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8. Jaws >
소속사의 월말평가는 연습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월말평가에서 계속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플러스 요인이 되겠지만 그것은 데뷔를 결정하는 것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데뷔를 결정짓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력이 아니라 상품성이니까.
월말평가는 그냥 의욕과 경쟁을 고취시키는 장치이다.
기나긴 연습생 생활 중에 누군가와 경쟁하고, 실력을 평가받는 지표조차 없다면 견디기가 너무 힘드니까. 8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19살까지 시험 한 번 보지 않고 수능을 봐야한다면 기나긴 학창생활동안 견디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는 연습생들은 월말평가가 곧 데뷔로 결정된다고 믿으며 최선을 다했다. 카메라가 찍고 있는 오늘은 특히 더욱 그랬다.
“왜 이렇게 겁먹었어? 너 평생 카메라 없는데서 혼자 노래할 거야? 연습실에서만 가수할 거냐고.”
트레이닝 매니저들의 거침없는 혹평도 이어졌다. 물론 잘하는 이들에게는 칭찬도 이어졌지만, 그 수는 극히 적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한수 피디가 상현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상현 씨가 보기에는 어때요?”
“제가 뭐 노래를 아나요. 피디님이 더 잘 알지 않으세요? 음악방송 경력이 몇 년인데.”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저 같이 사운드를 쪼개서 듣는 사람들은 음악의 아름다움보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먼저 보니까요.”
“저도 뭐. 노래에 관해서는 그냥 좋다, 나쁘다로 말하는 수준이니까요. 다만 오늘은 유난히 트레이닝 매니저님이 엄하시네요.”
한참 트레이닝 매니저의 혹평을 듣던 연습생이 우울한 표정으로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카메라 한 대가 붙어서 연습생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봤다.
“다음!”
다음 차례로 또 한 명의 연습생이 무대로 올라왔다. 그는 차인현이었다.
오경 미디어 연습생들 사이에서 상현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정확히 표현하면 격이 다른 존재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루었거나, 더 이룰 수 있지만 거절하고 있는 이상한 놈.
차인현은 역시 이질적인 존재였다. 정확히 표현하면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고, ‘주요한 타이틀곡’의 주인이라서가 아니었다. 차인현이 연습생들을 무시하기 때문이었다.
차인현은 비록 자신이 아버지의 치료비와 어머니의 생활비를 위해서 소속사로 들어왔지만, 연습생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바보같이 연습생으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는 분명 회사에서 앨범을 발매해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은연중에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연습생들 사이에서 차인현은 ‘별 다를 것도 없는데 별 다른 척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대에 올라선 차인현이 상현을 힐끔 쳐다보았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던 둘이었기에 상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주 월디페에서 그를 계속 외면하던 차인현이 ‘한번뿐인 삶’을 부르기 직전에 그를 응시했던 것과 같은 느낌.
그리고 상현은 그게 느낌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just one life, 누구나 한 번 뿐인 삶,
보석을 품은 채로 왜 변명뿐인가?
자유와 굴종의 틈새, 삶의 종말과
당연시하게 되는 깊은 절망감
차인현이 부르는 노래는 One을 둔갑한 칼립의 한번뿐인 삶이었다.
상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칼립은 과거의 그가 얻었던 성공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 빅 히트 곡은 없었지만 평가는 그러했다.
상현이 힙합 더 바이브에 그를 소개한 뒤로 그의 과거 앨범들은 재조명을 받았고, 힙합 팬들은 상현이 뛰어난 뮤지션 한 명을 발굴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인현의 잘못과 자신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자신은 칼립에게 길을 열어주며 사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차인현은 곡을 훔쳐간 것으로도 모자라 지금과 같은 도발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차인현의 노래를 듣고 있던 상현은 문득 차인현의 노래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한번뿐인 삶은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노래이다.
삶은 한 번 뿐이니 난 멋지게 살고 있어! 라고 자랑하는 노래라기보다는 한 번 뿐인 삶을 멋지게 살자라고 선언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차인현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 분노가 가득했다.
노래 그 자체는 과거와 비교하면 실력이 확연하게 늘었다. 고음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한국 최고 엔터테인먼트의 보컬 트레이너 덕분에 고쳐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현이 차인현을 싫어하면서 인정했던 부분이자, 고음역대를 커버하지 못하면서도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게 해주었던 장점인 특유의 표현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로 표현하는 가사가 아닌데, 분노가 가득하니까 더욱 그랬다.
“그만, 그만.”
트레이닝 매니저도 그것을 느꼈는지 차인현의 노래를 중단시켰다.
“너 뭐야? 왜 이렇게 화가 나있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게 아니라. 무슨 일 있어? 정말로 걱정돼서 물어보는 거야.”
카메라가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정말로 트레이닝 매니저가 보기에는 차인현의 노래가 좀 이상했다.
“무슨 일…….”
차인현이 중얼거렸다. 매니저의 말처럼 그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L&S를 나온 것은 성공하기 위해서였다. 지긋지긋한 가난함을 이기기 위해서였다.
‘나는 왜 L&S를 나온 거지?’
8주간 이어진 화제의 방송 ‘로얄 밴드’에서 L&S는 3등을 차지했다. 1등이 소속사의 로비 덕분에 주어졌다는 평가가 만연하니, 엄밀히 따지면 2등이다.
그러나 화제성은 1등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1등.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팝 밴드 느낌이 가득한 2집 앨범 Long & Short, 보컬이자 키보디스트인 미주의 예쁜 외모, 888 크루가 완전히 언더에 묻혀있을 때 이끌어준 팀.
화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로얄 밴드의 3차 경연이자 피쳐링 경연에서 L&S는 888 크루를 피쳐링으로 썼다. 실제 곡에 참여하는 인원은 상현과 하연뿐이었는데, 888 크루는 모든 멤버가 총 출동을 해서 L&S를 응원했다.
힙합 더 바이브 때는 888 크루가 L&S를 부르고, 로얄 밴드 때는 L&S가 888 크루를 불렀다. 게다가 두 팀은 작업실까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L&S와 888 크루의 스토리.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888 크루와 인디 밴드의 L&S의 피쳐링 우정.
888 크루가 가지고 있던 화제성이 자연스럽게 L&S로 옮아갔다. 그러나 그만큼 888 크루의 화제성이 떨어졌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L&S가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팬층의 호감도가 888 크루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차인현에게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왔다. L&S의 절반은 그가 만든 것임에 다름이 없었다. 정말 고생하고 또 고생해서 1집 앨범을 내고, 인지도를 쌓고,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실은 전부 놓쳐버린 채, 그는 연습생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신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상현 때문에.
이상현이 One을 보여주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고, 로얄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미주가 아니라 자신이었을 것이었다.
“인현아. 조급해 하지 말자. 시간은 길어.”
“네.”
“노래를 잘 불러서 가수가 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으면 가수가 되는 거야. 알았지?”
“네.”
“그래, 다음. 이상현.”
누군가 짜기라도 한 듯이 트레이닝 매니저가 상현을 호명했다. 차인현의 다음차례가 상현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무대를 내려가는 차인현과 올라가는 상현의 어깨가 스쳤다. 그러나 둘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상현은 무대로 올라가면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차인현에 대한 분노나 한번뿐인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대 아래에서 생각할 일이었고, 무대 위로 올라와서 생각할 것은 음악이었다. 비록 월말평가라는 웃기지도 않는 시스템일지라도, 그에게 주어진 무대니까.
“실장님, 잠시 만요.”
무대에 오른 상현이 잠깐 트레이닝 매니저에게 시간을 요청했다. 매니저는 뭐라고 한 소리를 하려다가 참았다.
준비성 부족에 대한 지적은 지금보다는 곡이 끝나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카메라는 돌고 있는데, 마땅히 지적할 말이 없으니까.
사실 트레이닝 매니저들에게 상현을 평가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상현이 발표한 곡 중에 혹평을 받은 곡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인기를 얻지 못한 곡은 있지만, ‘이 랩은 별로네.’라는 평가를 받은 곡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칭찬만 하긴 애매한 게, 오늘 상현의 월말평가 순위는 3등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1등과 2등은 다음 분기 초에 데뷔가 예정된 연습생들이었고.
‘이상현을 꺾은 연습생, 데뷔!’
그들이 데뷔할 때 붙을 문구였다.
팩트는 단순한 월말평가에서 트레이닝 매니저의 주관적인 평가순위일 뿐이지만, 어쨌든 사람들을 클릭하게 만들 문구니까.
그러니까 카메라 앞에서 상현에게 최소한의 지적을 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게 여간 부담스러웠다.
“실장님, 혹시 가사를 보고 해도 될까요?”
상현이 트레이닝 매니저에게 물었다. 매니저는 속으로는 꼬투리가 생겼다며 반색했지만 겉으로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가사 숙지가 안됐어?”
“원래 준비한 곡이 아니라, 다른 곡을 부르려고요.”
“음…… 해봐.”
상현이 핸드폰을 열어 가사를 확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음악적 영감이란 것은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 뮤지션은 이 같은 두 가지 상황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했다.
본래 888 크루는 영감이 충돌할 때만 곡을 만드는 타입이었지만, 힙합 더 바이브 이후로 직업의식을 가지고 음악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진짜 문제는 영감이 오지 않을 때가 아니었다.
어떤 영감이 오긴 왔는데 그게 제대로 된 놈도 아니고, 완벽히 느낌이 오지도 않을 때.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이 코끝이 간지러운데 막상 재채기는 나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이럴 때가 가장 문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감들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지만, 어떤 계기로 뜨겁게 타오를 때가 있었다.
상현이 지금 그러했다. 한 번 영감을 잃어버렸던 노래였는데, 이미 만들어진 곡을 떠올리는 것처럼 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가 떠올랐다.
상현은 핸드폰을 누르며 가사의 몇몇 부분을 재빨리 고쳤다. 누가 봐도 어떤 영감을 받아서 작업을 하는 모양새였다.
카메라가 상현의 웃음기가 느껴지는 얼굴을 줌인했다.
연습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평가란 것은 말 그대로 시험이고, 긴장되는 자리인데 이상현은 그러한 곳에서 갑자기 떠오른 영감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재수 없어.’
저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현은 너무나 당당했고, 호통을 쳐도 모자랄 트레이닝 매니저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그때 상현이 모든 수정을 끝냈다.
‘됐다.’
상현은 차인현의 One을 듣고서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한 대상 없는 분노와 무차별적인 부정의 감정. 열등감, 피해의식.
상현이 지금 부르려는 노래는 JFTR에 수록하려다 실패했던 노래였다. 그러나 이제는 차인현이 부른 One에 대한 답가로 불러주고 싶은 노래였다.
제목은 샴페인 라이프(Champagne Life)였다.
“다 됐습니다. 시작해도 될까요?”
“비트는? 원래 그대로?”
“아뇨. 비트 없이 하겠습니다.”
“비트 없이 한다고?”
“네. 대신 마이크 리버브만 조금 더 살려주세요.”
몇 차례 마이크를 확인하던 상현이 입을 열었다.
방송국의 공기를 타고 상현의 목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Verse 28. Jaws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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