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5. 스타(Star) - [12.03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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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 그룹의 새로운 계열사 오경 미디어. 오경 미디어의 첫 번째 영입은 888 크루의 이상현!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메이저 자본의 결합이 가져올 결과는?
-오경 미디어의 홍경수 과장,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진 힙합 문화의 눈부신 발전은 이제 시작이다. 10년 이내로 한국 주류 음악 시장을 힙합이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
-이상현의 영입은 시작? 나머지 888 크루 멤버들의 거취는?
-대중음악 평론가 임영호, ‘이상현의 다음 작품이 가진 의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다. 앞으로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자본에 잠식당할 것인지, 아니면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자본을 영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그의 작품에 달렸다.’
-오경 엔터의 미디어 콘텐츠 부서에서 독립한 오경 미디어는 어떤 회사인가?
작업실에 모인 888 크루 멤버들은 다함께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최근 별다른 연예계 이슈가 없었기 때문인지, 연예란은 오경 미디어, 888 크루, 이상현이란 단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작위적이다.”
김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에 터져 나온 기사부터 댓글 반응까지 작위적인 냄새가 풍겼다.
“흠…….”
상현이 컴퓨터를 종료했다. 888 크루 멤버들은 모두 상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한 명 ‘진짜 계약한 거야?’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공연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별 이상한 일이 벌어지네요.”
“근데 오경 미디어가 왜 이딴 짓을 했지? 이거 허위사실 유포 아니야?”
박인혁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상현의 입에 고정되었다.
“치킨? 피자?”
“뭐?”
“뭐긴요. 일단 상미 졸업식도 제대로 축하 못했는데 밥부터 먹자는 거죠. 상미야 뭐 먹고 싶어?”
상현의 태연한 물음에 크루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크루원들은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정확한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상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들의 경험상, 상현이 확신을 내리면 거의 맞았다.
“나는 족발 먹고 싶은데?”
“그럼 보쌈 시키자.”
“족발이라니까?”
“먹는 방법의 차이지 맛은 똑같잖아.”
“그게 무슨 망언이야? 당장 족발한테 사과해.”
상미의 말에 상현이 상미의 발을 잡고 사과했다. 그런 상현의 머리카락을 상미가 쥐어뜯었다. 한참 다투던 그들은 결국 족발과 보쌈 세트를 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상미가 주문 전화를 하는 사이, 상현은 조용히 거실로 나와서 오연주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그러나 오연주 차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곧장 오연주 차장이 연결해준 임 변호사한테 전화를 하니, 지금은 법원에 들어가서 힘들고 2시간쯤 뒤에 전화를 드릴 수 있다는 비서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상현은 잠시 거실의 쇼파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졸업식장에서 만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장 아니라고 해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오경 미디어에서 바라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확률이 컸다.
아마 상현의 해명이 나오면 오경 미디어는 뭔가 증거를 들이밀 것이고, 그러면 상현은 또 그 증거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진실 공방’은 사라지고 ‘노이즈’만 남는다. 진실 공방에서 승리를 해도 888 크루란 이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덮인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일단 모든 상황을 알고, 오경 미디어가 쥐고 있는 패가 뭔지를 알게 될 때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 뒤에는 한 방에 갚아줘야겠지.
‘오경 미디어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강하게 밀어붙이면 내가 켕기는 바가 있어서 겁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이것도 오연주 차장을 겨냥한 화살의 일부인가? 사내정치의 일환으로 보기엔 대중에게 너무 드러냈는데?’
상현은 곰곰이 현 상황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오경 미디어의 영입 발표를 확인하고서 불쾌함과 황당함을 느꼈다. 하지만 대처의 어려움이나 앞으로의 일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었지만 오경 미디어의 노림수는 뻔했다.
‘연습생 계약. 그거밖에 없어.’
오연주 차장과의 관계 설정을 위해 허위로 작성한 연습생 계약. 그것을 들먹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현에게 통할 리가 없는 수작이었다.
계약서상의 의무는 합당한 거래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즉, 의무에 상응하는 동등 가치가 교환되지 않으면 의무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예를 들면, 집을 임대해줄 때는 그 사이에는 ‘임대료 - 거주권’이라는 동등 가치의 교환이 일어나고, 근로계약서 상에는 ‘임금 - 노동력’이라는 동등의 가치 교환이 일어난다는 의미였다.
다만 엔터테인먼트 계약으로 가면 거래되는 동등한 가치가 조금 복잡해진다.
보통 엔터테인먼트의 계약서는 두 종류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흔히 대중들이 생각하는 연습생 계약이었다. 연습생 계약은 ‘미래 가치’와 ‘연예인이 될 기회’를 등가 교환하는 형태의 계약이었다.
연습생 계약을 맺으면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은 회사에 소속되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뷰티 관리를 받고, 춤을 배우는 등등의 기회. 심지어 대형기획사에서는 자세교정부터 팝송을 위한 영어 발음까지 지도해준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러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계약서를 통해 연습생들이 성공한 이후의 가치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았다. 일종의 투자개념이었다.
회사는 연습생이 유명연예인 되는 순간부터 그동안의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시작하는데, 때문에 아주 유명한 아이돌들도 데뷔 초반에는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데뷔까지에 들어간 경비와, 데뷔 이후의 앨범 제작비, 뮤직비디오 제작비, 프로모션 비용 등등을 모조리 갚을 때까지 소속 가수는 빚쟁이가 된다. 손익분기점을 넘는 순간까지 말이다.
흔히 여기서 회사와의 노예 계약 문제가 붉어진다.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는 유명 연예인을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과 연예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예 계약 이슈는 케이스마다 피해자가 다르다. 어떤 경우는 회사가 피해자일 때도 있고, 어떤 경우는 가수가 피해자일 때도 있다. 물론 가수가 피해자일 때가 훨씬 많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경우는 가수가 충분히 유명해지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나름의 인지도는 얻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정도, 아니면 간신히 넘긴 정도의 수준이 유지된다면, 당연히 회사는 계약을 연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가수는 당연히 회사를 옮기려고 할 것이다. 회사를 옮긴다면 새로운 회사에는 ‘빚’이 없기 때문에 훨씬 괜찮은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연예계 시스템이지만 되돌리긴 늦은 시스템이기도 했다. 한 명의 연예인이 키우는데 보통 10억에서 15억이 드는데, 그것을 회사가 전부 감당하긴 힘들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연습생 계약은 회사와 연습생 사이에서 직접적인 금전이 오가는 것이 아닌, 기회와 미래 가치라는 무형자산이 오가는 계약이었다.
두 번째 계약은 직접적인 금전이 오가는 계약이었다. 이것은 흔히 가수들이 소속사를 옮길 때의 계약을 생각하면 됐다.
즉, 가수는 소속사로부터 ‘계약금’을 받고 회사는 ‘활동 수익에 대한 배분’을 약속받는 구조였다. 회사는 활동 수익이 많아야지 자신들의 몫도 많아지니까 가수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서포터하게 된다.
연습생이란 개념이 약한 미국에서는 연습생에게도 계약금을 제시하는데, 오경 미디어가 이러한 회사였다.
오경 미디어는 연습생을 어지간한 회사의 가수처럼 대우해주기로 유명했는데, 연습생 계약 시에도 적정한 계약금을 제공했다. 이 계약금은 A&R팀에서 수치화한 포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는데, 계약금의 액수에 따라서 회사 내 연습생들의 서열이 갈리곤 했다.
그러니까 연습생 생활 3년차라고 해도 계약금이 1천만 원이라면, 갓 연습생으로 들어온 계약금 5천만 원짜리보다 서열이 낮아진다는 의미였다. 굉장히 냉혹한 시스템이었다.
이처럼 두 종류의 계약은 교환되는 가치가 달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회사와 가수(연습생) 사이에 금전적이든 비 금전적이든 무언가가 거래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상현이 전혀 오경 미디어의 발표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한 이유였다.
그는 연습생 계약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계약금은커녕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오경 미디어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서류상으로 상현은 연습생 계약에 합격했지만 계약금을 받지 않고 연습생의 권리를 포기한 사람이 된다.
‘적법한 대가 없이 권리만 요구하는 계약을 우리는 사기라고 부르지.’
사실 그가 세상 물정을 몰랐다면 오경 미디어의 술수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 어찌됐건 그는 오연주 차장과의 거짓 관계 설정을 했으니까. 세상의 엄청난 주목이 두려워 그 거짓을 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진짜로 오경 미디어에 소속되는 게 편하니까.
오경 미디어의 발표가 정말 자신을 향한 화살이라면 이러한 협박의 일환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상현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가 오연주 차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힘없는 고등학생이 대기업을 상대로 정당한 대가와 합당 처벌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말이다.
사고의 책임이 오경 그룹에 있으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오경 미디어가 모든 사실관계를 드러낸다고 해도 상현은 당당했다.
그리고 오연주 차장이 그녀의 말대로 일을 잘 처리했다면 그가 ‘연습생 오디션을 본 적이 없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러니 오경 미디어는 진실을 드러낼 수단이 없었다.
‘복잡하다. 복잡해.’
상현은 마지막 하나의 가능성까지 면밀히 검토하고 확신을 가졌다. 결국은 오연주 차장과 내렸던 결론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이것은 치킨 레이스였다.
먼저 겁을 먹고 호들갑을 떠는 쪽이 불리해지는 게임.
‘근데 왜 이렇게 찜찜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지?’
대기업의 행동이 너무 윽박지르는 식이라고 생각돼서 그런가? 막무가내로?
‘아니야. 이건 전사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홍경수 팀장의 라인이 개인적으로 벌인 일이야. 상대를 대기업이라고 보면 안 돼. 그들의 타겟은 38살의 사업가가 아니라 19살의 고등학생이니까.’
상현이 생각을 정리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얼마나 깊게 생각을 했던지, 벌써 배달이 올 시간이었다.
“네! 나갑니다!”
888 크루 멤버들은 한층 편해진 마음으로 상미의 졸업 축하 파티를 벌이고 다시 공연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광주 공연이 8일 남은 시점이었다.
***
상현은 임구현 변호사와 악수를 나눴다.
임 변호사는 상현과 전화 통화를 한 다음날 여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광주로 직접 내려왔다.
“요즘 인기가 대단하시더라고요. 잘 되시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습니다.”
“더 잘 되고 싶은데 오경 미디어가 갑자기 절 물어뜯네요.”
“그런가요? 그래도 대기업에서 상현 씨의 가치를 크게 생각하는 것이니까, 마냥 나쁘게 보시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상현이 거실 탁자에 앉은 임 변호사에게 유자차를 내왔다. 커피숍에 가면 편하겠지만 이제는 워낙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커피숍도 함부로 가기가 힘들었다.
“오연주 차장님은 내일 출장을 끝내시고 한국으로 오십니다.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서 연락이 잘 안되죠?”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많이 와서 핸드폰을 못 봤더니 부재중이 찍혀있더라고요. 제가 전화하니 또 핸드폰이 꺼져있고.”
잠시 한담이 오가던 둘의 대화는 곧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우선 이상현 씨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오경 미디어에 소속되지 않으시려는 거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상현 씨만 오케이 하신다면 오경 미디어는 888 크루 전체를 산하 레이블 식으로 섭외할 마음도 있다고 합니다.”
“산하 레이블이라면 저희 중에 사장님이 나오겠네요? 바지 사장이겠지만.”
“그렇습니다. 완전히 독립될 수는 없겠지만 나름의 방어권과 경영권이 주어질 것입니다. 뮤지션들이 레이블을 운영하는데 경영권이란 표현을 쓰니까 좀 이상하군요.”
“저는 그 어색함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정상적인 계약서에 독소조항 한두 개만 있어도 계약서는 무너져버리죠.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의 음악을 오경 미디어가 팔려고 하는 순간 888 크루는 더 이상 888 크루가 아닙니다.”
상현은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임 변호사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경 미디어가 왜 이정도 스케일의 일을 벌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음, 산하 서브 레이블 체제 때문입니다.”
임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오경 미디어가 계열사 독립 이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업이 ‘서브 레이블’ 체제라고 했다.
이것은 회사 산하에 다수의 레이블을 거느리며 운영하는 체제인데, 레이블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음반 제작에 집중하고, 오경 미디어는 배급과 투자,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현재 LOC와 오경이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배급과 유통이 대부분의 음원수익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오경 미디어에서는 이상현 씨를 새로운 문화 흐름의 중심에 선 레이블로 보고 있습니다.”
“888 크루가 그 정도로 평가를 받는다니 신기하군요.”
“아뇨. 888 크루가 아니라, 이상현 씨입니다.”
“네?”
임 변호사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일인 레이블. 오경 미디어에서 이상현 씨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입니다.”
“……별로 기분이 좋진 않군요. 다른 크루원들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저를 일인 레이블 취급한다면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해서도 안됐고요.”
“그건 저도 동감합니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것은 임 변호사였다.
“이상현 씨. 제가 왜 자꾸 오경 미디어에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아십니까?”
“……무의식 적인 줄 알았는데, 의도하신 건가요?”
“네. 의도한 것입니다.”
“어째서요?”
“이 영입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난데없는 임 변호사의 말에 상현의 표정이 굳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오연주 차장이 홍경수 팀장에게 붙었다는 것이었다.
“오연주 차장이 홍경수한테 붙었나요?”
“네? 아닙니다. 오연주 차장님은 이상현 씨를 많이 배려하시는 분입니다.”
“그럼 왜 제가 영입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계약서를 쓰셨잖습니까?”
“적법한 대가없이 의무만 요구하는 계약을 저희는 사기라고 부르죠. 오경 미디어는 연습생과 계약할 때도 계약금을 제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계약금을 받았나요? 저는 아무 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오경 미디어는 저를 영입했다고 내세울 근거가 없습니다.”
그때 임 변호사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상현은, 그동안 가슴 한 편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무의식의 정체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계약금…… 받으셨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계약금은 아니지만 오경 미디어에서 계약금이 ‘포함’되었다고 주장하는 돈을 받으셨지요.”
“……!”
상현은 오경 미디어가 들고 있는 패를 마침내 확인했다.
“사고 보상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당장 재무재표만 따져도 사고보상금과 계약금의 항목이 다르잖습니까? 사고보상금이 잡손실로 들어가는지 아니면 보상금이란 항목을 따로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영업외손실 아닙니까?”
임 변호사는 상현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대학의 기초회계만 수강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어쨌든 고등학생이 재무재표에 대해 지식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에 반해 계약금은, 계약금은 무슨 항목인지 모르겠군요. 제가 엔터테인먼트의 전자공시를 본 적이 없어서…….”
“계약금은 무형자산으로 포함이 됩니다.”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가수는 재무재표상 무형 자산으로 처리가 된다. 보통 엔터테인먼트의 무형 자산은 산업재산권, 소프트웨어, 전속계약금으로 이루어지는데, 이중 전속계약금이란 일정 기간의 소속을 약속받고 가수에게 지급한 돈이었다.
“그렇다면 더 명백한 증거가…….”
상현은 화가 나서 말을 하다가 멈췄다.
문득 오경 미디어가 오경 엔터에서 독립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만약 계열사 독립 와중에 장난질을 쳤다면? 대기업의 공공연한 분식회계도 건들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사법부인데 고작 가수 한 명이 오경 그룹을 들쑤실 수 있을까?
상현이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황증거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군요.”
“진실은 수면 아래에 붙어있고, 거짓은 수면 밖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이상현 씨가 계약서를 썼고, 돈을 받았다는 것이 오경 미디어에서 내세울 수 있는 팩트입니다.”
< Verse 25. 스타(Star) - [12.03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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