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6. 888 Show (完) - 7권 끝 >
***
롤 모델이란 보통 본인이 하고픈 일에 모범이 되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런데 그 롤 모델이 그 분야의 최초 성공을 이뤄낸 사람이라면?
그때는 롤 모델이 단순한 롤 모델을 넘어선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롤 모델이 최종적 이상향 그 자체가 된다거나, 광적으로 추종을 한다거나, 사랑에 빠지는 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888 크루가 그러했다. 888 크루의 행보를 보고 음악을 시작하는 비기너 뮤지션들에게 말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라인딩!”
“블루 마운틴-!”
888 Show를 보기 위해 논산에서 내려온 3명의 고등학생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커피머신의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어찌나 주변 눈치를 안보고 신나게 노는지, 그 주변 분위기가 유독 뜨거울 정도였다.
“와, 씨! 죽인다!”
“존나 재밌어!”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힙합 공연장의 열기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고, 엄청나게 재밌었다.
‘이 사람들이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우리랑 같은 학생들이었단 말이지?’
고등학교 1학년인 김대철이 존경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무대 위의 뮤지션들을 쫓았다.
888 크루의 탄생부터 Hommie Vol.1까지의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상미의 웹툰 스토리가 딱 거기까지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비기너 뮤지션들에게 888 크루는 ‘최초의 성공’을 이뤄낸 롤 모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최초의 성공이 힙합 문화를 통틀어 최초로 성공했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었다. 당장 스타즈 레코드만 해도 888 크루 못지않게 성공한 팀이었으니까.
888 크루가 이뤄낸 성공의 가치는 그 과정에 있었다.
음악적 인맥과 경험이라고 전혀 없던 평범한 두 고등학생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하나의 글. 글을 통해서 모인 크루원들과 함께 로컬 씬에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는 과정.
L&S 같은 지역 내 뮤지션들과 친분을 다지기도 했고, 골든 핑거의 이경민 같은 사람과는 다투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이름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하고, 배가의 도움을 받아 언더 씬으로 데뷔.
이제는 언더그라운드를 넘어서 오버그라운드까지 손을 뻗는 중.
888 크루가 성장한 일련의 과정은, 대중들에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성장하는 전형적이고 당연한 과정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실제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힙합 씬을 이끌었던 래퍼들 중에는 상현이나 준형 같은 ‘보통 사람’이 굉장히 드물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경직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진정한 힙합 문화의 본질을 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불모지이자 맨땅에 헤딩을 할 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쯤에 IMF라는 국가적인 위기도 겹쳐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러다보니 초창기 래퍼들 상당수가 미국에서 힙합을 접했으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유학파 출신들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랬다. 스타즈 레코드의 배가 역시 미국 유학시절 중에 힙합을 접한 사람 중 하나였다.
래퍼는 영어를 잘해야 하고, 교포거나 유학생이라는 대중들의 인식이 이때 생겨난 것이었고, 오랫동안 잘 사라지지 않는 편견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린 팀이 있었다.
바로 888 크루였다.
상현과 준형은 유학은커녕 여권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딱히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인혁의 부모님이 법조계에서 일 하신다거나, 민지와 환이 연세대 출신이라는 것은 수용 가능한 범위의 차별성이었다.
그러니 음악을 하고 싶었거나 관심은 있었지만 ‘뭘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던 청춘들의 롤 모델이 888 크루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888 크루가 했던 행동 그대로를 벤치마킹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상현이 회귀하기 전인 2006년 2월에 오프라인 힙합 크루가 몇 개나 있었을까?
정확한 통계는 어디에도 없겠지만 최대의 최대치로 잡아도 30개가 넘지 않았을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888 크루가 생긴 지금의 2006년 2월은?
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힙합 크루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막 랩의 세계로 뛰어든 비기너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크루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꼭 이런 무대에 설 거야. 여기를 그대로 대관해서 공연을 하고, 888 크루를 섭외할 거야. 그래서 당신들 덕분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해야지.’
김대철을 비롯한 논산에서 내려온 고등학생들 역시 이러한 비기너들 중 한 명이었다.
김대철은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무대를 수놓는 8명의 뮤지션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888 키드.
힙합엘이에서 정의했던 888 키드는, 이미 랩을 하고 있는 초보 래퍼들이 맹목적으로 888 크루의 음악방향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김대철과 같은 이들은 888 크루 때문에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들이었다. 888 크루가 아니었다면 음악을 하지 않았을 이들이었다.
때문에 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888 키드였고, 888 키드의 숫자가 전국에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겟 댓 머니-!”
김대철은 커피 머신이 끝나고 이어지는 곡의 도입부를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겟 댓 머니, 웰컴 투 스쿨’은 그가 888 크루의 수많은 노래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인트로의 킥 드럼만 들어도 곧장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때 무대 위의 상현이 김대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를 바라보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어떻게 킥 드럼만 듣고 맞췄냐는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김대철은 상현과 정확히 눈이 마주치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멈췄다가, 곧 스스로가 놀랄 만큼의 큰 고함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아이 씨, 깜짝이야. 발성이 왜 이렇게 좋아요?
스피커를 타고 상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현은 씩 웃으며 마이크를 관객 쪽으로 들이밀었다.
-다 같이!
Get that money Welcome to school
Get that money Welcome to school
Get that money Welcome to school
개처럼 벌어서 래퍼처럼 써
김대철은 5m 정도 떨어져있는 저 마이크가 꼭 그의 턱 아래 바짝 대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관중들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겟 댓 머니-! 웰컴 투 스쿨-!”
그렇게 888 Show 광주 공연장에서, 888 키드 1기를 대표할 한 명의 뮤지션이 탄생하고 있었다.
***
상현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쭉 훑어봤다.
1322명.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888 크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모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관객들. 하지만 이 와중에 똑같은 것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모든 관객들이 무대 위의 888 크루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다들 얼마나 땀을 흘렸으면 앞머리가 푹 젖어서 찰랑거린다는 것이었다.
‘아, 두 번째는 취소.’
갑자기 휴가 나온 해병대처럼 보이는 몇몇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찰랑거릴 머리가 없는 분들이었다. 왠지 오늘의 데이드림에는 저 해병대들이 떠오를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장장 3시간이 넘게 진행된 공연은 마침내 마지막에 도착해 있었다.
목이 칼칼할 만큼 많은 곡을 불렀는데도 아쉬운 건 왜인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무대를 더 즐기고 싶었고, 888 크루가 가진 바이브를 관객들에게 더욱 더 나누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눠주고 싶은 게 너무 많네.’
제일 처음 부드러운 직선에서 L&S8 공연을 할 때만해도 그들의 러닝타임 10분이었다. L&S 형들이 시간을 적게 준 게 아니라, 순수한 888 크루의 곡이 광주 업이랑 움직여야지 밖에 없어서 그랬다.
호미 공연을 할 때는 30분을 채웠었다.
이때가 진정한 의미의 888 크루 데뷔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좀 아쉬웠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기도 했었다.
그 뒤로는 공연을 정말 많이 했다.
무등 경기장 공연부터 시작해서 힙합 더 바이브, 대학교 축제, 보신각 타종행사, AIMMF 옆에 개최했던 888 크루의 작은 축제까지.
그리고 마침내, 888 Show.
상현은 오늘 공연을 하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경험과 노력이 집대성됐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방금 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마지막 곡이네요.”
상현의 말에 관객들이 아쉬움이 담긴 소리를 뱉었다. 관객들의 아쉬움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힙합 공연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래퍼들은 공연 중간에 말이 참 많다. 그들은 곡과 곡사이의 텀을 퍼포먼스로 채우지 않는다.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니지도 않고, 춤을 추지도 않는다.
그냥 말을 많이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었고, 공연곡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있었고,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의도적으로 준비한 멘트가 30%라면 나머지 70%는 무대 위에서 느끼고 있는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었다. 때문에 힙합 공연을 즐기고 난 뒤에는 그 뮤지션의 내면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888 크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그들은 무대 위의 8명끼리 거침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숨기고 싶어도 제대로 숨겨지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공연에서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주제가 있었다.
“제가 오경 미디어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힙합 팬분들이 굉장히 많은 의견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바로 상현의 오경 미디어 영입이었다.
“가장 큰 화제는 한 가지죠. 제가 오경 미디어로 들어가게 되면서 888 크루가 가지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본질성을 훼손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죠.”
상현의 진지한 어투에 모든 관객들이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경 미디어는 아주 작은 존재에요. 그에 반해서 888 크루는 아주 큰 존재에요. 당연히 크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죠. 사실 매출액만 따지면 오경 미디어는 888 크루의 백 배, 아니 천 배가 넘는 영향력을 뮤직 인더스트리(Industry)에 행사하는 단체니까요.”
마지막 곡을 장식하기 위해서 다함께 무대 위에 올라있던 888 크루 멤버들은 상현이 하려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근데 그런 건 별로 안중요해요. 제 안에 오경 미디어의 이상현보다 888 크루의 이상현이 월등히 크다는 게 중요하죠.”
왜냐하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고등학생 신준형보다 888 크루의 신준형이 훨씬 큰 존재였고, 연세대의 김환, 오민지보다 888 크루의 김환, 오민지가 훨씬 큰 존재였다. 다른 크루 멤버들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초반에는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우리가 888 크루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요.”
그러나 아니었다.
“저희가 888 크루를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888 크루가 저희를 성장시키고 있었어요. 어느새 888 크루는 브랜드 네임을 넘어선 하나의 유기적인 존재로 느껴져요. 저한테는.”
상현의 손짓에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7명의 멤버들이 무대의 앞으로 나왔다. 민호 역시 디제이 부스에서 나와 그들의 옆에 섰다.
“그래서 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888 크루가 두 번째로 선보이는 단체곡입니다. 제목은 동그라미입니다.”
상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피커에서 통통 튀는 키보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ight, Eight, Eight의 파티 튠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곡이었다. 어딘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하고,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Too many complex,
Too many problem
둥글게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내 주변엔
악마와 천사가 동거를 해,
누가 나올지 몰라 내,
이름을 써넣을 큰 동그라미를 그려대
모든 일이 그랬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것을 하다가 고통을 느낄 수도 있었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미울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그러한 일들만이 나의 쫙 펼친 온몸을 완전히 담아줄 수 있는 동그라미이기 때문이었다.
상현의 4마디가 끝나자마자 준형이 상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4마디 랩을 이었다.
누군가 내 동그라미에 덧칠을 해
내 기분을 망치거나 날 울리려해
그럴 때마다 색칠을 해,
동그라미 속을 가득 채울 때
상현은 마주한 준형의 어깨에서 깊은 신뢰감을 받았다. 준형이 항상 리더로써 중심을 지켜주기 때문에 상현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번엔 하연이 상현의 옆으로 섰다.
하연이가 아니었다면, 병원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는 음악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우린 살아 있단 느낌,
가끔 상처받기 쉽지
별거 아닌 일에 심취
해서 화를 내고 싶지
멜로디를 꽉 채운 하연의 목소리에서 888 크루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상현이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소리쳤다.
“손들고! 팔이 찢어질 만큼!”
상현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서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일견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객들 역시 모두 손을 들었다.
옆 사람과 부딪히기도 하고, 장소가 협소에서 가장 크게 그리지는 못했지만,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그려 아주 많이.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그려 아주 많이.
모두들 자신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수많은 관객들의 동그라미에는 가족, 사랑, 우정 등등 소중한 그들만의 가치가 들어있을 것이었지만, 한 귀퉁이에 아주 작게 888 크루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을 것이었다.
“다함께! 손들고!”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그려 아주 많이.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그려 아주 많이.
888 Show 광주 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 Verse 26. 888 Show (完) - 7권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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