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186화 (186/309)

< Verse 28. Jaws >

무반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랩 전달 방법이다.

그중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비트가 없기 때문에 랩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트가 있다면 하기 힘든(억지로는 가능하겠지만 안정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랩을 아주 화려하게 뱉을 수가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반주는 랩을 화려하게 뱉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화려한 플로우를 장착하지 않는다면 비트가 없기 때문에 지루하게 들리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무반주와 일반적인 랩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랩 자체는 박인혁이 김환보다 잘하는 게 맞지만, 만약 두 사람에게 무반주 랩을 시키고 관객들에게 투표권을 준다면 김환이 이길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인혁은 스네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박자를 밀고 당기는 타입인데, 무반주에는 스네어라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인혁의 랩이 아주 불안하게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현의 무반주 랩은 전혀 화려하지 않았다.

Uh, 샴페인 라이프,

내 옆에 사랑은 없지만 샴페인 라이프

내 옆에 사람이 있기에 샴페인 라이프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샴-페인 라이프

비트가 없기 때문에 후렴 부분인지, 벌스 부분인지, 그도 아니면 인트로인지 알 수 없는 상현의 가사들이 툭툭 던져졌다.

상현의 목소리 톤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감정적으로 과잉되거나 다운되지도 않았고, 성량이 너무 크거나 작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중간이었다.

좋게 말하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중용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부각되는 부분 없이 평범했다.

‘뭐지?’

상현의 랩을 긴장하며 듣고 있던 오경 미디어의 연습생들과 트레이닝 매니저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쁜 느낌은 결코 아니지만 평소의 그와는 좀 달랐다.

그러나 상현은 그를 주시하는 시선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근데 하루 살아도 난 매일 밤이 즐거워

랩하고 가사 쓰고 함께 음악하면서

숨을 쉬는 시간까지 최선을 다하니까

내가 보낸 이 시간이 너무 자랑스러워, Uh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상현의 랩은 속에 있는 뭔가를 토해내는 격정을 지니고 있었다. 굳이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아도, 거세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그렇다는 것이 특히 인정받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상현의 팬들은 상현의 랩을 ‘영혼을 토해낸다’는 비유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그냥 아주 적당하고, 적절했다.

‘잠깐만, 적당하다고? 적절하다고?’

윤기수 트레이닝 매니저는 상현의 랩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적당하다는 말에 당황했다. 적당이나 적절이라는 단어는 꼭 알맞다는 의미와 같았으니까.

그가 상현의 랩에서 평범함을 느꼈다면 ‘무난했다.’라는 표현이 맞았다. 혹평을 하려면 ‘진부했다.’라고 부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고.

그러나 윤기수는 자신도 모르게 적당, 혹은 적절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 뭐에 적당하는 거지? 비트도 없는데?’

그때 윤기수의 눈에 아주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이상한 광경의 주인공은 연습생들이었다.

연습생들은 상현의 무반주 랩에 반응하며 각자 고개 까딱이며 박자를 타고 있었는데, 정말 이상하게 모두가 각각 다른 박자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연습생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두 명의 카메라맨과 한 명의 피디까지 그랬다.

‘아?’

윤기수는 그 순간 자신이 이상현의 랩을 듣고 왜 적절하다고 여겼는지 깨닫게 되었다.

랩은 기본적으로 ‘반복’과 ‘탈 반복’을 오가면서 쾌감을 주는 음악 장르이다. 4마디 단위로 루프되는 비트 위에서 랩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집중 해주길 바래

고개 좀 들어 줄래

너 못 움직여 이제

만약 이러한 가사의 랩을 듣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다음 마디의 리듬을 자신도 모르게 예측한다. 가사를 보고 있다면 더욱 쉽다.

‘난 얼음땡 술래.’

그러나 만약 4마디 째에서 이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전혀 다른 리듬과 라임이 나온다면?

집중 해주길 바래-

고개 좀 들어 줄래-

너 못 움직여 이제-

무대 밑에서 일시정지 중

랩을 듣고 있던 사람이 저도 모르게 감각이 환기되면서 랩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된다.

리듬구조 변경을 부드럽고, 자유롭고, 매력적으로 하는 사람이 랩을 잘하는 사람이다.

즉, 랩은 똑같은 리듬과 라임을 이어갈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구조를 바꿔가는 음악이라는 말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무반주 랩이 화려해야하는 이유가 나타났다. 무반주는 라임의 기준이 되는 스네어 악기가 없기 때문에 리듬을 더 강하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거짓말’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상현은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아주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있었다.

서정적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Uh, 이건 마치 하늘과 땅 차이

내가 만들어가 내 거에 대한 자긍심

너와 우리의 삶은 샴페인 라이프

코르크 마개, 기쁠수록 높이 나는 일

일견 화려하지 않게 들렸던 랩이 실은 굉장히 화려했다. 랩의 중간 중간 플로우가 없는 곳이 없고, 라임이 없는 곳이 없다.

크게 보면 1, 3마디의 ‘차이-라이프’와 2, 4마디의 ‘자긍심-나는 일’로 큰 라임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마치-차이’로 자음 치읓을 강조하는 치찰음으로 플로우를 형성하고, ‘삶-샴’으로 두음 라임을 만들고, ‘가 내-마개’로 다음절 라임은 형성한다.

윤기수는 집중해서 상현의 랩에 담긴 스킬들을 찾아보다가 기겁을 해버렸다. 스킬들을 찾는 게 아니라, 스킬이 없는 부분을 찾아야 할 정도다.

‘어떻게 된 거지? 이 노래는 갑자기 만든 거 아니었어?’

이상현의 성격상 이미 만들어 놓은 노래를 방금 만든 척 연기할 리는 없다.

그러니까 이건 운이자 실력이다.

의도하고 모든 것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기본기와 영감이 흘러넘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든 부분들이다.

처음 어려운 운동을 하는 사람은 올바른 자세를 잡기 위해 무척 애를 쓰지만, 운동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대충하는 것 같아도 필요한 근육들을 모두 자극하는 것과 같다.

우리 삶은 샴페인, 모두가 축배를 드네

불 붙여 터져버려 마치 폭죽 같네

우리가 모두 인내,

한 것들은 단 맛들을 가지고 있기에

윤기수가 상현의 랩을 듣고 적절하다고 느낀 것은, 무반주 랩에 아주 적절하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또한 연습생들이 각자 다른 박자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건, 이상현의 무반주 랩이 어떻게 해도 리듬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인이 좋아하는 느낌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이상현의 무반주에 상상 속의 비트를 입히는 것이다.

BPM이 90이든 100이든 110이든 상관없다.

그냥 본인이 잡고 싶은 포인트에 스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 자체로도 수많은 랩이 만들어진다. 그것도 굉장한.

윤기수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의 랩에 아무 비트나 가져다맞춰도 어지간한 메인스트림 래퍼들의 타이틀곡보다 좋을 거라는 것이었다. 정말 아무 비트나.

이건 마치 디제이들이 에미넴의 몇몇 랩은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BPM만 적당히 조절하면 누구나 죽이는 리믹스 트랙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난 노력하는 중, 동시에 실행하는 놈

그러면서 즐기는 놈, 행복을 축하하는 놈

내 성공은 한국, ‘시도’가 모여 이루어져

돌탑을 쌓듯 단단한 걸 자꾸 위로 얹어

‘미친…… 이걸 어떻게 3등을 줘?’

이 랩에 3등을 주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이것을 평가하는 자신의 수준을 낮춰버리는 일이다.

물론 일반 대중들은 이 랩을 듣고 자신이 떠올리는 ‘이상현의 랩의 뛰어난 점’을 제대로 캐치하진 못할 것이다. 그냥 막연히 좋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상현의 팬들 중에 심각한 수준의 힙합 골수팬들이 있다는 거다. 모든 힙합 팬들이 자신보다 수준이 낮을 리가 없다. 작곡가 출신이라 힙합 전공이 아닌 자신이 캐치했으니, 분명 꽤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전혀 다른 비트 여러 개를 가지고 이상현의 랩 위에 입힌다면? 이상현의 랩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점을 요목조목 설명한다면?

자신은 그야말로 눈 뜬 장님이자, 귀 열린 귀머거리가 된다. 다큐멘터리에 얼굴까지 다 팔리면서.

오경 미디어가 그에게 평생직장이라면 한 번 해보겠지만, 문제는 그의 재계약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다큐멘터리에 자신이 나가고 ‘아무 것도 모르는 트레이너’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재계약이 될 리가 없다.

실제로 회사에서 요구하는 데로 악역을 자처했다가, 연습생들의 불만제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쫓겨난 트레이너들이 한 둘이 아니다.

쫓겨난 트레이너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연습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는 선전의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

대형 기획사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상품성이 있는 연습생들을 잡아두기 위해서 중소형 기획사에서는 가끔 벌이는 일이었다.

‘미쳐버리겠네.’

윤기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현의 랩이 마침내 후렴구로 도달했다.

Uh, Champagne Life!

I do it for the great! in my Champagne Life!

Uh, Champagne Life!

I do it for the great! in my Champagne Life!

벌스가 서정적인 느낌이었다면, 후렴구는 거칠고 강한 느낌을 주려한 의도가 느껴졌다.

그러나 마냥 거칠지는 않았다.

수염이 숭숭 난 터프가이라기보다는 남자답게 생겼지만 어딘가 섬세한 느낌이 있는 남자.

그런 느낌이 드는 상현의 훅이 리드미컬하면서도 두터운 느낌으로 뿌려졌다.

“아……!”

윤기수처럼 고차원적인 분석으로 결론에 접근한 건 아니지만, 연습생들 역시 상현의 랩이 주는 느낌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연습생들의 표정이 점점 미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되게 쉽게 하는데, 따라할 자신이 없다.

보컬리스트들은 그나마 감탄할 뿐이었지만, 래퍼 포지션의 연습생들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윤기수는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실소를 지었다. 지금 표정이 바뀌는 이들은 음악에 대한 센스가 있는 이들이다. 놀람의 감정이 클수록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소리이다.

윤기수는 놀란 표정의 연습생들의 이름을 체크했다.

‘이렇게 되면 이상현의 랩이 음악적 센스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상현의 랩은 계속 이어졌다.

거친 느낌의 후렴이 끝나고 나온 두 번째 벌스.

덤덤한 느낌에 숨긴 화려한 플로우와 라임들.

샴페인 라이프라는 단어처럼, 삶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찬양의 메시지.

무반주 랩은 자극적일 수는 있어도 깊은 맛을 낼 수 없다는 편견이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토록 많은 플로우와 라임을 모두 강하게 체크했다면 질릴 것 같았다. 전달체계는 복잡하지만 전달하는 내용물은 부드러우니 그 맛이 극한으로 사는 것이다.

상현의 Champagne Life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윤기수나 나한수 피디나 연습생들이 아니었다. 바로 차인현이었다.

차인현은 이상현의 랩이 자신의 노래에 대한 답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상현은 분노로 가득 찼던 그의 노래가 잘못됐다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샴페인 라이프라고?’

무표정으로 위장한 차인현의 표정 사이로 금이 갔다.

하지만 금은, 금방 더욱 단단하게 메워졌다. 악의라는 감정으로.

그렇게 상현의 샴페인 라이프가 끝이 났다.

“브라보!”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한수 피디가 박수를 치며 감탄을 보냈다. 파퓰러 뮤직을 촬영하면서도 몇 번이나 봐왔던 모습이지만, 이상현은 정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를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연예인이라는 카테고리보다 음악가라는 카테고리가 훨씬 큰 존재.

술자리에서마다 김광석 씨를 회상하며 ‘요즘 가수들은 전부 가짜’라고 말하는 국장님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도 20년쯤 뒤에는 이상현을 회상하며 요즘 가수들은 전부 가짜라고 말하지 않을까?

‘근데 20년이 지나도 마흔도 안됐네?’

나한수의 박수세례에 상현이 무대에서 가볍게 인사를 해보였다. 그리고는 트레이닝 매니저인 윤기수의 평가를 기다렸다.

“어…… 아주 잘했어. 무반주라는 포맷에 맞춰서 다양한 포인트를 주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어.”

윤기수는 약간 더듬거리며 상현의 랩을 칭찬했다. 마냥 칭찬을 해야 할지, 아니면 허물을 잡아야 할지 판단을 못해서 더듬거리는 것이었다.

“다만 어쨌든 지금은 방송 무대를 가장한 자리니까, 가사를 보고 하는 행위는 감점 요소일 수밖에 없어. 음악을 잘하고 못하고 와는 별개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어…… 아주 잘했어.”

결국 윤기수는 그렇게 말을 끝냈다.

상현의 뒤로도 몇 명의 연습생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무대를 선보였다. 비트가 펑펑 터지는 걸스힙합도 있었고 기타와 함께 부르는 멜로디컬한 노래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모든 연습생들의 무대가 끝나고, 월말 평가의 순위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일등은…… 김우석. 아주 잘했어. 이대로만 가면 곧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기수는 결국 회사의 시스템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약간의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일등이 한 명 더 있어. 이상현.”

호명당한 상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가사만 보고 하지 않았다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었겠는데, 거기서 감점 요인이 나왔어. 물론 우석이가 더 못했다는 말은 아니고.”

‘이상현을 이긴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은 물 건너갔지만, 이상현과 대등한 실력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사용가능한 범위였다.

윤기수는 팀장님한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카메라가 붙어서 연습생들의 인터뷰를 따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상현과 차인현은 제자리에 서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별이 되기 위해 노래하는 이들’의 촬영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 Verse 28. Jaws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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