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7. 오늘이 지나면 >
상미의 긴 설명에 준형과 인혁이 눈을 끔뻑거렸다. 마치 ‘소인은 금시초문이구먼요.’하는 머슴의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본 상미가 강한 어조로 상현에게 말했다.
“오빠, 이 두 오빠 짤라버려.”
“그럴까?”
“응, 차라리 내가 랩을 배울게.”
“그럼 일단 너가 랩을 배우는 동안만 데리고 있다가 버리자.”
“콜.”
남매의 대화에 악덕 사장에 대항해 노조를 만들 거라고 악악거리던 준형과 인혁은, 시끄럽게 굴지 말라는 민지의 옆구리를 꼬집기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상현아, 하던 말 계속해.”
“음, 그럼 다들 돈이란 주제가 어렵다는 거죠?”
“말했잖아, 랩 하는 거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매력적으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거지. 솔직히 뻔하게 가사 쓰면 지금 당장도 쓸 수 있어. 난 상관 안하는 돈. 오직 내 음악의 혼. 그거면 다 만족. 자본에 안 팔아 내 영혼. 뭐 이런 식?”
아프다고 투덜거리며 의견을 제시하는 준형의 이야기에 상현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앨범이랑 굿즈 판매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알고 있지?”
“너가 저번에 말해줬잖아. 이것저것 다 빼도 오천만원이 넘는다며.”
인혁이 덧붙였다.
“솔직히 좀 많이 벌긴 했다. 우리가 수익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맞아요. 우리보고 돈 벌레라고 부르는 힙합 팬들도 있잖아요.”
“음…….”
888 크루의 음악은 인정하지만 티셔츠부터 시작해서 도매스틱 브랜드의 판매를 꼬투리 잡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888 크루 멤버들은 돈독이 올랐다는 일부 힙합 팬들의 목소리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장난기 넘치던 크루원들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본 상현이 마음속으로 슬쩍 웃었다.
누구 한 명도 ‘뭔 상관이야. 돈만 벌었으면 장땡이지.’라고 말하는 멤버들이 없었다. 그만큼 다들 돈보다 음악이란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다들 그 돈으로 뭐하고 싶어요?”
“뭐 딱히 하고 싶은 건 없는데? 내 생각에 돈은 그냥 공포탄 뒤의 실탄 같은 거야. 쓸 일은 별로 없지만 있음으로 인해서 든든해지는 것?”
군필자인 김환의 말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민지 누나는요?”
“나는 음악을 만들 때는 돈과 분명하게 분리해야한다고 생각해. 근데 음악으로 돈을 버는 건 당연하다고 봐. 일종의 가치측정의 기준이라고 봐야 할까? 축구 선수들이 아름다운 드리블로 가치를 평가받는 게 아니잖아. 진짜 가치는 주급이지.”
해외축구를 팬인 민지의 대답이었다.
그때 뭔가를 생각하던 준형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번에 생긴 돈으로 녹음 장비 사는 건 어때요? 솔직히 오피셜 부틀렉 음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잖아요. 녹음할 때는 좋은 음질이라고 생각했는데 믹스다운하고 mp3형식으로 바꾸니까 음질 손상도 심하고.”
“오, 그러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듣고 보니 그러네. 오천 만원이면 전문 스튜디오 못지않게 풀 세팅할 수 있지 않을까?”
“세종악기사 사장님한테 한 번 물어보자.”
준형의 제안에 크루원들의 분위기가 떠들썩하게 바뀌었다.
상현은 불과 얼마 전에 ‘자본과 인기를 알게 된 888 크루가 어떻게 바뀔까?’라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크루원들의 표정을 보니 그의 걱정은 기우인 듯했다.
상현이 말했다.
“됐네요.”
“뭐가 돼? 녹음장비?”
“곡에 지금 한 이야기들을 써요.”
“응?”
“돈을 주제로 만들 곡 말이에요.”
“뭔 말이야? 장비를 사자는 이야기를 쓰라고?”
“네.”
인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재차 반문했다.
“가사에 ‘오피셜 부틀렉으로 번 돈으로 장비를 산다’라는 말을 쓰라고?”
“네.”
“그게 뭐야. 그건 정리된 가사가 아니잖아. 돈을 어떻게 다룰 거라는 정리된 이야기를 써야지.”
“꼭 정리된 가사를 쓸 필요가 있나요? 아직 888 크루는 성장 중이고, 가치관이 확립된 팀은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그냥 지금 이 순간, 저희가 돈이라는 사회적 약속에 느끼는 감정을 토해내면 될 것 같아요. 그게 혼란이라면 혼란을, 그게 거부감이라면 거부감을, 그게 기쁨이라면 기쁨을.”
상현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총 3곡을 만들어야 해요. 우선 각자 돈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편을 나눠요. 그러면 저희끼리 곡으로 설전을 벌일 수가 있죠. 예를 들면 저와 준형이가 돈은 음악에서 중요하다는 가사를 쓰고, 인혁이 형이나 환이 형이 돈보다는 음악이 중요하다는 가사를 써서 배틀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와, 너 진짜 나쁘다. 그럼 코드네임은 개무시 당하는 건데?”
“저희 적이 언제는 다른 팀이었나요. 거울 속의 888 크루였죠.”
“크…… 그건 그렇지.”
그때 하연이 물었다.
“상현아 네 의견은 아직 말 안했어. 너는 돈이 뭐라고 생각해?”
“나? 나는…….”
상현은 말꼬리를 늘리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상념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글쎄…… 돈이라면…….”
상현의 이전 생은 돈에 매몰된 생애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장이 됐다는 중압감에 목숨 걸었던 공부. 상미의 환경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학업 환경만을 위해 행했던 행동들.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처절하리만큼 잔인한 시스템에 휘청거리던 나날들. 이어지는 창업, 그리고 성공.
돈은 벌었지만 떠나간 상미. 더 이상 돈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 과거에 해왔던 대로 돈을 벌었던 자신.
마지막으로, 태양에 접근하다 날개가 녹아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밑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했던 시간들.
상현은 생각을 이어가며 상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고 소리치며 떠났던 상미는 이제 없다. 대신 그의 옆에는 오빠 알기를 쥐뿔로 알며 맨날 틱틱거리지만, 너무나 착한 그의 유일한 가족이 앉아 있었다.
‘아니, 유일한 가족은 아니지.’
7명의 가족. 888 크루.
그래서 상현은 돈을 단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었다. 가족의 안위를 지켜주고 꿈을 이루게 해주는 존재.
“도구. 돈은 도구지.”
상현은 문득 2009년에 전 세계 힙합 팬들의 마음을 홀렸던 제이지의 가사를 떠올렸다.
But I can't teach you my swag
You can pay for School but you can't buy class
하지만 난 내 멋을 가르쳐줄 수 없어.
넌 학교에 돈을 낼 순 있지만 클래스를 살 순 없어.
티아이(T.I), M.I.A, 칸예 웨스트(Kanye West), 제이지(Jay-Z), 릴 웨인(Lil Wayne).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2009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불렀던 스웨거 라이크 어스(Swagger Like Us)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제이지의 가사는 괜히 제이지가 동부 힙합의 왕, 뉴욕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스키니 진은 못입네, 돈이 다 안 들어가니까.
주머니가 좁은 스키니 진에는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돈을 벌었다며 자기과시를 한 제이지는 곧장 또 하나의 펀치라인을 던진다.
넌 학교에 돈을 낼 순 있지만 클래스를 살 순 없어.
여기서 Class는 ‘수업’이라는 의미와 ‘수준’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제이지는 남들이 아무리 돈을 들이부어도 그들의 스웨거 수준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었다. 모든 힙합 팬들이 또 한 번 제이지에게 반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현은 자신이 언젠가는 제이지의 클래스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남들이 들으면 농담하지 말라며 웃을 게 분명한 소리였지만,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Get that money, Go to School."
돈을 벌어서, 학교에 가겠다.
겟 댓 머니, 고 투 스쿨. 돈은 단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이용해 클래스를 얻겠다는 상현의 포부가 담긴 문장.
이것은 888 크루의 상업성을 욕하는 리스너들에게 해주는 말임과 동시에, 돈에 매몰되었던 과거와 다른 삶을 살겠다는 선언인 것이었다.
“무슨 말이야? 돈 벌어서 학교에 가?”
상현은 우민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정신없이 공책을 펼쳐서 마구 떠오르는 가사와 라인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단어, 비유, 상징, 라임 등등이 공책 위로 정신없이 흩뿌려졌다.
‘작두 탔네.’
뮤지션들이 흔히 작두 탔다고 표현하는 영감의 빅뱅. 888 크루 멤버들은 상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20분이 넘게 가사를 써내려가던 상현은 정신을 차리고는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만약 지금이 2009년이라면 이 가사는 스웨거 라이크 어스의 제이지에게 보내는 답가가 될 수 있었다. 한국이란 작은 나라의 뮤지션이 감히 제이지를 레퍼런스하는 패기를 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2005년이었다. 자신의 가사는 미래를 겨냥한 것이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 아무도 없다.’
그 순간 상현은 제이지의 가사를 훔쳐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제이지의 기나긴 커리어 중에서도 특히 손꼽히는 가사로 평가받는 두 라인.
스키니 진은 못입네, 돈이 다 안 들어가니까.
넌 학교에 돈을 낼 수 있지만 클래스를 살 순 없어.
자신이 두 라인을 훔쳐 쓴다면 그 찬사를 가져올 수 있을까?
과거에도 느꼈지만 음악을 훔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든 가사를 외우고 있지도 않았고, 비트를 만들어 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사는 달랐다. 가사는 외우고 있는 부분만 골라 쓸 수 있었다.
이것은 상현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하지만 상현은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제이지의 가사를 훔쳐 일시적으로 그의 클래스에 탑승한다고 해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현이 원하는 것은 떳떳한 자신의 음악으로써 그의 영웅들과 대면하는 것이었다. 스타즈 레코드는 어린 시절 상현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니 제이지나 그 외의 래퍼라고 안 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상현은 문득 한국 힙합 씬이 너무 좁다고 느꼈다. 미국에서는 힙합 뮤지션들이 백만 장, 천만 장의 앨범을 파는데 한국에서는 많아봐야 십만 장이다.
‘미국에 가고 싶다.’
시스템을 개척해나가는 한국도 좋았다. 하지만 상현이 보다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미 시스템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 벌이는 무한 경쟁에 가까웠다.
물론 막상 미국에 가서는 무한 경쟁에서 패배하고, 또 패배해서 도태된 3류 래퍼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시장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도 남았고, 중학생인 상미도 돌봐야 한다. 또한 888 크루가 있는 이상, 혼자 훌쩍 미국으로 떠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었다.
상현은 온갖 휘몰아치는 상념에 푹 잠겨 있다가 뒤늦게 현실로 돌아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작업실이 고요했다.
인혁이 상현에게 물었다.
“작두는 다 탔냐?”
상현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솔로곡 제가 해도 돼요? 꼭 하고 싶은 노래가 생겼어요.”
“겟 더 머니…… 뭐라고 했지?”
“겟 더 머니, 고 투 스쿨.”
“좀 촌스러운데?”
“랩 들으면 그런 생각 안들 걸요?”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하는 말과는 달리, 크루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상현에게 솔로곡을 양보해주었다. 상현은 크루원들의 배려가 정말로 고마웠다.
그 뒤로 크루원들은 매일 같이 작업실에 모여서 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가사에 대해 긴 토론을 시작했다.
888 크루 특유의 토론 방식인 공격적인 비판은 매일 밤 거침없이 진행되었고, 그러는 사이에도 상현은 차곡차곡 곡을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힙합 더 바이브 팀에서 내려와서 그들의 작업 과정과 작업 방식을 카메라로 찍어가기도 했다. 돌아온 토요일에는 크루 멤버 전체가 서울로 올라가서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었다.
힙합 더 바이브를 후원하는 브랜드 상품을 홍보하는 촬영이라서, 전문적인 광고가 아니었다.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드디어 3곡의 윤곽이 확실히 잡히고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상현은 인디 키드 드러머 김웅각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공중파 음악 방송에 함께 출연해달라는 제의였다.
‘오늘이 지나면’이 싱글 차트 1위를 찍은 날 밤이었다.
< Verse 17. 오늘이 지나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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