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3. Touch The Sk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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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의 성공을 언급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에미넴이 백인이라서 성공했다는, 백인 버프였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에미넴이 성공한 이유가 이전에 없었던 백인 쓰레기라는 신선한 포지션과 잘생긴 외모, 흑인 사이에서 차별 받던 백스토리가 실력과 맞물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에미넴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MTV 인터뷰에서 ‘내가 피부색 때문에 더 뜬 것도 없지 않아 있다.’라고 말했으며, 2002년에 발매한 White America에서는 ‘내가 흑인이었다면 음반이 지금의 절반도 안 팔렸을 거야’라는 가사를 쓰기도 했었다.
때문에 에미넴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으며 로 미국 대중음악계를 휩쓸고 있는 상현에게도 비슷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상현이 동양인이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뜨는 게 힘들었을 거란 주장이 알음알음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상현은 미국인이 아님에도 미국에서 팬 계층의 분포도가 아주 넓은 뮤지션이었다.
랩 뮤직에 심취한 이들은 상현의 음악 그 자체에 반해 있었다. 그들에겐 상현이 동양인이란 것이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었다. 꾸준히 보여주고 증명했으니까.
이들과 달리 랩을 가볍게 즐기는 대중들은 더 엑스펙터를 통해서 상현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곤 그래미 어워드 무대나 라이브 버전 싱글 같이 추후에 이어진 활동을 통해서 팬이 되었다.
이 두 계층만 해도 래퍼가 노릴 수 있는 대부분의 팬층이었다. 랩 매니아들과 랩을 가볍게 즐기는 이들을 잡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현은 여기서 다른 래퍼들이 잡지 못했던 계층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온 동양계 미국인들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동양인들은 랩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어른들은 랩을 좋아하는 이들보다 싫어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 이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유일한 래퍼가 바로 상현이었다.
상현이 성공하면 할수록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옅어질 것이었고, 그런 것을 떠나서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이 높이 나는 게 자랑스럽기도 했으니까.
상현이 더 빌보드 200에서 5위로 데뷔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동양계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몇몇 언론 매체들이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고 나섰다.
는 충분히 훌륭한 앨범이지만, 판매량이나 빌보드 순위가 뻥튀기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양인들은 맹목적인 집단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구분하지 않아. 그냥 자신들과 같은 피부색을 가진 래퍼가 앨범을 만들었으니 사주는 것뿐이야. 빌보드는 거기에 놀아난 것이고.
-백인의 앨범 다음에 황인의 앨범이 힙합 씬을 점령했군. 흑인들의 성지가 상술에 침범당한 게 유쾌하진 않아. 물론 그만큼 랩씬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랩이란 장르가 대중화가 된 게 이상한 건 나뿐인가?
-어째서 파이브식스가 LA를 대표한다는 거지? 난 벨 포스(Bell Force)라는 랩 네임으로 LA에서 7년을 넘게 랩을 했어. 하지만 그는 고작 2년이지. 그가 엑스펙터에서 LA를 샤라웃한 걸로 LA를 대표하는 래퍼가 된 게 어이가 없어.
그리고 이때다 싶은 몇몇 래퍼들의 자극적인 코멘트가 이어졌다.
상현은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타겟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언론 매체들이 유명인 흠잡기를 즐겨하며,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유명 래퍼를 공격해서 인지도를 올리려는 일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빴다.
에미넴이나 상현은 메이저로 올라와서 피부색의 덕을 본 것은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덕을 봤다기보다는 자신들에 공감해줄 수 있는 팬층이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들의 피부색은 분명히 그들을 괴롭히는 요인이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그러니 상현은 언론이나 래퍼들의 말이, 자신이 LA 언더그라운드에서 했던 무수한 노력들이 싸잡아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내가 만만한가?’
확실히 미국인들은 동양인들을 나약하고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상현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쇼 비즈니스의 황주철 편집장부터 오경 미디어와 차인현까지. 상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를 만만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었다.
“뭐해? 인터넷 보고 있어?”
그때 상현의 작업실 안으로 하델 레인즈가 들어왔다.
“아, 하 사장님.”
“내가 한참 현역일 때는 인터넷 댓글 같은 게 없어서 좋았지. 빌보드나 롤링 스톤의 말만 참으면 됐거든.”
콧잔등을 찡그리던 하델이 말을 이었다.
“그런 거 보지 마. 맞는 소리를 해도 보지 말고, 틀린 소리를 해도 보지 말고.”
“맞는 소리를 해도요?”
“맞는 소리를 한다고 해도 네가 이룩한 예술 세계를 바꿀 수는 없잖아. 예술이란 정답이 없고 뒤틀린 거야. 사람마다 다 다르게 구축된 거라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예술은 없어. 알면서 왜 물어?”
“그렇긴 하죠. 아무튼 무슨 일이세요?”
“이거, 갈 거지?”
하델 레인즈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상현은 그 종이를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는 제가 하는 예술이 랩이란 게 좋네요.”
“간다는 말이지?”
“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예술은 없어도 내 예술이 맞다고 크게 소리라도 한 번 쳐봐야죠.”
상현의 손에 들린 것은, 10월 중순에 열리는 BET HIPHOP Awards의 초대장과 노미네이트 명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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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본고장인 미국에는 힙합 음악만을 대상으로 열리는 시상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BET HIPHOP Awards였다.
원래 BET 어워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소수 민족의 음악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에서 힙합의 인기가 독보적이자, 2006년부터는 아예 BET 힙합 어워드를 별개의 시상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은 BET Awards보다 BET HIPHOP Awards가 더 인기가 많은 시상식이 되어버렸다.
한국의 힙합 뮤지션이 힙합엘이의 ‘이달의 뮤지션’에 선정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인터뷰에 참여하는 것처럼, 미국의 힙합 뮤지션들은 그래미 어워드는 불참해도 BET 힙합 어워드는 어지간하면 불참하지 않았다.
힙합에 한해서는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BET 힙합 어워드가 열리는 아틀란타의 Atlanta Civic Center로 도착한 상현은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와우, 파이브식스. 만나고 싶었어.”
턱수염이 인상적인 조 버든(Joe Budden)이 상현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엄청나게 많은 뮤지션들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상현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상현은 조 버든을 시작으로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중에는 상현과 함께 ‘Rookie Of The Year’에 노미네이트 된 드레이크(Drake)도 있었고, 그래미 어워드의 애프터 파티에 참여하지 않아서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칸예 웨스트도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요즘 장난 아니던데? 앨범 잘 들었어.”
그리고 연락은 종종 했지만, 만나는 건 오랜만인 케이알에스원도 있었다.
“파이브, 네가 오늘 퍼포먼스 명단에 있었던가?”
“공연은 안하는데 싸이퍼는 이미 찍었죠.”
“그래? 주제가 뭐였는데?”
“H&R이요.”
BET 힙합 어워드는 시상식이라곤 믿을 수 없는 공연 퍼레이드가 유명한 시상식이었다.
시상식장은 힙합 클럽과 같았고, 관객들은 클러버의 마음가짐으로 시상식에 들어왔다. 그래미 어워드처럼 정장차림으로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래퍼들이 농담으로 TV에 방송되지만 않는다면 스트립 댄서라도 부를 기세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퍼포먼스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그게 ‘비이티 싸이퍼(BET CYPHER)’였다.
싸이퍼란 하나의 비트를 틀어놓고 자유롭게 랩을 하는 재즈에서 잼(JAM)과 같은 것이었다. 보통 싸이퍼에서는 즉흥 랩을 많이하지만, 꼭 즉흥 랩만 하는 것은 아니고 미리 만들어놓은 트랙을 뱉기도 했다.
그리고 BET 싸이퍼는 말 그대로 BET 힙합 어워드의 참가자들끼리 하는 싸이퍼를 의미했다.
이런 BET 싸이퍼가 사랑받는 이유는 평소에는 함께 작업하지 않는 래퍼들이 한 비트에서 실력을 겨루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Mos Def, Black Thought, Eminem의 싸이퍼가 라인업이 공개되자마자 큰 화제에 올랐다. 이 세 래퍼들은 아직 같이 작업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화제에 오른 또 하나의 싸이퍼가 바로 상현이 참여하는 H&R 팀의 싸이퍼였다.
“너무 레이블을 대놓고 홍보하는 거 아니야?”
“남들이 오해하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H&R은 ‘하드코어 랩’의 약자입니다.”
“웃기고 있네. 다른 친구들은 어디 있어? 나도 H&R INC 친구들과 인사를 좀 나누고 싶은데.”
“어딘가 흩어져서 놀고 있겠죠. 아니면 여자 꼬시고 있던가. 곧 시작이니까 오겠죠.”
상현의 말처럼 30분 정도가 지나니 켄드릭과 제이콜을 비롯한 친구들이 돌아왔고, 케이알에스원과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관객입장이 시작되었고, 방송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렇게 2009 BET 힙합 어워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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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레(Wale)와 구찌 메인(Guggi Mane)의 Pretty Girl 공연으로 시작한 BET 힙합 어워드는 굉장했다.
싸이퍼는 이미 찍었고, 공연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현을 비롯한 친구들은 긴장 없이 마음껏 공연을 즐겼다.
그렇게 몇 번의 공연이 지나가고, 수상자 발표가 이어졌다.
그리고 상현은 총 두 번, 무대에 올랐다.
Rookie Of The Year을 수상하면서 한 번, 골든 뉴에라 친구들과 Best Hiphop Collaboration을 수상하면서 한 번이었다.
“이게 MTB만 집계된 거지?”
“당연하지. 시상식이 10월인데 우리 앨범은 2주 전에 나왔잖아.”
“그럼 내년에도 참석할 수 있겠네? 내년에는 꼭 공연하고 싶다.”
제이콜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첫 번째 BET 싸이퍼 영상이 공개되었다.
니키 미나즈, 조 버든, 크라운 로얄, 벅샷의 영상이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래퍼들의 싸이퍼 영상을 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재치 있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오늘이 전설이 만들어지는 날이네.’
상현은 앞으로 ‘BET CYPHER’란 단어가 나오면 늘 함께 거론될 영상을 미리 알고 있었다. 에미넴이 포함된 세 번째 싸이퍼 영상이 그것이었다.
2009년까지는 한 시상식에 3번의 싸이퍼가 진행됐지만, 2010년에는 5개, 2011년에는 7개의 싸이퍼가 진행될 것이었다. 갈수록 인기가 늘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최고의 싸이퍼로 꼽히는 것은 에미넴과 모스 뎁(Mos Def), 블랙 소우트(Black Thought)의 영상이었다.
상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주 큰 박수가 터졌다.
싸이퍼가 끝났나 싶었는데, 싸이퍼는 진작 끝나고 또 한 명의 수상자가 발표된 것이었다.
그때 켄드릭이 상현을 쿡 찔렀다.
“뭐해?”
“어?”
“너잖아.”
“나?”
상현은 그렇게 No Color로 Lyricist Of The Year까지 수상하며 총 2관왕의 자리에 올랐다. 단체로 수상한 베스트 힙합 콜라보레이션까지 따지면 3관왕이었다.
BET 힙합 어워드는 그래미와 달리 총 15개의 부문에서만 시상을 하기 때문에 3관왕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었다.
“Rookie Of The Year의 수상 소감을 말할 때는 경황이 없어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소감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 꼭 사주세요.”
상현의 수상소감에 사람들이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다. 상현은 박수를 받으며 몇 마디 더 붙여 수상소감을 마무리 했다.
자리로 돌아오니 H&R INC 식구들을 비롯한 수많은 래퍼들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역시 음악가의 인생은 앨범 타이틀을 따라간다니까. 이러다가 인기가 곧 하늘에 닿겠어.”
“지금 그거 죽으란 말은 아니죠?”
“왜 아니겠어?”
그래미 어워드에서 안면을 튼 제이지의 농담에 상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정이 있어서 불참한 에미넴과 50Cent를 제외하면 안면이 있는 모든 래퍼들이 축하를 건네는 것 같
았다.
그 뒤로 몇 번의 공연과 수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H&R INC 팀의 싸이퍼 영상이 공개되었다.
< Verse 43. Touch The Sky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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