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69화 (269/309)

< Verse 42. 2009 >

***

각각의 래퍼들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전부 다르다.

태도뿐만이 아니라 가사를 쓰는 방법, 라임을 짜는 방법, 플로우를 형성하는 방법까지 모두 다르다. 심지어는 같은 비트를 듣고도 후렴과 벌스의 위치를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미넴이 라임을 먼저 맞추는 작사법을 선호한다면, 켄드릭 라마는 메시지를 먼저 생각하고 메시지에 어울리는 비유들을 찾아내는 것을 선호했다. 제이콜은 좀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데 치중했고.

때문에 상현은 다양한 래퍼들의 스타일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방법에도 수정을 가하고 있었다.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고, 필요한 부분과 필요 없는 부분을 적절히 걸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현이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자신과 다르다고 느낀 부분은, 라이브 무대를 대하는 래퍼들의 태도였다.

한국의 뮤지션들은 라이브 무대를 꾸밀 때 레코딩 트랙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무대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무대의 사운드가 CD와 흡사할수록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상현 역시 이러한 경향이 있었다.

라이브 세션이 있는 경우에는 라이브의 맛이 사는 악기들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레코팅 트랙의 사운드 그대로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뮤지션들, 특히 래퍼들은 ‘레코딩 트랙’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라이브 퍼포먼스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CD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사운드를 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상현은 그래미 어워드의 축하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켄드릭 라마와 제이콜에게도 배우는 점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에미넴에게 배우는 점이 더 많았다.

“이봐, 파이브. 더블링이 너무 커.”

“큰가요? 목소리를 좀 작게 할까요?”

“아니, 내가 크다는 건 사운드가 아니라 공간감이야. 그렇게 발성을 때리면 공간감이 너무 커져서 다음 라인까지 침범한다고.”

“아…… 그럼 컴프레셔를 먹이는 건 어떨까요?”

“그럼 리버브도 죽잖아. 이리 와봐. 내가 알려줄게.”

상현은 에미넴이 간혹 보여주는(특히 슬림 세이디의 얼터 이고를 연기할 때) 아주 좁은 공간에서 랩을 하는 듯한 느낌이 믹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었다.

물론 앨범에는 적절한 믹싱이 들어가겠지만, 에미넴은 별다른 장비 없이도 충분히 엠비언스(Ambiance) 값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과연 랩 갓(Rap God)이란 닉네임에 어울리는 뮤지션이었다.

‘아직 붙은 닉네임은 아니지만.’

상현은 그렇게 경험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은 배워가며 더욱 완성형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에미넴의 엑스펙터 출연은 많은 이슈를 몰고 왔다.

이미 라디오를 통해서 복귀 의사를 밝혔던 에미넴이지만, 아직 ‘돌아온 에미넴’의 무대가 공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엑스펙터의 시청자들은 에미넴이 엑스펙터 무대에서 벼르고 벼려온 신곡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약간의 실망감과 아주 큰 반가움이 교차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Stan.

-Lose Yourself.

에미넴이 엑스펙터 참가자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노래들이 과거의 메가 히트송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매주 마다 무대를 준비해야하는 엑스펙터의 포맷상 신곡으로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스탠(Stan)의 파트너로 선택된 것은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남성 솔로 보컬 랭 던이었다.

그리고 랭 던과 에미넴이 콜라보레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현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에 노출되었다.

-랭 던, 운이 좋은데? 내가 요즘 진짜 스탠을 만난 기분이라서 이 노래를 아주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거든.

-진짜 스탠이요?

-파이브식스가 아주 집요하거든. 난 남자 그루피 따위는 필요 없는데 말이야.

-지, 진짜요? 파이브식스가 에미넴의 그루피에요? 그럼 그가 게이라는 말이에요?

순박한 시골 청년인 랭 던이 눈만 끔뻑거리자 에미넴이 웃음을 터트렸다.

별 거 아닌 장면이었지만 사람들은 파이브식스와 에미넴의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파이브식스가 꿈을 이뤘어! 500만 달러를 대신해서 에미넴의 엉덩이를 만졌단 말이야!

-에미넴과 파이브식스의 Hip-Hot이 기대되는군. 아, 미안 Hip-Hop이었지.

-론리 로드 가사가 정말 의미심장하다. ‘Came From The Bottom. 이제 내 위치는 론리 로드.’

‘Hip’이나 ‘Bottom’이라는 단어에 엉덩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네티즌들의 재치 있는 댓글이 이어졌다.

특히 상현이 ‘Came From The Bottom'을 부르는 사진에 8Mile에서 나온 에미넴의 엉덩이를 삽입한 사진이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대중들이 두 유명인의 브로맨스, 혹은 게이 조크에 열을 올렸다면 한국의 대중들은 상현과 에미넴의 친분에 집중했다.

-한국 제일의 랩스타와 미국 제일의 랩스타. 둘의 만남이 불러올 파장은?

-이상현과 에미넴의 신곡 발표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이루어질까?

한국의 대중들이 ‘랩스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아마 에미넴일 것이었다.

투팍과 제이지, 나스는 몰라도 에미넴을 알고 있을 것이었고, 설령 에미넴은 몰라도 Lose Yourself는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와, 말도 안 돼.”

“진짜였어…….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888 크루 멤버들도 상현이 미국에서 전해오는 말들을 전부 믿었지만 에미넴과 친해졌다는 말을 할 때만큼은 믿지 않았었다. 그만큼 에미넴은 래퍼들에게 위대한 존재였다.

하지만 에미넴이 먼저 상현을 언급한 이상,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상한 일이 이슈가 되는 사이 에미넴과 랭 던의 Stan 공연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다음 라운드에서 히메와 에미넴의 Lose Yourself가 이어졌다.

래퍼들 중 유일하게 탑 텐에 들었던 히메는 결국 탑 식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떨어졌다.

사실 상현으로 인해서 엑스펙터 래퍼들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냉정하지 않았다면 히메는 충분히 붙었을 것이었다.

그 사이 일본 언론들은 부트 캠프에서 탈락한 상현과 의 4주차인 탑 8까지 살아남은 히메를 비교하며, 히메의 승리라고 선전했다.

일본 언론 반응을 지면으로 옮기는 한국 언론들은 상현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주고, 상을 받기를 응원했다.

한국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2012년에 황병준 대표가 <클래식 부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2001년에 기타로(Kitaro)라는 가수가 <최우수 뉴에이지 앨범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상현이 본상을 수상하지 않는 이상은 수상을 해도 이제 동점이 된 것뿐이라는 기사를 써냈다.

이에 한국 언론들은 메이저로 취급받는 랩 필드가 마이너로 취급받는 뉴 에이지 필드보다 더 대단하다는 어투의 기사를 쏟아냈다.

랩 필드는 방송을 통해 시상을 진행하지만 뉴 에이지 필드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사전 시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사실 일본인들 중에는 상현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한국인들 중에는 일본의 뉴에이지 씬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자국민이 더 잘되면 좋겠지만 굳이 기를 쓰고 상대방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일 라이벌’ 같은 코드는 언제나 언론사에서 선호하는 코드였고, 상황을 몰아가기 쉬운 코드였다. 때문에 양국 언론들이 연일 같은 주제로 지면을 채우는 것이었다.

상현이 엑스펙터에 출연한 이후부터는 한국 언론에 상현의 이름이 거론된 날이, 거론되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다. 어쩌면 상현이 한국에서 활동할 때보다 많을 지도 몰랐다.

그렇게 상현과 히메가 모두 엑스펙터에서 탈락해 관심사가 그래미 어워드로 옮겨진 사이, 더 엑스펙터 US의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2009년 1월 16일에 캘리포니아 주, LA의 ‘CBS Television City’에서 무대를 장식한 두 뮤지션은, 랭 던과 멜로디였다.

랭 던은 방송계 경험이 전혀 없는 시카고의 시골 청년이고, 멜로디는 아마추어 나이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레이블에도 소속된 뉴욕 아가씨였다.

또한 랭 던은 지금까지 몇 번의 실수를 하면서도 중요할 때마다 엄청난 무대를 선보인 뮤지션이었고, 멜로디는 기복 없는 컨디션으로 늘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인 뮤지션이었다.

때문에 두 뮤지션의 무대는 ‘가공되지 않은 거대한 원석’과 ‘노련하게 세공된 보석’이라는 문구로 선전되었다.

그리고 진행된 결승전.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결승전이었지만, 막상 본 무대는 아쉬운 결과를 남기게 되었다.

랭 던은 초대형으로 섭외된 오케스트라 하모니가 독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멜로디는 잘했지만 평소에 별반 다름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두 뮤지션이 실수를 하거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훌륭한 무대였고, 매력적인 무대였다. 다만 결승전에 어울리는 ‘특별함’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우승자는…….

그렇게 엑스펙터 US 시즌 1의 우승자는 랭 던이 차지하게 되었다. 순박한 시카고의 시골 청년이 500만 달러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통 우승자가 정해지고 종방이 되는 순간부터 관심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엑스펙터의 주인공이 정해졌다는 것은, 2008년이 지나고 2009년이 시작됐다는 것이었고 1달 뒤면 그래미 어워드의 무대가 시작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래미 어워드의 축하 공연진에는 여전히 엑스펙터와 함께 여전히 거론되는 뮤지션이 포함됐으니까.

그렇게 상현이 마지막 구슬땀을 흘렸던 1월이 지나고, 2월 8일이 다가왔다.

제 51회 그래미 어워드가 개최되는 날이었다.

***

“가까워서 좋네.”

“으으, 긴장 돼.”

상현과 켄드릭 라마, 제이콜이 차에서 마지막 심호흡을 했다.

그래미 어워드는 오후 8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보통의 참가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하지만 골든 뉴에라 멤버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51회 그래미 어워드의 개최지가 차로 1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작 스테이플스 센터에 도착한 세 명의 뮤지션들은 아직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서 지나가야하는 포토존 때문이었다.

상현이야 카메라 세례쯤이야 한국에서 수도 없이 겪어봤기에 긴장이 덜 됐지만, 켄드릭과 제이콜이 엄청나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켄드릭이 굳게 마음을 먹고 가려고 하면 제이콜이 기다리라고 하고, 제이콜이 마음을 먹으면 켄드릭이 기다리라며 벌써 30분을 지체하고 있었다.

“아, 빨리 가자고.”

“입 닥치고 기다려.”

처음에 상현은 언제나 멋진 모습만 봐왔던 켄드릭과 제이콜의 색다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 시간이 10분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드르르륵.

결국 상현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벤의 문을 열고 먼저 내린 것이었다.

그 순간부터 번쩍이는 카메라의 플래쉬 세례가 쏟아졌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켄드릭과 제이콜이 내렸다.

잠시 뒤 골든 뉴에라 멤버들은 어설픈 자세로 포토존 앞에 섰다.

“뭐야, 엄청 익숙한 척 하더니.”

“생각해보니까 나도 포토존은 처음이야…….”

엉거주춤한 상현의 모습에 켄드릭과 제이콜이 면박을 줬다. 그 사이에도 카메라는 번쩍이고 있었다.

그런 셋의 모습을 지켜보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이미 포토존을 통과한 엘에이 리드였고, 리드의 옆에 서있는 중년의 신사는 하델 레인즈였다.

“아쉽군.”

“응? 뭐가 아쉬워?”

하델의 뜬금없는 말에 리드가 의문을 표했다.

“파이브식스와 제이콜이 키를 바꿨으면 음색에 딱 맞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170이 못되는 켄드릭과 180이 못되는 상현과 190이 약간 넘는 제이콜이 키순으로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본 하델의 농담이었다.

“이 친구 이거, 영 재미가 없어졌네.”

“파이브식스가 이런 개그를 좋아하거든. 한국에서는 빵빵 터진다던데?”

“그렇게 안 봤는데 저 친구가 허언을 좋아하는군.”

“아직 한국에 안 가봤으니 모르지.”

하델이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엘에이 리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델,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자네가 나한테 파이브식스를 중요한 순간에 탈락시켜달라고 부탁했던 거 기억하지?”

“당연하지. 아직 치매 올 나이는 아니라고.”

“그때는 에미넴의 출연이 정해지지 않았던 때가 아닌가? 신통력을 얻어서 에미넴의 출연까지 예측한 것은 아닐 테고, 왜 그런 부탁을 했나?”

파이브식스가 출연을 고사할 때 리드는 이 모든 것이 하델의 프로모션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파이브식스의 엑스펙터 ‘하차’는 완벽한 신의 한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기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델이 입을 열었다.

“이런 대답이 어이없을 수도 있는데, 믿었거든. 파이브식스를.”

“구체적으로.”

“그가 엑스펙터에 출연하게 되어도 500만 달러의 상금에 하등 관심이 없을 거라는 것을.”

엘에이 리드의 귀로 하델의 말이 이어졌다.

“파이브식스는 어찌 보면 수도승과 비슷해. 그가 추구하는 것은 좀 더 완벽한 음악이지, 좀 더 돈을 많이 버는 음악이 아니라.”

“좀 헷갈리는군.”

“편하게 생각해. 그냥 파이브식스가 돈 대신 음악성을 선택할 걸 알았다고. 다만 에미넴이라는 구체적인 상징이 등장했다는 운이 따랐던 것뿐이지.”

“그럼 파이브식스의 복귀가 논의 될 것도 알았나?”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냥 파이브식스는 잘할 거고, 잘한다면 당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거지.”

엘이이 리드는 어디까지가 하델의 계획이고 어디까지가 즉흥적인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델은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결국 엘에이 리드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런 예지력을 가진 하델 레인즈 씨는 MTB의 수상 가능성을 얼마나 된다고 보시는지요?”

“100%”

“정말?”

“그렇지. 이번에 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간 받을 테니까. 반드시. 그래미어워드가 망하지 않는 한은.”

그 사이 어색한 포토타임이 끝이 나고 3명의 골든 뉴에라 멤버들이 스테이플스 센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Verse 42. 200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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