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1. Streaml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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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대상으로 뮤직 비즈니스를 벌이는 레이블들은 흔히 ‘세계 3대 메이저 음악 시장’을 미국, 영국, 일본이라고 말했다.
이중 미국이 세계 음악 시장 점유율 40%로 1위, 일본이 12%로 2위, 영국이 10%로 3위였다.
그만큼 일본은 음악 산업의 규모가 굉장히 거대한 나라였다.
사람의 취향은 백인백색이라 메이저 시장이 크면 그에 비례해 서브 컬쳐 시장도 거대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본 힙합은 9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해졌다.
또한 한국 힙합 씬처럼 몇 명의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문화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씬이 견고하게 굳어져 메이저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정상적인 발전 과정을 거쳤다.
덕분에 누자베스(Nujabes)같은 슈퍼 프로듀서가 등장할 수도 있었다. 누자베스는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재즈힙합의 거장이었다.
아마 아시아의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에게 ‘아시아에서 힙합 음악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어디야?’라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일본이라고 대답할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 힙합은 아주 뚜렷한 약점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래퍼’들에게 약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음악이 세계시장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 ‘100% 내수용’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 힙합도 내수용이었다.
하지만 한국 힙합이 내수용인 것은 역사가 너무 짧아서 밖으로 표출할 기회가 없던 것이었다.
물론 아직 해보지 않았다는 말이 세계 시장에 먹힌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해보지 않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그 가능성이 달랐다.
한국과 달리 일본 힙합은 프로듀서들이 대거 외국으로 진출하면서 래퍼들에게 많은 기회가 있었다. 프로듀서와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래퍼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일본어로 이루어진 랩은 언제나 낮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듀싱 능력, 사운드 퀄리티, 프로덕션 센스가 본토에서도 고평가를 받는 것에 비하면, 처참할 정도의 평가였다.
많은 일본어 래퍼들이 이 같은 평가를 뒤집기 위해서 영어 사용의 빈도를 비약적으로 늘렸지만,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사실 일본어는 플로우를 형성하는 발음구조와 라임을 형성하는 언어체계가 힙합에서 중요한 덕목인 ‘날 것 그대로’의 느낌과 어울리지 않았다.
히메는 언제나 그 한계를 부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정답이 미국과 차별화되는 일본만의 느낌을 더욱 파고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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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부를 노래는 제 첫 번째 믹스테잎에 수록되어 있던 Scot(부채, 빚)이라는 노래입니다. 원래 제목은 일본어로 Scot을 뜻하는 おいめ(오이메)입니다.”
히메는 무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심사석에 나란히 앉아있었고, 62명의 참가자들은 그 뒤에 놓인 지정석에 앉아있었다.
왜 64명이 아닌 62명이냐면, 한 명은 무대에 올라와있었고, 한 명은 무대의 옆쪽 라인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은 자신이었고, 대기하는 사람은 상현이었다.
그때 사이먼 코웰이 입을 열었다.
“Scot이 어려운 단어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는 단어일 텐데요. 미국보다는 영국에서 많이 사용되죠. 왜 부채라는 단어를 Scot으로 번역했죠?”
“Go Scot Free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요.”
Go Scot Free는 무죄 방면되거나, 벌을 면했을 때 쓰는 말이었다.
“의미심장하군요. 준비되셨나요?”
“네.”
“좋습니다.”
히메는 숨을 고르며 슬쩍 오른쪽을 보았다.
상현이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현은 긴장한 것 같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비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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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차별화되는 느낌이 정답이란 히메의 확신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버린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The way we live’를 녹음할 때 만난 파이브식스, 상현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상현이 히메가 내린 정답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상현 역시 미국에서도 한국적인 탑-다운 방식의 가사를 사용했고, 한국에서 터득한 음악적인 요소를 계속 이어나갔다. 게다가 The way we live를 녹음할 때 상현의 가사는 한국어였다.
상현이 히메의 생각을 산산조각 낸 방법은 바로 ‘자유로움’이었다.
히메가 경험한 상현은 랩을 만들 때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어떻게 하면 ‘내 이야기’를 가장 멋지게 전달하려는 가였다.
언젠간 물어보니 상현은 랩을 시와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시는 불친절하고, 함축적이며, 자신만의 심상을 표현하는 언어이다. 시의 감상자가 시에서 감동을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상현의 태도는 이와 같았다.
‘랩은 내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건 대중들의 몫이 아닐까? 억지로 공감을 찾으려다보면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잖아.’
물론 그렇다고 상현이 대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당연히 신경을 썼다.
하지만 신경을 쓰는 방향이 ‘대중이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될까’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상현은 랩의 방법론에 있어서 아주 자유로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서 본토의 랩 스타일을 차용할 때도 있었고, 한국적인 느낌을 낼 때도 있었다. 구애 받지 않으니까 오히려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이었다.
히메는 상현의 방식에 너무 충격을 받았고, 금방 동경하게 되었다.
상현은 스스로의 대단함을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히메가 지금까지 만나본 어떤 뮤지션도 정해진 패턴 없이 작업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곧 히메는 상현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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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가 선택한 비트는 하드코어한 드럼 질감을 가진 이스트코스트 붐뱁 비트였다.
힙합에 있어서 기본적이라면 기본적인 비트였다. 그러나 보통 붐뱁의 느낌보다는 좀 더 묵직한 느낌이 가미되어 있는 비트이기도 했다.
히메는 누자베스의 영향을 받은 일본 뮤지션답게 재즈 연주로 인트로를 채웠다.
이윽고 짧은 4마디의 인트로 뒤로 히메의 랩이 시작되었다.
히메의 랩은 아주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거친 드럼이 수놓아진 붐뱁 비트 위로 뛰어든 히메의 랩은 마치 수영 선수의 잠영처럼 느껴졌다.
잠영은 고요하지만 그 어떤 영법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질주한다.
또한 수영 시합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잠영이 끝난 이후를 기대하게 만드는 맛이 있었다.
과연 누가 더 빠를까?
누구의 머리가 먼저 물 위로 올라올까?
잠영이 끝난 이후에 수영 시합의 진짜 백미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히메의 랩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잠영을 끝낸 수영선수처럼 부드럽게 시작한 전반부 8마디의 뒤로 강렬한 맛을 지닌 랩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것이었다.
노래는 클라이막스에 오르기 위해서 오르막구간이 필요하지만, 랩은 그렇지 않다. 잔잔하던 랩이 단숨에 꼭대기로 치솟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랩을 구성하면 듣는 사람에게 어색함을 선사할 수도 있었다.
-지지잉!
-지지잉!
하지만 히메는 라디오헤드 Creep의 디스토션 이펙트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산발적인 일렉 기타의 샘플을 삽입하면서 급작스런 도약의 위화감을 없애버렸다.
‘와우!’하는 감탄사를 내뱉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항상 ‘주체할 수 없는 끼’를 강조하던 폴라 압둘의 특히 만족스러운 표정이 보였다.
그 사이로 강렬한 히메의 랩이 이어졌다.
Scot은 마음의 빚 혹은 부채의식에 대한 노래였다.
히메가 여기까지 오면서 받은 많은 도움들에 대한 고마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에 대한 미안함이 가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Scot은 이러한 것을 자기 고백적이고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노래는 아니었다.
결국 이 노래가 말하는 것은 ‘내가 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서 전부 갚을게’라는 래퍼다운 포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히메의 이러한 선전포고와 부채의식은 상현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었다.
분명 히메는 상현을 통해서 실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상현의 방법을 따라하고, 자신에게 맞게 수정하면서 약점을 없앴다.
상현은 몰랐지만 더 엑스펙터는 The way we live 작업 이후 2년 만에 시작하는 히메의 첫 번째 활동이었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히메는 영어를 배우는 것과 상현을 따라하는 일만 반복했었다.
자신의 랩에 ‘상현의 것’이 전부 사라지고 ‘히메의 것’만 남았을 때 엑스펙터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그러니 1차 오디션 합격 후 상현을 만났을 때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상현은 히메의 우상이었고, 선생님이었으니까.
뉴스를 전혀 보지 않아서 상현이 참여하는지도 몰랐었다.
어쩌면 그래서 Scot을 상현과의 경연곡으로 골랐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날 밀어주고, 당겨준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해.
Hime가 여기 있음은 당신들의 덕, 당신들의 것, 당신들의 곁.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올라가는 일뿐.
음악으로 이 모든 것을 사면 받는 것뿐.
히메가 힘차게 외친 ‘Go scot free’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벌스가 끝나고 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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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는 The way we live 작업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와서 상현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국어를 못해서 통역사까지 고용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상현이 어떻게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상현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게다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랩을 한 적이 없었다.
연애담을 담고 있는 <56 JFTR>은 조금 애매했지만, 히메의 생각에 스토리 자체는 픽션일지라도 곡에서 등장하는 여인들은 분명히 실존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상현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보통의 뮤지션들은 좌절과 극복을 무수히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음악이 변하고, 실력이 발전하는 것이었다.
물론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음악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마다 좌절도 달랐고, 극복 방법도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었다.
바로 실력이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한 뮤지션들이 겪는 좌절의 종류였다.
그것은 음악성과 대중성의 괴리감이었다.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쉬지 않고 추구해온 완벽한 음악이 오히려 대중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겪는 좌절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그런 과정이 없었다.
‘랩을 너무 잘하니까.’
천재가 운도 따랐다.
너무 잘했기에 곧장 한국의 힙합 매니아들을 사로잡았고, 너무 잘했기에 힙합에 낯선 대중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현은 대중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대중성이란 익숙한 것들 중에서 발휘되는 취향이지, 손 댈 수 없는 독보적인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상현은 대중성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었다.
힙합이 탄생했고, 힙합을 탄생시킨 전설들이 여전히 랩을 하며, 죽은 전설을 뛰어넘은 살아있는 전설들이 음반을 내는 곳.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만약 아주 배가고픈 사람에게 고기 한 덩이가 주어지면 그 사람은 허겁지겁 먹을 것이었다. 그 고기가 세상 최고의 만찬인 것처럼.
그러나 배는 고프지 않지만 식도락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만찬을 주문한 사람은 달랐다.
고기의 상태, 질감, 육즙, 향신료, 애피타이저 등등 많은 부분을 고려해서 자신이 좋아할만한 식사를 하고 싶을 것이었다.
전자가 상현의 랩을 받아들이는 한국이었고, 후자가 미국이었다.
상현은 랩을 아주 잘한다.
랩 실력만 놓고 보면 에미넴이나 제이지 같은 살아있는 전설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취향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실력적으로 우위를 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에미넴, 제이지, 파이브식스가 동시에 앨범을 내고 딱 1장의 앨범만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은 누구의 앨범을 고를까?
랩을 잘하는 것을 뛰어 넘어 대중들이 파이브식스의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래퍼란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뮤지션이 되는 과정.
상현에게 이것이 부족했다.
왜냐하면, 너무 잘했으니까.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쭉 달려왔으니까.
히메가 생각하기에 이 과정은 상현의 마지막 성장통이었다. 차근차근 성장해온 상현이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까지 맞춘다면 그는 이제 완성된 뮤지션이었다.
네 명의 심사위원들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래퍼들 중에 가장 대중성을 염두에 두는 자신과 붙인 것일 거였다. 자신이 아닌 다른 래퍼들과 붙게 된다면 스킬을 겨루는 자리가 될 것이고, 상현은 무조건 승리할 테니까.
그러니 상현이 이번 무대에서 대중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심사위원들은 기꺼이 천재에게 첫 패배를 선사해 성장의 발판을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심사위원들은 상현을 리얼리티 쇼의 참가자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식했던, 의식하지 못했던 앞으로 계속 이어질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길 뮤지션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리얼리티 쇼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심사를 진행했다면, 상현을 붙이는 게 시청률이나 화제성에서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이런 대진은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히메는 이겨도, 져도 상관없었다.
실력이 아닌 심사위원들의 기준으로 겨루기 때문에 솔직히 이길 것 같았다. 그리고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진다면 상현이 완성이 됐다는 소리고, 자신의 우상이 완전해졌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쁠 것 같았다.
‘500만 달러보다 상현의 완성이 더 기쁘다고? 미쳤구나,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상현과 함께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상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2년 동안 음악을 따라하다 보니 너무 깊이 생각해서 그래.’
히메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했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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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의 Scot이 끝이 났다.
두 번의 벌스와 두 번의 훅으로 구성된 Scot은, 흠을 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흠을 잡을 수가 없는 무대였다.
히메의 무대를 본 참가자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심사 전에 패자부활전이나, 2인 합격은 절대 없다고 심사위원들은 못을 박았었다. 그러니 히메나 파이브식스 둘 중 한 명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히메의 무대를 본 이상, 히메가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무대를 만들고 떨어진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파이브식스가 떨어지는 것 역시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마치 상상이 금기된 것처럼.
그러나 멜로디나 히메 같이 심사위원들의 의도를 알아차린 극소수의 참가자들은 상현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 히메의 무대가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칭찬이 얼마나 길었던지 사이먼 코웰이 고용한 촬영 총감독이 그만하면 됐다고 신호를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극찬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히메가 무대의 좌측으로 내려가고, 우측에서 상현이 올라온 것은 더 이상 칭찬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 다 떨어졌을 때쯤이었다.
‘대중성? 음악성?’
멜로디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는 상현의 표정을 보면서, 그가 무엇을 골랐는지를 유추해보았다.
멜로디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상현도 이번 심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본인에 관련된 일이라 약간 늦게 알아차린 것 같지만, 사실 상현만큼 음악적인 센스나 대국적인 안목이 뛰어난 사람도 없었다. 아마 자신이 힌트를 주지 않았더라도 상현은 결국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그때 심사위원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상현이 노래를 시작했다.
멜로디는 상현의 랩을 들으면서 그가 끝내 대중성이 아닌 음악성을 선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Verse 41. Streamlin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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