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2. 2009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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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가 전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시상식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래미가 끝난 직후부터 ‘Grammy A To Z’, ‘Grammy Highlight', 'Grammy Best Performance' 등등의 서브 콘텐츠들이 쏟아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은 이번 2009 그래미 어워드의 관전 포인트를 블랙 뮤직의 도약으로 보고 있었다.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는 역대 그래미 중 가장 많은 블랙 뮤지션들이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초청되었으며, 퍼포먼스를 꾸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미의 보수성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본상을 수상한 블랙 뮤지션은 아무도 없었다.
릴 웨인의 ‘카터III’는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에 비해 5배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최다 노미네이트를 기록했지만, 결국 힙합 필드만 휩쓸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상 결과와는 별개로 이번 그래미 어워드의 볼거리가 힙합에 집중된 것도 사실이었다.
본상인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를 수상한 콜드플레이와 제이지의 밴드와 힙합의 콜라보레이션.
혜성처럼 등장한 골든 뉴에라 팀의 MTB REMIX.
만삭의 여성 보컬 M.I.A와 함께 꾸민 제이지, 릴 웨인, 칸예 웨스트, 티아이의 Swagga Like US.
그러나 가장 많은 서브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는 무대는 에미넴과 파이브식스, 50Cent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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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Grammy A To Z.
-A : Adele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이은 영국 여성 뮤지션의 돌풍이 여전히 거세다. 아델은 더피, 조나스 브라더스, 골든 뉴에라, 재즈민 설리번을 제치고 그래미 본상인 베스트 뉴 아티스트의 영광을 차지했다.
-B : Black Music
2009 그래미 어워드는 블랙 뮤직의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갔고,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상식이었다.
특히 골든 뉴에라의 무대는 힙합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꺼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비단 흑인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황인과 혼혈에 대한 차별 역시 다루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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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Eminem
무슨 긴 말이 필요할까? 그가 돌아왔다.
데뷔부터 쭉 함께했던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에, 그가 구원해준 50Cent의 도움, 그리고 새로운 물결을 가져온 FiveSix가 함께했다.
발매 초읽기에 들어간 를 기대한다.
-F : FiveSix
동양의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 온 랩스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LA 힙합 씬에서 실력으로 편견을 극복하고 커튼콜 투어 라인업으로 이슈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반짝 스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후 LA 출신 래퍼들과 함께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더 엑스펙터에서 엄청난 무대를 보여줄 때는 이미 완성된 래퍼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래미 어워드에 등장한 파이브식스는 완성된 래퍼가 아니라 완성된 랩스타처럼 느껴졌다.
그래미 어워드가 끝난 시점에서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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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MTB
MTV의 오타가 아니다. 골든 뉴에라의 앨범인 의 약자이다.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플래티넘을 기록한 MTB가 그래미 어워드라는 엄청난 프로모션을 만났다.
벌써 빌보드 핫 100에 켄드릭 라마의 솔로 트랙과 제이콜의 솔로 트랙이 처음으로 진입했으며, 파이브식스의 솔로 트랙인 No Color가 또다시 4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
이후 기록할 추가 판매고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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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 X-Factor
엑스펙터는 그래미 어워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미국 음반 시장의 침체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을 개최한다는 영리한 계획을 세웠지만, 그들의 무대가 그래미와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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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 Zero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 한 개의 상을 받지 못한 ‘무관의 제왕’들은 생각보다 많다.
인기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슈퍼 밴드 본 조비(Bon Jovi)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했다. 슈가랜드와 함께 부른 컨트리 앨범으로 2005년에 상을 받았지만, 엄밀히 말해 본 조비의 음악 세계에서 받은 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마이클 잭슨 역시 앨범을 제외하면 그래미 어워드의 외면을 받았던 뮤지션이었다. 하나의 앨범에 가장 많은 빌보드 1위 싱글을(5개) 수록한 마이클 잭슨의 앨범 가 단 하나의 그래미상도 받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에는 골든 뉴에라의 MTB가 무관의 왕관을 썼다.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고 가장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MTB는 4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결국 수상에는 실패했다.
일부 팬들이 말하는 것처럼 블랙 뮤직에 대한 차별, 동양인과 흑인에 대한 차별인지는 내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확인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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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음악 매체인 롤링 스톤에서 발표한 GRAMMY A TO Z는 대중들에게 G'RAP'MY A To Z라고 불릴 만큼 랩 뮤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상현을 비롯한 골든 뉴에라 멤버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상현은 이게 하델 레인즈의 힘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들에게 쏠리는 관심인지 헷갈렸다.
“하 사장님. 혹시 밑장 빼셨습니까?”
“Lower Card? 무슨 소리야?”
“어허, 첫판부터 장난질이십니까?”
“대체 뭐라는 거야?”
그러나 상현의 설명을 들은 하델 레인즈는 롤링 스톤에는 어떠한 프로모션도 없었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하델이 손을 썼다고 보기에는 기사의 몇몇 부분에 오류가 있긴 했다. 자신이 커튼콜 투어에 라인업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나, 제이콜이 LA 출신이라는 내용들이 그랬다.
하지만 심각한 오류는 아니었기에, 골든 뉴에라 멤버들은 롤링 스톤이 그들에게 큰 관심을 보내주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며칠 뒤 문제가 될 만한 오류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바로 상현의 립싱크 논란이었다.
-파이브식스, 그래미 어워드에서 립싱크를?
처음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한국으로 따지자면 찌라시를 막 던지는 신문사 중 하나인 ‘The Problem’이었다.
더 프라브럼은 막 던지는 신문사였지만, 운이 좋은 건지 정보력이 좋은 건지 의외로 적중률이 꽤 괜찮은 언론사였다.
게다가 더 프라브럼의 기사 내용을 보면 그래미에 참석한 유명 가수와 유명 프로듀서를 통해 들은 말이라고 했다.
더 프라브럼의 경영 모토가 ‘속은 사실은 내보내도 거짓으로 지어내지는 않는다.’였다. 그러니까 거짓 정보에 속을 수는 있어도 정보를 지어내지는 않는단 말이었다.
덕분에 알음알음 논란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너가 너무 잘해서 그래.”
“그래. 나라도 긴가민가하겠는데.”
제이콜과 켄드릭은 별 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여줬다.
상현이 그래미 어워드 이전에 더 엑스펙터에서 보여줬던 무대가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헤프닝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엑스펙터 측은 상현의 무대가 정말 라이브였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더 엑스펙터 결승전을 ‘그저 그런 무대’로 전락시켜버린 상현이 예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제2의 밀리 바닐리야?
-어쩐지. 소리가 너무 깔끔하더라.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LA에서 한 번이라도 파이브식스의 라이브를 본 사람들은 내 말에 공감할 거야. 그의 라이브는 엄청나다고.
-그것도 립싱크였는지 어떻게 알아.
-캄튼 블랙 블록에 참여할 당시만 해도 파이브식스는 차별받던 동양인이었는데 어떻게 립싱크를 한단 말이야?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때도 뒤를 봐주던 레이블이 있었는지도.
상현으로써는 어이가 없을 만큼 립싱크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동료 뮤지션에게 더블링을 부탁하면 부탁했지 백업 트랙조차 잘 안 까는 게 상현이었다.
미국에 와서 한 모든 공연이 그랬다. 게다가 그래미 어워드는 립싱크가 절대 허용되지 않는 시상식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누가 일부러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논란이 퍼져나가는 형세였다. 심지어 가십 언론사가 아닌 몇몇 언론사에서도 슬그머니 발을 담그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현은 며칠 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부채질을 하고 있던 장본인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미 어워드를 장식한 MTB REMIX, 라이브 버전 싱글 발매!
-단번에 논란을 잠식시킨 싱글.
-에미넴, “파이브식스의 라이브는 현존하는 래퍼들 중 가장 높은 수준.”
부채질을 하고 있던 주인공은, 바로 하델 레인즈였다.
그래미 어워드의 MTB REMIX 무대를 라이브 버전으로 싱글컷 하기 위한 프로모션의 일환이었던 것이었다.
“어때? 내 밑장 빼는 솜씨가?”
“와……. 나이도 연로하신 분이 습득력이 너무 빠르신 거 아닙니까?”
“영화 재밌던데?”
어이가 없어서 웃고만 있던 상현은 뒤늦게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럼 ‘롤링 스톤에는’ 프로모션이 없다는 게 이런 뜻이었어요?”
“원래 인생은 복선과 반전이 깔려야 재밌는 법이지. 반전하나 더 알려줄까?”
“뭔데요?”
“더 프로브럼에서 언급한 유명 가수는 켄드릭이고 유명 프로듀서는 엘에이 리드야.”
“제가 졌습니다.”
상현이 허탈하게 웃자 하델이 덧붙였다.
“자네는 이상하게도 프로모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특히 지금과 같은 방향의 프로모션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봐. 정말 대중들이 립싱크에 대한 궁금증이 없었다면 이런 프로모션이 통했을까? 자네의 무대가 립싱크처럼 들리지 않았다면 통했을까?”
“아니겠죠.”
“그래. 아닌 걸 맞다고 하면 사기꾼이지만, 사실을 극적으로 치장하는 건 예술이지. 래퍼들도 흔히 그러잖아? 자네 진짜 율리우스 시져야? 그냥 극적인 비유잖아.”
“다시 한 번 더 제가 졌습니다.”
상현이 다시 한 번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좀 전처럼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남은 웃음은 아니었다.
“난 그런 라이브는 처음 봤어. 수많은 무대를 봤지만 말이야. 켄드릭과 제이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싱글컷은 오로지 파이브식스의 랩을 들려주기 위한 장치야. 아, 물론 켄드릭과 콜이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매력이 넘치지.”
“너무 저한테만 신경 쓰진 마세요. 두 친구들은 조만간 힙합 씬을 뒤흔들 겁니다.”
“걱정 마, 켄드릭과 콜한테도 이미 흠뻑 빠졌으니까. 그리고 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오히려 반대쪽에 더 의식적으로 힘을 쏟는 타입이거든. 조만간 나도 신경써달라고 징징거리는 자네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하델이 상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이제 내 프로모션이 끝났으니 자네가 결정할 문제만 남았군. 내일 모레 뉴욕으로 떠나면 12개의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공연을 할 수가 있어. 한 3달쯤 걸릴 거고, 예상 수익은 200만 달러정도 되는군.”
“이백만 달러요?!”
“뭘 그렇게 놀라? 엑스펙터에서는 500만 달러 정도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벌 수 있다고 했으면서.”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요. 그냥 돈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벌 수 있었다고 했지.”
“그게 그 말이지 뭐. 아무튼 그래서 뉴욕으로 갈 거야?”
하델이 상현에게 물었다.
상현은 머릿속으로는 분명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려했지만, 입으로 나온 대답은 달랐다.
“아니요.”
“왜?”
“앨범……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솔로 앨범을.”
“골든 뉴에라가 아니라 파이브식스로?”
“지금까지 전 ‘인종차별 받는 동양인 래퍼’의 포지션으로 랩을 했죠. 제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였기에 의식이 전부 그쪽으로 가있던 것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그런 문제는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극복했다고 봐요.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죠.”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상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인종차별이란 프레임을 넘어서.”
상현의 말에 하델이 시원하게 웃었다.
“이건 뭐, 세 명이 하는 말이 다 똑같구먼. 한 오백만 달러라고 거짓말을 해볼 걸 그랬나?”
“켄드릭이랑 콜도 뉴욕으로 가지 않겠다고 했나요? 이 미친놈들이? 이백만 달러가 적은 줄 아나?”
“왜 본인 얼굴에 침을 뱉어? 아무튼 2009년 안에 셋의 앨범이 나온다면 박 터지게 싸우겠군. 의가 상하는 거 아니야?”
“잘 다독여줘야죠. 제가 1위일 테니까.”
“하하하! 이것까지 똑같은데?”
하델의 웃음을 듣고 있던 상현이 말했다.
“미안해요, 하델. 당신 입장에서는 우리가 뉴욕으로 가는 게 이득일 텐데.”
“괜찮아. 아무 것도 안했는데 MTB 팔아서 안겨준 수익금은 벌써 잊은 거야? 그리고 내가 리만 브라더스 사태 때 옵션 투자를 얼마나 잘해서 돈을 벌어놨는지 알면 그런 소리 안 나올 거야.”
“지금 주식 이야기하십니까? 이거 뭐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격이네요.”
“그건 또 무슨 영화에서 나오는 말이야? 재밌어?”
하델이 인상을 쓰고 상현은 웃음을 터트렸다.
상현은 그렇게 2009년을 여는 그래미 어워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더불어 을 발표해 싱글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보통 라이브 버전은 판매고가 높지 않지만, 립싱크 논란이 있었던 만큼 대중들이 너도나도 덩달아서 들어본 탓이 컸다.
즉, 하델 레인즈의 프로모션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말이었다.
그 사이 에미넴은 Relapse의 선 공개 싱글인 We Made You와 Crack A Bottle을 발매했다.
Crack A Bottle은 발매 다음 주에 곧장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하며 에미넴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상현은 자신과 연관된 이 모든 영광에서 한 걸음 비켜나 LA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고 가장 핫한 래퍼가 파이브식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 예측은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 고작 2009년의 3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2009년은 길었다.
< Verse 42. 2009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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