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0. 미지의 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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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가 사이먼 코웰(Simon Cowell)이 제작한 더 엑스펙터는 본래 2004년에 미국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칸 아이돌 제작사 측에서 자신들과 계약기간이 남은 사이먼 코웰이 경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계약 위법이라며 고소를 진행하는 바람에, 2004년에 영국판 더 엑스펙터가 먼저 제작되었다.
상현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본래 사이먼 코웰이 The X-Factor US를 제작하는 것은 아메리칸 아이돌과 법적 분쟁이 해결되는 2011년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똑같이 진행되지는 않는 법이었다.
상현의 회귀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FOX사의 중재 덕분에 2007년부터 The X Factor의 제작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더 엑스펙터는 전미의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제시한 1억 달러를 거절한 사이먼 코웰이 제작한 더 엑스펙터 US.
-500만 달러를 가져갈 더 엑스펙터 US의 우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3억분의 1.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은?
아메리칸 아이돌이 명실상부 최고의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웰을 잡기 위해 제시한 금액 1억 달러(한화 1200억).
우승 상금 500만 달러(한화 55억).
3억의 미국인 중에서 우승자는 단 한 명.
1억 달러, 500만 달러, 3억 명이란 숫자들이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세간에 다양한 화제를 뿌려댔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규모의 숫자들 사이에 가끔씩 거론되는 사소한 숫자도 하나 있었다.
바로 5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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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New jersey)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어크(Newark).
뉴어크에서 가장 크고, 2007년에 지어져 최신식인 프루덴셜 센터(Prudential Center).
이곳이 바로 의 뉴욕 오디션이 개최되는 장소였다.
사실 뉴어크는 주(州)로 따지면 뉴욕 주가 아닌 뉴저지 주였다. 하지만 대도시 문화권을 일컫는 ‘메트로폴리탄 아레나’로는 뉴욕 아레나에 포함되는 곳이었다. 동쪽으로 16Km만 가면 뉴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상현이 있었다.
‘엄청나네.’
상현은 수많은 인파들 속에 서있었다.
동양인이 드문 캄튼의 흑인 후드에서는 상현을 신기해하는 이들이 꽤 있었지만,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동양인은 별 반 신기한 존재가 아니었다.
상현의 주변만 해도 꽤 많은 동양인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자일 것이었다. 상현처럼 이방인이 아닌.
그러나 이방인이라고 해도 상현은 무명은 아니었다.
“누구지?”
“글쎄?”
주변의 엑스펙터 오디션 참가자들이 상현을 보고 수군거렸다. 상현의 얼굴이 낯익어서는 아니었다. 동양인들이 흑인을 구분하기 힘들 듯, 흑인들도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으면 동양인들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상현의 외모가 매스컴에 많이 노출된 것도 아니었고.
참가자들이 상현을 보고 수군거리는 이유는 그의 주변을 맴도는 카메라맨 때문이었다. 전담 카메라맨이 붙어있다는 것은 방송에 나올 메리트가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혹시 타국의 유명한 가수인가?’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상현을 보며 일본에서 유명한 가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혹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국적은 틀렸지만 상현은 타국에서 아주 유명하고, 독보적인 래퍼였으니까.
그러나 틀린 생각이기도 했다. 상현은 한국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지도가 있었다. 단지 얼굴이 안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잡담하는 소리, 준비한 노래를 확인하는 소리,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얽힐 때, 마침내 상현의 라인이 불려졌다.
“E열 1, 2, 3 그룹 들어오세요!”
E열에서 대기하던 참가자들이 자신의 참가 표에 적힌 그룹 번호를 확인했다. 상현은 3번 그룹이었다.
45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현은 그들 무리에 속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상현은 이미 ‘골든 티켓’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엑스펙터는 TV로 보기에는 참가자들이 곧장 4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2단계(판단이 애매한 경우 3단계)가 숨겨져 있었다.
1단계는 노래를 부르는 비디오를 업로드 하는 단계였다. 여기서 최소한의 실력이 걸러졌다.
2단계는 지금 행하고 있는 단계로, 사전 심사였다.
소니 뮤직이나 EMI 뮤직에서 구성한 프로듀서, 작가, PD들이 참가자들의 노래를 듣고 심사위원 앞으로 보낼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송에 내보낼 소스를 가진 이들이었다.
물론 방송용 소스가 없어도 압도적인 실력이 있으면 통과였다. 그러나 노래 실력이 형편없어도 적절한 소스가 있다면 통과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탈락이 예정된 채로 붙는 것이지만.
이 같은 2단계를 통과하면 받게 되는 것이 골든 티켓이었다.
골든 티켓을 받은 참가자들은 비로소 시청자들이 TV로 접하는 첫 심사, 4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를 자격이 생겼다.
그리고 상현은 사전 조율 단계에서 이미 골든 티켓을 받은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부조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빌보드권 래퍼가 골든 티켓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 정도 특혜는 참가자들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상현 같이 빌보드권 뮤지션이 나타나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지만, 이런저런 화제가 될 만한 뮤지션들이 곧장 스크린으로 등장하는 것은 팝 아이돌, 아메리칸 아이돌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현은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런 ‘특혜’를 받은 채로 대기하고 있는 두 명의 뮤지션을 만날 수가 있었다.
두 명 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상현에게 주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한 명은 동고동락한 시간은 길었지만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고, 한 명은 함께 보낸 시간은 아주 적었지만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우선 호감을 주는 이는 뉴욕 할렘에서 만났던 이였다.
‘스타들이 태어나 전설이 만들어지는 곳(Where Stars are Born and Legends are Made)’이란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아폴로 시어터(Apollo Theater)의 아마추어 나이트(Amateur Night).
상현이 ‘서울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로 6위를 기록할 당시, 프랭크 시나트라의 ‘테마 프롬 뉴욕, 뉴욕’을 불러서 1위를 기록했던 뮤지션.
반가운 얼굴의 주인공은 멜로디라는 예명이 더 익숙하다는 멜로리(Mallrory)였다.
“멜로디!”
상현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을 환영했다.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멜로디 역시 상현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현!”
적색이 묘하게 섞인 금발과 곧게 뻗은 눈썹은 그대로였지만, 그녀를 활달한 인상으로 보이게 만들던 주근깨가 없어져있었다.
주근깨가 없어지고 세련된 화장을 하니, 그 전에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미모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
“와우! 마지막으로 메일을 주고받은 게 언제였지?”
“글쎄? 세 달은 훌쩍 넘은 거 같은데?”
상현은 아폴로 시어터에서 만났던 뮤지션들과 종종 연락을 했다. 그러나 피피의 투어에 참여하고, MTB를 만들며 한 동안 제대로 연락하지 못했었다. 캄튼의 통신망과 인터넷망이 불편하다는 이유도 있었고.
“앨범 듣고 깜짝 놀랐어. 처음에는 동명의 래퍼인 줄 알았는데, 월드스타힙합 인터뷰에 기재된 사진을 보고 알았지.”
“동양인 래퍼 중에 파이브식스라는 랩 네임을 쓰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도 말도 안 되잖아! 빌보드 200과 핫 100이라니!”
“넌 어떻게 지냈어? 아마추어 나이트 최종 본선에서 2위를 했다고 했지?”
멜로디는 상현의 말처럼 아마추어 나이트 최종 본선에서 아깝게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1위보다 잘된 케이스였는데, 아마추어 나이트를 통해 꽤 유명한 메이저 레이블에 발탁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멜로디 넌 왜 여기 참가한 거야? 잘 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사실 레이블에서는 내가 여기 참가하는 걸 그렇게 반기진 않았는데, 너랑 같은 이유야.”
“어? 너도 에미넴이랑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어?”
“아니! 에미넴이 아니라 켈리 클락슨! 난 켈릭 클란슨의 엄청난 팬이야.”
켈리 클락슨은 2002년에 첫 방송된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1의 우승자였다.
살던 집을 화재로 잃고 고향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다가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팝스타로 거듭난 켈리 클락슨은, 자신의 인기가 리얼리티 쇼 덕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빌보드와 그래미 어워드를 휩쓸고 있었다.
“아…… 켈리 클락슨이 콜라보레이션 라인업에 있구나.”
“몰랐어?”
“보긴 본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건 에미넴 뿐이네.”
“으, 난 에미넴 싫어. 가사가 너무 저질스러워. 넌 그런 가사도 안 쓰면서 에미넴을 왜 좋아해?”
“웃기지마. 에미넴 가사에는 30년 전통 원조 사골국 같은 깊은 맛이 있다고.”
“방금 한국어로 뭐라고 한 거야. 사…… 뭐?”
“굳이 영어로 직역하자면 Bone Soup?"
"……What?"
그렇게 대기실에서 멜로디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 상현을 쳐다보는 이가 있었다. 쳐다본다기보다는 거의 노려보는 수준이었다.
상현 역시 들어오자마자 그를 발견했지만, 굳이 인사를 나눌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거치 카메라가 있기 때문인지, 그가 먼저 상현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헤이, 파이브식스. 노래는 잘 들었어.”
아주 잘생긴 외모의 남자가 상현에게 웃으며 인사를 걸었다. 상현은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상대가 먼저 인사를 걸어왔기에 받아줬다.
“잘 지냈어? 피피?”
그랬다.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의 주인공은 투어를 돌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플랜 페이퍼, 피피였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플랜 페이퍼는 상현보다 더욱 엑스펙터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할 이유가 없었다.
상현은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웠다. 외모를 보고 상현과 MTB의 파이브식스를 매칭시킬 수 있는 대중은 동양계 국가 이민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음반 산업계 관계자들은 파이브식스가 어지간히 본인의 음악에 자신이 있어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얼굴을 알리려 출전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피피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이 아는 래퍼였다. 싱글차트인 핫 100에 오른 적은 없지만 빌보드 200에는 이름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다만 급격한 판매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거의 1년을 꽉 채우며 플래티넘을 찍었기에, 하이 스코어는 플래티넘 앨범치고 굉장히 낮은 35위였다.
물론 피피가 잘생긴 외모를 무기 삼아 엑스펙터에 출연해 인기를 끌어 올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상업적이나 디스코그래피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는 없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특수성 때문에 외모보다는 실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피피가 더 엑스펙터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그가 평소에 보여준 행적 때문이었다.
소니뮤직은 피피에게 더 엑스펙터에 출연하지 않는다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피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엑스펙터의 공동제작을 담당하는 소니 뮤직의 입장에서 광고 수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피피의 평소 행적에 경고를 취하는 모션도 있었고.
그러나 문제는 피피가 가져가야할 이슈들이 전부 상현에게 쏠렸다는 것에 있었다.
빌보드 순위는 비교할 수 없이 상현이 우위에 있었고, 화제성 역시 캘리포니아의 랩스타보다는 한국의 랩스타가 더 좋은 이슈였다. 게다가 피피의 앨범이 2년 전에 발매된 것에 비해서 MTB는 최근 앨범이었다.
게다가 상현의 월드스타힙합 인터뷰가 너무 강렬했다.
아무리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한 피피라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얻을 것은 얻고 싶었다. 그러니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상현이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안에는 음악적인 열등감도 존재했다.
< Verse 40. 미지의 요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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