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63화 (263/309)

< Verse 41. Streamline >

***

상현은 멜로디의 조언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사위원들의 의도를 깨달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보였다.

멜로디가 해준 히메와 그가 상극이라는 조언이 적절했다.

‘대중적인 음악과 자기만족적인 음악의 차이. 아니, 이런 경우에는 대중성과 음악가의 욕심을 비교한다고 해야 되나?’

뛰어남으로 기록된 이는 그 뛰어남이 깨지는 순간 2등이 되어 역사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존재 자체가 기록된 이는 결코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심사위원들은 지금 상현에게, ‘랩을 엄청나게 잘하는 래퍼’가 아닌 ‘영원히 기억될 뮤지션’으로 남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현은 심사위원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에미넴에게는 ‘Lose yourself’가 있고, 제이지에게 ‘Empire state of mind’가 있듯이, 상현 역시 그러한 노래를 부르기로 마음을 잡은 것이었다.

사실 대중성이란 부분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음악적인 부분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랩을 일부러 못해야한다거나, 일부러 쉬운 랩을 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단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더 배려하고, 음악가로써의 욕심과 대중에 대한 배려가 상충하는 부분에서 대중을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심사위원들이 상현에게 대중성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기만적인 행위였다. 심사위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이먼 코웰, 엘에이 리드, 폴라 압둘, 캘리 롤랜드가 만든 음악이 모두 성공했을까?

혹시 성공하지 못한 노래들이 있다면, 그런 곡들은 그들이 대중성을 무시하고 만들었기 때문일까?

그럴 리는 절대 없었다. 잘되길 원했지만 잘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중적인 노래를 만들겠다고 다짐함과 동시에 대중적인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발매한 모든 노래를 성공시킬 수 있어야했다.

그러니까 심사위원들은 자신들도 할 수 없는 것을 상현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파이브식스’라는 뮤지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자신들보다 높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몰랐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할까?’

상현은 심사위원들의 의도를 염두에 둔 채로 고민을 시작했다. 한 번도 대중적인 성공을 먼저 생각하고 음악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꽤나 고민스러웠다.

결국 상현이 긴 고민 끝에 선택한 음악은 한국 팬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곡이었다.

바로 <56 JFTR>에 수록된 ‘I Just See’였다.

I Just See는 대중적인 어필이 가능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곡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스스로가 못나보여서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서 작아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었다. 국적이나, 나이, 성별 따위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다만 ‘I Just See’는 발음이 비슷한 ‘아저씨’를 이용해서 의미를 부여한 곡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아저씨란 한국말을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그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현은 이 부분을 역이용하면 가사 속의 ‘내’가 살아나서 더 생동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아저씨’라고 불러

나이가 많고 매력적이지 못한 남자를 말이야

그래서 난 용기를 내지 못해, 말을 걸지도 못해

단지 여기 서서 하염없이 널 바라보기만 할뿐.

(In Korea, a man like me call your 아저씨

Old and a man less attractive to another like me

So, aren't any courage. ain`t try`n to talk you

Just stand here, Endlessly. I just see.)

상현은 그렇게 I Just See를 히메와 겨룰 곡으로 최종결정하고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비트도 손을 봐야하고, 영어로 가사도 고쳐야 했기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도 베보 레코드에서 일하며 시간이 많을 때 어느 정도 작업을 해뒀던 곡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상현은 새벽 3시쯤 작업을 끝냈다.

경연은 다음날 오후 6시이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무대를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다.

하지만, 개운치 않았다.

뭔지 모를 위화감과 찜찜한 마음이 계속 상현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작업하는 내내 느꼈던 것이었다.

한 번 음악에 몰두하면 누가 옆에서 잡아가도 모르는 상현이 말이다.

‘뭐지?’

한참동안 위화감의 정체를 고민하던 상현은 답이 나오지 않자 답답함에 방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새벽 3시임에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서성이며 가사를 숙지하는 이들도 있었고,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춤을 준비한 팀 단위의 참가자들이 서로의 동선을 체크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연습을 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신나게 웃으면서 이상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연습을 하던 중에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상현은 그 순간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목표의식’이었다.

상현은 분명 에미넴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위해서 더 엑스펙터에 참여했었다. 남들이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상현의 동기는 더할 나위 없이 순수했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성에는 대중성이란 명제가 없었다.

‘만약 내가 탑 12 안에 들어서 에미넴과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에미넴과 누가 더 많은 앨범을 파는지 겨루고 싶을까?

아니면 랩 그 자체를 가지고 덤벼보고 싶은 걸까?

이러한 상현의 의문은 곧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제이지가 정말 판매고를 위해서 Empire State Of Mind를 만들었을까?

에미넴이 영화 8Mile 촬영 현장에서 Lose Yourself를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상현은 지극히 당연한 의문에 휩싸였다.

사실 이러한 의문들은 상현이 하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혹은 처음으로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했을 때 시작했어야할 고민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히메의 생각처럼 음악적인 면에서 패배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현은 음악을 혼자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005년에 과거로 돌아와서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상현의 옆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아…….”

‘철저하게 콘텐츠 승부를 하자. 이건 엄청난 기회야.’

‘그러니까 야구장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를 만들자는 소리지?’

파이브식스란 뮤지션은 지금의 고민에 대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888 크루는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겪었고, 답을 내렸었다.

스트롱 스윙 대신 론리 로드를 선택하면서 말이다.

‘이 곡은 아니야. 이걸로 공연할 바에는 난 안 하겠어.’

‘뭐? 왜? 곡이 나빠?’

‘곡은 좋아.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면 그동안 888 크루가 쌓아 온 뭔가가 무너질 거 같아.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표현을 못 하겠어…… 하지만 확신해.’

상현이 회귀 이후 혼자 음악을 했으면 지금처럼 할 수 있었을까? 한국을 점령하고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고, 엑스펙터에 출연할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었다.

심지어 상현이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미래의 히트곡을 선점했다하더라도 지금 같은 실력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쇼 비즈니스한테 얻어맞으며 밑바닥에서부터 구르던 경험이 없었을 테니까.

7명의 멤버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그들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드높이기 위한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

상현은 심사위원들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들은 상현에게 불세출의 래퍼가 아닌 영원한 뮤지션이 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888 크루는 이미 이에 대한 정답을 내렸었다.

*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최종 목표는 아주 간단합니다.

Forever 888.

888 크루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평생 동안 기억하는 것. 지금의 완전체 888 크루가 영원히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것입니다. 비틀즈가 그랬고, N.W.A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죠.

*

심사위원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랩을 엄청나게 잘한다고 영원한 뮤지션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래퍼 파이브식스는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888 크루의  파이브식스는 실패하지 않을 거니까.

상현은 비로소 자신이 왜 미국에 왔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에 전력으로 부딪쳐보고 싶어서?

그의 우상들과 랩으로 겨뤄보고 싶어서?

오경 미디어에서 압박을 넣어서?

전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최우선 순위는 달랐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내가 미국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888 크루에게 전달된다면, 우리가 또 무슨 사고를 칠 수 있을지 궁금하니까.

상현은 결정을 내렸다.

더 엑스펙터에서 탈락하더라도 오직 랩으로만 더 높은 곳을 노려보기로.

그곳이 대중의 취향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론리 로드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7명은 옆에 있을 테니까.

***

오케스트라 하모니 사이로 키보드와 바이올린 VST(가상악기)가 사운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 위로 나타난 것이 헤비하게 믹싱된 909 드럼 킷이었다.

이 키보드를 연주해준 사람은 미주였고, 비트를 만들어준 사람은 민식이었다.

상현은 바로 옆에 미주와 민식이 서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오늘 따라 마이크가 가볍게 느껴졌다.

‘근데 원래 마이크는 가볍지 않나?’

상현은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의 눈빛을 느끼면서도 이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1만 2천명의 관객이 그를 주시하던 무등 경기장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가라앉히는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댄스 음악에 주로 사용되는 909 드럼 킷이 묘하게 얽혀 들어갔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슬쩍 슬쩍 춤을 추던 두 개의 소스들이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은 상현의 랩이 얹히는 순간부터였다.

그렇게 상현의 랩이 시작되었다.

***

“어!”

작업실에 다함께 모여서 엑스펙터를 보고 있던 888 크루 멤버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TV 속에서 너무나 익숙한 론리 로드의 비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너답다.’

준형은 그 순간 상현이 대중성이 아닌 음악성을 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솔직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음악성과 대중성이란 단어가 마치 반대되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었지만, 상현은 음악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쭉 해오던 것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준형은 자신이 상현의 이런 선택을 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현의 음악이 여전히 888 크루의 음악에 뿌리를 두길 원했다.

‘질투나지 않아?’

준형은 가끔씩 상현과 자신을 비교하며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자신이 질투를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 1분도, 아니 1초도 질투를 해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상현의 음악은 결국 888 크루로 인해서 발전하고,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음악이 들어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상현은 귀신같이 자신의 생각에 답을 하고 있었다.

자신 역시 그러하다는.

“크…….”

인혁이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888 크루 멤버들은 상현이 건넨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한 상태였다.

“어!”

그 순간 또 한 번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상현의 랩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상현이 뱉고 있는 랩은 그들이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비트는 익숙했지만 언어가 달라져버리면서 랩 자체도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랩을 구성하고 있는 라임은 굉장히 익숙한 것들이었다.

‘Lonely Road’와 ‘Call me Lord’는 준형이 맞춘 라임이었고, ‘Call me Lord’와 ‘걸리버’는 하연이 맞춘 라임이었다. 뒤로 이어진 ‘엑스칼리버’는 상현이 썼던 라임이었다.

랩의 짜임새와 플로우는 전혀 달랐지만 요소요소에 그들이 사용했던 라임이 들어가 있었다.

“와, 이거 내가 친 키보드 그대로네.”

“이거 바이올린이랑 드럼 킷은 내가 믹싱했는데.”

“믹싱은 형이 했지만 드럼은 찍었거든요.”

“베이스 나다.”

뿐만 아니었다. L&S 멤버들 모두가 이 비트에 관여한 바가 있었다.

그 사이에도 상현의 랩은 점점 높은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상현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엑스펙터 참가자들이 점점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히메의 무대는 완벽했었다. 그녀가 떨어진다는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완벽했었다. 때문에 파이브식스가 아무리 랩을 잘해도 히메의 Scot은 이기기 힘들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은 파이브식스의 랩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파이브식스의 랩은 정말 대단했다. 그들은 이정도로 랩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유명 레이블에 소속이 되어 있어서 메이저 래퍼들과 함께 작업을 해본 참가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현의 무대는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점점 참가자들의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왜 히메와 붙는 것 같지가 않지?’

의식적으로 히메의 무대와 파이브식스의 무대를 비교해 우위를 비교하려고 해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각자 가진 나름의 기준으로 두 무대를 평가하려고해도 평가할 수가 없었다.

히메의 무대가 100점짜리였다면, 파이브식스의 무대는 N/A(해당 없음의 오류) 상태였다.

< Verse 41. Streamline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