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7. 888 Crew Version 2 >
Verse 27. 888 Crew Version 2
-888 Show가 보여준 압도적인 힙합의 매력!
-888 크루는 어떻게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를 겨냥했나?
-888 크루 단독 인터뷰, “2006년 888 크루의 주 활동지는 한국 인디 문화의 메카 홍대.”
-평론가 임영호, “888 크루의 이상현은 CEO의 자질을 가진 뮤지션.”
광주, 부산, 서울을 투어한 888 Show는 공연 기획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큰 성공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광주 1322명, 부산 1218명, 서울 2835명.
5천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888 Show를 찾아왔고, 그들의 만족도 높은 리뷰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2천명이 간신히 넘을 거라던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관객 예측을 민망할 정도로 벗어난 수치였다.
888 Show의 거침없는 흥행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연예기획사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돈이 안 된다는 명제가 뿌리 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888 크루는 그 이전부터 뮤지션으로써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사업적인 측면으로 꼼꼼히 따지자면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팀이었다.
인기와 수익은 비례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명제가 반드시냐는 질문에 답하자면 아닐 수도 있었다.
888 크루보다 더 괜찮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막상 공연을 하면 줄줄이 적자만 보는 팀들도 꽤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음반사업자의 입장에서 888 Show 이전의 888 크루 수익성은 측정불가였다.
잘될 거 같은 느낌이 엄청나게 들긴 하지만 음원등록을 안하니 정확한 음원성적을 알 수가 없고, 음악방송에 출연을 안 하니 음방 순위 역시 알 수가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오피셜 부틀렉 앨범과 도매스틱 브랜드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린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판매수치와 마진율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모든 의문점을 단번에 불식시킨 것이 888 크루의 첫 유료공연인 888 Show였다. 대형기획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888 크루의 공연은 속된 말로, 빨아먹지 못한 꿀이었다.
‘어우, 저 맛있는 걸!’
이윤창출을 위한 프로모션 푸쉬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획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없는 것과 다름없던 프로모션.
게스트라고는 꼴랑 각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2만 5천원의 저렴을 넘어서 저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값싼 티켓 프라이스.
공연장에서 뻥튀기해서 팔 수 있는 굿즈들을 공연 중 신이난다고 뿌리는 크루원들.
안 그래도 충성도가 높은 888 크루 팬들인데, 마음만 먹으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인기 있는 아이돌을 게스트로 세워서 888 크루 매니아층은 아니지만 호감은 가진 관객까지 넓게 노렸다면?
TV와 라디오, 버스 옥외 광고 등을 통해 공연 노출도를 높였다면?
티켓 가격을 R석, S석, 스탠딩 석으로 구분해서 이윤극대화 차별 가격 전략을 썼다면?
온라인에서 파는 ‘062 X RAP’ 굿즈 말고, 평소에는 구할 수 없는 리미티드 굿즈들을 공연장에서 팔았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10배는 더 벌수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888 크루의 공연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 이미지와 순수성, 공연의 질은 떨어지겠지만.
‘드림엔터 같은 외주업체 말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진행했으면…….’
888 Show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서 입맛만 다시는 연예기획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처럼 회사 입장에서 탐이 나서 죽을 지경인 888 크루지만, 더 이상 영입을 시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888 크루는 이미 커도 너무 컸고, 회사의 서포팅 없이도 알아서 잘만 한다.
하나의 브랜드 네임처럼 돼버린 888 크루를 영입하려면 오경 엔터나 LOC 엔터, SM 엔터 등의 거대 기업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보상이 필요했다.
결국 정답은 888 크루가 요청할 때만 프로모션 푸쉬와 앨범유통 등을 지원하는 전략적 제휴 업체인데, 이미 그 자리에는 주인이 있었다.
오경 미디어.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오경 그룹의 계열사.
이윤을 추구하지만, 그보다는 그룹 전체의 이미지 혁신을 위해 세워진 계열사. 때문에 계약조건과 소속 가수의 처우에서 업계 탑을 달리는 곳.
사내 정치가 가수들에게까지 라인 선택을 종용한다는 단점만 제외하면, 가수들 입장에서 오경 미디어보다 좋은 기획사는 드물었다.
888 크루의 이상현은 이 같은 오경 미디어의 소속이었다. 그러니 888 크루가 제휴 업체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오경 미디어를 선택할 것이었다.
쇼 비즈니스계를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이상현이 오경 미디어에 영입되는 과정에서 선택을 강제 당했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본래 쇼 비즈니스 업계라는 것이 그랬다.
아니꼽고 더럽게 들어갔어도, 인기만 잘 유지해주고 수익만 잘 창출해주면 정붙이고 함께 가는 게 연예인과 기획사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런 쪽에서 오경 미디어는 좋은 파트너였고.
점점 딸 수 없는 별이 되어가는 888 크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SG 워너비같은 대형가수들을 제외한 지독한 가요계의 불황을 때문인지, 연예기획사들의 시선이 하나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언더그라운드가 틈새시장을 넘어선 하나의 마켓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888 크루가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헤비메탈 영광의 시대가 끝나고 미국 대중음악계를 흔들었던 얼터너티브 록 역시 그 출발은 언더그라운드였으니까.
이러한 흐름이 오직 888 크루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888 크루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
1년의 시작은 1월이지만, 학생들에게는 1월보다 3월이 1년의 출발점으로 더욱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학교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888 크루 멤버들 역시 3월 대부분을 새로운 시작에 적응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연은 예대에 합격해 대학생으로서의 출발을 하게 되었고, 상미는 예고에 합격해 고등학생으로서의 출발을 하게 되었다. 준형과 상현 역시 편입된 예고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별다른 노력은 필요치 않았다.
예고에는 다양한 교육 분야가 있었지만 그 중 상현과 준형이 다니고 있는 서율예고의 ‘실용음악학과’ 학생들의 목적은 거의 비슷했다. 대중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가수의 꿈을 품은 이도 있을 것이었고, 작곡가나 연주자의 꿈을 품은 이도 있을 것이었다. 드물게 음대로 진학해 교수를 꿈꾸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때문에 상현과 준형은 이미 실용음악학생들의 최종 목표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그들의 순수한 재능으로 혁신적인 성공을.
굳이 예를 들자면 메이저 리그를 꿈꾸며 루키 리그에서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고 있던 야구 유망주들 앞에 베이비루스가 나타난 것과 다름없었다. ‘안녕? 같은 팀에서 뛰게 됐네?’라고하면서.
그러니 예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상현이나 준형과 친분을 쌓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이러한 마음에는 순수한 동경의 의미도 있었고, 친분을 쌓으면 후일 자신이 대중음악계로 뛰어들었을 때 도움을 볼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물론 속으로야 888 크루를 폄하하고 아니꼽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상현과 준형의 교우관계는 매우 평탄했다.
오히려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애매했다.
힙합, 그 중에서도 랩이 실용음악 교육과정에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은 대략 2008-2009년부터였다. 그즈음을 기점으로 각종 예대와 콘서바토리(학점 은행)의 실용음악학과에 힙합, 랩 과정의 커리큘럼이 개설되었고, 외래교수를 초빙하며 교수진들이 마련되었다.
기념비적인 사건으로는 보수적인 한예종에 개교 이래 최초로 랩으로 입학한 입시생이 나타나기도 했었다.
한예종이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줄임말로써 예대의 카이스트라 불리는 아시아권 최상위 인지도를 가진 4년제 국립 특수대학교였다.
그러니 역으로 말하자면 2006년에는 실용음악 교육진에 랩에 대한 역량이 전무하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상현과 준형을 가르쳐야하는 서율예고의 선생들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어지간한 래퍼 지망생들이라면 보컬리스트들에게 요구되는 기본기만으로도 1년은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지만, 상현과 준형은 이미 대한민국 최상위권의 래퍼들이었다. 그것도 5000명 이상의 유료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티켓 파워를 가진.
‘얘들은 반짝 스타로 끝날 재목이 아니야. 진짜배기들이야.’
‘라인업으로 같은 무대에서도 이길 수가 없는데 뭘 어떻게 가르쳐?’
서율예고 선생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접했던 상현과 준형의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그들의 영감과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고의 예고답게 이상한 고집을 세우며 커리큘럼을 강요하는 꽉 막힌 선생들은 없었다. 덕분에 상현과 준형은 별다른 터치 없이 평소처럼 그들만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가사를 연구하고, 외국 랩을 분석하고, 888 크루의 음악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어쩔 수 없이 날려 먹어야했던 시간들까지 전부 음악에 투자하니, 실력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에 넘쳐나는 뮤지션 지망생들에게 색다른 영감을 받을 때도 있었고, 랩에 관한 건 아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는 돈 주고 사긴 아깝지만 사용해보고 싶었던 음악 장비들도 넘쳐났다.
‘재밌다.’
상현과 준형은 날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다니게 된 서율예고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오경 미디어에 대한 분노가 식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이었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오빠! 왜 자꾸 미술과 쪽에 기웃거려?”
“응? 아니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상현의 말에 상미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고 있네. 누구 찾는 거 같던데? 왜? 입학식 때 첫눈에 반한 여자라도 생겼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고 집이나 갑시다. 동생님.”
“첫눈에 반했다고? 너 은근히 눈 높잖아.”
“아 그런 거 아니라고.”
상현은 자신이 왜 미술과 쪽을 기웃거렸는지를 숨기기 위해서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의도가 적중해 그들은 곧 다른 이야기로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 이상하다 빈지노가 몇 살이지? 나랑 동갑이었던 거 같은데?’
상현은 상미, 준형과 하교하면서도 속으로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다.
문득, 어릴 때 내가 생각나네
서율예고에서 유일한 빡빡이,
상현이 가사를 기억하고 있는 일리네어 레코즈 Rollie Up의 빈지노 벌스였다. 그가 미술과 쪽을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이유기도 했고.
딱히 무슨 목적이 있어서 빈지노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좋아했던 뮤지션과 친분을 쌓아보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였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과 동갑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본명은 기억이 나지 않으니, ‘여기 이 학교 유일한 빡빡이가 누구야?’라면서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상현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빈지노는 87년생으로 그보다 한 살이 많았고 이미 졸업한 후였다.
< Verse 27. 888 Crew Version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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