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103화 (103/309)

< Verse 15. 흐름 >

888 크루의 영상은 꽤나 산만했다. 아직 정리가 안돼서 그런지, 공연 장면이 나왔다가 연습실에서 노는 장면이 나왔다가 녹음하는 장면이 번갈아 나왔다. 안 그래도 졸려 죽겠는데 집중이 잘 안됐다.

헤드폰을 벗으며 드레드가 말했다.

“형, 이 새끼들이 뭐하고 노는지는 관심 없으니까 인터뷰장면만 볼 수 없어?”

“나도 이거 처음 보는 거라서 몰라. 888은 내가 커버하는 팀이 아니라고.”

김병우가 투덜거리며 휠을 돌렸다. 화면이 휙휙 넘어가더니 배경이 다시 공연장에서 작업실로 바뀌었다. 드레드가 찾는 인터뷰 장면이 나오는 듯했다.

드레드가 목에 걸었던 헤드폰을 다시 머리에 뒤집어썼다.

김병우는 소리를 키우면서도 드레드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888 크루와 코드네임이 광주 타이거즈 대기실에서 주먹다툼을 벌였다는 사실은 방송관계자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사이가 사이인 만큼 코드네임은 888 크루를 욕하고, 888 크루는 코드네임을 욕할 것이다. 대놓고는 아니겠지만 인터뷰에서도 서로에 대한 폄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드레드는 지금, 욕을 찾아듣고 있는 거다.

‘이 새끼 변태 아냐? 지 욕은 왜 찾아 듣는 거야? 고소거리라도 찾나?’

김병우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드레드는 888 크루의 인터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인터뷰는 888 크루의 모든 멤버가 공평하게 했지만, 이상미나 우민호, 김환, 오민지는 가이드 편집 때 거의 편집 당했다.

때문에 영상에는 거의 준형, 상현, 인혁, 하연의 인터뷰 밖에 나오지 않았다.

‘천본앵 새끼 이름이 박인혁이었지? 이 새끼는 그냥 웃기는 병신 컨셉이고. 하영인가? 이년은 얼굴마담이네.’

음악성에 포커스가 맞춰진 인터뷰는 대부분 신준형과 이상현의 것이었다. 리더라는 포지션 때문인지 신준형의 인터뷰가 먼저 나왔다.

목소리만 나오는 작가가 ‘888 크루의 작업방식은 어떤 식이죠?’라며 첫 질문을 던졌다.

“우선은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받죠. 저희가 늘 하는 말이 ‘우리의 적은 어제의 888 크루다’거든요. 근데 원래 의도는 맨 인 더 미러(Man in the mirror), 거울 속의 나를 이기자는 것이었는데 이게 약간 변질되었어요. 거울 속의 우리 크루원과 싸우는 경쟁의식이 생긴 거죠.”

“그러니까, 크루원들을 라이벌로 생각한다는 건가요?”

“아뇨. 약간 달라요. 크루원들을 라이벌로 생각한다는 것은 같이 음악 하는 순간에도 경쟁의식을 갖는다는 건데, 저희는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상현이를 이기려고 부단히 노력을 많이 해요. 그런다고 현재의 상현이가 못하길 바라진 않죠. 대신 어제의 상현이보다 더 잘하려고 하는 거죠. 이해가 가시나요?”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그럼 곡 컨셉이나 진행방향은 어떻게 정하시나요? 아무래도 리더가 이야기를 먼저 꺼내나요?”

“일관된 방법은 없어요. 그냥 매순간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곡을 만들 때야 작업습관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888 크루가 모여서 곡을 만들 때는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럼 888 크루가 작업을 하는 방식은 정해져있지는 않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저희가 멤버들도 많고, 각자 음악색이…….”

신준형은 888 크루의 작업 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드레드는 처음에는 뚱하니 듣고 있었지만, 어느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인터뷰에 깊게 몰입했다.

그도 힙합을 3년 했지만, 888 크루는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회사의 작곡가와 A&R팀에 의해 앨범 컨셉이 정해지고, 그에 맞춰 작사가들이 써준 가사를 받아온 코드네임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때 작가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힙합 더 바이브 출연이 확정된 ‘코드네임’이나 ‘바운스 라임’ 같은 오버그라운드 힙합 팀을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이었다.

드레드가 상념에서 깨어나 영상 속 신준형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질문이 좀 애매하네요. 코드네임과 바운스 라임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는 건가요? 아니면 오버그라운드 힙합에 대해 묻는 건가요?”

“음, 먼저 오버그라운드 힙합에 대해 물을게요. 오버그라운드 힙합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흔히 언더그라운드를 인디펜던트라고도 하잖아요. 인디펜던트는 자본에서 독립된 예술을 뜻하는 말이고. 그러니까 오버그라운드는 그 반대로 자본과 결합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오버그라운드 래퍼들이 더 어려울 수도 있죠.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이 자본에 오염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 자체가 없는 사람들을 예술가로 보진 않아요. 그런 사람들은 그냥 씬을 좀먹고 편견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죠. 래퍼가 아니라.”

“그럼 코드네임과 바운스 라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 돌려 말하려니 어렵네요.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요. 방송 나가도 상관없어요. 형들, 상관없죠?”

카메라가 줌 아웃 되고 뒤에서 구경하던 888 크루 멤버들의 얼굴이 잡혔다. 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리더 마음대로지 뭐.”

“음…… 우선 바운스 라임은 개인적으로 돌핀님이랑 여성 래퍼 에디션님은 괜찮게 생각해요. 스킬적으로는 아쉬운 면이 있지만, 랩에서 자신만의 바이브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음악적인 센스가 꽝인 거 같아요. 앨범이 너무 구리고, 비트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듯한 벌스가 더러 있어요. 만약 이러한 문제가 소속사에서 정해준 앨범 컨셉과 비트 때문이라면 그 분들의 음악적 문제는 아니겠지요.”

“그럼 바운스 라임의 신각님은요?”

“어…… 별로요. 그냥 별로요. 이거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네요.”

“다음으로, 코드네임은요?”

신준형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래퍼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도 싫어요. 립싱크로 뻥긋거리는 게 랩은 아니잖아요? 뭐, 뛰어난 춤 실력과 잘생긴 외모는 인정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나요?”

“제가 아까 그랬죠. 하고 싶은 음악 자체가 없는 사람들은 예술가로 보지 않는다고. 코드네임은 랩의 기술적인 면을 떠나서 음악가적인 마인드가 없다고 봅니다.”

그 뒤로 신준형은 스타즈 레코드나 힙합 더 바이브 포맷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준형의 인터뷰를 본 드레드가 입가를 뒤틀며 비웃음을 지었다.

딱 생각한대로 대답했다. 욕이라도 섞고 싶었겠지만 카메라 앞에서 그럴 용기는 없었겠지.

‘지들은 얼마나 대단한 음악 한다고.’

드레드를 비롯한 코드네임 멤버들이 무등 경기장 공연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에 ‘888 크루’를 검색해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검색 결과가 나왔지만, 앨범 한 장 낸 적 없고, 음악 방송은커녕 메이저 축제에 한 번 나온 적이 없었다. 그나마 나온 메이저 축제인 월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에는 이상현 혼자 경연 팀으로 나왔다. 페이 한 푼 못 받았다는 이야기다.

아마 무등 경기장 공연 페이도 자신들이 888 크루보다 3배는 넘게 받았을 것이다.

‘888도 다른 놈들이랑 다를 바 없지.’

드레드는 그동안 자신을 욕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지겹도록 봤다.

그런데 웃긴 점은, 입으로는 ‘언더그라운드 정신’ 운운하면서 막상 거대 기획사랑 계약할 기회가 오면 빼는 팀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단 한 팀도.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고, 고집 있는 것 같지만 언더그라운드는 결국 언더그라운드. 지겹게 가난한 동네다.

드레드는 지난 분기 자신의 정산 금액이, 지금까지 888 크루가 번 돈의 몇 배는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 사이 888 크루한테 공연 섭외가 좀 가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어차피 잠깐이다.

‘이 새끼는 뭐라고 했나 볼까?’

드레드는 신준형 다음으로 나오는 이상현의 인터뷰에 집중했다.

상현의 인터뷰는 준형과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다만 작업방식을 묻는 대신, 쇼 비즈니스 이야기나 L&S와 함께 참가했던 전주 월디페 이야기 등등을 물어봤다.

그리고 마침내 코드네임의 이야기가 나왔다.

“신준형 씨한테 했던 질문을 또 한 번 드려야겠네요. 바운스 라임과 코드네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현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바운스 라임의 메인 래퍼 돌핀의 미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돌핀은 현재 노예 계약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고 싶지도 않은 음악을 하면서 말이다.

한 5년쯤 뒤에 현재의 회사에서 나오고 힙합 레이블을 차리는데, 재미있게도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지향하는 레이블이었다. 그리고 꽤 잘됐다.

그 뒤로 돌핀은 랩은 하지 않고, 제작자 겸 비트메이커로써 언더그라운드에 매진했었다. 바운스 라임을 싫어했던 힙합 팬들도 몇 년쯤 뒤에는 돌핀을 ‘불쌍한 돌고래’라고 불렀다.

노예 계약으로 고생했던 것, 하기 싫은 음악을 했던 것, 언더그라운드로 돌아온 이유 등등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상현은 바운스 라임에 대해 이야기하며 준형과 비슷하게, 하지만 돌핀에게는 좀 더 우호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으로, 코드네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준형 씨와는 의견이 좀 다르네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무슨 의미죠?”

“코드네임이 자신들이 맡고 있는 포지션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상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드레드의 사과 전화를 받고서 코드네임이 아주 작은 존재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888 크루와 그들이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88 크루가 그리는 동그라미는 코드네임이 그리는 동그라미와 결코 겹치지 않는다. 888 크루의 이상향은 감히 코드네임이 침범할 여지조차 없는 곳이다.

케이엠넷의 선민아 작가는 상현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아니면 더 자극적인 그림을 원하는 것인지 재차 물었다.

“그럼 코드네임을 뮤지션으로 인정한다는 것인가요?”

“네. 인정 못할 것도 없죠.”

상현의 말을 듣고 준형이 인상을 팍 쓰며 물었다.

“진짜? 진짜로?”

“어. 진짜로.”

작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힙합 더 바이브를 촬영하면서 코드네임을 888 크루의 라이벌로 인정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음, 실력적으로 888 크루가 우위라서 라이벌로는 보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럼 어째서 라이벌이 아니죠?”

“저희가 코드네임과 붙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실력을 겨룰 일도 없죠.”

“네? 힙합 더 바이브는 랩으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고, 코드네임과 888 크루는 함께 출연하는 데도요?”

작가의 반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상현이 말했다.

“음,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가시겠네요. 권투선수는 체조선수와 영역을 다툴 수가 없어요. 스포츠라는 큰 틀을 제외하면 권투와 체조는 전혀 다른 세상이니까요. 훈련방법도, 목표도, 마인드도 다르죠. 물론 제가 코드네임을 인간적으로 싫어하는 것처럼 권투선수가 체조선수를 싫어할 수도 있죠. 하지만 권투선수는 체조선수와 경기로 한판 붙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죠.”

상현이 재차 말을 이었다.

“저희는 권투선수고, 코드네임은 체조선수에요. 힙합 더 바이브는 뭐, 전국체전쯤으로 생각할까요? 같은 체전에 출전한다고 해도 코드네임과 겨룰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선민아 작가는 스케일이 다른 이상현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상상도 못한 말이었다.

신준형이 ‘코드네임은 뮤지션이 아니다’라고 정의할 때만해도 개인적인 악감정이 느껴졌다. 사실이 어떻든 말이다.

그러나 이상현은 아니었다.

그는 놀랍도록 냉철한 시선으로 코드네임과 자신들의 차이를 구분 짓고 있었다.

‘이토록 신랄한 악평이 있을까? 그것도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더욱 놀라운 점은 이상현의 태도에서 오만이나 자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888 크루를 따라다니면서 느꼈지만, 그들은 열정적이지만 겸손하다. 자신감에 가득 차있지만 노력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이상현이 있었다.

“어…….”

결국 선민아는 한참동안 다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 Verse 15. 흐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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