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7. 888 Crew Version 2 >
두 번째 행간의 2막인 888 크루의 공연은 최학림 시인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그는 간단하게 오늘 전시회가 갖는 의의와 영원히 기억될 백남준 선생에 대한 추모의 말을 전했다.
이어서 888 크루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여기 있는 888 크루라는 팀은 한국에서 랩을 하는 팀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꽤나 유명하지만 외국에서 오신 분들은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예술 통역관들이 각자의 고용주들에게 바쁘게 최학림 시인의 말을 통역하기 시작했다. 대중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888 크루에게 쏠렸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랩이란 대중문화 하위 장르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거칠고 직설적인 단어로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편견이었죠.”
그리고 그것이 깨어진 계기가 AIMMF 옆에서 개최되었던 888 크루만의 작은, 아니, 결코 작지 않았던 축제였다.
최학림 시인이 888 크루와의 만남부터 시작해 그들의 음악을 통해 받았던 영감,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았다.
외신 기자들은 최학림 시인 뒤에 서있던, 단순한 발룬티어로 생각했던 이들이 공연진이란 것에 놀랐다. 기자들이 보기에 888 크루에게는 메이저 아티스트 특유의 오만함이나 시선을 주목시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수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심심한 느낌.
사실 ‘비디오 아트 - 백남준 별세’의 이슈가 너무 커서 888 크루에 대한 것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888 크루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노력해도 별반 나오는 게 없다는 이유도 컸다.
-제가 생각하기에 888 크루는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가사를 쓰고, 가장 전달력 있는 랩 음악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최학림 시인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힙합 씬에 가장 뛰어난 크루’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미지만 생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상상 속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척박한 한국 힙합 씬에서 뚝심을 지켜온 40대의 베테랑을 떠올렸는데 말이다.
‘한국 힙합 씬에서 가장 뛰어난 팀이라고 보기엔 너무 어린데?’
외신 기자들은 888 크루가 굉장히 어려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려보이는 동양인들 중에서도 유독 어려보이는 수준이라고만 생각했지, 상현이나 준형이 고등학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크루원들 중 3명이나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알면 놀라 까무러쳤을 것이었다.
거짓말 조금보태서, 전 세계의 현대예술 거장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를 고등학생들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가사적인 면에서 888 크루는 한국 힙합의 정점에 서있는 이들이었다. 한국 힙합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었다.
“화자가 끊임없이 세계와 충돌한다는 점에서 랩과 시는 일맥상통합니다. 고 백남준 선생님의 영원한 대명제가 소통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 랩이라는 장르가 저희에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Thank You, Merci, Danke, Spahseebah.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국 언어의 인사말을 끝으로 최학림 시인이 물러났다.
이제 메인홀에 남은 이들은 공연에 참여하지 않는 상미를 제외한, 6명의 888 크루 멤버들뿐이었다.
140여명의 시선 사이로 리더인 준형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에서 랩 음악을 하고 있는 888 크루라고 합니다.”
준형의 멘트는 간단했다. 크루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오늘 공연에 대한 소감뿐이었다.
어차피 그들이 당대의 예술인들과 지식인들에게 말로써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음악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음악의 시작은 민호가 열게 되었다.
“공연을 위해서 여러분들께 부탁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혹시 다들 소리 한 번 질러주실 수 있나요? 에이, 빼지 마시고. 와! 하고 소리 한 번만 질러주세요.”
-와아!
어디선가 힘찬 환호성이 들려왔다.
민호의 품위 없는 요구사항에 눈살을 찌푸리던 한국 후원자들의 시선이 환호성의 주인에게 쏠렸다. 그러나 잠시 뒤 그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환호성의 주인이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관인 프랑스 퐁피듀(Pompidou)센터의 센터장인 브뤼노 라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야유 한 번만 해주실 수 있나요? 우우.”
-우우.
기자들이 적극적인 브뤼노의 모습을 열심히 찍으며 입으로 야유를 했다.
“마지막입니다. 다 같이 소리 내서 크게 웃어주세요. 억지로 웃어도 좋고, 이 친구 못생긴 얼굴 보면서 웃으셔도 좋습니다.”
민호가 상현의 얼굴을 가리키며 솔선수범해서 크게 웃었다. 곧 메인홀이 ‘하하하’ 하는 약간은 억지스러운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웃다보니 부자연스러운 웃음은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브뤼노 라신이 주변 로얄층들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박장대소를 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저희는 비디오 아트도 잘 모르고, 고 백남준 선생님의 예술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공연을 위해 공부하다보니, 끝임 없이 두 글자의 단어를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소통입니다.”
말을 하는 와중에도 민호는 연신 노트북을 조작했다. 도대체 뭘 준비하는 건지 사람들은 꽤나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소통과 충동은 저희 888 크루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입니다. 이게…… 저희가 생각한 소통의 방법입니다.”
민호가 버튼을 누르자, 책상 안쪽에 숨겨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던 기계가 지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
바로 MPC였다.
MPC란 본래 Mimi Production Center의 줄임말이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Music Production Center의 줄임말이 되었다.
MPC는 힙합의 발전을 논함에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기계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게토의 흑인들이 일본을 모를 순 있어도, MPC를 발명한 일본의 회사 Akai를 모를 순 없었다.
MPC는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은 ‘패드’에다가 ‘사운드’를 저장한다는 것이었다. 각각의 패드를 누르면 패드에 저장된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그 사운드를 조합하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원래는 드럼 머신으로 만들어진 기계인데, 누군가 각 패드에 샘플링 사운드를 저장시키기 시작하면서 샘플링 머신으로써 용도가 확장되었다.
민호는 16패드짜리 MPC를 가지고 있었고, 패드 저장타입은 4가지였다.
16 X 4.
총 64개의 사운드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민호는 오늘 60개의 사운드만 준비를 해왔다. 부족한 4개의 사운드 중 3개는 방금 관객이 채워주었다. 그들의 목소리로 말이었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환호, 야유, 웃음소리가 녹음되어서 MPC로 저장된 상태였으니까.
-둥, 둥, 둥, 둥.
아주 기본적인 8비트의 드럼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민호가 오늘의 뼈대가 될 드럼 패드를 일정한 속도로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하려는 거지?’
MPC란 기계 자체가 낯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지만, MPC를 알고 있는 예술인들 중 몇몇은 무릎을 치고 있었다.
오늘 우민호라는 디제이는 이미 완성된 비트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직접 비트를 찍어낼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예술에는 그의 떨림과 긴장, 관객 호응에 받는 영향, 사소한 실수, 감정의 변화 등등 모든 것이 왜곡 없이 드러날 예정이었다.
“오, 맙소사!”
퐁피듀 센터의 센터장 브뤼노 라신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감탄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감탄까지 비디오 아트와 랩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완벽히 이해했다.
만약 디제이 우가 자신의 감탄사에 놀라서 박자를 흐트러트렸다면? 그건 그 사실대로 소통이 되는 것이고 영원한 흔적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힙합 뮤지션들에게 MPC의 라이브 비트 메이킹 퍼포먼스는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식상한 행위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술이란 본래 그렇다.
어떤 것이, 어떤 의의로,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마르셀 뒤샹의 ‘샘’은 매일 접하는 소변기가 미술관에 전시됨으로 인해서 다다이즘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
지금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와 랩, 현장성(MPC), 기록(촬영)’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공간 예술과 시간 예술의 만남, 백남준의 소통, 비디오 아트’라는 세 가지 의의를 가지고 예술로 승화되고 있었다.
그것도 힙합 문화로 따지면 변방 중의 변방인 극동 아시아의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말이다.
오, 하는 작지 않은 환호성이 몇몇 예술인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술인들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한국의 기자들과 예술에 별 관심이 없는 부호들이었다.
뭔가를 두드려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신선하긴 한데, 그런 건 준비 기간에 미리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민호의 MPC 플레이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MPC는 한 번 두드린 소리를 자동으로 무한 반복시킬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에 뼈대를 만든 드럼 라인을 유지한 채로 다른 소스들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단단하고 침착하게 들리던 드럼 루프 위로 클래식 피아노 연주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단함과 침착함 사이로 왠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졌다.
돌이킬 수 없어 진즉 체념한 일이지만, 가슴 한편에 아쉬움이 없어지지 않는 일. 꼭 그런 느낌이었다.
관람객들은 재빨리 첫 번째 곡의 제목을 확인했다. 예술 통역관들이 덩달아 바빠졌다.
노래의 제목은 ‘강변 살자’.
김소월 시인이 1922년에 개벽 19호에 발표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하연과 민지가 랩으로 만든 노래였다.
고 김소월 시인이 별세한지 70년이 지났기에 저작권이 문제될 것도 없었다.
“미스 오. 강변이란 단어의 의미가 뭡니까?”
“원 시에서는 평안한 상태와 자연을 상징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군요. 마치 강변에 살 수 없게 된 일 이후를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지금 이 광경을 보고 대중문화를 무시하는 부르주아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궁금합니다. 미국 본토의 힙합 뮤지션들이 뭐라고 말할지도 궁금하군요. 혹시 저 알바에(Albae) 뮤지션들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인터뷰가 욕심나는군요.”
처음 듣는 단어에 오연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바에요?”
“아, 와인을 즐기시는 편이 아닌가 보군요. 스페인의 테이블 와인 중에 ‘하시엔다 알바에 888’이라는 레드와인이 있습니다. 이거 농담을 했는데 민망하게 되었군요.”
미국의 저명한 예술 매거진 편집장이 오연주를 바라보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인터뷰 의사는 전달해보겠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확답은 드릴 수가 없군요.”
“그 정도면 미스 오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연주는 편집장과 대화를 끝내고 다시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비트를 만들어내는 우민호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쳤고, 그것은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강한 힘이 있었다.
잠시 뒤 2분간 이어졌던 우민호의 MPC 플레이가 드디어 끝이 났다. 더 이상 패드를 두드리지 않아도 완전한 비트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 Verse 27. 888 Crew Version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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