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81화 (281/309)

< Verse 44. The End >

***

상현은 하델의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미국 방송에 출연했다.

물론 지금까지 전미로 송출되는 엑스펙터나 그래미 어워드, BET 힙합 어워드에 출연하긴 했지만, 그건 방송을 위해 나간 게 아니라 음악을 위해 나간 거였다.

음악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방송을 하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 정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순전히 방송을 위함이었다.

뮤지션들의 음반 판매량에 미치는 방송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RIAA의 조사에 따르면 뮤지션의 대중적 인지도가 앨범 판매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만, 싱글 판매량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파이브. 딱히 인터뷰나 언론을 두려워하진 않지?”

“뭐, 두려워하진 않죠. 두려워할 이유가 있나요? 그냥 굳이 나갈 필요성을 못 느꼈던 거죠.”

“그럼 이번에 한 번 나가봐. 이것도 잘 될 때나 나갈 수 있는 거야. 망하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니까. 가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고.”

그러나 상현이 방송에 출연한 것은 판매량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하델의 말을 들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기회가 왔을 때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가워요. 파이브식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광이요? 혹시 제가 한국에서도 유명한가요?”

“물론이죠. 어쩌면 저보다 더 유명 할…… 수는 없겠군요.”

상현의 농담에 사회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상현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그 유명한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쇼였다.

20년 넘게 낮 시청률 1위 수성.

일일 시청자수 700만 명.

미국 내 시청자수 5000만 명 이상.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방송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엄청난 수식어가 붙은 프로그램이었지만, 상현의 출연 소감은 그냥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다 왔다는 정도였다.

어쩌면 그게 오프라 윈프리의 힘일 지도 몰랐다.

“이전부터 궁금했는데, 파이브식스의 본명은 뭔가요?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용하던 이름이요.”

“이상현입니다. 미국식으로 하면 상현 리가 되겠죠.”

“발음이 좀 어렵네요. 바보 같은 질문인 건 아닌데 브루스 리(Bruce Lee : 이소룡)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죠?”

“그렇죠. 그 분은 중국분이니까요.”

이전에 월드스타힙합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미국은 인터뷰 방식이 한국과 달랐다.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이 잡담을 나누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핵심부로 접근해있는 방식이었다.

“Touch The Sky가 더욱 화제가 된 것은 그 안에 녹아있는 당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슬픈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은 전부 진실인가요?”

“다른 래퍼들도 그렇지만, 제가 가진 철칙 중 하나가 랩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죠.”

“그럼 성인이 되기 전에 양친이 돌아가신 건가요?”

“네. 불운하고, 불쾌한 교통사고가 있었죠.”

“부모님은 당신이 음악 하는 걸 지지하셨나요?”

“아뇨. 제가 랩을 시작한 건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입니다. 그래서 가 필요했죠. 높은 곳에서 절 지켜보고 계실 두 분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밝게 빛나야 하니까요.”

난 이제 당신의 드림카를 타고 다니고

얼마 전에 광고까지 찍었지

내 주변을 온통 플래쉬 라이트로 채울게

땅에 가장 번쩍이는 사람이 돼서, 눈에 잘 띌 수 있게.

미리 준비된 것인지, 아주 적절한 순간에 I Swear가 흘러나왔다.

오프라 윈프리와 패널들은 숨죽이며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두 마디는 정말, 정말 멋진 구절이에요. 전 14살에 미혼모가 됐고, 그 후 2주 뒤에는 그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서 그 아이가 하늘에서 절 보고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죠.”

오프라 윈프리의 공감의 힘은 한국에서도 유명했다.

상현이 보기에도 슬픔이 가득한 그녀의 말과 표정에는 온전한 진실이 담겨있었다.

상현이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마 보고 있을 겁니다. 오프라가 너무 밝게 빛나서 볼 수밖에 없겠죠.”

“아, 이런 제가 위로를 받았네요. 당신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군요, 파이브식스.”

상현은 문득 김운철 교수님이 말했던 특별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 중에 오프라 윈프리도 속해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확실히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을 진동시키고, 감정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뉴스에 감정을 과하게 전달한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을까.

‘내 목소리를 타인이 들었을 때는 이런 기분일까?’

상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오프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조금 전에 ‘불운하고 불쾌한 사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음…… 불쾌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요? 파이브?”

“어…… 이 얘기를 하면 너무 길어질 텐데요. 방송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과연 한국에서 슈퍼스타였다 보니 방송 시간까지 체크하는 여유가 있군요.”

상현의 걱정에 오프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생방송으로 할 때는 저도 그런 걱정을 하지만 오늘은 사전 녹화니까요. 뭐, 정히 길어지면 방송은 안 나가고 저희끼리 알고 있죠 뭐. 여러분도 괜찮죠?”

오프라의 패널을 향한 질문에 패널들이 긍정의 박수를 쳤다.

상현은 그렇게 오경 그룹과 얽힌 교통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이런 이야기까지 할 계획은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당시의 감정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경 그룹은 세계적인 기업인만큼 미국에서도 적지 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오경을 일본 회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미국에서 OGyung이란 마크가 붙은 제품들을 찾아보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가끔 래퍼들은 OGyung이 OG(오리지널 갱스터 약어)+young이라며 무시무시한 회사 이름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아, 제 트랙 중에 영어 버전인 The Way We Live의 가사를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기서 말하는 회사가 오경입니다.”

과장이나 거짓말 전혀 없이

난 회사를 무너트렸지

연결성을 가진 이야기다 보니 상현의 이야기는 오경 미디어의 이야기와 한국을 떠나온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지만, 만약 당신에게 천재적인 음악성이 없었다면 새드 앤딩으로 끝났을 영화군요.”

“이야기를 하고 보니 오경 그룹에서 고소를 하지 않을까 무서운데요?”

법이란 게 상황마다 다르지만, 명예훼손죄는 진실을 말해도 죄가 될 수가 있다. 죄가 되지 않는 경우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했을 때뿐이었다.

그러나 상현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과감하게 이야기를 진행한 것은, 오프라의 질문을 받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경 그룹과 상현의 악연이 어디서 이어졌는지는 한국의 대중들도 잘 모른다. 당시의 상현은 오경 그룹보다 약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찾아오는 것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Touch The Sky.

하늘까지 닿기 위해서는 머리 위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야하니까.

그리고 이러한 이유를 떠나서도 언젠간 오경 그룹에게는 갚아줄 일이었으니까.

상현의 이야기가 끝나고 오프라 윈프리의 질문이 이어졌다.

미국은 고소의 국가라고 불리는 만큼, 개인과 기업이 싸움을 벌이면 법원에서 개인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한국은 기업이 법 위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오프라 윈프리의 상식에는 잘 이해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문화적인 갭이라는 게 단 몇 시간의 이야기로 좁혀지는 게 아니긴 하죠.”

“만약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꼭 도와드리고 싶군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상현은 한동안 잠잠했던 싸움의 제 2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888 크루라는 한국의 레이블이 많이 등장하는군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면서, 제 동생과 저에게 새로 생긴 가족들이니까요.”

“그분들의 음악도 꼭 듣고 싶군요.”

“저도 언젠간은 888 크루와 함께 미국에 앨범을 내고 싶습니다. 아니, 낼 겁니다.”

“기대가 되네요.”

그 순간 오프라 윈프리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짓궂은 질문 하나 던져도 될까요? 2000년대 후반에 나타난 데쓰 로 레코드라는 평가를 받는 H&R INC는 요즘 굉장한 관심을 받고 있죠. 소속 뮤지션들의 시너지와 우정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요.”

“무슨 말을 하실지 알겠네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닌가요?”

“눈치가 빠르신데요? 대답은 준비 되셨나요?”

“음…….”

잠시 말을 고르던 상현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MTB를 낼 때까지만 해도 저에게는 888 크루가 더 거대한 존재였습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첫째 아이의 탄생은 신비롭고, 경이롭지만 둘째 아이 때는 환상이 좀 없어지는 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둘 다 사랑스러운 말썽꾸러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888 크루와 H&R INC를 파이브식스가 낳았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다 제가 업어 키웠죠. 솔직히 저 아니었으면 성공이나 했겠습니까?”

상현의 농담에 오프라 윈프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에 좋은 말이 있거든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H&R INC의 친구들이나 888 크루나 다 같은 형제들이죠. 그래서 제가 엄청 기대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서로의 존재를 잘 모르는 배다른 형제들의 만남이요.”

상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뮤지션들의 만남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영감의 충돌로 이어질 테니까 상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았다.

“아빠의 사랑을 놓고 싸우면 어쩌시려고요?”

“그럴 때는 엄마를 불러야죠.”

“엄마요?”

“하 사모님이 해결해 주실 겁니다.”

카메라가 엔지니어 라인 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하델 레인즈를 잡았고, 패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오프라 윈프리 쇼는 몇 마디의 이야기를 더 나누고, 마지막으로 상현이 ‘I Swear’ 라이브 무대를 꾸미며 끝이 났다.

그러나 방송을 만드는 이들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레인즈. 오경에 대한 부분은 아무래도 편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하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파이브식스는 내보내고 싶어 하더군요.”

“설득해보시죠.”

오프라 윈프리 쇼 메인 제작자의 말에 하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기업을 직접 언급하는 부분만 편집해주시고 그대로 내보내 주시죠.”

“추론을 통해 대상을 확신할 수 있다면 이니셜로 가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뮤지션이 원하니까요. 저는 기업 쪽에서 고소를 하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상황을 만들어봐야죠. 방송일이 정확히 언젭니까?”

“12월 둘째 주입니다.”

“제가 한국 법에 대해 확실히 알아보고, 상황을 만들 때까지 시간을 좀 벌 수 있을까요?”

하델의 질문에 제작자가 답했다.

“12월 둘째 주에 방송이 되지 않는다면 1월 셋째 주까지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 새해에는 컨셉에 맞는 방송 일정이 다 잡혀있습니다.”

“1월 셋째 주면 괜찮습니다. 그래미와 크게 차이도 나지 않으니 더욱 좋군요.”

하델의 말에 제작자가 악수를 청했다.

“우선 알겠습니다. 일정은 더 조율해보죠. 아, 오늘 무대 너무 좋았습니다. 아마 이 방송을 계기로 파이브식스의 인기가 더 올라갈 것 같군요.”

“그건 별로 달갑지 않군요.”

“네?”

“아닙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델 레인즈는 방송국을 빠져나와 상현이 기다리고 있는 벤으로 향했다.

“어떻게 됐어요?”

“이름은 정확히 거론되지 않고 이니셜로 나올 거야. 하지만 패널들의 입을 통해서 결국은 퍼져나가겠지.”

“돈 많이 벌어놔야겠네요.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만약 벌금을 안내게 되면? 그 돈은 내 보너스인가?”

“에이, 너무 도둑놈 심보시네요. 상황이 좀 특수하긴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기업에서 고소를 하는 순간 ‘저 이니셜의 기업이 바로 접니다.’라고 광고하는 꼴이 돼서 고소를 안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자네는 너무 똑똑해.”

“반땅하죠. 반땅.”

“콜.”

상현이 씩 웃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자신이 888 크루의 사업적인 부분까지 모두 신경을 썼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니었다.

상현보다 더욱 노련한 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 스케쥴은 뭔가요?”

“엘런 쇼 출연은 어때? 오늘 보니까 말 잘하던데.”

“공연이나 잡아주시죠. MTB 때 못 벌었던 500만 달러 한 번 벌어보게. 우리 하 사장님도 이제 돈 버셔야죠.”

“고작 500만 달러? 5000만 달러가 아니라?”

하델 레인즈의 농담에 상현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상현은 이어진 세 달 동안 하델 레인즈가 농담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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