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40화 (240/309)

< Verse 37. Next Stage >

***

“저 Chinky 새끼는 뭐야?”

프란코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만 활동을 하는 래퍼였다.

가끔 인접한 새크라멘토(Sacramento)나 오클랜드(Oakland)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었고,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프란코가 인기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총 3장의 앨범을 발매한 그의 집에는 플래티넘 케이스 2장과 골드 케이스 1장이 있었다.

한 마디로 샌프란시스코를 꽉 잡고 있는 래퍼란 소리였다.

그런 프란코가 샌프란시스코로 온 커튼 콜 투어에 합류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프란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회, 새크라멘토에서 1회 공연을 소화할 예정이었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공연의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프란코의 눈에 한 동양인 래퍼가 들어온 것은 본인의 리허설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칭키(Chinky : 동양인을 비하하는 슬랭)? 누구?”

프란코의 물음에 같은 샌프란시스코 출신인 슬럼 덕(Slum Duck)이 반문했다.

슬럼 덕은 프란코와 달리 커튼 콜 투어의 처음부터 참여한 뮤지션이었다.

“저 무대에서 리허설 하는 놈. 저거 지금 리허설 하는 거 맞지? 설마 투어에 참여하는 놈이야?”

“아아, 파이브? 원래는 피피의 하이프맨이었는데 샌디에고 공연부터 오프닝 래퍼로 참여하고 있어. 피피가 죽으려고 그러지.”

“죽으려고? 왜?”

“엄청 잘하거든. 여우 피하려다가 늑대를 만난 꼴이야.”

슬럼 덕의 말에 프란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우, 늑대 어쩌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프란코가 알고 있는 슬럼 덕은 결코 동양인 래퍼에게 ‘잘한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놈이 아니었다.

사실 흑인들은 백인보다 동양인을 더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양인 이민 1세대의 영향이 컸는데, 동양인 이민자들 중에는 백인을 우월하게 보고 흑인을 깔보는 이들이 많았다. 설령 티를 내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인 사고가 그랬다.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백인 문화 탓인 듯 했는데, 흑인들 입장에서는 어디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날아온 놈들이 자신들을 낮춰보니 좋은 감정이 생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골이 세대가 지나도 남아있는 것이었다.

슬럼 덕 역시 동양인을 싫어하는 흑인 중 한 명이었다. 때문에 프란코가 의아해 하는 것이었다.

프란코의 시선을 느꼈는지 슬럼 덕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파이브는…… 진짜 괜찮은 놈이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동양인인지 까먹을 때도 있고. 근데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느낀 거지?”

처음 피피한테 구박 받을 때는 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동양인을 별로 안 좋아하긴 했지만, 그보다 피피를 더 싫어했으니까.

그리고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충실하게, 너무나 완벽하게 하이프맨을 소화하는 것을 보면서 꽤 괜찮은 놈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파이브는 연구를 많이 하지 않으면 놓칠 수밖에 없는 피피의 무의식적인 버릇까지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그 뒤로 몇 번 대화를 해보니까 발음도 매력적이었고, 정신적인 면이나 실력적인 부분도 괜찮았다.

피피가 오프닝 래퍼였던 블랙커넥션과 데런을 잘라버리는 탓에 파이브가 무대에 올라가게 됐을 때, 슬럼 덕은 ‘파이브가 존나 잘해서 피피 새끼 엿 좀 먹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제대로 엿을 먹었지. 멍청한 놈.’

슬럼 덕은 처음 파이브가 꾸민 무대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랩을 잘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커리어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파이브는 진짜 괜찮은 놈이야.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고. 만약 미국에서 동양인 랩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면 저 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걸.”

슬럼 덕의 이야기를 들은 프란코는 내심 놀라며 파이브의 리허설 무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슬럼 덕이 파이브를 그토록 칭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

샌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태평양 연안의 제 1 항구 도시.

-세계 유수의 항만 국제 도시.

-캘리포니아 주에서 LA에 이은 두 번째 대도시.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뱅크 런 투어 2007>과 <그랜드 투어 2007>의 연장선상에 있는 <커튼 콜 투어 2008>이 도착한 것은 2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꺄아아아아악!

-플랜 페이퍼!

-프란코!

커튼 콜 투어 라인업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인기가 많은 뮤지션은 프란코와 플랜 페이퍼였다.

우선 프란코는 절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지 않는 지역에 대한 굳은 애정을 보여주면서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래퍼’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플랜 페이퍼 역시 언더그라운드 시절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래퍼였다.

플랜 페이퍼는 원래 근방의 오클랜드에서 활동했었는데, 그가 구해낸 트럭에 치일 뻔한 아이가 샌프란시스코의 소년이었다. 그 뒤로 소니뮤직에 들어가기 전까지 좀 더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이었다.

프란코와 플랜 페이퍼 덕분인지, 아니면 2008년의 첫 투어이기 때문인지, 2회 공연이 예정된 샌프란시스코의 커튼 콜 투어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8일 간격으로 벌어지는 두 번의 공연 사이에 예정된 오클랜드와 새크라멘토의 공연 역시 거의 매진이었다.

EMI 뮤직과 소니 뮤직의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당연히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사실 커튼 콜 투어는 엄밀히 따지면 ‘슈퍼스타’는 없는 공연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래퍼와 싱어를 꼽을 때 언급되는 에미넴, 제이지, 마돈나, 비욘세 같은 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커튼 콜 투어의 인기는 그러한 슈퍼 투어 못지않았는데, 그것은 적절한 뮤지션의 섭외 때문이었다.

샌디에고 공연 때는 샌디에고에서 슈퍼스타 대우를 받는 뮤지션을 라인업으로 세웠고,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할 때는 이 근방에서 인기가 많은 뮤지션들을 라인업으로 세웠다.

물론 캘리포니아 전체에서 인기가 많은 뮤지션들도 있었고, 지금은 인기가 떨어졌지만 한 때 전미를 석권했던 올드 뮤지션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충 ‘이 도시에서는 이 친구가 가장 화제가 되겠군.’이라는 판단이 섰다.

의외의 행진을 보이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면.

***

초연의 막이 오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The Regency Ballroom은 시작부터 달아올랐다.

캘리포니아 주의 올버니에서 결성된, 지금은 시들하지만 90년대 후반에는 꽤 잘나갔던 펑크록 밴드 랜시드(Rancid)의 신나는 무대가 포문을 연 것이었다.

-Rancid!

-Rock & Roll!

랜시드의 무대로 시작된 커튼 콜 투어는 그 어떤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이어졌다.

스태프들이 매번 공연이 이렇게 완벽하게 진행되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관객들이 느낄 흥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귀를 찢을 듯한 함성소리가 쉼 없이 울렸고, 사람들이 뿜는 열기로 공연장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뮤지션들도 공연장 분위기에 감화된 듯 평소보다 더욱 격렬한, 하지만 실수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객들의 온몸이 땀으로 푹 젖을 때쯤, 남은 라인업은 단 세 팀뿐이었다.

프란코-슬럼 덕-플랜 페이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세 래퍼들의 차례가 도래한 것이었다.

“헤이, 에밀리. 숙제는 하고 온 거니? 오, 제이슨. 어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 봤는데 용케 왔네.”

무대에 오른 프란코가 눈에 들어오는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이름을 부르자 공연장은 난리가 났다.

과연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래퍼다웠다.

사실 프란코, 슬럼 덕, 플랜 페이퍼 중에서 인기도로 따지면 프란코가 최고였다. 다만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너무 많이 해서 엔딩 뮤지션으로 적합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란코의 무대.

프란코는 ‘왜 내가 엔딩이 아니지?’라고 항변하는 듯한 엄청난 무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EMI랑 소니 사장들한테 미안한데? 돈값 좀 하려면 신곡이라도 불러야겠어.”

프란코의 무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래퍼가 필요 없는’ 공연이었다. 비트만 흘러나오면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불러주는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란코는 심지어 하이퍼맨 한 명과 밴드 세션만 대동했을 뿐 피쳐링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의 왕인데 도움이 왜 필요해? 라고 묻는 듯했다.

그렇게 프란코의 공연이 끝나고, 곧장 슬럼 덕의 차례가 이어졌다.

슬럼 덕의 공연 역시 멋졌다.

그는 프란코와 달리 피쳐링진을 적극 이용했다.

오프닝부터 매력적인 소울 재즈 보컬을 기용하더니, 중간 중간 많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에는 퇴장한 줄 알았던 프란코가 올라와서 벌스를 보태기도 했다.

-우와아아아!

-슬럼 덕! 프란코!

마지막 곡을 끝낸 슬럼 덕이 관객들의 환호를 즐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향인 샌프란시스코에 거의 3년 만에 오는 것 같아. 대부분 알겠지만 난 스무 살 때부터 뉴욕에서 활동했으니까. 그리고 성공해서 여기에 있지.”

슬럼 덕이 입을 열자 관객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관객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슬럼 덕과 친분이 있었다. 지금이야 무대 위에 있지만, 무대 밑으로 내려오면 슬럼 덕은 친구거나, 친구의 아들이거나, 아들의 친구였다.

“뉴욕에서 느낀 게, 세상은 존나 넓다는 거야. 별의 별 병신들이 다 있고, 별의 별 천재들이 다 있지. 난 빨리 프란코가 더 넓은 세상으로 와서 한계를 느껴봤으면 좋겠어. 니들도 알다시피 던피 아저씨가 죽으려고 하잖아.”

던피는 프란코의 삼촌이자 매니저였다.

슬럼 덕의 말에 ‘Go Out Franko'라는 관중들의 외침이 들렸다. 프란코가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하길 바라는 관중들이 꽤 많은 듯 했다.

“아, 뭐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사실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어. 그냥 고향에 와서 존나 기뻐. 감회가 새롭다고. 세상은 존나 넓지만 역시 프리스코(Frisco : 샌프란시스코 애칭)가 최고야. 내 말 알지?”

-말 잘 했다!

-프리스코 베이비!

그 뒤로도 감회를 표현하려 횡설수설하던 슬럼 덕이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아까 세상이 넓다고 했지? 맞아. 존나 넓어. 그리고 이 자식도 넓은 세상에서 온 놈이지. 프리스코 촌놈들은 동양인하면 다운타운의 차이나타운부터 생각하겠지만, 이번에 나올 놈은 Real Yellow Nigga라고.”

Real Yellow Nigga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에 관객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단순한 말실수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객석에 있던 슬럼 덕의 친구는 공연 전에 마리화나 폈냐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슬럼 덕은 공연 전에는 안 폈지만 이제 끝났으니 한 대 진하게 필거라고 말하고는 크게 웃으며 무대를 내려갔다.

그렇게 끝까지 횡설수설하던 슬럼 덕이 무대를 내려가고, 잠시 무대가 암전이 됐다.

암전은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5초 정도.

짧은 암전 뒤에 메인 스크린으로 떠오르는 영상이 있었다.

래퍼들은 체질적으로 화려한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랩이라는 장르 자체가 말을 하는 것인데, 거기에는 별 다른 장치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래퍼들의 퍼포먼스는 대부분이 등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스눕 독처럼 차를 타고 무대로 등장한다던지, 에미넴처럼 슈퍼맨(심벌마크는 S가 아니라 E다) 분장을 하고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 외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영상이었다.

창고 같은 장소에서 라이벌 갱단원과 총싸움을 하다가 적을 죽여 버리고 문을 열고 나오는 영상은 아주 흔했다.

영상 속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영상 속과 똑같이 설치된 무대의 문을 박차고 래퍼들이 튀어나오는 방법이었다.

지금의 퍼포먼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영상에 등장하는 것이 케이알에스원이라 이상할 뿐이었다.

“엔딩은 피피 아니야?”

“저거 케이알에스원이잖아? 티쳐도 라인업이야?”

관객들의 의아한, 그러면서도 기대감 가득한 시선이 암전 속에 홀로 빛나는 스크린으로 쏟아졌다.

그 순간, 영상 속에서 짧은 랩을 하던 케이알에스원이 몸을 돌려 누군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카메라 앵글이 케이알에스원의 몸짓을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앵글에 나타난 것은 씩 웃고 있는 한 동양인이었다.

동양인이 케이알에스원을 슬쩍 뿌리치더니 랩을 하기 시작했다.

“어? 나 이 노래 아는데…….”

“나도. 이거 뭐지?”

“아! 이거 그거잖아. 유투브 메인에 떠 있던 거.”

“아! The way we live였나?”

“근데 그거 다른 나라 말이었는데?”

“영상도 약간 다른데? 메이킹 필름인가?”

영상 속의 동양인은 영어로 랩을 몇 마디 하더니 잠깐 가사를 까먹은 듯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영상 속의 케이알에스원이 크게 외쳤다.

-이봐, 파이브식스!

“네, 선생님.”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

“제대로?”

-그래, 제대로.

“오케이.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제대로…….

암전 상태의 무대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펑-!

모든 조명이 일제히 켜지며 불꽃과 함께 거친 드럼이 터졌다.

상현의 The way we live 영어 버전이 시작되었다.

< Verse 37. Next Stag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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