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4. The End >
Verse 44. The End
BET 힙합 어워드가 끝나고 곧장 대중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것은 H&R INC 팀의 두 번째 싸이퍼도 아니고, 에미넴이 포함된 세 번째 싸이퍼도 아니었다.
제이지와 상현이 사이좋게 BET 힙합 어워드에서 3관왕을 차지한 것도 아니고, BET 힙합 어워드를 가득 채웠던 래퍼들의 멋진 공연도 아니었다.
대중들의 관심을 독차지 한 것은, 바로 벨 포스였다.
벨 포스는 유명한 래퍼는 아니었다.
만약 그가 유명했다면 LA 토박이인 켄드릭이나 스쿨보이 큐가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LA 랩씬이 캄튼 지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벨 포스가 대체 누구야?
-글쎄? LA 언더그라운드에서 파이브식스와 트러블이 있었던 래퍼가 아닐까?
-아닐 걸? 잘은 기억 안 나는데 무슨 인터넷 기사에 언급됐던 언더그라운드 래퍼 같던데?
-검색해 봐도 안 나오는데 기사 전문 어디서 볼 수 있어?
-아빠 왔다. 오늘 선물은 기사 전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벨 포스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상현이 벨 포스를 콕 집어 언급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냥 우연히 클릭한 인터넷 기사의 기자가 벨 포스의 맨션 전문을 인용했기에 눈에 띈 것뿐이었다.
또 어떤 의미에서 벨 포스는 행운아였다.
BET 힙합 어워드에서 가장 핫한 래퍼가 자신을 언급하며 미친 듯한 랩을 뱉었으니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관심의 시작은 부정적이겠지만, 실력이 있다면 유명세로 연결 지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엄청난 리스펙트를 받고 있는 에미넴도 시작은 다짜고짜 유명인을 디스해 관심을 끄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벨 포스에게 에미넴 정도의 실력은 없었다.
-쓰레기잖아. 이정도 실력으로 파이브식스를 디스를 한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디스도 아니지. 래퍼가 디스를 하려면 트랙을 발매해야 하니까. 이 자식은 그냥 키보드로 나불거린 것뿐이야.
-그냥 관심 받고 싶었던 거야. ‘어째서 파이브식스가 LA를 대표한다는 거지? 난 벨 포스(Bell Force)라는 랩 네임으로 LA에서 7년을 넘게 랩을 했어.’ 여기서 굳이 자신의 스테이지 네임을 언급한 것부터 티가 나잖아.
-맞아. 나도 기사를 보면서 그 생각했어.
-벨 포스의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은 어디 있어? 어디서 이 병신의 작업물을 듣고 웃을 수 있을까? 요즘 나 우울해.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은 없고 유투브 링크를 남겨줄게. 댓글 재미있어.
벨 포스는 네티즌들의 조롱을 한 몸에 받았다.
사실 벨 포스는 심각할 정도로 못하는 래퍼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7년이나 랩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만 불운하게도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리고 강한 상대가 꺼내든 카드 역시 너무 강했다.
2009 BET 힙합 어워드는 방송 이후에도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H&R 군단의 싸이퍼와 에미넴을 비롯한 베테랑들의 싸이퍼가 있었다.
-루키와 베테랑들의 대결.
-2009년의 블랙 뮤직을 이끄는 것은 황인과 백인?
상현이 기억하고 있는 미래는 반만 맞았다.
앞으로 BET 싸이퍼가 언급될 때마다 에미넴, 블랙 사우트, 모스 뎁의 싸이퍼는 거론될 것이다. 전설적인 콜라보레이션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설의 영역에 오른 것이 에미넴의 싸이퍼만은 아니었다.
하나의 싸이퍼가 더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H&R 군단의 것이었다.
-파이브식스는 미쳤어. 그냥 다른 말이 필요 없어. 미쳤어.
-난 그래미도 안보고 엑스펙터도 안 봤어. 그러다가 우연히 어제 BET를 봤는데, 완전 팬이 되어버렸어. 지금 다른 공연 영상도 돌려보고 있는데 진짜 신기해.
-뭐가 신기해?
-분명 같은 무대에서 같은 마이크를 쓰고 있는데, 파이브식스의 랩은 마치 한 번 필터링을 거친 것처럼 깔끔하게 들려.
-립싱크 논란이 있을 정도니까 오죽하겠어.
-Grammy MTB Remix 라이브 버전을 들어봐. 파이브식스의 진가를 알 수 있는 트랙이야. 싱글 플래티넘을 찍었지 아마?
-왜 다들 파이브식스의 랩만 말하는 거야? 어제 싸이퍼에서 켄드릭의 랩도 엄청났었어. 난 어제 싸이퍼를 보며 파이브식스와 켄드릭 라마가 앞으로 십년 동안은 힙합 씬의 최정상에 군림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제이콜은 왜 빼먹는 거야?
-하델 레인즈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뮤지션의 눈을 보는 눈이 정확해. 믹스테잎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쿨보이 큐와 제이록, 에이비 소울도 장난 아니야.
-Touch The Sky를 총괄 프로듀싱한 스탠다드의 사운드도 매력 있어.
-힙합 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파이브식스를 투팍으로 보고, 웨스트 코스트의 적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켄드릭을 스눕독으로 보면 스탠다드를 닥터드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H&R INC는 2000년대 후반에 나타난 데스 로 레코드의 재림이군.
-그럼 제이콜이 네이트 독이고 하델 레인즈가 슈그 나잇이야?
-제이트 콜, 하델 나잇즈.
-파이브 팍.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미친놈이?
이러한 흐름에 따라 H&R INC 소속 뮤지션들에 대한 관심은 덩달아 높아졌다.
사람들은 H&R INC가 90년대의 데스 로 레코드(Death Row Record)라고 말하며, 조만간 애프터매쓰, 데프 잼 레코드를 뛰어 넘는 슈퍼 힙합 레이블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세 명의 앨범이 전부 앨범 차트 15위 안으로 진입했다. 세 앨범 모두 판매 지구력이 떨어질 앨범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다음 주에는 세 앨범 모두 탑 텐으로 진입할 수 있을거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 회사에서 동시에 발매한 앨범이 15위권 안에 안착한 것만 해도 엄청난 기록이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
* The Billboard 200
1. -FiveSix /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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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endrick Lamar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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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J.Cole/ + 2
-
상현의 앨범이 발매 3주 만에, 마침내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었다.
“와······. 진짜 1위를 했네. 했어.”
“그러게.”
는 발매 첫 주에 5위를, 그 다음 주에 2위를 기록하더니 마침내 1위의 고지를 밟았다.
평생 음악을 해도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뮤지션이 수두룩했고, 이름을 올리더라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선택받은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상위권 뮤지션들 중에서도 또 한 번 선택받은 이만 올라갈 수 있다는 1위.
상현이 세운 기록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은 난리가 났다.
엑스펙터 이후로 신문지면의 첫 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상현이었지만, 지금의 언론 반응은 차원이 달랐다. 대서특필이라는 단어조차 한국 언론의 반응을 표현하는데 역부족이었다.
그러니 상현이 한국에서 얼마나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지를 표현하려면 다른 지표를 가져와야했다.
-Touch The Sky Sales in Korea : 281,028.
28만장.
터치 더 스카이가 한국에서 기록한 판매량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놀랍게도 2009년 한국에서 기록한 앨범 판매량 중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터치 더 스카이는 영어로 만들어진 앨범이었으며, 심지어 아직 한국에 정식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괜히 IT 강국이 아니었다.
상현이나 888 크루의 팬, 혹은 몇몇 언론 매체들이 닐슨 사운드 스캔(빌보드가 공식적으로 판매량 지표를 확인하는 기관)에 즉각 카운트가 되는 방법으로 ‘Touch The Sky 해외직구 방법’을 강의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게 발매 3주를 꽉 채운 시점에 Touch The Sky의 판매량은 더블 플래티넘(200만장)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전히 몇몇 언론들은 상현이 앨범 판매 기록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민들의 도움과 미국 내 동양인들에 의해서 뻥튀기가 됐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공허한 외침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숭이라 놀림 받을 때는
바나나 한 번 준적 없던 놈들이
이제와 내가 원숭이라
나무를 잘 탄다고 아니꼬워해
상현이 BET 힙합 어워드에서 이러한 언론들의 작태를 꼬집은 가사가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아일랜드 출신 밴드 U2의 앨범을 아일랜드 국민들이 사주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틀즈나 아델과 같은 영국 뮤지션들의 판매량이 영국민들의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지적도 없었다.
-유독 파이브식스에게 세워진 엄격한 잣대. 이 역시 보수 언론들의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이 아닐까?
오히려 여론이 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전부 상현의 음악이었다. 내가 하는 예술이 맞다고 소리 질렀기 때문이었다.
상현은 빌보드 1위를 할 능력을 가진 뮤지션이었고, 역시 빌보드 1위를 기록할만한 앨범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장기집권으로 가능성으로 돌아섰다.
6월에 발매한 에미넴의 가 2주 연속 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한 이후로 지금까지 매주매주 더 빌보드 200의 왕좌는 교체됐었다.
매주 1위가 바꿨다는 말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상현의 앨범이 지난주 1위인 펄 잼(Pearl Jam)의 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은 예견된 바였다.
‘얼마나 갈까?’
하델 레인즈는 최소를 2주로 보고 있었다.
앞으로 2주 동안은 1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게 되면 Touch The Sky는 총 3주 동안 앨범차트 1위를 수성하는 것이었다.
만약 상현이 정말 빌보드 200에서 3주 동안 1위를 수성한다면, 그는 2000년 이후로 래퍼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상현이 워낙 대단한 기록을 세우고 있고, 화제의 중심이기에 켄드릭과 제이콜에 스포트라이트가 덜 가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대단했다.
특히 켄드릭은 갈수록 뒷심을 발휘하며 순위를 4단계나 끌어올렸고, 세 앨범 중 가장 상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제이콜 역시 끈끈한 지구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처럼 H&R 사단의 뮤지션들은 빌보드 앨범 차트를 휩쓸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싱글 차트인 핫 100 역시 비슷했다.
다만 앨범 차트가 고공행진을 보여준다면, 싱글 차트에서는 고공은 아니지만 많은 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제이콜이 50위권 안에 총 4곡을 집어넣었고, 켄드릭이 2곡을, 상현이 3곡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그 중 가장 높은 순위는 7위인 제이콜의 Work Out이었고, 다음이 9위인 상현의 I Swear였다.
빌보드 핫 100은 라디오 등을 통해 외부로 틀어지는 에어플레이 횟수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에어플레이 중에는 클럽의 DJ가 트는 것 역시 포함이 됐다.
사실 힙합 노래가 싱글차트에서 강세를 발휘하는 것 역시 클럽의 영향이 컸다.
‘Boom Bomm Pow’로 12주 동안 1위를 기록하고는, ‘I Gotta Feeling’으로 연이어 14주를, 현재까지 총 26주 동안 핫 100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블랙 아이드 피스가 클럽튠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주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클럽에서 잘 틀어지지 않은 상현의 노래들은 싱글 차트에서는 불리한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위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은 라디오를 통해서 굉장히 많이 틀어지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I Swear’와 ‘Lonely Road Part 2' 이외에 싱글 차트에 이름을 올린 상현의 곡이 No Color라는 것이었다.
No Color는 떨어질 만하면 다시 올라오고,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며 여전히 50위권을 기록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그러나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가 인종차별인 만큼, 다양한 인종과 계층에서 꾸준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파이브식스가 더 이루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내가 어떤 비젼을 제시해야 할까?’
하델은 뮤지션의 청사진을 그려야하는 매니저로써, 또한 파이브식스의 음악에 빠진 팬으로써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만큼 상현은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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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44. The End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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