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3. Touch The Sky >
한국의 가수들은 신곡을 발표하는 과정이 보통 정해져 있다.
자사 홈페이지나 유투브 따위에 뮤직비디오를 선 공개하고, 음원 사이트에 음원을 공개한 뒤, 음악프로그램에서 컴백 무대를 가지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가수들은 신곡을 발표하는 과정이 프로모션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TV 채널이 거의 없었고, 몇 안 되는 전미권 채널에는 음악 방송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레이블의 대표들은 자사의 가수가 앨범을 발매하고, 프로모션을 시작해야할 때면 늘 골머리를 앓았다.
프로모션에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성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델 레인즈는 이번 앨범의 프로모션 시작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앨범이 3개나 동시에 발매됐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3개의 앨범이 앨범발매 사전절차를 밟는 순간부터, 각종 미디어 매체들서 너나 할 것 없는 연락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H&R Brainstorm’이란 타이틀을 가진 이번 쇼케이스 장에 이름이 붙은 회사는 두 곳이었다.
그리고 두 회사의 업종은 방송국이었다.
-KTLA
-KSCI
즉, 이번 쇼케이스를 와 에서 후원을 하고, 자사 채널에 송출을 한다는 의미였다.
두 방송국은 LA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캘리포니아 주의 방송국들이었지만, 의 주된 시청층이 미국인이라면 의 주된 시청층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LA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한인 방송인 과, 가장 시청률이 높은 일본 방송인 도 KSCI의 채널 중 하나였다.
이 말은 H&R INC의 쇼케이스가 아주 다양한 계층들에게 방송이 된다는 것이었다.
방송국의 간부들은 처음에는 하델이 요구하는 수많은 조건들 때문에 난색을 표했지만, 지금은 활짝 웃고 있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 특히 한인들 사이에서 골든 뉴에라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광고가 전부 매진 된 것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높은 금액으로 말이다.
마찬가지로 역시 웃고 있었는데, 미국 사회의 방송국인 만큼 자신들의 커넥션을 이용해 다양한 지역에 H&R Brainstorm의 전송권을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긴 것이었다.
광고 수익 역시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부족하지는 않았다.
‘이 친구들이 이정도로 인기가 많았나?’
두 방송국의 간부들은 자신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켄드릭, 제이콜, 상현의 인기에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골든 뉴에라 팀은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고 전미에서 굉장한 주목을 받았던 뮤지션들이었다.
특히 상현은 에미넴의 빌보드 1위곡에 참여했으며, 라이브 버전으로 발매된 MTB REMIX를 통해서 엄청난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이 왔었고, 수많은 공연에서 섭외가 들어왔었다.
뭘 해도 될 수밖에 없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순간.
그러나 상현은 그 순간을 박차고 앨범을 위해 잠적한 것이었다.
뮤지션 관련 가십을 다루는 몇몇 매거진에서는, 만약 파이브식스가 그래미 이후로 활동을 했다면 최소한 엑스펙터의 상금 규모인 500만 달러는 벌어들였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진짜 500만 달러의 주인’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음악을 만들려고 수많은 기회들을 내팽개쳤을까?
파이브식스는 정말로 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음악만 추구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제 대중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확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미국에서 발매하는 첫 번째 단독 스튜디오 앨범인 를 통해서.
그리고 그 시작은, LA 시간으로 오후 7시에 시작되는 H&R Brainstorm이었다.
쇼케이스 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LA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였고, 나머지는 미국의 각 지역에서 날아온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호주에서 날아온 관객들도 있었다.
물론 가장 멀리서 찾아온 사람은 한국에서 파견된 기자들이겠지만.
관객들은 무대에 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성급하게 굴진 않았다.
어차피 쇼케이스는 레이블에서 다음으로 푸시할 예정인 신인 가수들이 먼저 오프닝을 열고, 과거의 히트곡을 몇 곡 불러서 분위기를 잔뜩 끌어올린 다음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예측은 산산조각이 났다.
헤네시를 따, 난 꼭 이렇게 파티를 시작해
밥 말리를 틀고, 대마초를 하는 건 아니고
그리곤 뭘 하지?
너의 구역을 대표해, 임마.
정확히 7시가 되는 순간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켄드릭 라마의 무반주 랩이 다짜고짜 무대를 찢어버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H&R Brainstorm은 타이틀 그대로 폭풍이었다.
전조도 없었고, 예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3명의 뮤지션이 3개의 앨범에서 39개의 곡을 쏟아냈다.
들려주고 싶은 곡이 너무나 많았고,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다양했다.
그러니 시작부터 엑셀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앨범은 인간의 앨범입니다. 래퍼가 아니라, 캄튼의 거리에서 자라고 갈등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켄드릭 다운 앨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제가 앨범을 만드는 동안 가장 큰 적이 ‘골든 뉴에라’였다는 말입니다. 켄드릭 라마가 래퍼로서 구축한 가장 큰 이미지이니까요.”
켄드릭과 제이콜, 상현은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서로에게 피쳐링을 부탁하지 않았다.
세 명의 앨범에 동시에 수록된 하나의 트랙을 제외하면, 각자의 앨범은 각자의 색과 인맥이 강하게 묻어 있었다.
상현은 이러한 그들의 행동에 독보적인 1위가 되고 싶은 욕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켄드릭과 제이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니 풍미할 래퍼들이었다. 그들에 마음속에 이 정도 욕심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욕심은 상현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우정은 여전했지만, 이번 앨범에서만큼은 서로의 영향력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였다.
“그럼 여러분, 제 친애하는 첫 번째 적을 소개하겠습니다. 제이콜.”
요란하지도 않았고, 과장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온 제이콜이 켄드릭 라마와 손을 부딪쳤다.
그리고는 곧장 비트와 함께 랩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큰 목걸이를 건 남자를 좋아해
커다란 Range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녀
제이콜의 랩이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이 낮은 환호성을 질렀다.
켄드릭이 처음부터 변하지 않는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래퍼라면, 제이콜은 스타일이 여러 번의 변신을 시도한 래퍼였다.
제이콜이 완전체로 평가받기 시작하는 것은 <2014 Forest Hill>을 발매하는 시점부터인데, 그 전까지 그는 다양한 느낌의 랩을 선보였었다.
디스코그래피적으로 보면 ‘언더그라운드-메이저 데뷔-2014 Forest Hill’로 스타일이 크게 변모하는 것이었다.
특히 메이저 데뷔 이후로는 여전히 유려한 사운드를 추구하면서도, 그 사운드를 채우는 가사들을 아주 적나라한 단어들로 구성하는 것을 즐겼다.
욕설이나 성적인 단어들을 아주 부드러운 느낌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면은 의외로 여성 팬들에게 강력한 섹스 어필이 되었고, 인기를 얻기도 했었다.
바로 지금처럼.
남자인 상현이 들어도 매력적인 제이콜의 Work Out이 진행되면서 여성 팬들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이게 원래 빌보드 몇 위 곡이지? 한 십위 정도 했나?’
원래보다 2년이나 일찍 등장한 Work Out이었지만, 완성도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유려하고 세련된 면이 있었다.
왜냐하면 켄드릭과 파이브식스라는 엄청난 라이벌들과 경쟁을 하며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제이콜의 랩이 끝이 났다.
-꺄아아아악!
-제이콜!
테라피스트란 이름을 쓸 때부터 익숙했던 여성 관객들의 환호 소리에 제이콜이 특유의 비죽하는 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켄드릭이 인간으로써 앨범을 만들었다면 전 그냥 만들었습니다.”
콜의 말에 관중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말은 농담은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냥 만들었습니다. 사랑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방금 같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랩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랩을 하고 싶은 비트를 만들었고, 부르고 싶은 가사를 썼습니다. 심지어 두 친구를 디스하는 트랙도 만들어볼까도 했죠. 제 앨범을 반쯤 완성하고 두 친구 트랙들을 들었는데, 너무 잘해서 화가 나서요.”
사람들이 또 한 번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다음 차례는 누군지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BMW 광고를 찍은 재수 없는 친구죠. 파이브, 준비 됐어?”
제이콜의 물음에 어둠 속에서 상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든지.”
그리고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켄드릭의 랩은 정말 화려했고, 제이콜의 랩은 사춘기 시절의 두근거림을 회상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파이브식스는 어떨까?
셋의 앨범은 어제 자정에 발매가 되었다.
그러니까 10월 1일인 오늘 아침에는 레코드샵에서 살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는 레코드샵을 방문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세 명의 래퍼가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설명해주는데, 그 즐거움을 미리 알아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늘 쇼케이스를 방문한 2천여 명의 관객들에게는 공연이 끝나고 레코드샵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사인 CD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상태였다.
그러니 관객들은 파이브식스의 목소리가 들린 어둠 속으로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비트가 흘러나왔다.
***
KSCI와 KTLA는 이번 쇼케이스를 방송하지만, 그게 생방송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쇼케이스는 새로운 앨범을 소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앨범에 관련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생방송으로 적합한 포맷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으로 전송 독점권을 갖게 된 KSCI와 KTLA는 베테랑들을 모아서 쇼케이스를 실시간으로 편집하는 협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 30분 정도의 텀을 두고 방송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의 시작은 쇼케이스 무대가 아니라, 그래미 어워드에서 선보인 MTB REMIX 무대로 시작되었다. 사전 정보가 없는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 사이 두 방송국의 베테랑들은 쇼케이스의 무대를 편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준비만 하고 있었다.
“이거 어쩌지?”
“그러게요. 자를 곳이 없네요.”
오프닝 축하 뮤지션이 없다는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를 만한 부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켄드릭 라마의 무대는 감히 어딘가를 자르기가 어려운 무대였다.
어렵사리 뒷부분의 30초 정도를 잘라내니 이제 제이콜과 파이브식스의 무대에게 할애된 시간은 8분 정도였다.
처음 3곡이 끝나고 들어갈 광고가 잔뜩 있었기 때문에 오버 타임이 될 수는 없었다.
“4분 정도씩 잡으면 되겠네요.”
그러나 이어진 제이콜의 무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켄드릭 라마보다 훨씬 어려웠다. 딱 들어도 팝적인 세련된 사운드와 힙합을 결합시킨 Work Out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 느껴졌다.
켄드릭 라마의 랩이 매니아들을 미치게 만든다면, 제이콜의 랩은 대중들을 미치게 만들 노래였다.
“와, 나. 미치겠네.”
“근데 노래 정말 좋네요.”
“그러니까요.”
결국 엔지니어들은 제이콜의 노래를 거의 자르지 못했다. 중간의 아주 짧은 브릿지와 아웃트로를 들어낸 것이 다였다.
결국 4분이 약간 넘어버렸다.
그리고 파이브식스의 ‘I Swear’ 무대가 시작되었다.
‘맹세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파이브식스의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 모니터링을 전담하던 세 명의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렸다.
모니터링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파이브식스의 목소리가 너무나 완벽했고, 너무나 아름다웠고, 너무나 슬펐기 때문이었다.
맹세해,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을.
맹세해, 내 인생이 환하게 빛날 것을.
맹세해, 내 두 손엔 언제나 마이크가
맹세해, 이 노래가 당신들에게 닿을 것을
이상한 일이었다.
파이브식스는 후렴을 부르면서 ‘당신들’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떠올리고 있는 것은 부모님이란 존재였다.
상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은 자신의 감정 상태로 타인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래퍼로써 이 이상의 장점은 없었다.
심지어 상현이 ‘동양인의 차별’이라는 주제로 랩을 할 때도 흑인 뮤지션들이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을 떠올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쉽게 몰입할 수 있었고, 더 완벽히 몰입할 수가 있었다.
Touch The Sky, 난 하늘을 만질 수 있지
왜냐하면 거기서 손 내미는 당신들이 있기에
내 음악이 울리면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
혹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궁금해
그래미와 빌보드, BET와 AMA
난 그곳을 울릴 거야, 아니 찢어버릴 거야
내 모든 구절과 라임과 비유와 상징이
당신을 즐겁게 하는지 말해줘 파파, 마마
난 이제 당신의 드림카를 타고 다니고
얼마 전에 광고까지 찍었지
내 주변을 온통 플래쉬 라이트로 채울게
땅에 가장 번쩍이는 사람이 돼서, 눈에 잘 띌 수 있게.
상현의 랩이 모두의 귀로 파고들었다.
아니,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상현이 칸예 웨스트의 Only One을 듣고 타임스퀘어 광장 한 복판에서 울었던 것처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이들이 쇼케이스 장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 개인적인,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상현의 앨범 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 Verse 43. Touch The Sky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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