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94화 (94/309)

<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完) >

“형! 인혁이 형! 빨리 무대로 올라와요!”

“엉? 무대로?”

크루 멤버들은 벌써 중계차 밖으로 나와서 광주 업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광주 업 뮤직비디오는 베이스볼스토리를 통해 방송되지 않기에 중계차에서 볼 수 없었다.

“왜?”

“광주 업 해야죠.”

상현이 크루 멤버들을 재촉했다. 이제 뮤직비디오의 1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상현의 의도를 눈치 챈 888 크루 멤버들이 무대로 올라서자 스태프가 다가와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선 마이크는 4개 밖에 없는데, 어떡하죠?”

본래 광주 업의 공연진인 상현, 준형, 하연을 제외하면 한 사람만 마이크를 들 수 있었다.

“코드네임 분들이 쓰는 헤드셋이라도 드릴까요?”

“으으, 헤드셋은 피시방에서만으로 충분해요.”

박인혁이 몸서리를 쳤다. 스태프가 마이크를 건네자 모두의 시선이 한 명에게 쏠렸다. 바로, 상미였다.

“상미야 이 마이크는 너가 써.”

“내가? 그래도 돼?”

“당연하지. 잘 할 수 있지?”

상현이 상미를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상미는 갑자기 긴장되는지 침을 꼴깍 삼켰지만, 무대에서 빼지는 않았다.

오늘 8명의 크루 멤버 중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상미뿐이었다. 우민호도 MPC와 함께 멋진 장면을 연출했었다. 상미 역시 888 크루의 멤버였고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혼자만 무대에서 동떨어졌다는 소외감을 느껴서는 안됐다.

크루 멤버들은 모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상미에게 마이크를 전달한 것이었다.

“가사 다 알지?”

“응. 근데 나는 언니 오빠들처럼 더블링 같은 거 연습 안했는데…….”

“지금 이 노래는 솔로곡이 아니라 888 크루가 부르는 노래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내키는 대로 부르면 돼. 가사 까먹어도 되고, 절어도 돼. 어차피 나머지 7명이 부르고 있을 거니까.”

상현이 상미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지지직 하는 노이즈가 들렸다. 그리고는 무대 위에서 불꽃이 팍 튀었다.

무대 위에 있던 멤버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어디냐! 썩 나오지 못할꼬!”

박인혁이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던 오민지가 인상을 팍 썼다.

후렴이 시작되었다.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업!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보다 헤르츠가 높은 풍선 부딪치는 팡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관중들 사이에서 ‘광주 UP!!!’이란 글자가 적혀진 몇 개의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타이거즈 서포터 김혜미가 약속을 지킨 것 같았다.

상현이 랩을 시작했다.

아니, 모두가 다 같이 랩을 시작했다.

광주역 도착 미녀들을 포착

예향의 도시답게 센스 있는 옷차림

무등산 정기가 내려앉은 도시

그 덕에 다른 곳보다 강한 억양 토씨

상현은 자신의 마이크를 인혁에게 던져줘 버리고는 상미와 함께 하나의 마이크로 신나게 랩을 불렀다. 피는 못 속이는지 상미도 랩을 제법 했다.

그 신나는 분위기에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미 뮤직비디오를 통해 접했던 노래이기에 집중도가 남달랐다. 와이커밍도 론리 로드도 성공적인 공연이었지만, 광주 업의 반응과는 비교할 수는 없었다.

덕 아웃에 있는 타이거즈 선수들, 인천 스카이 선수들, 스태프들, 구단 관계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업을 외쳤다.

“광주!”

업-!

“광주!”

업-!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후렴이 한 번 나오고 반복되려는 찰나에, 관중들의 시선에 누군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등번호 33번의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선수.

키가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진 선수가 방망이 두 개를 둘고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광수다!

-한광수--!

선수의 정체는 한광수 선수였다.

‘뭐야?!’

상현이 당황한, 하지만 신나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일전에 한광수 선수를 무대에 올릴 수 없겠냐고 고원국 대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고원국 대리는, 한광수 선수에게 물어는 보겠지만 경기직전의 컨디션을 망가트릴 수도 있는 일이라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었다.

상현이 재빨리 가사를 바꿔 불렀다.

광수 UP! 광수 UP!

빛 광 칠 수 광수 UP!

한광수가 두 개의 방망이를 마치 막대풍선처럼 부딪치며 호응을 유도했다. 관중들이 엄청난 소리로 응답했다.

신이난 한광수가 박인혁의 마이크를 뺐더니 직접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후렴구를 불렀다.

광수 UP! 광수 UP!

빛 광 칠 수 광수 UP!

사실 한광수는 광주 업 무대에 같이 서자는 제안을 받고 단칼에 거절했었다. 경기 전에 집중력이 흐려지기 때문이었다.

에이전시에서도 공연이 잘되면 이적생에서 광주 타이거즈맨으로 이미지가 확고해진다고 몇 번을 권했지만 한사코 거절했었다. 노래가 싫고, 무대에 올라가기 싫은 게 아니라 정말로 컨디션 조절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광주 업의 공연 무대를 보는 순간, 안 그래도 흥이 많은 한광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 친구가 얼핏 보여줬던 광주 UP 공연 동영상보다 만 배는 신나는 것 같았다.

광수 UP! 광수 UP!

빛 광 칠 수 광수 UP!

한광수의 투입은 더 이상 오를 곳 없어보였던 분위기가 더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왔다.

벌스 2가 시작되고 마찬가지로 888 크루의 떼창이 이어졌다. 하연과 준형은 정해진 틀 안에서 착실하게 백업 사운드를 쌓고, 더블링을 맞췄다. 나머지 멤버들은 정해지지 않은 틀 안에서 랩도 하고, 소리도 질렀다.

참이슬도 좋지만 우리 입엔 잎새주

순위는 상관없지 We love 광주 타이거즈

광주 UP. 광주 UP.

그래 자랑스런 고향 광주 LOVE

내 맘의 위치는 언제나 광주 옆

우리가 살며 완성하는 광주 업(業)

8명의 멤버들이 랩을 하다 보니 딜리버리는 완벽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이 노래를 듣는 만이천 명의 관중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방문해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을까? 그리고 옆에 나오는 가사를 읽어보지 않을까?

상현은 흐뭇한 상상을 하며 후렴구를 불렀다. 그는 오늘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돈이나 명예 등을 탐해서 만든 곡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추구하며 만든 노래가 가지는 힘을 말이다.

흔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하는 말이 있다.

백 명이 공유하는 콘텐츠를 천 명이 보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천 명이 보는 콘텐츠를 만 명이, 만 명이 보는 콘텐츠를 십만 명이 보게 만들기는 쉽다는 말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공유하게 되면 그 콘텐츠에는 유기성이 생기고, 스스로 퍼져나가는 힘을 갖게 된다. 페이스북이 그토록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지금 888 크루의 공연을 보는 사람은 최소한 만 명이었고, 전국에서 TV를 통해 야구를 보는 사람은 그보다 더욱 많았다.

지금의 공연은 888 크루가 마침내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전국구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는 일이었고, 이름을 널리 알리기 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이었다.

비 더 언더그라운드(Be the Underground).

상현이, 상미가, 하연이, 준형이, 인혁이, 환이, 민호가 마지막 후렴구를 그게 외쳤다.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

코드네임 멤버들의 대기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매니저와 고원국 대리, 안철승 팀장이 그들을 덕 아웃 옆에 대기시킬 때까지 멤버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

-광주 업! 광주 업!

-한광수!

-팔팔팔! 팔팔팔!

엄청난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함성은 코드네임 멤버들의 기를 죽였다.

그들은 단 한 번도 힙합 음악이 이정도의 환호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정해준 컨셉에 맞춰 랩을 연습했고, 회사에서 써준 곡과 가사를 수용하는 정도. 그게 딱 코드네임 멤버들이 해온 것이었다.

그들은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힙합 음악의 한계를 느꼈었다. 한국 음악 시장에서 통용되기는 어려운 장르. 아주 명확한 한계점을 느꼈고,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리는 것이었다.

“아, 씨발…….”

론리 로드가 시작되고 광주 업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코드네임 멤버들이 처음 뱉은 말은 욕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부담감의 토로였다.

‘이 뒤에 공연을……?’

그동안 코드네임의 노래 중 가장 성공한 곡은 ‘놀아보세’라는 노래였다. 음원 사이트에도 단 몇 시간 뿐이지만 1위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연말 가요대제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놀아보세를 부른 적도 있었다.

그때 그들의 앞 타임에는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처럼 무대에 올라가기 싫고, 부담감을 주는 가수는 없었다. 물론 888 크루와의 다툼이 있었고, 서로 같은 장르의 음악을 한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형, 엠알 준비했죠?”

“첫 곡이 놀아보세 야.”

원래 오늘은 놀아보세를 부를 생각이 없었다. 놀아보세는 파티곡의 특성상 강렬한 퍼포먼스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춤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이커밍을 보고는 놀아보세를 재빨리 셋 리스트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아보세 정도면 히트곡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론리 로드에 이은 광주 업이 무등 경기장에 뿌려놓은 미친 분위기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뺄 수는 없었고, 코드네임 멤버들은 무대에 올라가야 했다.

“안녕하세요! 코드네임입니다!”

멤버들이 다 같이 소리를 지르자,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행사를 수백 번을 뛰었지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환호성이었다.

코드네임 멤버들은 그 환호성에 기가 살았다.

그래, 888 크루가 아무리 랩을 열심히 해도 자신들은 이미 인기가 있는 연예인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착각으로 밝혀지는 것은 단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 놀아보세의 인트로가 나올 때만 해도 환호성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888 크루가 보여준 미칠 듯한 힙합 바이브를 너희도 보여줘! 라는 격려와 기대의 메시지였다.

-노, 노, 노, 노, 어디 한 번 놀아보세!

-노, 노, 노, 노, 어디 한 번 놀아보세!

무대가 시작되고 잔뜩 독이 오른 코드네임 멤버들의 안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점점 이상해졌다. 처음에는 환호해주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시들해지더니 마침내 어정쩡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관중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3개의 메인스피커를 통해 토해지던 888 크루의 ‘진짜 목소리’와 녹음이 된 목소리를 분간 못할 리가 없었다.

“뭐야, 립싱크네.”

“재미없다.”

“쟤들 연예인 아니야? 뭐 이렇게 못해?”

심지어 코드네임의 본래 팬들도 무대가 심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온 힘을 다해서, 상현의 표현처럼 영혼을 토해가면서 하는 음악과 녹음실에서 녹음한 음악은 사운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다수의 엔지니어링, 프로듀서가 붙은 코드네임의 음원은 매끄럽고, 듣기 좋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놀아보세 이후로 이어지는 2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유명세가 덜한 2곡은 정말 처참한 반응을 받았다.

3곡을 공연하고 퇴장하는 코드네임 멤버들의 고개는 푹 숙여져있었다.

***

888 크루 멤버들은 공연을 끝내고, 타이거즈 구단에서 마련해준 자리에서 야구를 관람했다. 성인들은 신나서 맥주를 들이켰고, 미성년자들은 사이다를 마시며 닭다리를 잡아 뜯었다.

“저, 저기 혹시 싸, 싸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크, 물론입니다! 사진도 같이 찍을까요?”

888 크루가 모여 있는 관람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핫 플레이스로 변했다.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들었다. 멤버들은 관객들과 함께 야구를 보며 사진을 찍고, 싸인을 하고, 악수를 하고, 잡담을 나눴다.

“우와아아아!”

타이거즈 선수가 안타를 쳤을 때는 함께 소리를 질렀고, 한광수가 타석에 들어서서 응원가가 나올 때는 신나게 노래를 함께 불렀다.

-딱!

경기는 재미있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그러나 응원전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은 광주 타이거즈는 거짓말 같이 1차전을 패배…… 할 뻔했으나, 9회 말에 터진 한광수의 2점 홈런이 경기를 뒤집어버렸다.

-광수 업! 광수 업! 빛 광! 칠 수! 광수 업!

한광수 선수의 응원가가 무등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888 크루 멤버들도 목이 찢어져라 함께 응원가를 불렀다.

<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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