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210화 (210/309)

< Verse 32. Through to New York >

상현은 아폴로 시어터의 무대로 올라가면서 습관처럼 무대 아래를 훑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그의 시선 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무대 정면의 좌석에 앉아 있는 이들.

무대의 좌우측면에 서있는 이들.

뭔가를 기록하는 심사위원들.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야 말로, 아마추어 나이트가 7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스타를 탄생시키고 전설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 사람들 앞에서 내 음악이 어디까지 통할까?’

관객들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여행객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뉴욕의 시민들이었다.

뉴욕이란 도시의 바이브를 공유하는 사람들.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상현은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긴장’과 ‘설렘’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에 온몸을 가득 채우는 감각. 떨림.

이것 때문에 음악가들이 음악에 미치는 것이고, 사업 대신 음악을 시작한 상현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상현이 무대 위에서 인사하자, 무대 아래의 관객들이 반갑게 Hello를 외쳐주었다.

“저는 한국에서 온 56라는 래퍼입니다. 혹시 한국의 수도가 어딘지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상현의 물음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물쭈물 서울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아폴로 시어터에는 한두 명쯤 있을 줄 알았던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다.

‘하긴 나만해도 차를 타고 지나는 것 아니면 할렘의 중심지에는 온 적이 없으니까.’

몇 년 만 지나면 범죄율이 더욱 떨어지고 훨씬 안전한 동네가 되겠지만, 2006년은 아직 밤의 할렘에 대해 한국 여행객들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시기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상현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래퍼라고? 목소리 좋은데?’라는 반응들도 나타났다.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고 하는 도시입니다. 크기는 뉴욕 주의 10분의 1정도지만, 인구는 뉴욕 주의 반 정도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엄청난 인구 밀도를 지닌 도시고, 그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도시입니다. 뉴욕 못지않죠.”

아폴로 시어터의 관객들은 래퍼들의 지역 스웨거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기에, 상현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한국의 수도 서울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 할 것을 쉽게 예측했다.

한국에서 광주 UP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노래가 좋았기 때문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러한 노래가 없었던 덕분도 있었다.

하지만 비기의 고향이자, ‘All the hip hop through to New York’이란 말까지 있는 뉴욕에서는 그런 메리트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회귀를 통해 얻은 모든 메리트를 던져버리고, 순수하게 그동안 갈고 닦은 ‘랩 실력’만으로 싸워야하는 곳이었다.

‘아…….’

상현은 그 순간 자신이 왜 이렇게 본토의 힙합 문화에 설레고, 아마추어 나이트에 강한 충동을 느꼈는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누가 뭐래도 상현은 호인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극심한 책임감과 중압감으로 상미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지만, 그 순간을 제외하면 상현은 언제나 좋은 사람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정함이란 가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일한만큼 대가를 받고,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

그가 번듯한 대기업을 그만둔 것은 적성의 문제도 있었지만, 공정함이란 단어가 상실된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래의 히트곡들을 선점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비트를 똑같이 만들어낼 자신도 없고, 가사를 전부 외우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상현은 설령 똑같은 비트를 만들 수 있고 가사를 외우고 있어도 타인의 저작물을 베기지 않을 것이었다. 그건 공정하지 못하니까.

오죽하면 광주 업이 혹시 일본 뮤지션의 후렴을 베끼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음원등록을 꺼렸을까. 나중에는 베끼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어서 외국 음원 유통회사를 통해 등록했지만.

상현은 이처럼 공정함에 아주 중요한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현의 마음에 사라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으니, 바로 회귀라는 메리트였다.

‘혹시 내가 음악으로 성공하고, 한국에서 최상위권의 래퍼라고 평가받는 것이 전부 회귀의 메리트 때문은 아닐까? 미래의 사운드를 알고 있다는?’

해봤자 답이 없는 화두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깊이 고민하진 않았지만, 상현은 분명 이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무작정 부인할 수 없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광주 업의 지역 스웨거와 888 월드의 구어적이고 일상적인 작사법, Eight Eight Eight의 트랩 사운드는 전부 2005년 이후의 미국에서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 소스들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그의 랩 실력을 평가받는데 회귀의 메리트 따위는 전혀 없었다.

오직 ‘이상현’이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56의 노력.

이 두 가지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요소도 개입되지 않는 곳. 공정한 곳. 힙합의 본고장 미국.

이것이 상현이 그토록 미국 힙합 문화를 동경하고, 아마추어 나이트에 강한 충동을 느꼈던 이유였다.

‘힙합의 본고장에서 다시 한 번 언더독이 돼보자.’

상현은 마이크를 움켜쥐며 다짐했다. 그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고민과 망설임이 단번에 사라졌다.

상현이 저도 모르게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노래의 제목은 Seoul City Mind입니다.”

그 순간 스피커를 통해 하나의 비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해진 멘트에 맞춰진 약속 덕분이었다.

아폴로 시어터의 관객들은 비트가 흘러나오자마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흘러나오는 비트가 1994년에 발매된 나스(Nas)의 전설적인 명반 일매틱(illmatic)의 수록곡인 N.Y State of mind였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 같기도 하고, 뉴욕의 마천루 꼭대기에서 들리는 브라스 소리 같기도 한 악기가 천천히 무대 위로 등장했다.

그 뒤로 총소리처럼 들리는 거친 드럼이 펑펑 터지며, 이 노래가 녹음되던 1992년에 나스가 느꼈던 뉴욕의 삶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박자를 타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비트 덕분에 무대 위의 동양인이 보여줄 음악에 꽤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N.Y State of mind가 유명한 노래라서가 아니었다. 직전 무대와 극명한 대비가 되기 때문이었다.

앞선 무대에서 나온 프랭크 시나트라의 Theme from New York, New York은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는 곡이었다.

I want to wake up in a city, that doesn't sleep

난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깨어나고 싶어

And find I'm king of the hill - top of the heap

그리고 내가 언덕의 왕이란 걸 알고 싶어

These little town blues, are melting away

이 도시의 우울들은 녹아내리네

I'm gonna make a brand new start of it - in old New York

난 오래된 뉴욕에서 새로운 시작을 만들고 싶어

이처럼 프랭크 시나트리는 뉴욕을 행복한 도시로 묘사했다. 우울함 따위는 녹아내린 도시.

하지만 나스의 N.Y State of mind는 정반대였다.

나스에게 뉴욕은 아주 위험한 도시였다. 대립하는 갱스터 크루의 총격의 위험에 시달리고, 마약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도시.

Got younger niggaz pullin the triggers bringing fame to they name

어린 녀석들이 방아쇠를 당기며 유명해지고

and claim some corners, crews without guns are goners

자기 영역을 만들지, 총 없는 크루는 끝장이야

In broad daylight, stickup kids, they run up on us

대낮에, 남을 터는 꼬마들, 우리를 덮쳐

I think of crime when I'm in a New York state of mind

뉴욕 같은 마음을 가질 땐 범죄가 생각나지

그리고 나스는 이 곡에서 힙합이란 문화가 사라지기 전까지 영원토록 언급될(지금도 언급되고 있는) 펀치라인을 만들어냈다.

I never sleep, cause sleep is the cousin of death

나는 자지 않아, 잠이란 죽음의 사촌이니까

그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마음 놓고 잠을 자는 순간 죽어 없어질 수 있는 도시였다. N.Y에서 잠과 죽음은 사촌과도 같았으니까.

이처럼 두 곡은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리가 말한 잠들지 않는 도시.

나스가 말한 잠들 수 없는 이유.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프랭크 시나트리의 노래가 더 와 닿겠지만, 뉴욕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나스의 노래가 훨씬 가까웠다.

이곳은 할렘이었으니까.

물론 직접적인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는 이는 거의 드물겠지만, 꼭 죽음의 위협만이 인생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모든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된 무대에서 드디어 상현이 입을 열었다.

“I don't know how to start this shit.”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

상현의 말에 관객들이 슬며시 웃음을 짓더니 환호를 보냈다.

이것은 N.Y State of mind에 등장하는 인트로기 때문이었다.

N.Y State of mind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일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앨범에 수록된 녹음 트랙이 첫 녹음이자 원큐 트랙(재녹음 없이 진행된 트랙)이라는 것이었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나스의 가능성을 알아본 디제이 프리미어(DJ Primier)가 그의 스튜디오로 나스를 부르고, 나스와 시작된 첫 작업.

나스는 전문적인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와 녹음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인트로를 들으며 당혹감에 I don't know how to start this shit이라고 말했다.

프리미어는 어차피 가이드 트랙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고, 나스는 곧장 일매틱을 대표하는 N.Y State of mind를 폭풍처럼 토해냈다.

그러니 상현의 말은 나스의 인트로를 그대로 따라하는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곧 나스못지 않은 랩을 토해내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그렇게 상현의 후렴구가 시작되었다.

Seoul City Mind

(서울의 사고방식)

Seoul City Vibe

(서울의 느낌)

Serious crime.

(심각한 범죄야)

Don't love this city rhyme

(이 도시 라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We spend a hard time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But never cry

(울 수는 없지)

City light is so bright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Can't close my eyes.

(눈을 감을 수가 없지)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범죄고,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울 수도, 눈을 감을 수도 없다는 후렴구.

정박으로 들어가서 엇박으로 나오는 서울 시티 마인드의 후렴구는 꽤 많은 관객들이 가졌던 상현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주었다.

후렴의 특성상 간단한 라임과 간단한 플로우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충분히 단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의구심이 해소되었다고 상현의 실력에 감탄했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아직까지도 흑인 이외의 인종에 대해 배타적이 태도를 보이는 랩 뮤직을 표현할 최소 기준치를 통과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었다.

진정한 평가는 라인과 라인을 연결해 플로우를 형성하고, 그 플로우를 통해 라임을 극대화하는 벌스에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 Verse 32. Through to New York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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