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
“팀장님 방금……?”
“으잉?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고원국 대리와 안철승 팀장이 코드네임 대기실 옆의 복도에서 창문을 통해 공연을 구경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코드명 닥쳐?”
“명이 이름이니까, 코드네임 닥쳐?”
“히야, 쇼 비즈니스도 까더니만 가차 없고만. 저 놈들 원래 저렇게 전투민족이냐?”
“원래 랩하는 애들이 쌈닭들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안철승이 히죽 웃었다.
본래는 코드네임도 무대 옆의 중계차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몰라서, 코드네임을 무대와 제일 가까운 1층의 인포 센터에 대기 시켜놓았다.
“저거 중계차에 있었으면 2 라운드 붙고 있었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면 코드네임 애들 얼굴 밤탱이 돼서 올라가지 않을까요?”
심리적으로 888과 더 친밀한 안철승 팀장과 고원국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쟤들 립싱크하는 거 맞지? 화장은 뭐 당연히 했겠고.”
“그렇죠. 코드네임 측 AR확인 해봤는데, 공연용 AR이 아니라 그냥 발매 음원을 가져왔던데요?”
“흠, 쟤들도 가사 들었겠지? 무슨 반응이려나.”
“글쎄요? 이제라도 라이브 준비하지 않을까요?”
“그런 근성이 있을까?”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더니 매니저가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팀장님, 혹시 곡 좀 지금 바꿀 수 있을까요?”
“네? 아, 뭐 공연용 엠알이 준비되어 있다면 어려울 건 없죠.”
“엠알은 저희가 드린 CD에 함께 들어있습니다.”
“그래요? 원국아, 매니저님이랑 빨리 가서 음향 팀에 전해라. 매니저님 이놈 따라가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여러 가지 의미의 한숨을 쉰 매니저가 고원국 대리와 함께 음향 팀으로 향했다.
***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888이 떴으니 전부-
- 소리 질러!
- 소리 질러!
관객들의 열띤 호응과 함께 황인수의 드럼이 와이커밍의 끝을 알렸다. 오민지 - 박인혁- 김환의 꽉 찬 3 벌스로 이루어진 와이커밍이 마침내 끝이 났다.
팡팡! 하는 막대 풍선 부딪치는 소리와 와아아 하는 함성이 섞여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준 플레이오프라는 지역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이미 기분이 업 돼있었고, 그런 그들의 반응은 관대했다. 처음 보는 가수, 처음 듣는 노래임에도 환호가 대단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의 일등공신은 포문을 연 오민지의 랩이었지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광주 타이거즈의 팬인 888 크루라고 합니다!”
또 한 번 관객들이 소리를 질러주었다. 와이커밍이 관객들에게 선사한 신나는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었다.
박인혁과 김환의 인사가 끝나자 준비된 민지의 멘트가 시작되었다.
“저, 저희는 오늘 총 세 곡을 공연하, 합니다.”
민지의 목소리가 메인스피커를 통해 메아리처럼 울렸다. 공연이 끝났음에도 긴장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오히려 벌스를 할 때가 더 여유로웠던 것 같다. 실수를 했지만 말이다.
“방금 공연한 노래 제목은 와이커밍입니다. 여, 여러분이 여기 오신 이유는 프, 플레이오프를 즐기기 위함이죠?”
국어책을 읽는 듯한 민지의 딱딱한 목소리에 관중들이 소리를 질렀다.
-준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아니에요!
-야구 모르냐!
“어…….”
말실수에 당황한 민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렸지만, 박인혁과 김환은 실실 쪼개며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오민지는 관객들에게 반응하지 않고 암기한 멘트를 상기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남은 두 곡도 아주 신나는 노래들이니까, 플레이오프를 즐기시는 여러분들에게 맛있는 애피타이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준 플레이오프라니까!
-준 플레이오프!
관객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민지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어차피 우승은 광주 타이거즈!”
민지는 스스로가 뱉은 말에 깜짝 놀라서 인천 스카이의 덕아웃 쪽을 쳐다보았다. 껌을 씹고, 해바라기 씨를 먹으면서 공연을 보고 있던 인천 스카이 선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 엄마야.’
인천 스카이의 선수들은 어차피 마케팅의 일종이라고 별생각 없이 보고 있었지만, 민지 혼자 찔끔해서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센스 있는 카메라 감독에 의해서 전광판으로 제대로 송출됐다.
관객들의 웃음이 터지고는 곧 광주 타이거즈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둥둥둥둥! 하는 북소리가 터졌다.
-어차피 우승은 광주 타이거즈!
-어차피 우승은 광주 타이거즈!
곧이어 원정 팬들이 있는 3루 쪽에서 ‘아닌데- 아닌데-’ 하는 인천 스카이 1번 타자의 응원가가 들렸다. 그러자 광주 타이거즈의 팬들이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우승은 광주 타이거즈!
그 모습은 이원생중계 중인 OMB의 베이스볼 스토리에도 방송되었다.
“재미있는 장면이네요?”
“이런 게 직접 관람을 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야구장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아쉽게 직접 관람의 기회를 놓치신 시청자 분들께 저희 베이스볼 스토리가 재미있는 장면을 전해드릴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어떻게든 ‘축하공연부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라는 슬로건을 홍보하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공연이 시작되면 조용히 있어야 하기에,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시청자분들에게는 공연진이 대놓고 한 팀을 응원하는 모습이 어색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축하공연은 준 플레이오프처럼 대결 양상을 띠게 기획되었습니다. 광주 타이거즈의 오랜 팬인 888 크루와 인천 스카이의 오랜 팬인 코드네임이 사전행사에서부터 맞붙는 것이죠. 물론 화합을 의미하는 원로가수 김수희님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경쟁 팀들은 공교롭게도 힙합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그게 또 재미있는 포인트죠.”
아나운서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광주 타이거즈와 인천 스카이 팬들의 응원전은 이어졌다. 홈구장인 광주 타이거즈 팬들의 목소리가 훨씬 컸지만 인천 스카이의 팬들도 기죽지 않았다.
그 사이에 상현과 준형, 하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응원전을 펼치던 광주 타이거즈 팬들이 의도적으로 소리 높여 환호했다. 광주 타이거즈와 888 크루라는 함성소리가 함께 들렸다. 인천 스카이의 팬들이 야유를 했지만 수가 달려서 야유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오빠 미안해요.”
무대에서 내려온 오민지가 박인혁과 김환에게 말했다.
갑자기 뭔 소리인지 의아해하던 박인혁과 김환이 감을 잡았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아, 정신이 너무 멍해서…… 근데 제가 정확히 무슨 실수를 했어요? 비트가 맞게 끝나는 거 보니까 16마디는 맞게 한 것 같은데…….”
“으이구, 나중에 공연 영상 봐. 어차피 OMB 스포츠에서 재방송 해주겠네.”
“아…… 방송 탄다고 엄마한테 자랑했는데…….”
“연습이 부족해서 그래, 연습이.”
오민지가 울상을 지었고, 박인혁과 김환은 이때다 하며 그녀를 놀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장난을 치던 박인혁의 귀에 ‘안녕하세요!’하는 준형의 인사말이 들렸다.
***
상현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상은 간단했다. 넓고, 많았다.
준형이 준비했던 멘트로 888 크루를 소개하고, 광주 타이거즈를 응원했다. 하연은 물론 인천 스카이도 응원한다며 재미있는 경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양쪽의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고, 광주 타이거즈 응원석에서는 ‘그래서 누가 이겼으면 하는데?’라고 장난 섞인 함성을 질렀다.
‘정말 많다.’
클럽 호미에서 공연 할 때 관객은 천이백 명이 남짓이었다. 그리고 천이백 명도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많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이곳은 만이천 명이다.
‘우리가 한국 래퍼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거 아니야?’
허황된 추측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Lonely Road.
외로운 길.
얼핏 생각하면 이별이나 사랑노래 같은 제목이었다. 하지만 Lonely Road는 그동안 888 크루가 만들어온 곡 중에서 가장 스웨거(Swagger)한 곡이었다.
론리 로드. 혼자 걷는 길.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이가 없기에, 길 위에는 오로지 나 홀로.
상현은 마이크를 잡고 되도 않는 농담을 지껄이고 있는 준형을 쳐다보았다. 가끔 저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준형은 확실한 리더 감이었다.
사실, 원래 오늘의 공연 곡은 론리 로드가 아니라, 스트롱 스윙(Strong Swing)이라는 곡이었다. 스트롱 스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야구의 주제가라는 확실한 목표를 잡고 기획한 곡이었다.
스포츠에는 그 스포츠의 특징을 살린 주제가들이 있다. 예시 중 하나로 복싱에는 영화 록키의 OST로 너무나 유명한 Survivor의 ‘Eye Of The Tiger’가 있다. 곡명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록키가 이를 악물고 운동을 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빰- 빰빰빰- 빰빰빰-’ 이라는 멜로디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었다.
농구로 따지면 김민교가 부른 마지막 승부의 OST인 ‘마지막 승부’가 있다. 누군가는 슬램덩크의 OST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떠올릴 수도 있고.
상현은 그러한 노래들을 벤치마케팅해서 ‘스트롱 스윙’을 야구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만들고 싶었다.
‘철저하게 콘텐츠 승부를 하자. 이건 엄청난 기회야.’
‘그러니까 야구장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를 만들자는 소리지?’
상현은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번이 둘도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콘텐터의 목표는 언제나 외부 노출인데, 준 플레이오프는 굉장한 화제성을 가진 노출 기회니까.
때문에 상현과 준형, 하연은 L&S에게 적당한 속도의 연주곡 가이드를 받아서 후렴구와 가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공연 연습할 때 빼고는 거의 곡 작업에만 매달렸다.
스트롱 스윙은 멜로디가 짙게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훅과, 야구 용어로 쓰인 쉬운 랩이 8마디씩 3번 나오는 노래였다.
마침내 나온 결과물은 꽤 들어줄만했다.
이거다! 하는 확신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번 플레이 되다보면 관중들의 귀와 입에 붙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그러나 스트롱 스윙이 완성됐을 때, 준형이 말했다.
‘이곡은 아니야. 이걸로 공연할 바에는 난 안하겠어.’
‘뭐? 왜? 곡이 나빠?’
‘곡은 좋아.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면 그동안 888 크루가 쌓아온 뭔가가 무너질 거 같아.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표현을 못하겠어……. 하지만 확신해.’
상현은 준형의 말을 듣고 하루 종일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준형은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 노래를 부른 뒤에도 예술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냐는 질문을.
‘본질적인 문제.’
상현이 만든 스트롱 스윙은 ‘음악’을 위한 곡이 아니었다. 이 노래를 통해 얻을지도 모르는 ‘보상’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다.
상현은 힙합엘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돈과 명예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척도일 뿐이라고. 그것들을 위해 음악을 하지 않는다고.
위대한 스포츠 스타들은 ‘승리’를 갈구하지 우승상금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화가들은 ‘완성’을 갈구하는 것이지 ‘판매금액’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노력에 대한 대가이지, 노력의 모든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이것이 예술과 비예술의 진정한 차이가 아닐까? 설령 같은 일은 한다고 해도 말이다.
상현은 그제야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보상을 위해 음악을 하다보면, 더 큰 보상을 받지 않는 한 열정과 동기를 유지할 수 없다.’
멋지게 표현하는 건 실패했지만, 결국 준형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지우자.’
‘뭘?’
‘스트롱 스윙, 지우자고.’
‘아니, 뭐…… 지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정말?’
상현의 반문에 준형이 웃으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곧 스트롱 스윙의 음원 파일과 레코딩 프로그램에 남은 프로젝트 세이브가 삭제되었다.
‘그럼 우리 뭐 부르지?’
‘저번에 거의 만들어놓은 거 있잖아. 벌스만 가이드 떠놓은 거. 가제가 독주였지?’
‘그걸 준 플레이오프 공연 때하자고? 그건 신난다기보다는 장엄하게 짓누르는 분위기잖아. 그리고 아직 완전히 완성된 것도 아니잖아.’
‘할 거야? 안 할 거야?’
‘으으, 해. 해버리자. 나도 하연이도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가사 컨셉이나 후렴구가 완벽하지 않은 부분은 어떡하지?’
‘컨셉은 외로운 길. 가사 몇 마디 안 남았잖아.’
오늘의 공연곡인 론리 로드는 그렇게 탄생한 곡이었다.
<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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