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19화 (219/309)

< Verse 33. 히트곡 >

***

오경 미디어의 법무팀장인 태지웅은 솔직히 코흐 레코드의 소송이 노이즈 마케팅용인 줄 알았다.

아니, 노이즈 마케팅일 수밖에 없었다.

오경 그룹은 대기업을 넘어선 공룡 그룹이다. 엔터 쪽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하지만 그룹 차원의 힘은 막강했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코흐 레코드가 진심으로 소송을 건 것이 아닐 거라 믿었고, 설령 진심으로 소송을 걸었다고 해도 잘 마무리 지을 자신이 있었다. 압도적인 파워로.

‘어차피 음악계에서 표절논란은 언제나 힘 있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니까.’

그러나 태지웅은 이번 일을 처리하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두 가지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코흐 레코드의 소송이 단순한 ‘표절 시비’가 아니라 ‘불법 복제’가 맞다는 것이었다. 영리활동을 위한 불법 복제와 유통.

강한 압박을 위해서 고소항목을 그렇게 설정한 줄 알았는데, 진짜다. 진짜로 불법 복제다.

“야, 이 씨발 놈들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일 이따위로 처리할 거야? 이거 픽스한 새끼 누구야! 누구냐고!”

“호, 홍 과장님입니다.”

“홍 과장이 누군데! 어떤 병신……! 아, 그 병신? 이상현 담당? 이름이 홍경수였나?”

“예, 예.”

“당장 홍 과장 데려와!”

태지웅이 씩씩 거리며 소리쳤고, 부하직원이 쏜살같이 사무실 밖으로 튀어나갔다.

사무실 안에서 전화로 해도 되는 걸 굳이 나가는걸 보니 또 열불이 난다. 일단 분위기 삭막하니 튀고 싶다는 거겠지.

‘이런 씨……! 이래서 재벌가 새끼들한테 함부로 감투 씌워주면 안된다니까. 이제 서른인 새끼가 과장을 달고 있는데 회사 꼴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홍 과장이 아무리 정치적 라인이 있다고 해도, 그는 흔히 말하는 ‘방계’라인이다.

그에 반해 태지웅은 본사에서 내려온 법무 팀장이었다.

끗발 싸움을 해도 자신이 이기고, 인맥 싸움을 해도 자신이 이긴다. 그는 홍경수를 가만두지 않을 요량으로 다시 한 번 서류를 검토했다.

잠시 뒤 사색이 된 얼굴로 홍경수 과장이 도착했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들은 모양이었다.

태지웅이 으르렁거리며 홍경수 앞에 섰다.

“홍 과장님.”

“네, 네.”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하십니까?”

“제, 제가 분명히 저작 협회에서 몇 번이나 확인을 했습니다! 뭐, 뭔가 잘못 된 것이 아니고서는…….”

“확인했겠죠. 뭔가 구리니까. 누군가 만든 음식을 삼키고는 싶은데, 그러면 내가 쌀 똥이 구릴 거 같으니까. 근데 그 음식이 원래 누가 먹을 건지 정도는 반드시 확인했어야지. 어?”

“그게 무슨 말씀…….”

“이 곡들이 코흐 레코드를 통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NMPA(미국음악출판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다고! 비트! 가사! 랩까지! 이 병신 새끼야!”

태지웅의 욕설은 거침이 없었다.

본래는 아무리 방계라고해도 재벌가 일원한테 이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홍경수는 이제 끝났다. 그의 미래는 정해졌다.

베트남 같은 동남아 해외 지사로 발령받아 평생 배터리 조립하는 거나 지켜보던가, 제약회사 술 상무로 발령 나서 병원장들한테 굽실대다가 말년에 지방간을 얻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오경 엔터(지금의 오경 미디어)는 싹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회사였는데, 홍경수의 싹수는 노란 정도를 넘어서 검었으니까.

“후……. 홍 과장님, 한 번 들어보시죠. NMPA에 등록된 저작물입니다.”

간신히 화를 진정시킨 태지웅이 컴퓨터를 가리켰고, 머뭇거리던 홍경수가 이어폰을 꼈다.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이 재생되자마자 홍경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랩을 템포가 다른 노래로 바꾸느라 서술어 몇 글자나, 단어 몇 개가 빠진 것을 제외하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표절, 아니 복제였다.

‘차인현 이 개자식 때문에……!’

홍경수는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이상현의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그 사이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노래를 듣고도 한참동안 뭔가를 생각하던 홍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그를 태지웅이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태지웅 팀장님. 코흐 레코드라고 했죠?”

“네.”

“뭐하는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쪽에서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것은 백 번 인정하지만, 소송에서 패배하는 순간 회사의 이미지도 망가질 겁니다. 오경 미디어는 돈보다 그룹 차원의 이미지 쇄신을 더 우선하는 계열사 아닙니까. 우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리를 하는 게…….”

“홍경수 과장님. 전 솔직히 말하면 홍 과장님의 행위 자체를 지탄할 생각은 없습니다. 누구의 곡을 훔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훔쳐서 히트를 친다? 좋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근데 문제는 그게 걸렸고, 걸린 걸 숨길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숨길…… 방법이 없다고요?”

“네.”

태지웅이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이 단순한 표절시비가 아닌 불법복제였다면, 두 번째 사실은 코흐 레코드의 힘이었다.

코흐 레코드.

난생처음 들어보는 회사이기에 파워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주 가뿐히 눌러버려서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론 오경 그룹이 코흐 레코드보다 작거나 끗발에서 밀린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오경 그룹은 가지고 있는 계열사만 20개가 넘으며, 세계 30대 기업 안에 드는 회사다.

소니 뮤직이나 애플, 구글 정도나 되면 모르지, 코흐 레코드는 오경 그룹과 끗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회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사건이 뮤직 인더스트리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의 회사를 주체로.

코흐 레코드는 미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레이블이다.

코흐 레코드(Koch Record)는 독일의 코흐 엔터테인먼트에서 1975년에 자회사 격으로 시작했으며, 계열사 독립과 함께 뉴욕으로 진출해 1987년에 미국에 자리를 잡은 회사였다.

쇼 비즈니스 사업을 시작한지는 30년이 넘었고, 미국에 뿌리 내린지는 20년이 넘은 역사가 깊은 회사란 의미였다.

그러나 코흐 레코드가 가지고 있는 미국 음반 시장에서의 의의는 단순히 ‘오래됐다’라는 점이 아니었다.

1991년, 현재 미국 음악 시장을 이루는 ‘레이블 시스템 체제’의 기틀을 처음으로 마련한 회사.

주에 국한된 배급사, 국가에 국한된 배급사를 넘어서 ‘레이블’이란 단어를 전 세계에 음악을 배포하는 슈퍼 에이전트의 의미로 정립한 회사.

음악, 영화, 텔레비전 쇼를 다루며,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독일과 미국의 클래식계에서도 막대한 영향력 가진 회사.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호주, 미국의 자본이 섞여있는, 범국가적인 뮤직 인더스트리 회사.

이것이 코흐 레코드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미국에서는 아직도 코흐 레코드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소유주는 그 유명한 ‘Entertainment One’이었다.

캐나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베네룩스,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아우르는 국제 미디어 그룹 엔터테인먼트 원에서 2005년에 코흐 레코드를 인수했다.

‘이 등신 같은 새끼는 어떻게 건드려도 이런 거대 기업을 건드렸지? 이것도 재주인데?’

엔터테인먼트 원이 독점 유통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백 개가 넘고, 그중 한국에서 유명한 곳만 꼽아 봐도 열 곳이 넘는다.

유니버셜 픽쳐스, FOX, BBC, 디스커버리, MTV 등등.

오경 그룹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공룡이라면, 코흐 레코드를 소유한 엔터테인먼트 원은 미디어 분야를 꽉 틀어쥐고 있는 맹수였다.

‘답이 없어. 답이.’

태지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손실 없이 일을 마무리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나마 차선책이 코흐 레코드와 원만한 합의를 보고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동안 ‘불법 복제 곡’들을 통해서 얻은 모든 이익은 토해내야 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 모자랄 수도 있고.

태지웅은 문득 이 등신 같은 놈이 가엽다고 느껴졌다.

“확인해보니까 차인현이란 친구가 작사, 작곡을 맡은 걸로 올라와 있던데……. 누가 먼저 시작한 일입니까?”

“차인현 그 새끼가 갑자기 그 곡들을 가지고……!”

“워워, 같이 인생 조진 동지들끼리 그렇게 욕하실 필요는 없고, 제가 궁금한 건 사실 관계입니다. 아니, 그보다 이거 원곡자가 누굽니까? 누군데 코흐 레코드를 통해서 음원을 등록했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팔팔팔 크루 이상현?”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태지웅은 이상현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일련의 사건들을 가지고 전후 관계를 맞춰보았다.

‘이상현은 자신의 곡이 도난당할 것을 예상한 건가? 에휴, 이 등신이 티를 냈나보네. 그럼 그 다음은? 한국에서 저작권 싸움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코흐 레코드를 찾아가서 음원을 등록했겠군. 하지만 어떻게? 코흐 레코드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잖아. 아아, 케이알에스원이 코흐 레코드라고 했지. 케이알에스원이 콜라보레이션을 위해 연락을 하는 순간 떠올린 계획이구나.’

답은 금방 나왔다.

“이야, 이상현 이 자식 난 놈이네.”

홍경수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방비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코흐 레코드를 끼고 실천에 옮긴 행동력이 더욱 놀랍다.

보통의 뮤지션 같으면 인터넷에 이 곡이 자신의 곡이라는 기록을 남기거나, 한국 저작 협회에 등록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대비는 되겠지만, 오경 미디어가 제대로 힘을 쓰면 사실 관계가 흐려지고 유야무야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홍경수 이 자식은 생각보다 더 등신이네. 뭘 어떻게 하고 다니면 나 이제 도둑질 할 거야~ 라고 광고를 할 수가 있지? 아 혹시 차인현이라는 등신이 티를 낸 건가? 그럼 홍경수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네.’

태지웅의 머릿속에서 일련의 사건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사실 태지웅은 선후관계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홍경수나 차인현이 티를 내서 상현이 방비를 한 것이 아니라, 상현이 덫을 파놓고 홍경수와 차인현의 행동을 유도한 것이니까.

“그, 그래서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를…….”

“사과는 무슨 사괍니까. 버틸 수 있는 만큼은 버텨봐야죠. 그리고 뭐 사과한다고 달라지나? 어차피 돈으로 해결될 사안인데.”

최선은 코흐 레코드가 적당한 돈을 받고 사건을 종결시켜주는 것이고, 최악은 소송으로 넘어가서 패소하는 것이다. 동네방네 소문이 나면서.

일단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으니까 사건이 흘러나가기 전에 보도자료 준비하고, 코흐 레코드와 접촉하고, 언론사에서 내보내려는 기사를 통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의 인생이 아작 났군.’

홍경수와 차인현의 인생이 아작 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이상현의 미래도 그리 순탄하진 못할 것이다.

사실 관계는 둘째 치고, 이상현은 소속사의 뒤통수를 까버렸다.

오경 미디어는 강한 푸쉬를 넣을 것이고, 이제 이상현은 한국에서 음악을 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꽤 재능 있는 친구라고 들었지만, 거대 자본의 힘은 그동안 쌓아올린 공포에서 나오는 거니까.

“어휴, 이게 무슨 난리야.”

태지웅은 멍하니 서있는 홍경수를 지나쳐 전화를 붙잡았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불 위에 앉혀놓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렇게 한국 음악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

< Verse 33. 히트곡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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