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39화 (239/309)

< Verse 37. Next Stage >

***

한국이나 미국이나 뮤지션들이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연이다.

물론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앨범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지만, 앨범은 항상 불안정성이 있었다. 투어만큼 확실한 수익 수단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작사들은 투어를 선호했고, 공연 횟수가 많을수록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에 투어의 일정은 언제나 빡빡했다.

닥터 드레, 스눕독, 에미넴을 비롯한 랩 슈퍼스타들이 벌인 는 2000년 5월 15일부터 8월 20일까지 총 44번의 공연을 했었다.

95일에 44회. 대략 2.2일에 1회 꼴로 공연을 한 것이었다.

커튼 콜 투어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2.5일에 1회의 공연을 소화하는 빡빡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다만 커튼 콜 투어는 주(州)나 메트로폴리탄(대도시를 중심으로 중, 소 도시가 이루고 있는 도시 문화권)이 바뀌면 메인 뮤지션이 바뀌고, 몇몇 뮤지션들의 교체되는 형식이라서 업 인 스모크 투어만큼의 강행군은 아니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에서 인기가 많아 빠지는 공연이 없는 플랜 페이퍼 사단에게는 꽤 힘든 강행군이었다.

플랜 페이퍼는 물론이고 하이프맨, 음향-무대 스태프, 피쳐링 뮤지션들도 그랬다.

모두가 힘들어서 예민해져있는 상황. 이런 상황일수록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데, 플랜 페이퍼에게는 그런 자제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투어의 6번째 도시인 출라 비스타(Chula Vista)에서였다.

***

“피피!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일을 벌여?”

“요시치가 다른 오프닝 래퍼를 구해오면 되잖아!”

“투어 중에? 그게 그렇게 쉬워? 쉬울 거 같아?”

“……그걸 하게 만드는 게 매니저의 역할이잖아.”

피피는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인식은 있었기 때문에 요시치에게 강하게 말하진 못했다.

요시치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피쳐링 래퍼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자꾸 이러면 다음 재계약이 어떻게 될 줄 모른다는 거 알고 있잖아. 지금 계약 조건도 네가 문제를 일으키니까 나빠진 거잖아?”

“…….”

“얻을 거 하나 없는 그 거지같은 프로그램에 나가야하는 것도 네가 친 사고들 때문인 거 알지? 정말 소니 뮤직에서 계약 해지당하고 싶어?”

“…….”

요시치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는 피피를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플랜 페이퍼는 자신의 랩 실력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플랜 페이퍼는 재능 없는 래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중심을 잡지 못했고, 실력과 명성 사이의 괴리를 실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오프닝 래퍼나, 피쳐링 래퍼가 자신보다 잘하면 심하게 견제하는 버릇이 있었다.

샌디에고 공연에서 난 사단도 이 때문이었다.

피피는 San Jose의 Big Thing Shit 공연 때문에 엄청나게 열이 받아 있었다. 하이프맨 따위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분노는 다음 공연인 샌디에고까지 영향을 줬는데, 샌디에고 공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여러 번 한 것이었다.

그에 반해서 오프닝과 피쳐링을 맡고 있는 래퍼 ‘데런’과 ‘블랙커넥션’은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하이프맨이라 큰 티가 나진 않았지만 파이브 역시 마찬가지였고.

메인 뮤지션이 가장 못하는 모습이 연출되자 공연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아무리 피피가 이미지가 좋다고는 해도, 그의 잘생긴 외모를 질투하는 남성 팬들이 없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난 뒤 마리화나에 취한 피피는 두 명의 래퍼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부었다.

그 결과 열이 받은 두 명의 래퍼가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얼마나 심한 욕을 한 거야?’

요시치는 남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소니 뮤직에서 파견한 매니저가 아니었다.

소니 뮤직이 일본계 기업이긴 하지만 미국 지사의 현장 매니저까지 일본인으로 채용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일본계 기업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미국인들을 주로 채용했다.

요시치는 피피가 소니 뮤직에 들어오기 전부터 매니저였고, 피피를 따라서 함께 소니 뮤직에 입사했다. 피피를 스타덤으로 올려준 오클랜드의 ‘사고’ 역시 요시치가 계획한 일이었고.

아무튼 요시치는 피피의 지랄 맞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투어를 뛰는 서포터즈 뮤지션들을 아주 주의 깊게 선정했다.

선정 기준의 최우선은 ‘돈이 급한’ 이들이었다.

돈이 급한 이들은 좀 더러운 꼴을 봐도 투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드무니까. 그리고 데런과 블랙커넥션은 정말로 돈이 급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데런과 블랙커넥션이 투어를 포기하다니?

‘돈 문제가 해결이 됐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게다가 데런과 블랙커넥션은 피피에게 욕을 먹은 즉시 투어에서 잠적한 것이 아니었다. 출라 비스타까지 군말 없이 따라온 다음에, 공연 전날 ‘어디 엿먹어봐라’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요시치는 잠시 의문을 가지다가 지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멍청한 두 흑인 놈들이 인내심이 부족한 건 부족한 것이고, 당장 중요한 건 섭외였다.

공연이 내일이었는데 오프닝 뮤지션과 중간에 피쳐링을 할 뮤지션이 없다. 피피의 업계 평가 상 라인업 중에서 도움을 받는 건 불가능할 것이었다.

‘젠장, 샌디에고나 엘에이에 다녀와야겠군.’

시간이 얼마 없었다.

샌디에고는 출라 비스타와 가까웠지만, 만약 샌디에고에서 적절한 뮤지션을 구하지 못한다면 150Km 이상 떨어진 엘에이로 가야 했다.

그러나 요시치는 샌디에고에서 적절한 뮤지션을 구하지 못했다.

지원자가 영 없는 건 아니었지만 투어에 참가할 만큼 제대로 된 뮤지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뮤지션은 플랜 페이퍼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기회가 간절한 뮤지션들은 커리어가 형편없었다.

‘적어도 지역에서 골드 정도는 찍어야…….’

샌디에고에서 급히 엘에이로 향하던 요시치는 문뜩 열이 받아서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빌어먹을!”

투어가 무슨 소꿉놀이도 아니고, 이렇게 뮤지션을 급하게 섭외하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오클랜드에서 사고를 위장했을 때부터 요시치와 피피는 한 배를 탄 상황이었다.

피피가 입을 열면 요시치는 사기꾼이란 낙인이 찍혀서 다시는 음반 산업계에 발을 들이밀 수 없었고, 요시치가 입을 열면 피피는 매장이었다.

결국 요시치는 핸들을 몇 번 내리치다가 화를 진정시키고 엘에이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엘에이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더블피? 케이닷을 잘랐던 자식? 그 개자식이 또 오프닝 래퍼를 잘랐나본데?”

“이 Japs 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안 꺼져?”

요시치는 눈앞에서 위협을 가하는 흑인들을 보며 뒤늦게 2007 투어 때 피피가 잘라버렸던 래퍼 ‘K-Dot’이 캄튼 출신이라는 걸 떠올렸다.

K-Dot을 자를 때는 욕설이나 불화 같은 건 없었다.

편견이긴 하지만 캄튼의 래퍼들은 ‘갱단원’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함부로 건들 수가 없었다. 실제로 K-Dot은 갱단원이 아니지만 그의 친구들 중에는 갱이 많았다.

K-Dot이 잘린 것은 단지 너무, 너무, 그리고 너무나 잘 해서였다. K-Dot의 랩은 피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갱에 대한 두려움을 넘을 만큼.

K-Dot이 부당하게 해고당한 뒤에 그의 갱 친구들은 피피에게 ‘LA에 올 거면 방탄복을 입고 오는 게 좋을 거다’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었다.

‘망했다.’

요시치는 엘에이에서도 제대로 된 래퍼를 구하기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엘에이 랩씬에 캄튼의 후디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어에서 써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래퍼라면 이들과 커넥션이 있을 것이었다.

이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EMI나 소니의 다른 라인업들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요시치에게 말을 거는 두 명의 흑인들이 있었다.

“근처에서 한 대 피우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당신이 피피의 매니저야?”

“그렇습니다만.”

요시치가 태연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거구의 두 흑인이 앞을 가로막으니 겁이 왈칵 들었다. 여긴 악명 높은 캄튼이었다.

흑인들은 이미 요시치가 겁을 먹었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아, 뭐 위협하려는 건 아니니까 겁먹을 필요는 없어.”

“그래, 우린 갱단원들이 아니라고. 갱을 싫어하기도 하고. 우린 엘에이의 랩 레이블 일원들이야. 사이커델릭 레코즈라고 알지 않아?”

“아…….”

요시치의 얼굴이 밝아졌다. 들어봤던 레이블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네 소속 뮤지션을 추천하려는 건가?’

그러나 요시치가 그렇게 물어봤을 때 두 흑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갱을 싫어하긴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캄튼의 일원인데 돈 때문에 피피의 밑으로 가겠어? 그럼 우리 친구들이 우릴 뭐라고 보겠어.”

“그럼 무슨 일로……?”

“내 친구 중 한 명이 지금 그 투어에 참가하고 있는데, 그 친구를 써보라는 거지. 죽여주거든.”

“친구? 이름이 뭡니까?”

요시치는 내심 외주 스태프들 중 한 명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라인업이었다면 ‘써보라고’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요시치의 귀에 들린 건 전혀 예상치 못한, 그러나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파이브, 아니 파이브식스라고 당신이랑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 알 거 같은데?”

“멜, 그러고 보니까 파이브가 피피의 하이프맨이라지 않았어? 아닌가?”

“아닐 걸. 아니, 맞나? 이봐, 혹시 파이브라고 알아? 당신이랑 같은 나라…….”

“그런 저급한 민족이랑 같은 나라라니?”

혐한 주의자인 요시치가 반사적으로 대꾸하는 순간 두 흑인, 웨스트런과 멜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봐, 사이커델릭 레코즈의 사장님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지껄이는 거야?”

“파이브가 친구라고 말한 거 같은데? 지금 한 말 감당 되겠어? 여긴 캄튼이라고.”

그렇게 말한 웨스트런이 인상을 풀며 웃었다. 요시치는 그 웃음에 오히려 겁을 먹었다.

“마, 말실수를…….”

“그러니까 쓰겠다는 거야, 안 쓰겠다는 거야?”

“하지만 투어라는 게 그렇게 아무나 가져다 쓸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졌거나, 인지도가 없더라도 관객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커리어를…….”

“그럼 딱 맞네. 커리어적인 면에서는 케이닷보다 파이브가 더 화려하니까.”

“네?”

요시치는 자신이 생각하는 파이브와 이들이 말하는 파이브가 다른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한국 놈의 커리어가 화려하다고? 고작 하이프맨을 하고 있는데?’

하지만 현재 커튼콜 투어의 하이프맨이면서 동양인이고 파이브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파이브가 구체적으로 어떤 커리어가 있다는 겁니까?”

“너무 많아서 나열하긴 힘든데…… 플래티넘 뮤지션이면 된 거 아니야?”

“플래티넘!”

요시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피피도 1집의 트리플 플래티넘(300만장)이후에 2집 앨범은 플래티넘(100만장)을 못 찍었다. 한데 파이브가 플래티넘이라니?

“혹시 엘에이에서 말입니까?”

“아니, 한국에서.”

웨스트런의 말을 듣고 있던 멜이 정보를 정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 장의 솔로앨범과 한 장의 팀 앨범이 각각 골드를 찍은 거야. 합쳐야 플래티넘이라고.”

“아아.”

국제 음반 산업 협회(IFPI)에서 발표한 음반시장 규모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보다 15배나 컸다.

그리고 일본의 플래티넘은 25만장이었다.

‘한국은 플래티넘이 3만장쯤 되려나? 아니면 5만장?’

그래봤자 미국에서는 골드도 못되는 기록이었다.

요시치가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 플래티넘을 달성했다고 투어에 설 수는 없습니다.”

“무슨 개소리야. 피피도 이번 앨범 플래티넘 못 찍었잖아?”

“규모가 다르잖습니까. 한국 플래티넘은 얼마죠? 3만? 5만?”

요시치의 말에 웨스트런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해 하지 마. 파이브가 달성한 플래티넘 기록은 미국 기준이니까.”

“네?”

“100만장이라고.”

상현이 미국을 떠날 때 42만장이던 JFTR은 총 55만장이 팔렸고, 28만장이던 56 JFTR은 43만장이 팔렸다.

정확히 따지면 100만장은 아니었지만, 합산 플래티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였다.

당황한 요시치의 귓가로 멜의 부연설명이 들려왔다.

“스탠다드와 작업했던 곡은 NPQ 차트 1위를 찍었고, 케이알에스원의 앨범에도 참여를 했고, 한국에서는 플래티넘을 찍었고, 캄튼 블랙 블록에서 난리도 났었고……. 더 말해줘? 후드맨 이야기는 LA 타임즈에 실렸던데.”

요시치는 귓가로 쏟아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 파이브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 놈에게 기회를 주고 싶진 않았지만, 하루 만에 이만한 ‘뮤지션’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다음날부터 상현은 오프닝 래퍼로 커튼 콜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San Diego! Wassup!"

진정한 의미의 ‘미국 대중 음악계’에 FiveSix가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Verse 37. Next Stage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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