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33. 히트곡 >
Verse 33. 히트곡
한국 음악 시장의 트렌드는 짧은 시간에 급변했다.
오랫동안 한국 음악 산업의 중심을 지켜왔던 정통 발라드가 그 세를 잃어가더니, 블랙 뮤직 특유의 투포 리듬(Two Four Rhythm)을 기반으로 한 퓨전 장르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청초한 여성미에 파워보컬을 가미했던 전통적인 걸 그룹이 쇠퇴할 조짐을 보였다. 음악적인 어필이 힘들어진 것이었다.
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컨셉 변화가 쉬운 보이 그룹들은 살아남기 위해 블랙 뮤직 느낌이 가미된 곡들로 타이틀곡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빅뱅을 필두로 한 힙합 그룹들이 본래 역사보다 빠르게 데뷔 일을 잡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는 여름이라서 발라드가 약하고 댄스곡이 강하다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었다.
완전히 판이 새로 짜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메가 히트를 치고 있는 888 크루의 과 상현의 <56 JFTR>이 있었다.
***
“이런 씨발! 빌어먹을!”
차인현이 자신에게 배정된 회사의 연습실에서 욕을 쏟아냈다. 방음이 잘 돼있긴 하지만, 옆방에 들릴 수도 있을 만큼 큰 목소리였다.
그러나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방금 전, A&R팀 직원에게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현 씨. 아무래도 타이틀곡으로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아시겠지만 지금 음악판 돌아가는 게…….’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차인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흑인 음악이 강세잖아요. 리듬 앤 블루스도 흑인 음악의 일종이에요.’
‘지금 말하는 흑인음악이 넓은 의미의 흑인음악이 아니라 강한 드럼비트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게다가 One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컨템포러리 알앤비도 아니고 재즈 스윙에 가깝잖아요.’
‘그거야 편곡을 하면…….’
‘이 노래 정말 좋아요. 지금으로도 완벽한 노래에요. 타이틀곡이 아닐 뿐이지 앨범수록 자체가 캔슬된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타이틀곡과 비 타이틀곡의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크다. 특히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굳이 수익적인 면을 떠나서, 히트곡을 한 곡이라도 쓴 작곡가와 인기 없는 수록곡만 열곡 써낸 작곡가의 대우를 비교하면 전자가 월등했다.
A&R팀 직원이 차인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인기를 얻어서 프로모션 받는 곡들도 많아요. 저희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려보죠. 노래 정말 좋아요.’
‘제가 요즘 시류에 맞게 편곡해볼게요. 그럼 다시 타이틀곡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이미 녹음이 끝나서…… 그리고 주요한 씨도 지금 버전을 굉장히 좋아해요. 아마 콘서트에서 주요 래퍼토리로 쓰일 거예요.’
‘그래도 한 번 해볼게요.’
‘그럼 그래요. 타이틀곡이랑 후속곡이 없어서 곤란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요. 채대한 씨가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채대한 씨가 주요한 씨를 너무 싫어해서…….’
그렇게 직원과의 이야기를 끝낸 차인현은 곧장 편곡작업에 돌입했다.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이상현이 불렀던 One은 본래 랩이었으니까 그 기억을 살려서 힙합 드럼을 깔고, 노래의 멜로디를 타이트하게 조이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편곡 작업은 쉽지 않았다.
‘내 노래’라는 인식을 가지고 일 년 넘게 듣고 불렀던 노래의 장르를 단숨에 바꾸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 속의 병원 옥상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이상현의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One이 떠올랐다.
‘이게 아닌데…… 그 자식이 어떻게 불렀지?’
무의식적으로 그날을 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인지, One이 랩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게 잘 상상이 안 갔다.
더군다나 이상현의 목소리를 녹음했던 mp3 파일은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 때 지워버렸으니 실마리가 없었다.
‘어떠세요?’
‘음…… 심각하게 별로네요. 좋은 면은 다 죽었고 나쁜 면만 부각이 됐네요.’
간신히, 아주 간신히 편곡한 One의 새로운 버전은 혹평을 받았다.
그리고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함께 들었다.
‘참, 지금 차인현 씨 계약이 타이틀곡과 묶인 계약이죠? 조만간 계약서 내용 수정이 될 거에요. 다행히 계약금 관련은 건들지 않는다고 하니까 법무 팀이 찾아가면 잘 이야기해보세요. 빨리 연습생 탈출하셔야죠.’
차인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빌어먹을…….”
연습생만 탈출하면 계약서에 의거하여 자신의 앨범을 발매할 수 있다. 그 희망 하나로 연습생 생활을 버티고 있었는데, 모든 게 꼬여버렸다.
‘이게 말이 돼? 갑자기 유행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어? 무슨, 씨발 음악 산업이 소꿉놀이 하는 곳이야?’
고작 힙합 음악을 하는 팀 하나 때문에?
그러나 차인현의 생각처럼 변화의 모든 이유가 888 크루 때문은 아니었다. 888 크루가 등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행될 일이었다.
다만 888 크루가 등장했고, 본래 기획이 무산됐을 힙합 더 바이브 2가 굉장한 인기를 얻으면서 도화선에 더 일찍 불이 붙은 것이었다.
본래 대중음악이 흑인 음악 중심 리듬으로 개편되는 것은 2006년 8월에 빅뱅이 데뷔를 하고, 2007년 중순부터 후크송으로 무장한 아이돌들이 나타나는 시점이었다.
시기적으로는 1년 정도가 앞당겨진 것이지만, 차인현의 입장에서는 그 1년 때문에 모든 것이 꼬여버린 것이었다.
-쾅! 쾅!
꽉 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던 차인현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잠시 뒤 그의 손에는 작은 USB가 들려 있었다.
‘이건 내 탓이 아니야.’
차인현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누구에게 딜을 해야 할지.
정답은 금방 나왔다. 이상현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까.
“제가 홍경수 과장님 심부름을 했는데,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지를 몰라서요. 혹시 홍경수 과장님의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네? 무슨 심부름이요?”
“대외비라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씀 드릴까요?”
“어…… 전화번호를 드릴 수는 없고요,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제가 홍 과장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홍경수는 어제 퇴근하면서 차인현이란 연습생의 번호를 하나 받았다. 프런트 여직원이 ‘연습생, 심부름, 대외비’ 어쩌고 하면서 번호를 전해줬기 때문이었다.
‘내가 연습생한테 심부름을 시켰었나? 대외비? 대외비라면 왜 연습생한테 시켜?’
그리고 받게 된 차인현의 문자.
-심부름 시키신 이상현의 트랙들은 언제 드릴까요?
홍경수는 차를 몰고 가다가 급히 정차했다. 뭔가 느낌이 왔다. 한 번 더 날아온 의미심장한 문자에 홍경수는 결국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배라도 갈라야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상현이 뉴욕으로 훌쩍 떠난 뒤, 가장 곤란해진 것이 상현을 담당하는 홍경수였다.
담당이 과장급인 뮤지션들은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되는 이들이다. 오랫동안 정상에 군림했으며 히트곡만으로 콘서트를 진행할 수 있는 베테랑들.
그러니 홍경수가 담당이라는 것은 오경 미디어에서 상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물론 홍경수가 이상현과의 계약을 주도했고, 그 계약에는 비밀이 있으며, 오연주 부사장이 홍경수에게 상현을 담당시켰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경수는 과장급이었다.
‘그런데 이 새끼는…….’
회사에서 특별대우를 해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하는데, 그런 게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홍경수는 기름이 콸콸 나오는 유전을 앞에 두고 석탄을 캐고 있는 ‘병신’이었다.
곡만 냈다하면 홈런을 치는 뮤지션.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
작곡, 편곡, 믹싱, 마스터링까지 알아서하고, 별다른 프로모션도 없이 10만장은 거뜬히 팔아치우는 베스트셀러.
이게 888 크루에서 JFTR이 나올 당시 남들이 보는 이상현이었다.
그야말로 기름이 콸콸 흘러나오는 유전.
게다가 노예 계약도 아니고, 엄청나게 좋은 계약 조건이다. 일을 하면 회사도 돈을 벌지만 이상현도 돈을 번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회사가 칠에 이상현이 삼.
“야 넌 그 정도 조건을 주고도 뮤지션한테 끌려 다니냐? 걔가 조용필이야? 김건모야? 어차피 고등학생 아냐?”
홍경수는 오연주로부터 시작된 동료들의 압박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상현이 변했다.
JFTR의 음원 유통을 오경 미디어에 위임하더니, 56 JFTR이라는 대중을 노린 앨범을 만들어왔다.
그 뒤로는 깐깐하게 지키던 라디오 출연이나 음악방송 출연 횟수에 관대해 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본인이 추가적인 출연을 요구하기도 했다. 추가 화보 촬영도 내심 반기는 눈치였고.
심지어 어느 날은 은근슬쩍 연장계약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계약을 연장하면 계약금은 다시 나오나요? 조건들도 다시 검토하고?”
이런 이상현의 변화에 홍경수는 살짝 마음을 놓았다.
‘역시 유명세를 얻고 돈맛을 보다보면 안 변하는 사람이 없지. 저게 정상이지.’
어쩌면 불만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JFTR의 수익을 9분의 1로 나눠야하고, 그 9분의 1의 35%를 오경 미디어에 다시 오경 미디어와 나눠야하니까.
남들이 1000만원을 벌 때, 이상현은 650만원만 버는 셈이었다. JFTR에 기여도를 따지면 자신이 가장 높은데 말이다.
‘돈맛 좀 더 보여주면 재계약할 수 있겠어.’
홍경수는 그렇게 생각했고, 덕분에 56 JFTR을 발매해주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원래 6트랙으로 구성된 56 JFTR은 앨범 형식으로 발매가 되면 안됐다.
이상현은 3년 반이라는 남은 계약 기간 안에 총 7곡의 곡을 발매할 의무가 있었다.
7곡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때문에 7곡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매년 상반기, 하반기 마다 싱글을 하나씩 발매할 예정이었다. 활동기간도 최대로 늘려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을 예정이었고.
이렇게 되면 단독콘서트는 기획하기 힘들겠지만, 어차피 이상현의 단독콘서트는 888 크루의 단독콘서트라는 대항마 때문에 잘 안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상현이 슬슬 변하기 시작했고, 돈맛을 보여줘야 할 순간인 것 같아서 56 JFTR을 발매해줬다.
오연주가 ‘888 크루의 JFTR은 저렇게 잘 되는데 홍경수 과장님은 뭐하고 있냐’는 압박을 끊임없이 넣은 것도 있었고.
그렇게 발매된 56 JFTR은 대박이 났다.
전부 이상현이 만들었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돈을 쓸어 담게 되었다. 스튜디오 사용을 허가해주니 억 단위의 돈이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홍경수의 어깨는 으쓱해졌고, 동료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만끽할 수 있었다.
‘큰일 났다.’
그러나 이것은 복수를 위한 함정이었다.
첫 푸시 싱글이었던 ‘웰컴 투 스쿨’과 ‘56 JFTR’의 6트랙을 합치면 총 7 트랙.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다 채운 순간, 이상현이 뉴욕으로 떠난 것이었다.
‘올해 저한테 남은 의무가 오경 미디어 합동 콘서트랑 광고 촬영이었던가요? 그건 당연히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아, 물론 내년에 있을 두 번의 콘서트도 참여할 테니까 걱정마시구요.’
어렵게 통화가 됐지만 이상현의 반응은 싸늘했다.
‘56 JFTR 활동은 끝났잖습니까? 음원으로 지지고 볶는 거야 알아서 하시죠. 그거야 오경 미디어 권한이니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무리 이상현이 인기가 좋다고 해도 남은 3년 동안 56 JFTR만으로 이윤을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홍경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오연주의 압박과 동료들의 한심한 표정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이상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복수를 실행한 것이었다.
도대체 왜?
계약을 하는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결국은 서로 엄청난 이득을 본 것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좋은 계약 조건으로 계약을 해줬는데, 도대체 저 빌어먹을 개자식은 뭐가 그렇게 불만이란 말인가!
그렇게 홍경수가 망연자실해 있는 순간, 차인현의 딜이 들어온 것이었다.
“이 USB에 지금까지 이상현이 만든 모든 비공개 트랙이 들어 있습니다. 비트 15개, 훅이나 벌스 둘 중 하나만 있는 스케치 가이드가 3개, 완성된 트랙이 9개입니다.”
“이걸 어떻게……?”
“이상현의 컴퓨터에서 복사했습니다.”
차인현에게 전후 상황을 들은 홍경수가 재차 물었다.
“확실해? CCTV에 안 걸린 거?”
“비상구에서 하드만 빼서 가방에 넣었습니다. 컴퓨터는 바로 프런트에 맡겼고요. 그리고 다음날 업체가 찾아가는 걸 기다렸다가 건물 밖에서 하드를 건넸습니다. 깜빡하고 빼먹었다고.”
“그럼…….”
“네. 건물 밖을 찍는 CCTV 각도만 한 번 확인해보시죠. 안 걸렸다고 확신하지만.”
“아냐. 어차피 CCTV는 내가 처리할 수 있어. 문제는 이게 정말 비공개 트랙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거야.”
“저작권 등록 안 돼 있습니다. 비트나 스케치 가이드는 물론이고, 완성 트랙도 없습니다. 제가 확실히 확인해봤습니다.”
“가사는?”
“가사도 확인해봤습니다.”
“퀄리티는? 대충 만든 곡 아니야?”
“직접 들어보시죠. 제 생각에는 56 JFTR 못지않습니다. 이제 조건을 말해도 되나요?”
“내가 직접 저작등록여부를 확인해보고…… 아니, 조건부터 들어보자. 뭘 원하는 거지?”
서로의 마음이 일치했다.
차인현은 아군이 필요했다. 아무리 그라도 이걸 혼자 공개할 배짱은 없었다.
CCTV를 피했다지만 컴퓨터 수리업체 직원을 조사하거나, 외부 CCTV를 확인하면 결국은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방패막이가 필요했다. 방패막이인 동시에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홍경수는 자신의 실수로 날려버린 황금알이 필요했다.
차인현의 말처럼 거위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거위의 배를 갈라서라도 황금알을 챙겨야했다. 그게 비록 거위의 가치는 못되겠지만, 동화와는 다르게 거위의 뱃속에는 제법 괜찮은 황금이 숨겨져 있었다.
그렇게 차인현과 홍경수가 비밀을 공유하고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흘 뒤, The way we live의 녹음을 끝내고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끝낸 상현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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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33. 히트곡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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