 상현은 그러한 쇼를 더욱 화려하고 빛나게 만드는 존재였다.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수많은 관광객들이 상현의 얼굴을 보고, 노래를 듣기 위해 엄청나게 몰려든 것이었다.
“와…….”
상현이 감탄을 거듭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물론 숫자로만 따지면 그래미 어워드나 BET 힙합 어워드의 시상장을 찾아온 관객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파이브식스’만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여러 뮤지션들을 전부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대에 몰린 인파는 오직 파이브식스만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상현은 미쳐 날뛰었다.
“Hands in the Air! 하늘에 닿을 만큼!”
상현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정확히 15일을 머물며 9번의 공연과 두 번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누군가는 엄청나게 타이트한 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상현은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하델의 배려를 체감할 수 있었다.
공연을 진행하며, 공연 선정의 기준이 ‘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영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상현은 2005년부터 2009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음악활동을 쉰 적이 거의 없었다. 대중들이 보기엔 앨범과 앨범 사이의 텀이 있었겠지만 그 사이에도 부단히 바빴었다.
그래서 상현은 투어를 하면서 역설적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투어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휴식이 주가 되고, 중간 중간 공연이 하고 싶을 때마다 공연을 하는 느낌이었다.
상현은 가보고 싶은 곳은 전부 가고, 경호상의 위험이 없는 선에서 하고 싶은 일은 모조리 했다.
“한국인이 원래 도박에 재능이 있어요. 타짜 봤죠?”
“그 영화의 주제는 도박이 아니라 누가 더 사기를 잘 치나 아니야?”
“어허, 큰일 날 말씀하십니다. 사기가 아니라 예술. 예술의 경지에 오르는 거죠.”
“그래서 뭐?”
“제가 그 예술을 보여드리죠.”
2007년에 여행을 하면서 라스베이거스에 왔을 때는 미국 나이로 성인이 되지 않아서 카지노에 출입하지 못했었다.
때문에 상현은 이번에는 카지노에 입장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고용된 H&R INC의 국제 법무팀장이 상현을 저지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상현은 정선 카지노 이외의 카지노 출입이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진짜요?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 있던데…….”
“원래는 불법이야. 그냥 나라에서 일일이 안 잡을 뿐인 거야. 넌 유명인이니까 이런 면에서 조심해야해.”
“마스크 할까요?”
“마스크를 해도 널 알아보는 사람이 세 자리 수일 거라는 거에 내 월급을 걸지.”
“그 월급 누가 주시는지 아시죠?”
상현이 국제 법무 팀장인 임 변호사에게 투덜거렸다.
하델은 상현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이후 곧장 한국인 변호사를 구했다. 오경 그룹과의 혹시 모를 트러블을 위함이었다.
그리고 H&R INC에서 한국인 변호사를 스카우트 하려한다는 사실은 금세 한국 법조인들 사이에서 핫 이슈가 되었었다.
조건이 엄청나게 파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상현에게 연락해 인사 청탁(?)을 요구한 사람이 있었으니, 과거에 오연주를 통해 소개받았던 임 변호사였다.
임 변호사는 하델이 사람을 구하기 몇 주 전에 오연주 사장과의 고용관계를 끝낸 상태였다. 원래는 좀 더 쉬려고 했는데 H&R INC의 조건이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상현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때 그 고등학생이 이제 내 고용주가 되다니. 그것도 세계적인 스타로써.’
상현 입장에서는 오경 미디어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의 전후관계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임 변호사의 등장이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카지노는 절대 안 돼.”
지금은 좀 안 반갑지만 말이다.
그렇게 임 변호사의 제지를 받은 상현은 결국 카지노에 출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로 라스베이거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즐겼다.
“다음 일정은 어딘가요?”
“체이스 필드.”
“체이스 필드? 미식축구장이에요?”
“미식축구가 아니라 야구야. 애리조나에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 야구장에서 공연해본 적 없지?”
“절 너무 무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비행기에서 LA UP의 원곡 뮤직비디오 보여드리죠.”
그렇게 상현과 하델을 포함한 H&R 팀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애리조나로 향했다.
그리고 애리조나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Touch The Sky가 3주 연속 더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애리조나, 콜로라도, 텍사스…….
미국 지도상으로 좌측 하단에서 우측 상단으로 선을 긋는 것 같은 상현의 투어는 계속 이어졌다.
이처럼 연속성을 가진 채로 미국을 횡단할 수 있다는 것은 상현의 인기를 반증하는 일이었고, 그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어느새 1달 반이 지나 상현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미국을 사선으로 횡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팬들은 상현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들리기를 바랐다.
그들은 얼마든지 더블 플래티넘(200만장)을 지나 트리플 플래티넘(300만장)을 향해 달려가는 앨범이자, 총 4주 동안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앨범의 주인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현을 섭외할 생각이 없던 축제나 행사의 주최측이 부랴부랴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동경로를 보아하니 자신들의 도시를 지날 거 같으니 좀 무리해서라도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뮤지션을 섭외하려는 것이다.
상현은 하델과 상의하며 공연 섭외를 승낙하기도, 거절하기도 하면서 계속 움직였다.
서부를 지나 중부로, 중부를 지나 동부로.
그렇게 2달이란 시간이 지난 12월 말.
상현과 하델은 뉴욕에 도착했다.
그리고…….
“뭐야? 얼굴이 왜 이렇게 탔어?”
“흑인은 좋겠다. 안타서.”
“지금 그 발언은 인종차별 아니야?”
“혼혈은 저리 빠져있어.”
서로의 피부색까지 거리낌 없이 놀릴 수 있는 두 명의 뮤지션도 뉴욕으로 도착했다.
최초의 골든 에라가 시작되었던 뉴욕.
그곳에 골든 뉴 에라 멤버들이 모여든 것은 2009년의 마무리가 이틀 남은 12월 30일이었다.
<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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