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24. 2006년 (完) >
겟 댓 머니 - 탈의실 - 광주 업으로 이어진 히트곡의 퍼레이드로 관객들은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상현이 관객들에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본래 서브 스테이지 무대의 라인업이었던 거 알고 계시나요?”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여기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저희는 오늘 오전에 AIMMF와 출연계약을 해지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를 보기 위해 용인으로 찾아오신 팬 여러분을 위해서 버스킹을 기획한 것이고요.”
상현이 천천히 쇼 비즈니스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코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퍽 더 쇼 비즈는 광주에서 음악 하던 888 크루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그러나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힙합에 별 관심이 없지만, 힙합 더 바이브를 통해서 888 크루를 접한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러니 외칠 수밖에 없네요.”
상현이 크게 외쳤다.
“Fuck Tha Show Biz!”
스피커를 타고 토해지는 욕.
이것은 단순한 타인을 깎아내리는 비방이 아니라, 상처받은 가족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상현이 한 번 더 크게 외쳤다. 관객들이 상현의 목소리에 이끌려 따라했다.
"Fuck Tha Show Biz-!"
퍽 더 쇼 비즈!
“FUCK THA SHOW BIZ-!"
퍽 더 쇼 비즈!
“FUCK! THA! SHOW! BIZ!”
음절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상현의 외침과 함께 원곡인 N.W.A의 Fuck Tha Police 인트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MC REN이 N.W.A 법정의 검사와 판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의 법정은 N.W.A 법정이 아니라, 888 크루의 법정이었다.
-M.C.Ren, Ice Cube, and……
“Fuck Tha muthaFuckin Biz-!”
아주 잠깐의 정적 뒤로 강렬한 땜핑감의 드럼이 쾅쾅거리며 스피커를 때려대기 시작했다.
민호의 손을 거쳐, 원곡보다 훨씬 하드코어한 질감의 드럼이 덧입혀진 Fuck Tha Show Biz였다.
퍽 더 쇼 비즈, 퍽 더 쇼 비즈
쇼 비즈가 바란 건 좀 더 큰 독자의 Needs
커리어를 시작한 어린 래퍼의 이미지를
팔아먹고 관심 빨아먹으려던 추잡한 Skillz
상현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랩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하이톤의 목소리가 더욱 서늘해졌다.
이 노래는 부름으로 인해서 분노를 털어내는 곡이 아니었다. 부르면 부를수록 분노가 배가되는 곡이었다.
But 난 계승했거든 N.W.A
이분법의 시작. 이제 난 두 분류에
잣대로 세상을 판단함
엿같은 쇼 비즈 대 888
내 증오는 아주 정당함
888 크루는 알지만 쇼 비즈니스와의 일을 몰랐던 기자들이 연신 머리를 굴려대기 시작했다.
사실 메이저 언론사들은 잡지사를 언론사로 보지도 않았고, 에디터를 언론인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888 크루를 윤리의식 없는 언론인에 의한 피해자로 보도하면 괜찮은 그림으로 나올 것 같았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좀 알아봐야겠지만, 888 크루가 얼마나 영리한 팀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난 아냐 랩 스타. 밴드 폄하 비슷한
말 한 적 없어. 쇼 비즈. 직업의식과
정직함을 버리고, 돈으로 자극한 G-spot
돈에다 상상 임신한 황주철, bitch sister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 따라 불렀다. 사실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이라면 대부분이 이 노래를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스크린으로만 888 크루를 접해온 이들에게 퍽 더 쇼 비즈는 꽤 큰 충격이었다. 젠틀하고 유쾌한 이미지의 상현이 보여줬던 기존의 랩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거부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얼마나 화가 났을까라는 공감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근 4시간동안 함께 비밀이야기를 나눠온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상현의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가사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정격출력이 아닌 최대출력으로 맞추어 놓았던 스피커가 방전되어버린 것이었다. 비트를 토해내던 두 스피커 중 좌측의 스피커가 먼저 꺼져버렸고, 이어서 몇 초 간격으로 우측의 스피커가 꺼졌다.
관객들도 당황했고, 888 크루 멤버들도 당황했다.
하지만 상현은 당항하지 않았다.
여전히 쌩쌩히 살아있는 마이크 스피커를 통해서 날카로운 상현의 무반주 랩이 시작되었다.
오케이, 이해할 수 있어 쇼 비즈는 네겐 직장
니가 필요했던 건 실적과 눈에 보이는 성과
그렇다고 희생양을 만드는 건 안 되지
같이 엿먹어 조작질 컨펌한 쇼 비즈 사장 개새끼
고요한 정적 속에서 상현의 랩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발걸음의 끝에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쇼 비즈니스와 황주철 편집장이 서있었다.
눈물을 흘리던 여학생은 내 친동생
넌 날 진짜 화나게 만들었어. 황주철. 개새끼. 좆 돼
숨 쉬는 부분도 까먹어가며 랩을 토해내던 상현이 숨을 헐떡였다.
상스러운 욕이었지만, 그 누구도 상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학림 시인조차 그랬다.
본디 가족이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상현이 마지막 4마디를 씹어뱉었다.
그 순간 상현의 목소리 위로 7명의 목소리가 덮여졌다. 8명의 목소리가 한 목소리처럼 토해졌다.
888, 정당히 한국 힙합의 왕좌 계승 준비 중
원한다면 엿같은 노이즈 마케팅까지 계승해주지 뭐
"What are you doing, my son!"
쇼 비즈 배에 칼 꼽고, Succeeding you, father.
매년 힙합엘이에서 전 회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하는 올해의 가사.
2005년 올해의 가사에 선정되었던 ‘Succeeding you, father’가 퍽 더 쇼 비즈의 끝을 알리며 퍼져나갔다.
관객들은 처음 듣는 강렬한 랩에 부르르 떨었고, 그 노래에 담긴 풀 스토리를 알게 됐다는 생각에 굉장한 공감대를 느꼈다.
힙합이 여타의 예술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부분이 래퍼의 모든 것을 훼손 없이 온전히 담아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퍽 더 쇼 비즈에는 한줌의 왜곡도 없는 상현의 분노가 들어있었다.
노래가 끝났음에도 섣불리 입을 여는 관중들이 없었다. 그제야 랩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상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노래는 호미에서 한 번 부른 뒤로는 무대 위에서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이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면 저희 팀의 분노나 감정 같은 것들을 쇼에 활용되는 것만 같았거든요.”
상현이 씩 웃었다.
“근데 여기는 자본이 개입된 쇼 같은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상현의 말에 뒤늦게 우레와도 같은 환호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박수소리도 들렸고, ‘퍽 더 쇼 비즈!’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크, 사실 나보다 상현이가 진짜 멘트가 죽인다니까.”
인혁이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말했다.
“형이랑 상현이의 멘트는 방향성이 다르죠. 이러니까 내가 멘트를 길게 못 친다니까?”
“넌 안치는 게 도움 주는 거야.”
인혁의 핀잔에 준형이 삐졌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준형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삐진 걸 풀었다.
길고 긴 환호성이 조금씩 사그라지자 상현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스피커가 나가버려서 오늘의 공연은 여기까지 해야 될 것 같네요. 사실은 마지막 곡이기도 했어요.”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6시에 시작했던 공연이 10시가 돼서야 끝난 것이었다.
“와, 벌써 4시간이 지난 거야?”
“아, 근데 아쉽다.”
관객들은 앵콜을 외치고 싶었지만 스피커가 나가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봤기 때문에 별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888번로를 따라 올라오는 자동차가 내는 소리 같았는데, 시야를 가리는 공중화장실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뒤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꽤 오래 부스럭거리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안 끝났지?”
관객들은 어두운 탓에 단번에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코트 쪽으로 들어서 조명이 비춰지는 순간 큰 호응이 터져 나왔다.
“뭐야? 인디 키드 아니야?”
“어? 진짜 인디 키드다!”
“인디 키드!”
자신들의 메인 스테이지 무대를 끝내자마자 온갖 장비를 싣고 달려온 인디 키드였다.
“뭐야?”
“이게 다 몇 명이야?”
정신없이 달려온 인디 키드 멤버들은 뒤늦게 스탠드를 둘러싸고 있는 관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메인 스테이지 관객이 3000명 정도였는데, 888 크루의 버스킹에 얼추 봐도 천 명 이상의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얘들이 서브 스테이지 관객 다 뺏어왔네.’
듣자하니 서브 스테이지에 모인 사람들이 500명이 채 안된다고 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이지 888 크루는 놀라운 매력을 가진 팀이었다.
“아무리 형들이 소속사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곳에 안부를 수가 있냐?”
인디 키드의 드러머 김웅각이 오자마자 상현과 준형에게 핀잔을 줬다.
“형들 메인 스테이지 서시잖아요.”
“거기는 그냥 보이 그룹, 걸 그룹 나와서 노는데 노인들이 끼어있는 자리였지. 우리가 놀 곳은 여기 아니냐?”
스태프인지 매니저인지 모를 사람들이 낑낑거리며 드럼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 혹시 힙합만 취급하나요? 밴드 노인네들은 못 끼어요?”
김웅각의 질문에 누군가 ‘네! 못 끼어요!’라고 대답했다. 금방 웃음이 터졌다.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당황했지만 김웅각은 노련했다.
“요! 요요! 체키라웃! 난 인디 키드! 키득키득!”
-우와! 개쩐다!
-랩 신! 랩 신!
“아니, 니네 도대체 어떻게 논 거야? 여기 연예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잖아?”
“형님, 여긴 연예인이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입장료 디씨 안 돼요? 연예인 디씨.”
한참 떠드는 사이 드럼 설치가 완료되었다. 김웅각이 드럼 세트를 확인하는 사이, 성질 급한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베이스가 들어왔다.
씩 웃은 인디 키드의 보컬 최태일이 스피커 위에 놓인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오늘이 지나면- 내 방의 물건들이 사라지겠지-
칫솔 하나와 슬리퍼 하나, 조수석을 채우던 너의 향기까지-
공중파 3사 음악방송에서 2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곡.
두 언더 뮤지션의 절묘한 조화가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고 평가받는 곡.
오늘이 지나면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어떡해!
여성 관객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끝난 줄 알았던 공연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기 시작했다.
비트를 틀 스피커는 죽어있었지만, 두 대의 마이크 스피커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최태일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후렴이 이어졌다.
엄청난 떼창이 이어졌다. 천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 중, 이 노래의 후렴구를 모르는 이가 없는 듯했다.
오늘이 지나면
안녕이란 두 글자로
함께 만든 시간의 성을 뒤로 한 채
우린 떠나가겠지
후렴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상현의 랩은 상현의 랩이 치고 들어왔다.
미안,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거
그만둬야 할 때가 왔어
Real Hiphop 888st ‘축제’는 그렇게 12시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
……필자는 랩 음악에 대한 부끄러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이 깨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8명의 뮤지션이 만들어낸 앙상블을 듣는 것만으로 저절로 열린 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 앙상블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승리였다.
궁극적으로 무엇에 대한 승리냐고 묻는다면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웠지만, 888 크루의 음악이 원하는 것은 인디펜던트 문화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 승리는 거대자본이 투입된 LOC 그룹의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이나 오경그룹의 AIMMF(Asia Independent Movie & Music Festival)보다 값진 승리였다고 확신한다.
Busk라는 단어는 ‘길거리에서 연주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스페인어 Buscar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Buscar는 ‘헤메다 혹은 추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Buscar의 어원을 조금 더 추적해보면 인도유럽어의 Bhudh-sko라는 ‘이기다 혹은 정복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됐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어원인가.
때문에 필자는 888 크루가 한 겨울밤의 꿈처럼 벌였던 공연에 Bhudh-sko라는 부제를 달아주고 싶다.
(생략)
그러니 인디펜던트 문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888 크루의 2006년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Verse 24. 2006년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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