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182화 (182/309)

< Verse 27. 888 Crew Version 2 (完) >

갤러리어들의 시선이 단번에 상현에게 주목되었고, 한국 기자들은 미친 듯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상현이 갖는 미디어 파워를 잘 이해하는 기자들이었기에 취재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 같은 기자들의 뜨거운 반응은 상현을 잘 모르는 외국 갤러리어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기자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지금의 뮤지션이 앞선 공연진들보다 더 유명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시작된 상현의 랩.

랩의 시작은 의외로 잔잔했다. 이곳저곳에서 포말을 일으키며 터지는 비트들 사이에서 천천히 유영하고 있을 뿐이었다.

태풍이 오기 직전의 바다 속을 보면, 무시무시한 파도가 넘실대는 수면과 달리 물속의 해초들은 잔잔히 흔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상현의 랩이 꼭 그랬다.

내 탄생은 부모님의 사랑의 충동

내 생존은 본능과 욕구의 충동

내 삶은 자아와 만족의 충동

내 음악은 충동과 충동의 충돌

마치 인트로와 같은 느낌을 주는 4마디.

상현은 랩을 통해서 이상현이란 존재의 대부분이 충동을 통해서 비롯됐음을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에 의해 태어나고, 본능과 욕구를 가지고 생존하며, 삶을 살아가고, 마침내 음악으로 뛰어드는 모든 과정.

‘탄생과 성장’이라는 불가항력의 사건부터 ‘삶과 음악’이라는 선택의 순간까지, 모든 것이 충동을 거부하지 않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장은 점점 강해졌다.

상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난 나로써 완성돼,

한계에서 태어나 한계 밖으로 나설 때

자꾸만 내 속에서 뭔가가 아우성대

그걸 놓지 않기 위해서 매일했던 선택

본격적인 벌스가 시작됨과 동시에 관람객들이 느끼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상현의 랩이 주는 바이브가 시보다 랩에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연과 민지의 ‘강변 살자’는 랩보다는 시에 가까운 형식으로 만들어진 곡이었다. 랩의 리듬은 충분히 살아 있었지만, 랩적인 스킬이나 힙합의 로우(Raw)함은 없었다.

준형과 환의 ‘거울’은 랩과 시의 딱 중간에 서있는 곡이었다. 라임, 플로우, 그루브 같은 랩의 맛이  살면서도 가사는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시문을 연상케 했다.

마지막으로 상현의 ‘고결한 충동’은 랩의 형식에 매우 가까운 곡이었다.

‘이건 그냥 랩송이잖아?’

하지만 이러한 상현의 곡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대놓고 표출하는 이들도 많았다.

“기가 막히는군.”

그들에게 ‘시와 랩’이라는 특수성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랩은, 달갑지 않은 대중문화의 하위 장르일 뿐이었다.

상현은 그들이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예술에 대한 호불호를 표시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권리니까.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예술가가 취해야할 포지션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결과물에 더 큰 애정을 보이고, 더 멋지게 다듬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

이걸 좋아하지 않고 배길 수 있어? 라고 묻는 것.

그런 의미에서 상현의 랩은 굉장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순간을 충동이라 부르고 고결함을 느껴

충동을 모아서 꿈이란 실로 묶어

그 생명력이 매일 아침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원동력인 동시에 성공의 문턱

‘아……!’

랩을 듣고 있던 오연주는 저도 모르게 상현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목소리가 아닌 의미가 전달되는 느낌.

의미 속의 감정이 일체의 여과 없이 통째로 들어오는 느낌.

온몸을 관통당하는 듯한 느낌.

사람들이 예술을 어렵고 멀게 느끼는 것은 예술가의 감정과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100의 감정으로 만든 예술을 통해서 100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중예술의 경우는 감정의 보존률이 여타 예술에 비해 높은 편이겠지만, 그 역시 완전하진 않다.

하지만 이상현에게는 그러한 단점이 없었다.

사실 오연주는 힙합 더 바이브를 통해 상현을 접하면서 뭔가 모를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음악을 하고 있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TV라는 매스미디어 전달 방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충동을 찬양하고 찬미하는 상현의 감정이 갤러리어들의 몸속에서 충동처럼 들끓고 있었다.

내 마음은 멈추지 않고 재생되는 노래, 되감기 안 돼

What am i fuckin doing? 천박할 단어를 썼네.

갤러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점차 고조되는 비트.

호소력이 강해지는 목소리.

순수한 랩을 껄끄러워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거부감을 잊고 상현의 랩에 집중하는 순간, ‘What am i fuckin doing?’이라는 문장이 기습적으로 튀어나왔다.

그 순간 갤러리가 놀라움과 불쾌함의 두 가지를 담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fuck이라는 단어는 욕설이 분명했지만 영어문화권의 일상 속에 깊숙이 존재해 생각보다 검열이 잘 되지 않는 단어이기도 했다. 때론 비공식적인 상황에서 단순 부정과 강한 강조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과도 같은 예술의 순간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이보다 더욱 적절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다.

What am i fuckin doing?

난 빌어먹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고결한 충동을 무시하고 살았던 38살의 이상현이 십 수 년 동안 가지고 있던 후회에 대한 언급이었다.

또한 예술 안으로 뛰어든 19살의 이상현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질문의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의 정적은 누군가에게는 상현의 가사가 의미하는 바를 고민해보는 시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랩에 대한 거부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두 분류의 사람들은 뒤늦게 정적이 길어졌다는 것을 눈치 챘다. 여전히 비트는 스피커를 울리고 있었지만, 어느새 이상현의 목소리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혹은 초점을 흐린 채 하고 있던 생각들을 미뤄둔 채 눈을 돌려 이상현을 쫓았다.

그 순간 비트까지 자취를 감췄다.

상현은 공연을 위해 설치된 50cm 정도 높이를 가진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그를 둥그렇게 둘러쌓고 있는 관객들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 굽 소리만이 아르떼 갤러리의 메인홀을 울렸고, 상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런 사운드도 없는 정적 위로 랩이 다시 시작되었다.

What am i fuckin doing? 천박할 단어를 썼네.

갤러리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할 게 예상돼, 하지만 내 상댄,

고결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충동의 상태,

상현의 목소리가 끓는점에 도달한 물처럼 부글대기 시작했다.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한 몇몇 외국 갤러리어들이 예술 통역관들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하지만 제대로 입을 여는 통역관은 없었다.

지금의 음악이 단어와 문장을 번역한다고 전달이 되는 수준의 것일까? 이것을 아무런 준비 없이 동시통역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언어와 상관없이 받는 느낌을 망쳐버리는 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통역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상현이 벌컥 소리를 지르며 모든 시선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더! What am i fuckin doing!

고흐가 귀를 잘라 귀 잘린 자화상이 나왔다고!

난 나로 인해 존재해

매순간 깨어있음을 증명해

내 존재가 고작 세포들의 집합이라면 대체 난 이 순간 무얼 위해서 노래해?

잠시 멈췄던 비트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트는 그전처럼 오케스트라 하모니가 충돌하며 파생되어 만들어진 퍼커션의 느낌이 아니었다. 론리 로드와 같은 완성된 오케스트라 형태로 재구성된 것이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하모니 위로 처음의 4마디가 다시 얹어졌다.

내 탄생은 부모님의 사랑의 충동

내 생존은 본능과 욕구의 충동

내 삶은 자아와 만족의 충동

내 음악은 충동과 충동의 충돌

인트로 - 벌스 - 다시 인트로라는 이상한 구성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간단한 후렴구였다.

고결한 충동, 고결한 충동

고결한 충동, 고결한 충동

완전한 것도, 불완전한 것도

고결한 충동, 고결한 충동

***

888 크루의 3번의 무대를 끝으로, <두 번째 행간>은 마지막 순서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바로 경매였다.

오늘 공연 중 가장 큰 호평을 받은 무대는 하연과 민지의 ‘강변 살자’였지만, 공연과 경매 준비의 텀에 가장 많은 언급이 오간 무대는 상현의 무대였다.

“하지만 너무 천박하지 않습니까? fuckin doing이라뇨.”

“미스터 리의 말처럼 본래 충동에는 고결함과 천박함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둑질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고 도둑질을 하는 게 올바른 충동은 아니니까요. 그 같은 충동의 역설을 동시에 표현하려는 단어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욕으로 쓰이기도 하고, 강조 부사로 쓰이기도 하는 단어니까요. 하지만 그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예술의 논지로는 볼 수 없는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단어 하나 때문에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나뉜다는 생각은 너무 편협한 게 아닐까요?”

“글쎄요. 진정한 마에스트로들은 선 하나 때문에 그림을 찢곤 하죠.”

“흠, 그럼 얀센 경은 경매에는 참여 안하시겠군요.”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데 잘 모르겠군요. 예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 묘한 충동이 드는 걸 보면, 그의 가사가 제게 꽤 큰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합니다.”

갤러리어들이 한담을 나누는 사이 드디어 경매 준비가 끝이 났다.

“곧 경매가 시작됩니다. 경매에 참여하실 관람객 여러분들은 메인홀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곧 모든 갤러리어들이 메인 홀로 모여들었다.

오연주는 몇몇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오늘의 작품을 최고가로 낙찰 받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순서대로 경매가 진행되었다.

때문에 첫 경매는 강변 살자였다.

강변 살자는 의외로 외국 갤러리어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공연 때 분위기가 아주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었다.

그러나 한국 갤러리어들 사이에서는 꽤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강변 살자는 사운드적인 특이성이나 음악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을 토해내는 가사가 일품인 노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한국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한국 특유의 가족애를 공감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최종 낙찰 금액은…….”

강변 살자는 평소에도 예술 후원과 전위적인 작품에 관심이 많은 인항 실업의 젊은 사장에게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1400만원이었다. 기부의 형식을 빌리다보니 가격이 상당히 치솟은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인항 실업의 사장은 굉장히 만족한 표정으로 서명을 했다.

“두 번째 경매 시작합니다.”

두 번째 작품인 준형과 환의 거울은 의외의 사람에게 낙찰되었다.

예술 후원자들이나 재벌들이 아닌 외신 기자 중 한 명이었는데, 낙찰가는 840만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888 크루를 언급하면서 888만원으로 낙찰가를 올렸다.

이제 마지막으로 상현의 ‘고결한 충동’의 경매 순서가 돌아왔다.

오연주가 처음으로 낙찰에 참여했다.

고결한 충동은 약간 이상한 방식으로 경매가 진행되었다. 텐션이 올라서 가격이 마구 치솟는 앞선 경매들과 달랐다. 드문드문 가격이 오르다가 경매진행자가 최종 낙찰을 선언하기 직전에 누군가 훨씬 높은 금액을 부르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

충동의 가치를 표현한 작품의 경매다웠다.

“천오백.”

1200만원에서 머뭇거리는 가격을 오연주가 확 올렸다. 어차피 최고가를 노리고 있었기에 강변 살자의 1400만원을 넘겨야 했다.

그때 LOC 그룹의 일원이 1600을 불렀고, 오연주가 가격을 더 높였다. 가격이 마구 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2000만원의 고지를 돌파했다.

기자들이 흥미로운 구도를 발견한 듯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저 사진은 아마 활용되지 못할 것이었다.

오경에서 낙찰을 받는다면 LOC에서 초상권을 들먹이며 사진 사용을 막을 것이고, LOC에서 낙찰을 받는다면 오경에서 막을 테니까.

“삼천.”

“삼천만원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경매진행자의 말에 LOC에서 고민하던 기색을 보이더니 경매를 포기했다.

그때 몇몇 외국 부호들이 팻말을 들었다. 오연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

……이것이야 말로, 전위란 단어로 온갖 기행을 일삼는 현대 예술의 적나라한 현주소이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는커녕, 대학 수준의 인문학 지식도 갖추지 못한 고등학생 래퍼의 작품에 ‘고 백남준 선생의 별세’와 ‘비디오 아트의 계승’, ‘시간 예술과 공간 예술의 접목’이라는 비계가 끼여 벌어진 촌극이다.

필자는 그의 공연을 접하면서 귀를 의심해야 했다. ‘What am i fuckin doing.’라는 흑인 래퍼들의 비디오 클립에서나 나올 법한 문장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학림 시인이 계승하는 비디오 아트는 혹시 블랙뮤직 뮤지션의 비디오 클립인가?

(생략)

***

……최학림 시인의 <두 번째 행간>은 이처럼 다양한 예술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예술의 세계는 결코 독립되지 않고, 표류하지 않는다. 모든 기반이 유기적으로 합쳐져서 돌아간다.

조지오웰의 작품에서 드러난 디스토피아적 1984년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고 백남준 선생이 1984년 1월 1일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작품을 공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행간>의 비디오 아트가 계승하는 백남준 선생의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대중음악인 힙합과 연동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

이 같은 의의는 888 크루 이상현의 ‘고결한 충동’이 9천 7백만 원이라는 높은 액수로 유럽에서 현대 미술로 가장 유명한 프랑스 퐁피듀(Pompidou)센터의 센터장 브뤼노 라신에게 낙찰됐음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중략)

***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닌 외국의 아트 매거진 클립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두 가지 관점은 각각의 주장을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예술가들 간의 설전으로도 이어졌다.

외국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의 언론이 <두 번째 행간>과 <고결한 충동>을 조명하기 시작했고, 곧 최학림, 시와 랩, 888 크루의 이름이 문화면을 넘어서 사회면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888 크루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발표했고, 사람들에게 수용되어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지게 된 작품은 그들 손을 떠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고결한 충동을 가지고 또 다른 생명력을 지닌 작품은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888 크루의 Version 2를 알리는 정규 1집 앨범 가 완성되었다.

< Verse 27. 888 Crew Version 2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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