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44화 (244/309)

< Verse 38. 던전(Dungeon) >

***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컨트롤 대란’을 일으킨 컨트롤이란 노래의 주인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 컨트롤(Control)은 켄드릭 라마의 노래가 아니었다.

컨트롤은 빅션(Big Sean)의 노래였고, 켄드릭 라마와 제이 일렉트로니카(Jay Electronica)는 피쳐링진이었다.

다만 켄드릭 라마가 컨트롤에서 수많은 메이저 래퍼들에게 경쟁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토해내면서 ‘컨트롤 = 켄드릭 라마’라는 이미지가 박힌 것뿐이었다.

켄드릭은 ‘2010년대 최고의 작사가이며 힙합을 넘어서 현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래퍼였다.

I'm Makaveli's offspring, I'm the king of New York

난 마카벨리의 후손, 난 뉴욕의 왕

King of the Coast, one hand, I juggle them both

난 웨스트코스트의 왕, 한손으로, 난 양쪽을 다 저글링하지

Judge me 'til the monarchy, blessings to Paul McCartney

군주제가 될 때 까지 날 평가해, 폴 매카트니에게 축복을

(왕 하나만 맨 위에 군림하는 군주제가 될 때 까지만 자신을 평가하라 하며, 기사작위를 받은 폴 매카트니를 언급해 자신이 왕이란 것을 강조)

컨트롤 벌스의 가사처럼 켄드릭 라마는 압도적인 커리어를 지닌 래퍼였다.

2011년에 발매한 1집 앨범 으로 곧장 투어를 시작.

투어를 다니는 비행기 안에서 구상한 2집 로 2012년 빌보드를 석권.

발매년도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힘든 그래미어워드에 2집 앨범으로 ‘2년간 7번’이나 노미네이트.

켄드릭이 그래미를 수상하지 못하자 전미의 음악 팬들이 ‘그래미가 미쳤다’라고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평론가들은 켄드릭 라마의 인생작이 2집 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켄드릭 라마는 2015년에 3집 앨범 를 발매하며, 스스로가 세운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한 앨범임에도 3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 기록.

10년간 메타크리틱(모든 리뷰의 평균을 내는 사이트) 앨범 점수 중 최고인 96점.

롤링스톤 선정 올해의 앨범 1위.

마이클잭슨의 12개 다음으로 높은 기록인 그래미어워드 11개 부문 동시 노미네이트.

그래미어워드 5관왕.

이 외에도 음악적으로 중요한 기록은 아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뽑은 2015년 최고의 뮤지션이었으며, 순수한 팬심(?)으로 백악관에 초청받기도 했었다.

켄드릭 라마의 커리어에 대해 언급하자면 끝이 없었다.

스쿨보이 큐 역시 대단한 래퍼였고 힙합 문화 안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지만, 켄드릭 라마는 격이 달랐다.

래퍼라는 타이틀을 넘어선 세계 최고의 뮤지션.

2010년대 전 세계 래퍼들의 워너비.

그런 켄드릭을 우연히, LA의 파사디나에서 만난 상현의 가슴이 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켄드릭 라마와 스쿨보이 큐라니……!’

상현이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악수를 청했다.

너무 감격스러워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태연을 가장하려는데, 쉽지 않았다. 우상이자 영웅이 눈 앞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어. 큐, 제이. 그리고 켄드릭.”

“어? 내 이름을 알아?”

“아…… 스탠다드에게는 스테이지 네임보다 본명으로 더 많이 들었거든.”

“그래? 난 스탠다드와 별 친분이 없는데……?”

켄드릭 라마는 의아해하면서도 별말 없이 상현과 악수를 나눴다.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상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키 작은 흑인이 ‘켄드릭’ 이외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낯설어 실수를 해버렸다. 과거에 켄드릭의 ‘그래미어워드 라이브’, ‘SNL 라이브’, ‘BBC 라이브’를 수백 번이나 돌려 본 탓일 것이었다.

‘지금은 본명이 아니라 케이닷이란 스테이지 네임을 쓰는가 보네.’

상현의 생각처럼 켄드릭 라마는 2009년까지 케이닷이란 스테이지 네임을 쓰다가, 2009년부터 본명인 켄드릭 라마를 사용했다.

사실 상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켄드릭 라마와 스쿨보이 큐 뒤에 서있는 제이 역시 굉장한 뮤지션이었다. 그가 바로 웨스트코스트의 제이 록(Jay Rock)이었다.

켄드릭 라마, 스쿨보이 큐, 제이록, 지금 자리에 없는 에이비소울까지.

이들은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캄튼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며, 켄드릭 라마의 성공 이후 다 함께 메인스트림으로 올라가는 블랙 히피 멤버들이었다.

‘이런 이들과 길거리에서 우연히 조우하다니!’

상현은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미래의 유명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적이 없었다. 접근하기가 힘든 건 둘째 치고, 왠지 반칙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켄드릭이나 스쿨보이 큐와는 꼭 친해지고 싶었다.

물론 켄드릭이나 스쿨보이 큐가 얻게 될 인기에 편승해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단지 CD로만 접했던 우상들의 사상과 생각, 세상을 라임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멋진 랩과 가사를 쓸 수 있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 역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다들 저녁은 먹었어?”

그래서 상현은 블랙 히피 멤버들에게 식사를 제안했다.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블랙 히피 멤버들도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가자고.”

상현이 앞장서자 블랙 히피 멤버들이 그 뒤를 따랐다.

상현은 켄드릭 라마, 스쿨보이 큐가 자신의 뒤를 따르는 모습에 감격해버렸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시였다.

잠시 뒤 상현은 스쿨보이 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레스토랑? 지금 레스토랑이라고 한 거야?”

레스토랑으로 가자는 상현의 말에 큐와 제이가 'What the fuck!'을 외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파사디나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사들고는 다시 캄튼으로 향했다.

그곳에 블랙 히피의 아지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Oh, Shit! 이 노래 뭐야?”

“이번에 투어에서 부를 노래야. 죽이지?”

“다시 해봐. 다시 해봐, 파이브.”

“이번엔 네 차례야, 켄드릭.”

Real Recognize Real.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힙합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구절처럼 블랙 히피 멤버들은 금방 상현을 인정했다.

그렇게 사이커델릭 레코즈 멤버들과 블랙 히피 멤버들, 그리고 상현은 캄튼 후드의 한 지하실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랩 문화권에서 LA는 뉴욕만큼이나 프라이드가 강한 도시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N.W.A의 하나만 가져다놔도 그 무게감은 충분했다.

때문에 LA의 래퍼들은 본래 커튼 콜 투어 같은 ‘잡스러운’ 투어를 관람할 생각이 없었다.

커튼 콜 투어는 투어진 구성에서 랩의 비중이 높고 랩스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진짜 힙합의 로(Raw)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캄튼의 래퍼들이 ‘게이 래퍼’라고 비웃는 피피처럼 마케팅의 힘으로 만들어진 랩스타들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LA에 커튼 콜 투어가 도착하자, 꽤 많은 LA의 래퍼들이 표를 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커튼 콜 투어가 보고 싶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래퍼 파이브식스(FiveSix)였다.

파이브식스는 LA 언더그라운드에서 성장한 래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무대에서 LA를 샤라웃하며, 실제로 LA 뮤지션들과의 친분도 있었다.

그러나 LA 랩 문화권이 너무 넓다보니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파이브식스의 털끝하나 보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왜 동양인 애송이가 LA를 샤라웃하지?’

‘파이브식스면 캄튼 블랙 블록에 나왔던 녀석이지? 후드맨?’

‘잘하는 녀석이야?’

이러한 궁금증이 그들을 커튼 콜 투어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커튼 콜 투어의 첫 번째 공연.

두 번으로 예정된 LA 공연의 첫 번째는 그들의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주는 공연이었다.

***

“WASSUP! LOS ANGELES!"

약간 흥분한 듯한 상현의 외침에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파이브식스!

-우와아아아아!

상현에게 보내주는 관객들의 호응은 다른 라인업들이 받았던 것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컸다.

일반 대중들이 느끼는 상현의 인지도는 낮을지 모르겠지만, 힙합 팬들에게 상현의 인지도는 상당했다.

평생 랩을 해도 힙합디엑스, 월드스타힙합 등의 사이트 메인에 올라가지 못하는 래퍼들이 수만 명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각 지역에서 랩스타 취급을 받는 래퍼들도 있었다.

그러니 힙합 팬들에게 파이브식스는 충분한 랩스타(Rapstar)였다. 특히 LA에서는.

-Came From The LA!

-LA Yellow Nigga!

상현의 입장에서는 단 몇 달 만에 입지가 확 바뀐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는 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최정상까지 치달았다면, 미국에서는 ‘숨고르기-도약’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하델 레인즈가 있었고, 하델 레인즈가 프로모션 벌이는 방식에는 상현의 랩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자, 가자고!”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다.

LA 공연에서 상현은 피피의 오프닝맨이 아닌 한 명의 라인업이었다. 미국 도시 중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가 LA이기 때문에 소니뮤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공연의 시작은 평소처럼 ‘The way we live’와 'No Color'였다.

예의 케이알에스원이 또 한 번 스크린으로 등장하고, 상현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 기대감을 잔뜩 심어주었다.

사실 케이알에스원이 흔쾌히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퍼블리시티권 문제 때문에 이렇게 마음대로 영상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상현이 성장하는 기반에는 그동안 맺은 인연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케이알에스원 뿐만이 아니었다.

The way we live와 No Color로 공연의 포문을 연 상현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무대에 올라와있던 누군가가 호응 유도를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의 하이프맨을 맡은 사이커델릭 레코즈의 웨스트런이었다.

웨스트런은 LA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뮤지션이었고, 누가 뭐래도 ‘정통 LA 출신’이었다.

그런 이가 하이프맨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은 ‘아, 파이브식스는 확실히 엘에이 래퍼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봐, LA 친구들. 파이브식스가 어디나라 사람인 줄 알아?”

웨스트런의 질문에 곳곳에서 ‘코리아’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The way we live의 가사를 통해 관객들은 상현이 한국의 랩스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맞아. Mr.Lee는 한국 사람이지. 하지만 무대에 올라서 파이브식스가 될 때면 그는 LA 사람이라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이상현!!

-꺄아아아아악!

그때 LA에 사는 한국 교민들이 한국어로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LA 한인회에서 조직적으로 표를 구하고, 현수막까지 제작해 찾아온 것이었다.

“워우! 왜 지금 타이밍에 소리를 지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난데? 다들 들었지?”

웨스트런이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한국 교민들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다시 한 번 괴성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쏟아졌다.

“다음 곡은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디제이 스탠다드가 가끔 파티 플레이에서 틀었던 노래거든. 그렇지? 파이브?”

웨스트런의 물음에 상현이 답했다.

“맞아. 다만 스탠다드가 틀었던 노래가 내 ‘한국의 고향’에 대한 노래였다면, 지금 부를 노래는 내 ‘미국의 고향’에 대한 노래야.”

“준비됐어?”

“LA에서라면 언제든지.”

상현의 대답을 들은 웨스트런이 무대의 전면으로 뛰쳐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Errbody Say! Where is the 56 hometown!"

-Where is the 56 hometown!

“Where is the 56 HOMETOWN-!"

-Where is the 56 HOMETOWN-!

‘웨얼 이스 더 파이브식스 홈타운!’이라는 관객들의 엄청난 목소리가 공연장 안을 메아리처럼 떠돌아다니고-

너무나 큰 소리에 사람들의 귀가 윙윙 거릴 때-

“Motherfuckin` LA."

상현의 건조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

그 순간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엘에이 업(LA UP)!’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 Verse 38. 던전(Dungeon)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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