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1. Streamline >
히메의 무대가 100점짜리였다면, 파이브식스의 무대는 N/A(해당 없음의 오류) 상태였다.
N/A 오류는 설정된 기준으로 값을 산출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오류였다. 그러니까 이 말은, 지금 상현의 무대가 참가자들의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와 동시에 참가자들은 상현의 무대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열등감이었다.
히메의 무대는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한 무대였다. 긍정적으로는 ‘나도 저런 무대를 꼭 해야지.’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었고, 부정적으로는 ‘나도 저 정도쯤은 쉽게 할 수 있어.’라는 감정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현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비틀즈와 동시대에 살았던 뮤지션들은 얼마나 많은 열등감을 느꼈을까? 그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앨범을 만들고, 프로모션을 해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비틀즈에게 쏟아졌으니까 말이다.
상현의 무대는 참가자들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따라잡을 수 없는 벽을 느끼니 부정적인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이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라고는 ‘이런 뮤지션과 동시대에 살아간다.’라는 것뿐인데, 지금 그들이 참가한 엑스펙터는 오직 1명만 뽑는 서바이벌이었다.
그래서 불편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 뮤지션들이 느끼는 감정은 일반 대중들이 공감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만약 대중들에게 상현의 무대와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이런 ‘벽’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은 상현의 무대가 뛰어나다고 느끼겠지만, 몇몇 대중들은 상현의 무대보다 다른 참가자들의 무대를 좋아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음악을 해부하는 사람들이 아닌, 듣고 즐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러한 벽은 평생을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만 느낄 수 있다는 소리였고, 결국 상현이 선택한 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말이었다.
“그는 뮤지션보다는 래퍼로써의 길을 택했군요.”
상현의 무대를 지켜보던 사이먼 코웰의 말에 엘에이 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코웰, 단어를 바꿔야할 필요성이 있군요.”
“단어? 어떻게 말이죠?”
“저는 파이브식스가 뮤지션보다는 랩스타로써의 길을 택했다고 생각되는군요.”
“래퍼가 아닌 랩스타란 말씀인가요?”
“네. 그냥 래퍼라기에는 너무…… 빛나는군요.”
블랙 뮤직에 평생을 받쳐온 엘에이 리드는 문득 상현과 같은 길을 걸었던 한 명의 뮤지션이 떠올랐다.
바로 비기(Biggie)란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렸던 동부 힙합의 왕 노토리어스 비아이이지(Notorious B.I.G)였다.
비기 역시 뮤지션보다는 랩스타의 길을 택한 이였다.
비기는 첫 데뷔를 하는 1994년 전에도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천재적인 래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별로 없었지만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Real Love Remix에 참여해 빌보드 4위를 기록했고, 그 외에도 많은 빌보드권트랙에 이름을 올렸었다.
이런 비기는 신생 레이블인 배드 보이 레코즈(Bad Boy Records)에 둥지를 틀고 첫 앨범을 준비하면서 매니저와 많은 의견다툼을 벌였었다.
매니저는 비기에게 라디오 플레이용으로 제작할 ‘여성 보컬의 피쳐링이 들어간 싱글 랩 송’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비기는 그런 매니저의 말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비기는 결국 매니저의 말을 따르긴 했지만, 완전히 따른 것은 아니었다.
예정된 레코딩 날까지 가사를 전혀 쓰지 않았고, 비트 역시 몇 번 들어보지 않은 것이었다.
비기는 원래 가사를 쓰지 않는 뮤지션으로 유명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모든 랩을 즉흥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기는 머릿속으로 가사를 쓰는 타입이었다. 랩의 큰 얼기를 짜놓고서 이미 기억해둔 수백 개의 문장에 즉흥적인 단어를 삽입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매니저의 제안이 탐탁지 않았던 비기는 완전한 프리스타일로 라디오 플레이용 싱글 랩 송을 제작했다.
이 곡은 비기의 1집 앨범인 의 수록곡인 동시에 비기의 첫 싱글로 발매되었다.
그렇다면 이 곡이 망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곡이 바로 비기의 머리에 왕관이 놓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첫 번째 싱글 Juicy였다.
Juicy는 판매고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 골드(50만장)를 기록했고, 빌보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며, 뒤이은 앨범과 싱글들의 성공을 견인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었다.
즉, 비기가 전 세계의 랩스타로 자리 잡는데 시발점이 된 곡이었다는 말이었다.
엘에이 리드는 지금 파이브식스가 부르는 'Lonely Road'에서 'Juicy'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Juicy가 비기의 음악적 방향성을 선전포고했다면, Lonely Road 역시 파이브식스의 음악적 방향성을 선전포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비기는 오직 음악성으로 대중성을 틀을 부숴버리지 못했었다.
비기의 앨범 판매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비기의 음반 판매량은 그가 죽음 이후 ‘다이 레전드(Die Legend)’의 칭호를 획득하고 나서 쌓아진 면이 있었다.
게다가 그의 빌보드 1위 앨범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이스트 코스트 앨범으로 평가받는 2집 의 판매량 역시, 앨범 발매 며칠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비극적인 스토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단지 가정일 뿐이었다.
비기가 살아서 2집의 프로모션을 진행했으면 더욱 엄청난 판매량을 쌓았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게다가 단순히 현재의 판매량과 비교하기에 그 당시 힙합은 지금보다 대중화가 덜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리드의 기준으로 비기는 음악성만으로 대중성을 부숴버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파이브식스는 가능하지 않을까?’
미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엘에이 리드는 왠지 모르게 이런 기대를 갖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만큼 파이브식스의 무대는 빛났으니까.
그 사이에도 상현의 랩은 이어지고 있었다.
***
상현은 론리 로드를 이어가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파이브식스란 뮤지션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에 큰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었다.
몇 달 후에 나올 에미넴의 앨범.
몇 년 후에 나올 제이지의 싱글.
그 이후에 메이저를 호령할 빅션, 켄드릭, 제이콜, 드레이크, 칸예 웨스트 같은 뮤지션들.
상현만 알고 있는 이러한 음악의 장점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뮤지션이 바로 ‘파이브식스’였다.
물론 상현이 미래의 것을 훔친 건 아니었다.
에미넴의 앨범은 에미넴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한 앨범이었고, 제이지의 싱글 역시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빅션, 켄드릭, 제이콜도 대단한 뮤지션들이긴 하지만 그들이 과거의 선배들과 동떨어진 음악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과거의 것에서부터 배워서 더 나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상현이 요약노트를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추구해 온 ‘미래의 것’들은 장점만 쏙쏙 요약된 요약노트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론리 로드를 부르는 기분은 달랐다.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100% 본연의 랩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졌고, 어떤 점에서 과거와 차이를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랩에 있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전면으로 배치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이러한 뭔가가 세련됨 사이에 은근히 숨겨져 있었다면, 이제는 주 무기가 된 것이었다.
상현은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미국으로 온 목적을 달성했음을 깨달았다.
아마추어 나이트에서 랩을 하면서도 생각한 부분이지만, 상현은 공정함에 아주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감정이 있었다.
‘혹시 내가 음악으로 성공하고, 한국에서 최상위권의 래퍼라고 평가받는 것이 전부 회귀의 메리트 때문은 아닐까? 미래의 방법을 알고 있다는?’
그리고 이러한 불편함은 그가 한국 힙합 씬에 있는 한 무작정 부인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한국 힙합 씬은 이제 성장하는 곳이었고, 틀려가면서 정답을 찾아가는 곳이었지만 상현은 이미 누군가 찾은 정답들을 꿰뚫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광주 업의 지역 스웨거.
888 월드의 구어적이고 일상적인 작사법.
Eight Eight Eight의 트랩 사운드.
이러한 것들은 전부 2005년 이후의 미국에서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 소스들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회귀의 메리트 따위 전혀 없이 실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직 ‘이상현’이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파이브식스의 노력.
이 두 가지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요소도 개입되지 않는 곳.
공정한 곳.
힙합의 본고장 미국.
그리고 마침내 상현은 답을 찾아냈다.
뭐가 달라졌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한 번 일어난 아이는 곧 걸을 수 있고, 걷기 시작한 아이는 곧 달릴 수 있으니까.
상현은 뭔가에 홀린 듯이 랩을 뱉었다.
원래부터 엄청난 딜리버리를 자랑하는 상현이었지만, 지금은 그 수준이 달랐다.
좁은 길, 또는 외로운 길.
내가 찍어 온 발자국이 박힌 길 뒤에 두 글자를 새겨 Five 그리고 Six Got a god of things, God`s Blessing to Kiss.
단어 선택, 단어를 표현하는 플로우, 플로우를 이끄는 그루브,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감싸는 감정 표현까지.
랩의 모든 것이 청자들에게 전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몇몇 참가자들이 ‘파이브식스가 한국어로 랩을 했어도 절반 정도는 이해했을 것 같다.’라는 농담과 부러움 섞인 말을 할 정도였다.
기묘한 정적이 경연장을 휘감았다.
몇몇 참가자들은 감탄을 하고 있었고, 몇몇 참가자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전자는 보통 보컬리스트들이었고, 후자는 래퍼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심사위원들이었다.
그들은 파이브식스가 대중성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에 기꺼이 천재에게 ‘시련’을 안겨줄 준비를 끝냈었다. 시련으로 인하여 천재가 더욱 넓고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러나 지금의 무대를 보는 순간 그들의 결심은 흔들리고 있었다.
칸예 웨스트는 스스로를 신인 지저스(Jesus)에 비유해 Yeesus라고 불렀고, 제이지는 스스로를 여호와(jehovah)에 비유해 J-Hova라고 불렀다. 그리고 상현 역시 스스로에게 신의 것을 가졌다고 칭하고 있었다.
Got a god of things, God`s Blessing to Kiss.
신의 것들을 가졌고, 신의 축복에 키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신은 진짜 신이 아닌 검은 피부의 신이겠지만, 심사위원들은 상현의 비유가 허무맹랑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신에게 ‘시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게 파이브식스가 섬기는 검은 피부의 신이 우리에게 내리는 시련인가? 정말 어렵군.’
심사위원들은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침묵을 유지했다.
그들은 상현의 노래가 끝나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노래는 끝이 정해져있었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저희에게 시간을 좀 주실 수 있겠죠?”
폴라 압둘이 무대에 서있는 상현과 히메를 바라보고는 꺼낸 말이었다.
그렇게 아주 긴 회의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며 심사위원들을 주시하던 참가자들도 시간이 30분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당황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심사위원들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파이브식스가 탈락해야 합니다. 저희는 분명 이번 라운드를 구성하며 음악성이 아닌 대중성이란 명제를 세웠습니다. 앞의 무대에서 떨어진 몇몇 참가자들은 실력적인 우위에 섰음에도 대중성이란 명제 때문에 패배했고요.
파이브식스만 예외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운 기준에는 대중성을 뛰어넘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파이브식스가 탈락한다고요? 전미가, 아니 엑스펙터를 보는 전 세계가 비웃을 겁니다. 과연 노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요. 파이브식스는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무대는 분명 대중들이 열광할 성질의 것입니다.”
“글쎄요. 랩을 싫어하는 대중들도 그럴까요?”
“물론이죠. 단언합니다. 랩을 싫어하는 대중들도 파이브식스에게 박수를 칠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이란 언제나 다수일 뿐입니다. 구성원 100%가 아니라 구성원 중 가장 큰 덩어리일 뿐입니다. 랩을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보다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대는 대중이 좋아하는 무대죠.”
투표를 해도 이 대 이로 대립했다.
마침내 한 무대에 대한 평가가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심사위원들의 요청에 의해서 소니 뮤직과 EMI 뮤직의 고위 관계자들까지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소니 뮤직은 상현의 탈락을, EMI 뮤직은 합격을 외치고 있었다.
“미쳐버리겠군요. 사이먼 코웰, 동시 합격은 안 됩니까? 히메의 무대도 떨어질 수준은 절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원칙은 고수되어야합니다.”
결국 결정이 나지 않고, 1시간 30분 만에 경연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새벽 2시경 마침내 64명 중 31명의 합격자가 가려졌다.
그리고 30분 뒤, 마침내 서른두 번째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히메와 파이브식스 중 다음 단계인 Judges` Houses로 진출하는 참가자는…….”
사이먼 코웰의 입으로 모든 참가자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쏠렸다. 코웰은 심지어 카메라 액정 속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대중들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발표가 났다.
“히메입니다.”
코웰이 발표한 서른두 번째 합격자는 히메였다.
***
< Verse 41. Streamlin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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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modified date: 201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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