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40. 미지의 요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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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기자는 그저 그런 신문사 기자였다.
딱히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직업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는데 남들보다 글이라도 잘 쓰겠지 싶어서 신문사에 취업해 기자가 된 것이었다.
그런 김학수에게 신문사에 들어와서 알게 된 재능이 하나 있었으니, 별 것 아닌 일을 꽤 괜찮은 노이즈로 만드는 재주였다.
때문에 그는 신문 사설의 논평이나 칼럼 연재가 펑크 나면 그럴듯한 평론가 노릇을 하며 연재 펑크를 때우는 역할을 전담하고 있었다. 평소에 실적이 부진해도 부장님이 적당히 넘어가주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학수야. 오랜만에 칼럼하나 써야겠다. 저번처럼 연예계 쪽 이야기로 하나 써봐.”
“연예계요? 어떻게 쓸까요?”
“뭐 있냐. 자극적으로 써봐. 너무 없는 말을 지어내진 말고. 알았지?”
간만에 떨어진 부장의 명령에 김학수는 ‘이번에 잘 써야 또 한동안 편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소스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연예계 이야기를 칼럼으로 만들 수 있는 건 거의 정해져 있었다.
연예계의 뿌리 깊은 폐단, 최신 유행가가 청소년의 사고에 끼칠 악영향, 유행가의 잘못된 맞춤법 사용. 거의 이 셋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연예계의 폐단은 가장 최근에 써먹은 이야기였고, 최신 유행가는 신문사와 가까운 엔터테인먼트들이 밀어주는 팀이었다.
잘못된 맞춤법 사용 표현은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얼마 전 경쟁 신문의 사설에서 한 번 다뤘던 것 같았다.
신문사에서 자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놈이 한 명쯤은 있다 보니 소스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번엔 뭘 쓰지?’
고민을 하며 인터넷을 뒤지던 김학수의 눈에, 888 크루의 이상미가 만든 뮤지컬 ‘러브스토리 인 랩소디’가 눈에 들어왔다.
러브스토리 인 랩소디는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는데, 카메오로 출연한 래퍼들 중 몇몇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기도 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진 ‘칼립’이나 ‘키블’ 같은 래퍼들이 특히 그랬다.
‘흠……. 뮤지컬 본연의 정신을 잃고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랩지컬? 이정도면 되려나? 너무 약한가?’
전문 뮤지컬 배우들의 자리를 유명 가수나 연예인들이 빼앗아 설 자리가 없다는 내용까지 덧붙이면 그럭저럭 쓸 만한 소스는 될 것 같았다.
사실 김학수는 888 크루를 아주 싫어했다.
888 Show에 취재를 갔다가 공연을 보고 싶으면 표를 끊으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뒤부터 그랬다.
어린놈들이 인기 좀 얻었다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로 하자.’
주제를 결정하고 러브스토리 인 랩소디에 대한 검색을 하고 있던 김학수의 눈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 들어왔다.
기사 자체는 5일 전쯤에 올라와서 이미 생명이 다한 기사였는데, 댓글이 흥미로웠다.
-이상현 앨범을 냈던데요? 제가 LA에 살고 있는데 어제 나왔더라고요.
날짜를 보아하니 바로 이틀 전에 올라온 댓글이었다.
앨범이 나온 지 3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이상현의 앨범이 나왔다고? 한국 언론도 조용하고, 댓글에도 별 반응이 없는걸 보면 망한 건가? 하긴, 잘 됐으면 메이저 신문사에서 이미 알았겠지.’
칼럼에 쓸 만한 소스는 아니었지만, 본업이 기자인 만큼 흥미가 동했다. 특히 망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김학수는 구글링을 시작했다. 많이 잊어버렸지만 나름 호주 워킹홀리데이 출신이라서 더듬더듬 영어를 읽을 수는 있었다.
“에이, 이름이 거지같아.”
56이라고 검색하니 너무 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다.
잠시 고민하던 김학수는 LA 56, LA Rapper 56, LA Korea Rapper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검색을 반복했다.
마침내 LA Rapper FiveSix의 검색 결과에서 그가 원하던 결과를 찾을 수가 있었다.
“오호?”
The date of issue : May 2, 2008.
Title :
Artist : Kendrick Lamar, FiveSix, J.Cole
Track List.
1. Nigga, Yellow Monkey, Flip
2. Surprise
3. Cruel Killerz(Feat. Schoolboy Q)
4. Mix Them : Black
5. No Color (FiveSix Solo)
6. Compton 2 Flow (Kendrick Lamar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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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은 5월 2일이었고, 앨범 타이틀은 이었다. 아티스트는 이상현을 제외하고는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김학수의 시선을 끈 것은 앨범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1번 트랙의 제목이었다.
-Nigga, Yellow Monkey, Flip.
호주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김학수는 이 영어들이 굉장한 인종차별적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 유학생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내가’, ‘니가’라고 크게 말하면 흑인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기도 했다.
또한, 유학을 하지 않았더라도 미국 문화에 관심이 있으면 ‘Nigga’와 ‘Yellow Monkey’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왜 이런 단어들을 쓴 거지?’
구글링으로 좀 더 를 검색해보았지만, 폭상 망했기 때문인지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찾은 것이 개인 블로그에 적힌 글귀였다.
-이 앨범의 트랙리스트를 보고 아주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세 사람의 뮤지션을 알지 못하지만, 인종차별을 대놓고 일삼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생각이 없다.
래퍼들은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SWAG이 높아진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눈살이 찌푸려질 뿐이다.
‘됐다.’
기자의 육감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박 부장에게 두 달은 생색낼 수 있는 소스를 찾아낸 것 같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김학수가 한글 문서를 켜서 글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성급한 성과주의로 본질이 훼손당하는 음악계.
학자들은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3가지를 의, 식, 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인류의 탄생부터 이어져왔다. 무려 1만 8천 년 전, 스페인 지방에서 살던 구석기인들은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렸다.
당시 그들은 벽화가 예술이라는 자각이 있었을까?
벽화를 그림으로써 배고픔을 해결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찾아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럴 리는 없었다. 그들은 단지 본능적으로, 삶의 필요충분조건으로써 예술을 완성해낸 것뿐이다. 이처럼 예술은 인간 본능에 포함된 행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술 중 대중에게 가장 가까운 분야가 무엇일까?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음악 예술이다.
대중들은 음악계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뮤지션을 사랑하고, 뮤지션이 잘되길 바라며, 그들의 음악에 정서적인 공감을 느낀다. 좋음 음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도 하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중요한 음악계가 최근 ‘성급한 성과주의’로 인해서 망가지고 있다.
‘곧장 이상현의 이야기로 가긴 좀 아쉬운데? 약간 비약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던 김학수는 좀 전에 생각했던 랩지컬 ‘러브스토리 인 랩소디의 이야기’를 삽입했다.
제작사 측의 성과주의(혹은 외모주의) 때문에 진짜 뮤지컬 배우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논의는 실제로도 많이 다뤄졌기 때문에 이어질 내용의 신빙성에 힘을 실어줄 장치이기도 했다.
이제는 메인디쉬를 다룰 차례였다.
……미국으로 떠난 888 크루의 이상현 역시 이러한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5월 2일 미국에서 발매된 이상현의 앨범 은 음악 예술 본질을 포기하고 ’노이즈 마케팅‘을 택했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 사회에서 항상 중요한 쟁점인 ‘인종차별논란’을 앨범의 프로모션에 이용한 것이다.
의 1번 트랙의 제목은 ‘Nigga, Yellow Monkey, Flip'이다.
필자는 이 제목을 접하고 당황했고, 분노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인종차별의 단어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흑인 노예, 노란 원숭이, 튀기’로써 흑인, 황인, 혼혈을 비하하는 용어인 것이다.
이 같은 용어는 미국 사회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 미국의 상원의원이 사석에서라도 이 같은 단어들을 사용했다면, 그 즉시 전미의 대중들에게 의원직 사퇴 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 생명이 끝날 정도로 심각한 단어라는 것이다.
이상현의 을 두고 미국의 앨범 평론가 중 한 명은, ‘나는 세 사람의 뮤지션을 알지 못하지만, 인종차별을 대놓고 일삼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생각이 없다.’라고 분노하기도 했다.
이상현이 미국으로 떠난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한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맛봤던 그가 1년의 긴 무명생활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노이즈 이슈를 만들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그는 한국에서 여전히 스타이며, 공인이다. 또한 미국으로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 래퍼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에서 유명하건, 유명하지 않건 한국이란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중략)
꼬박 3시간에 걸려 칼럼을 완성한 김학수는 당당한 표정으로 박 부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3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전화가 울렸다.
-야! 이거 뭐야? 이거 진짜야? 너 당장 내 방으로 와!
박 부장의 방에 도착한 김학수가 들은 첫 마디는 사실 여부였다.
“이거 어디까지가 팩트고, 어디까지가 짜깁기야?”
“전부다 팩트입니다. 단지 교통사고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달라지는 거죠.”
“흠. 여기 이 평론가는 누구야?”
“아, 그건 개인 블로그에서 퍼온 건데, 평론이 무슨 자격증이 있나요? 공개된 장소에 평가를 하면 평론이고 평론가지.”
“그건 그렇지…….”
박 부장은 담배를 꼬나물더니 다시 물었다.
“이상현 앨범이 발매된 건 한국 언론에 안 알려졌지?”
“네. 검색해봤는데 전혀요.”
“이거 망한 거 맞아? ‘이런 노이즈 마케팅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썩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거 맞는 말이야?”
“맞지 않을까요? 발매일이 얼마 전이긴 하지만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도 5월 2일이라는 건 빼자. 날짜는 언급하지 말고, 마치 몇 달 전에 발매된 것처럼 해. 아, 근데 이거 칼럼이나 논평이라기에는 너무 잡기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그럼 그냥 기사로 실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가만 있어봐. 시와 랩 행사 때문에 8년 만의 개인전이 폭삭 망한 화가 한 명 알고 있거든? 그 사람이 가끔 세상만평이라고 신문에 기고한단 말이야. 그 사람 이름 좀 빌려보자.”
“시와 랩 때문에 망해서 888 크루를 싫어하나 보죠?”
“어어. 그 새끼가 좀 쪼잔 하거든. 뒤끝도 길고. 사실 그림도 별로 못 그려.”
박 부장이 웃으며 전화를 들었다.
“아, 위 화백님. 박 편집장입니다. 잘 지내셨죠?”
다음 날 한주 일보의 일간지와 인터넷 뉴스로 ‘위 화백의 세상만평’이 기고되었다.
그 파장은 박 부장과 김학수의 생각보다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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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40. 미지의 요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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