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67화 (267/309)

< Verse 42. 2009 >

Verse 42. 2009

미국의 래퍼들은 자신들의 랩 네임을 단순한 스테이지 네임이 아닌 얼터 이고(Alter Ego : 또 다른 자아)라고 부른다.

음악 안에 온전한 자신의 생각을 담는 래퍼들이기에 랩 네임을 단순한 예명이 아닌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 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얼터 이고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흥행시킨 것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대답의 주인공은 에미넴이었다.

에미넴의 음악에는 총 3명의 자아가 등장한다.

‘마샬 매터스’, ‘에미넴’, ‘슬림 세이디’가 그것이었다.

첫 번째 자아인 마살 매터스(Marshall Mathers)는 에미넴의 본명으로써, 꾸며지지 않은 에미넴 그 자체를 의미했다.

어린 시절 친부가 떠나고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전부인인 킴(Kim)에게 애증을 느끼며, 하나뿐인 딸 헤일리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 그게 바로 마샬 매터스였다.

두 번째는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에미넴(Eminem)이었다.

본명의 이니셜인 M & M(엠엔엠)을 빠르게 발음하면 들리는 ‘에미넴’으로 표현되는 얼터 이고는, 쉽게 설명하면 가수로써의 자아였다.

에미넴은 마샬 매터스에 비해 좀 더 공격적이고, 세상에 대한 큰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수라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미넴이란 자아가 마샬 매더스보다 더욱 공격적이고 직설적이라면, 마지막 자아는 그런 범주를 넘어선 ‘범죄자 싸이코’의 사내였다.

바로 슬림 세이디(Slim Shady)였다.

슬림 세이디는 괴팍하고 천박하며,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욕하는 것을 서슴지 않으며,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정신병자였다.

에미넴은 데뷔 이래로 쭉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폭력성을 유발하는 가사로 지탄을 받아왔다.

심지어 미국의 학부모들은 에미넴이 노래를 내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제를 취해야한다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었다. 영화 <8 Mile>을 찍기 전까지 에미넴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지탄을 받아온 곡들은 거의 대부분이 에미넴이 아닌 슬림 세이디가 부른 곡들이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말이야.

단지 차이라고는 넌 친구들과 거실에서 밖에 하지 못한다는 거지

난 사람들 바로 앞에서 말할 용기가 있고

속이거나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에미넴은 ‘The Real Slim Shady’라는 곡에서 슬림 세이디를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사회 관념상 표출할 수 없는 정신분열적인 자아’라고 설명했었다.

사실 에미넴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먀살 매더스’라는 가정적인 남자와 ‘슬림 세이디’라는 또라이가 동떨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에미넴은 단지 사람들이 떠올리고는 곧 잊어버리는 아주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들을 캐치해서 노래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상사가 자신을 꾸짖는다고 그 상사를 실제로 죽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누구나 1초, 혹은 0.1초 정도는 상사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하니까 말이다.

에미넴의 얼터 이고들은 단순히 몇 곡에서만 등장하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그의 첫 번째 메이저 데뷔 앨범은 슬림 세이디가 이끄는 였고, 두 번째 정규 앨범은 마샬 매더스의 자아가 짙게 깔린 였다.

그리고 그 다음 앨범이 무려 더블 다이아몬드(2000만장)를 기록하고,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하며, 음반 차트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한 였다.

이런 에미넴의 얼터 이고들은 상현에게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파이브식스. 넌 너무 이성적이야. 모든 이야기를 진짜 너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긴 한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 원래 사람 안에는 여러 명이 있잖아. 때론 폭력적이기도 하고, 때론 지적이기도 하고. 그게 과장되게 표현된다고 해서 네가 아닌 건 아니잖아?”

“하지만 할 수 있다면 가장 정확한 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좋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표현 스펙트럼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네가 앨범을 1장만 낼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잖아? 닥터 드레가 익살스러운 곡을 한 적이 없을 거 같아?”

“당신과 함께 한 Guilty Conscience 말씀하시는 거죠?”

“오, 마이 갓. 정말로 스탠이 아닌지 의심스럽군.”

“파이브식스탠?”

“영어를 배우면서 농담은 못 배웠나보군.”

“그럴 리가요. 사실 제가 한국에서는 엄청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네 농담이 한국에서 먹힌다면, 난 한국에 가서 코미디언을 할 거야. 아무 말이나 해도 사람들이 웃어줄 테니까.”

에미넴의 말에 상현이 웃었다.

언더그라운드시절부터 에미넴의 매니저였던 폴 로젠버그는 에미넴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에미넴은 타인에게 조언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었다. 내성적이거나, 수줍음을 타는 것은 아니었지만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에미넴은 말이 별로 없고 항상 허밍을 하며 이상한 멜로디를 지어 불렀기 때문에 학급 동료들에게 심한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파이브식스에게는 많은 조언을 해줬다.

물론 파이브식스가 에미넴의 광팬을 자처하며 끝없는 리스펙트를 표하는 탓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이들이 한 둘이었을 리가 없었다.

때문에 로젠버그는 에미넴이 파이브식스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늘 에미넴의 랩을 듣고 사는 로젠버그는 다른 래퍼들의 랩에서 특별한 감흥을 느끼는 일이 굉장히 드문데, 파이브식스의 랩은 언제나 특별함을 주었다.

로젠버그의 생각처럼 에미넴은 상현을 이미 완성된 래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술에는 절대적인 기술 점수 따위가 존재하지 않기에 상현의 레벨이 정확히 얼마라고 단언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에미넴은 자신의 레벨이 100이라면 상현 역시 그에 못지않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고.

그래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재능으로 절대 채울 수 없는 것이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랩처럼 끝없는 변주를 이용해 쾌감을 추구하는 장르는 매순간의 선택이 랩의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어려움은 재능이 뛰어난 래퍼일수록 더욱 크게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전부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늘 ‘하던 대로’라는 과거의 선택지를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래퍼에게는 객관적으로 음악을 봐줄 수 있는 프로듀서나 선배가 중요했는데, 에미넴은 상현에게 그것을 해주고 싶었다.

마치 닥터 드레나 프루프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에미넴이 상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어쩌면 이 부분이 더욱 큰 이유일 수도 있었다.

이건 에미넴도 정확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이었는데, 에미넴이 10년 전부터 고군분투하며 닦아놓은 ‘길’의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 상현이라는 것이었다.

에미넴이 처음 랩을 시작했을 때, 랩씬은 완전한 흑인들의 공간이었다.

바닐라 아이스 같이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비 흑인 래퍼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래퍼로 취급받지 못했고 Wack이라며 흑인 래퍼들의 조롱을 받기 일쑤였다. 때문에 에미넴 역시 공연을 위해 클럽 무대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야유를 받아야했다.

어느 날 에미넴은 무대에서 받는 야유에 신물이 나서 되는대로 라임을 뱉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라임들이 굉장했는지, 흑인들의 야유가 뚝 그쳤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무사히 공연을 끝낼 수가 있었다.

그 때부터 에미넴은 발음을 구부려서 라임이 아닌 문장들을 라임처럼 들리게 만드는 스타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에미넴을 있게 만든 랩 스타일은 흑인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란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정’의 궁극적인 모양은 무엇일까?

모든 흑인들이 에미넴의 랩을 찬양하는 것?

에미넴의 존재가 흑인 문화권에서 인정받는 것?

이러한 것들도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보다 궁극적인 모양새가 있었다.

바로 문화 자체가 바뀌는 것이었다.

여전히 흑인들의 문화권인 랩씬이지만, 실력만 있다면 다른 인종을 포용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증명하는 것이 상현이었다.

아마 10년 전이었다면 상현이 랩을 아무리 잘해도, 설령 지금보다 10배는 잘해도 흑인 문화권에 편입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빈민가 출신으로 흑인들과 어울려서 살아온 에미넴도 흑인들의 살해 협박을 너무 많이 받아서 경호원을 고용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상현의 성공에는 에미넴의 노력이 깔려 있었고, 상현이 높이 날아오를수록 에미넴이 만들어낸 변화가 세상에 확고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미넴은 본인이 의식하는 것보다 더욱 상현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사실 상현이 회귀하기 전의 에미넴은 이러한 감정을 2011년쯤에 백인 래퍼 옐라울프(Yelawolf)에게 투영했었다. 그래서 옐라울프가 에미넴이 만드는 레이블인 세이디 레코드(Shady Records)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상현이 옐라울프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옐라울프는 에미넴의 레코드로 들어오게 될 테니까.

상현은 단지 에미넴과 친해졌을 뿐이었다.

“오, 이거 좋은데? 비트는 누가 만든 거야?”

“제가 찍었어요.”

“세션까지 다?”

“아, 이 세션은 예전에 스탠다드란 디제이가 시퀀싱을 떠놓은 거고, 제가 그 시퀀싱을 샘플링한 거예요.”

“그래? 다시 한 번 틀어봐.”

원래 상현은 Crack A Bottle을 작업하기 위해 에미넴과 만났었다.

그러나 두 천재의 만남이 벌어졌는데 영감의 불꽃이 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상현은 하델 레인즈의 도움을 받아 디트로이트에 작업실을 구한 상태였고, 어느새 에미넴과의 작업 범위는 점점 넓어진 상태였다. 여전히 Crack A Bottle을 최우선을 작업하고 있었지만, 그 곡 이외에도 자연스럽게 몇 곡의 작업이 더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에미넴 같은 슈퍼스타는 곡을 만들었다고 전부 앨범에 수록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록곡보다 버리는 곡이 훨씬 많을 것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곡이 실리고 말고를 떠나서 지금의 생활에 너무나 만족했다.

에미넴과 친분을 쌓게 된 것 자체도 좋았지만, 바로 옆에 ‘지구상에서 랩을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는 남자’가 있으니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상현은 더 엑스펙터에서 깨닫게 된 자신만의 느낌을 확실히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현은 디트로이트에서 머물면서 에미넴의 딸인 헤일리와도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언더그라운드 때부터 에미넴과 함께한 레이블인 D-12의 멤버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다.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Royce Da 5`9``)과도 알게 되었고, Crack A Bottle에 함께 피쳐링을 할 갱스터 래퍼 50Cent와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11월이 지나 12월이 되었다.

상현이 디트로이트 작업실에 처박힌 3주 사이에도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더 엑스펙터는 상현이 없어도 인기가 좋았다.

이제 저지스 하우스가 끝나고 생방송 경연이 2주차로 접어들었는데, 다음 주면 탑 12가 가려져서 드디어 에미넴이 방송에 등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기가 좋다고 대중들이 호감을 보인다는 말은 아니었다. 대중들은 여전히 일본계 자본이 리얼리티 쇼를 침범한 것에 언짢음을 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래퍼들은 혹독한 비교를 당하고 있었다.

저지스 하우스를 가까스로 통과한 플랜 페이퍼는 생방송 경연 첫 주차에서 바로 탈락했다. 대중들도, 심사위원들도 특히 래퍼들에게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릿속에 Lonely Road의 잔상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MTB의 판매량이 유의미한 수치로 증가했고, 상현에게 접근하는 공연 관계자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상현은 작업실에 있었다. 마치 처음 888 크루와 작업을 시작했을 때처럼,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음악을 만들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후에 하델 레인즈는 ‘그 시기에 파이브식스가 랩의 끝을 본 것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상현은 작업실에서 불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매년 12월 초에 발표되는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명단에 MTB가 포함된 것이다.

< Verse 42. 200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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