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59화 (259/309)

< Verse 41. Streamline >

Verse 41. Streamline

한국과 미국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태도나 뮤지션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많이 달랐다. 때문에 더 엑스펙터 US는 한국의 오디션 프로들과 여러모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이라는 포맷을 채택한 이상,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무한 경쟁이었다.

***

너무나 완벽하게 1차 오디션인 judges' auditions(공식명칭)을 통과한 상현이었지만, 2차 오디션인 부트 캠프(Boot Camp)는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쉽지 않다는 의미는 실력의 부족함을 느꼈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는 의미였다.

2차 오디션 부트 캠프에는 총 300명의 1차 합격자들이 참가했다.

전미의 지원자들 중 1차 합격자가 고작 300명이라는 것은 엑스펙터의 문이 아주 좁다는 의미였지만, 막상 300명이 한 자리에서 음악성을 겨루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다.

300명 중에는 랩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고, 동양인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도 있었다. 또는 그런 것을 떠나서 빌보드권 뮤지션이 엑스펙터에 나온 것에 언짢음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대로 추후의 인맥을 위해 지나치게 살갑게 군다거나, 상현과 팀을 이루어서 수월하게 통과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부트 캠프는 모든 라운드가 팀을 이뤄서 진행하는 단계였다.

이래저래 피곤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현은 계속 이겨나갔다.

“완벽하군요.”

“대중 음악가들이 왜 래퍼들의 피쳐링을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는 무대였어요. 8마디의 짧은 랩이 4분짜리의 긴 노래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 이제 모두들 알게 되었군요.”

300명 중 3분의 1을 탈락시키는 부트 캠프 1일차에는 팀 미션 중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무수한 래퍼들이 탈락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 래퍼들은 래퍼란 포지션이 팀 미션에 불리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현의 무대를 보는 순간 그들은 불만을 표할 수 없게 되었다. 래퍼가 불리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8마디의 짧은 랩은 파괴력이 없다는 불만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파이브식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으니까 말이다.

그 뒤로도 상현은 미션이 이어질 때마다 고평가를 받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래퍼들은 타인의 랩을 카피해 부르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죠. 그러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주제에서도 자신만의 가사를 쓸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경험이든, 심지어 허풍이든지요. 이런 의미에서 파이브식스, 당신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어 보입니다.”

“폴라 압둘. 파이브식스가 한국의 랩스타였다는 걸 잊어버리신 것 같군요.”

휘트니 휴스턴의 'I Have Nothing'을 팀을 짜 부른 3일차의 두 번째 미션에서 상현이 받은 평가였다.

이쯤부터 우승을 노리는 참가자들은 파이브식스란 동양인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MTB를 들어보지 않았거나, 뉴저지 오디션을 보지 못한 이들이 상현을 폄하하는 일이 가끔씩 있었다. MTB가 단독 앨범이 아니라 공동 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빌보드란 뮤지션들의 목표이자, 위대한 지표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빌보드 뮤지션들이 대단한 건 아니었다. 시류가 맞고, 운이 좋아서 빌보드에 올라갔지만 지닌바 실력은 형편없는 뮤지션들도 간혹 있었다.

래퍼들 중에서는,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유행한 Crank That의 주인인 솔자보이(Soulja Boy)가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상현은 결코 그런 뮤지션이 아니었다.

상현의 진면목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파이브식스가 어쩌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래퍼들 사이에서 앓는 소리들이 나왔다.

‘싱어 대 래퍼’의 대결은 근원적인 비교가 불가능해 싱어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래퍼 대 래퍼’의 대결에서 파이브식스를 이기는 것이 어려워보였기 때문이었다.

***

부트 캠프는 총 10일 동안 5번의 미션을 통과해야하는 빡빡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다.

간격으로 따지면 이틀에 한 곡 꼴로 경연을 하는 것이었는데, 매번 새로운 노래를 새로운 사람과 불러야했기 때문에 이틀이란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농담 삼아 Boot 캠프를 Hoot(경적을 빵빵거리다) 캠프라고 부르기도 했다. 누군가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 것 같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실력 있는 이들은 통과를 거듭했다. 그 안에는 상현도 있었고.

그렇게 8일이 지나, 상현이 4번의 미션을 통과한 시점에 남은 참가자는 64명이었다.

“이제 참가자들이 얼마 안 남았네.”

“여기서 절반이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거지?”

“정확히 절반은 아니고 그냥 그 근처인 거야. 설명할 때 뭐 들었어?”

상현이 자신을 타박하는 이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상현은 더 엑스펙터에서 멜로디와 피피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 넓지 않은 미국 내 상현의 교우관계를 생각해보면 다섯 명은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다.

그 중 두 명은 아폴로 시어터의 아마추어 나이트에서 만났던 이들이었는데, 부트 캠프 1일차에 둘 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떠나야했다.

그러나 멜로디, 피피,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상현과 같은 8일차까지 살아남았다.

멜로디와 피피를 제외한 생존자는 바로 The way we live에 같이 참여하며 인연을 쌓았던 일본인 여성 래퍼 히메(Hime)였다.

히메는 피피와 같이 소니뮤직 소속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피피는 소니뮤직 미국 지사 소속이었고, 히메는 일본에 있는 본사 소속이었다.

물론 큰 차이는 없었다. 히메는 일본에서 활동을 하다가 컨택됐으니 본사였고, 피피는 미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컨택됐으니 지사인 것뿐이었다.

상현은 처음에 솔직한 심정으로 히메가 소니뮤직 덕을 봐서 첫 단계를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히메가 못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소니뮤직이 거대하고 대단해도 히메가 랩을 못했다면 선생님이라 불리는 케이알에스원이 앨범 참여를 허락했을 리가 없었다.

상현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The way we live때 경험했던 히메의 랩 스타일이 오디션이란 경쟁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히메는 상현처럼 단기간에 리스너를 확 빨아들이는 랩을 구사하는 래퍼가 아니었다.

그녀는 은근하고 천천히 고조되며 묘한 여운을 남기는 스타일의 랩을 구사했다.

때문에 처음 The way we live가 나왔을 때 히메의 실력이 별로라는 댓글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계속 들으니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의견들로 바뀌기도 했었다.

하지만 상현은 부트 캠프에서 히메의 무대를 몇 차례 지켜보고는 그녀가 소니뮤직의 덕을 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팀 무대에서 짧게 구사하는 랩을 듣고 모든 걸 알 순 없겠지만, 그녀의 랩 스타일은 분명 과거와 달라져있었다. 묘한 여운의 맛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과거와 다르게 터트릴 땐 확실하게 터트려주는 것이었다.

예전 히메의 랩이 전통적인 풀백이었다면, 지금은 리베로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좀 미숙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실히 지금이 더 매력적이네.’

어느 날 상현은 히메에게 스타일이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 물어봤었다.

그에 대한 히메의 답변은 상현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너 때문이지. 솔직히 난 영어가 아닌 언어로는 완전히 본토의 느낌을 낼 수 없다고 믿었었거든. 그래서 일본어 랩만이 가지는 고유의 느낌을 연구했던 거고.’

‘네 판단이 오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맞아. 완전한 오답이었다면 지금의 내 랩에 예전 느낌이 남아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오답은 아니었지만 정답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히메는 그 정답이 상현의 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현은 히메의 말을 듣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의 영향을 받은 래퍼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대단한 켄드릭 라마와 제이콜 역시 MTB를 만들며 상현의 영향을 받았었다. 물론 그 영향이 일방통행은 아니었지만.

“아침 먹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때 함께 아침을 먹던 히메가 상현의 상념을 깨웠다.

“응? 뭐라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아, 별거 아니야. 이거 맛있다. 먹어봐.”

“오사카에 가면 이거보다 맛있는데 내가 알고 있어. 일본에 한 번 놀러와.”

“그래. 그나저나 아침 8시에 초밥을 먹어보긴 처음이네.”

“뭐, 어때. 맛있으면 그만이지.”

참가자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부트 캠프지만 이런저런 서비스만큼은 5성급 호텔 못지않고, 특히 식사가 그러했다.

인종이 다양해서 그런지 요리의 종류도 다양했는데, 미국식 요리는 당연히 있었고, 이탈리아 요리부터 멕시코 요리와 일식까지 있었다. 슬프게도 한식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엑스펙터 첫 방송일 아니야?”

“어?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됐나?”

히메의 말에 상현이 달력을 보고는 놀라움을 표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첫 방송이 되면 한국에서 난리가 나는 거 아니야?”

“글쎄?”

“아니라고는 안하네. 어쩌면 일본에서는 나랑 너를 비교할 수도 있겠다.”

“에이,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데.”

상현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아마 100%의 확률로 비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럴 것이고.

그렇게 상현이 핸드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부트 캠프에 박혀있는 사이, 드디어 더 엑스펙터가 방송되었다.

-정말 놀랍군요. 파이브식스.

-당신의 음악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리고 난 그것에 미지의 요인(X-Factor)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군요.

상현은 당연히 엑스펙터가 방송되면 한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을 알고 있었다. 강남스타일로 대박을 친 싸이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공개가 됐던 것을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현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왜 반이냐면, 상현의 더 엑스펙터 출연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톱뉴스로 다루는 화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화제의 정도도 상현이 상상했던 것 훨씬 이상이었다.

비단 한, 중, 일에서만 화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더 엑스펙터가 제작됐으며, 현재 상현이 활동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Hot 56 Guy.

롤링스톤에서 더 엑스펙터의 첫 방송이 끝나고 홈페이지 메인에 게시한 문구였다.

미국에서는 흔히 매력적인 남자를 Hot Guy라고 불렀다. 그러니 ‘Hot 56 Guy’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Hot 56 Guy’에는 재미있는 의미가 하나 더 숨어있었는데, 더 엑스펙터 1회가 방송될 때 상현의 솔로곡인 No Color가 기록하고 있던 Billboard Hot 100 순위가 바로 56위였다.

21위로 최고점을 찍은 No Color는, 그 뒤로 한 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100위 안에 이름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이었다.

빌보드와 함께 미국의 양대 대중음악잡지인 롤링스톤이 메인 페이지에서 No Color를 언급한 것이 어떤 일을 불러올지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었다.

22. No Color(FiveSix Solo)

핫 100 순위가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56위에서 22위로 급상승.

하델은 다음 주에 하이스코어인 21위를 무너트리고 더 위로 올라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순위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1. No Color(FiveSix Solo)

-1. No Color(FiveSix Solo)

-12. No Color(FiveSix Solo)

한국의 3사 음원 사이트에서 No Color가 각각 1위, 1위, 12위를 기록한 것이었다.

-에이, 시바. 별 더러운 짓을 다 하네.

-엄밀히 따지면 이상현이 한국을 떠난 것도 오경 미디어 때문 아닌가?

-네? 이상현이 한국을 떠난 게 오경 미디어랑 무슨 상관인가요?

-그 저작권 사태로 오경 미디어가 대차게 엿먹은 다음에 이상현을 푸시했어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임.

12위를 기록한 사이트가 오경 엔터에서 오경 미디어와 함께 독립한 계열사였기 때문에, 네티즌들의 욕이 쏟아졌다.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뜨거운 반응은 곧장 시청률로 이어졌다.

더 엑스펙터의 2회차 시청률이 무려 3.2퍼센트가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상현의 인기는 한국을 떠나기 전보다 훨씬 뜨거워지고 있었다.

***

< Verse 41. Streamlin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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