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박인혁은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무대란 것은 높고 독보적인 느낌을 준다. 가수들은 관객들을 내려다볼 수 있고, 관객들은 가수들을 올려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는 가수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을 준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친절한 무대가 아니었다.
야구장은 특성상 관중들이 높은 곳에서 경기를 내려다보게 설계되어 있다. 오늘 공연 무대는 야구장의 정중앙에 설치되었는데, 덕분에 단 한 명도 그들보다 낮은 곳에서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었다.
리허설 할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냥 엄청나게 넓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넓은 공간에 관객이라는 평가자가 들어서자, 박인혁은 전혀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크…….”
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위압적이었다.
“왜요? 형?”
박인혁의 의상과 마이크, 인이어를 확인해주던 상현이 물었다.
“아니야. 그냥 너무…… 멋있어서.”
사실 크루 멤버들에게는 둘러댔지만 인혁의 부모님은 법조계에서 아주 유명한 분들이셨다. 그런 분들이 법조계 황금 라인에서 먼 광주에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자신이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뜻대로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나마 지방 거점 국립대학에 진학하며 체면치레는 할 수 있었다. 부산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니지, 그랬으면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겠네.’
그래서 박인혁은 음악이 좋았고, 888 크루가 좋았다.
무대 위에 있을 때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들었고, 자신이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3 때까지 늘 부모님의 그늘에 눌려 살던 그에게, 무대에서 받는 박수갈채란 놀랍도록 짜릿한 것이었다.
그래서 코드네임에게 화가 났다. 동료들을 무시하고, 위협한 것도 모자라서 힙합이란 문화를 망치고 있으니까.
“뭐가 멋있어요?”
“그냥, 랩이란 거 진짜 멋지지 않냐. 순전히 내 이야기만 하는데 남한테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형 오늘 컨셉 이상하네요. 정신 차려요.”
“형이 가끔은 센치해지는 남자야.”
“공연직전에 센치해지면 문제지.”
김환이 핀잔을 주었다. 박인혁이 크 하는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큐 싸인이 나지 않아서 카메라도, 조명도 오프 상태다. 그러니까 주변의 광경들이 더 잘 보인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지?’
인혁은 내년이면 대학교 4학년이 된다. 이미 늦을 만큼 늦었지만, 내년부터는 정말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되어야한다. 그리고는 검사의 길을 걷든, 변호사의 길을 걷든 다시는 이쪽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평생, 아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지금의 시절을 기억하면서.
그래서 그는 무대에 설 때면 남들이 모르는 각오를 세웠다. 그건 그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는 주문 같은 거였다.
‘비 더 언더그라운드(Be the Underground).’
자신이 음악을 하는 목적은 돈이나 성공 같은 것이 아니다. 비 더 언더그라운드.
누군가는 한국 힙합 언더그라운드에 ‘박인혁’이란 사람이 새겼던 흔적을 기억하기를.
***
-광고가 한 타임 더 들어가면서 80초가 밀렸어요. 카메라에 빨간불 들어오면 조명 먼저 켜지고, 지미집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비트가 나올 거예요. 아셨죠? 공연 160초 전이에요. 공연진 외에는 무대에서 퇴장해주세요.
인이어를 통해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OMB의 ‘베이스볼 스토리’는, "The Perfect Weather for late October baseball"이라는 오프닝 멘트로 유명한 FOX의 ‘CHEVY PREGAME'의 방식을 차용했다. 스튜디오와 야구장의 이원생중계를 통해서 아주 사소한 것에도 해설을 곁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888 크루의 공연 역시 TV 광고가 끝나는 순간에 맞춰서 들어가야 했다.
“누나, 내려갈게요. 파이팅!”
민지의 긴장을 풀어주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준형이 스태프의 말을 듣고 내려가려했다. 그러자 민지가 준형을 잡았다.
“주, 준형아!”
“왜요?”
“나, 나 어디보고 공연해야 해?”
오민지는 준형이 내려가려고 하자 눈앞이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클럽 호미 때도 긴장을 했지만, 지금은 아예 느낌이 달랐다. 5대의 카메라와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어딜 보고 공연을 하냐고요? 그야 당연히…….”
관객을 보라고 말하려던 준형은 그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의 무대는 너무 넓었고, 관객은 너무 멀었다. 카메라를 보고할 자신은 없었고, 관객을 보자니 위를 봐야 했다.
-공연 100초 전.
민지의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
준형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누나, 지금까지 공연 몇 번 했죠?”
“길거리 공연까지 따지면 다, 다섯 번 정도?”
“어디가 제일 재밌었어요?”
“그야 클럽 호미지. 아니다. 뮤직비디오 찍을 때 했던 거리공연이 더 재밌었다.”
“자기 전에 그날 공연 생각한 적 있죠? 왠지 그날 있었던 관객들 얼굴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고?”
“어? 응. 그렇지. 꿈도 꿔봤어.”
“그럼 여기가 구시청 사거리라고 생각해요.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공연 60초 전. 지금 당장 공연진 외에는 무대에서 퇴장해주세요.
“아니면 카메라 감독님 말 무시하고 눈감고 해버려요. 구시청 사거리를 떠올리면 쉬울 거예요. 화이팅!”
스태프들이 내려가라고 미친듯이 손짓했다. 준형은 다급히 말하고 무대 밑으로 뛰어내렸다. 공연 후에 바로 철거해야하는 무대라서 높이가 높지 않았다.
‘구시청 사거리?’
민지는 뮤직비디오 촬영 중의 길거리 공연을 떠올렸다. 그녀가 참여한 커피머신으로 오프닝을 열었고,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예정에 없던 Eight, Eight, Eight도 불렀다. 자신이 랩 할 때, 지나가던 여고생들이 ‘저 언니 멋있다.’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공연 30초 전. 조명 온.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전광판처럼 생긴 조명이 뒤에서 켜졌다. 낮이라서 환하진 않았지만 주황색과 초록색이 섞인 조명이 앵글을 더 멋있게 만들었다.
-공연 10초 전. 지미집 리프트.
소형 크레인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지미집 카메라가 부드럽게 허공으로 올라왔다.
‘가장 재밌었고, 즐거웠던 순간.’
민지가 마이크를 꽉 쥐었다. 어느새 덜덜 떨리던 손과 무릎이 진정이 되어있었다.
-5, 4, 3, 2, 1. 음향 온. 마이크 온.
갑자기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비트가 터져 나왔다.
잡담을 나누고 있던 관객들의 시선이 일순간 무대로 쏠렸다.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광주! 타이거즈!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와이커밍.
와이커밍의 비트는 듣는 이로 하여금, 괜히 고개를 까딱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관객들이 막대풍선을 팡팡 치며 박자를 즐겼다.
3개의 메인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거대한 비트.
그 사이로 파고드는 L&S의 연주.
밴드의 리얼 사운드가 컴퓨터 사운드의 빈곳을 꽉 채우며 단단한 질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리듬 감각이 탁월한 황인수의 드럼이 미친 듯이 춤췄고, 방민식의 일렉 기타가 유려한 멜로디를 통해 쾌감을 이끌어냈다. 그 뒤로 용준의 베이스와 미주의 키보드가 따라 들어오며 비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보여줄 준비됐지?’
L&S의 멤버들이 연주를 통해서 묻는 것 같았다.
와이커밍(Why Commin)의 포문은 심플하면서도 신나는 오민지의 후렴구가 열었다.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888이 떴으니 전부 소리 질러!
민지의 날카로운 고음과 준형, 환의 저음이 서로 맞물리며 후렴구를 채우기 시작했다. Ho-! 부분에는 L&S 멤버들이 백업 마이크를 통해 다 같이 소리를 질렀다.
금방 관객들이 Ho!를 타이밍 맞춰 따라 하기 시작했다.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888이 떴으니 전부 소리 질러!
여기 왜 왔어? 무엇을 위해서 왔어? 지금 왜 서있어?
언뜻 보면 래퍼가 공연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묻는 말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의미도 있었다. 888이 떴으니 전부 소리질러라는 가사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가사의 진짜 의미는 888 크루 멤버들이 연습실에서 만나면 항상 하는 말이었다.
‘에이, 오늘 나 녹음할랬는데 왜 왔어? 뭐 녹음하려고? 그럼 빨리해 왜 멍청히 서있어.’
멤버들이 녹음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그 곡에 맞는 가사를 쓰고, 끼어든다.
‘왜 Why for이야? What For이나 For What이 맞잖아?’
‘Why로 통일감을 주려는 시적허용이겠지.’
‘여기 Ho! 할 때 박자를 조금만 밀어 봐요, 누나.’
‘밀라고? 내 생각에는 분할녹음해서 아예 당겨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레이백보다는 싱코페이션이 더 어울리는 비트야.’
그렇기 때문에 888 크루의 곡에는 솔로곡이라는 게 없었다. 설령 자신이 기획하고 녹음한 곡이라도, 그 안에는 멤버들의 영감과 손길이 녹아있는 것이었다.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Why Come, Why For, Why Stand. Ho-!
888이 떴으니 전부 소리 질러!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던 순간.’
민지는 준형의 조언과 달리 구시청 사거리의 길거리 공연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준형의 조언을 무시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녀에게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던 순간이 그 곳이 아닐 뿐이었다.
‘아, 너 박치야?’
‘오빠는 길치잖아!’
‘요! 난 길치, 넌 오민치!’
‘이 인간이 미침?’
언제나 유쾌한 크루의 오빠들.
‘오, 이거 비트 죽이는데요? 가이드 떴어요?’
‘들어볼래?’
‘제목이 뭐에요?’
‘커피머신!’
항상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동생들. 그들을 생각하자 오민지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던 순간.’
그녀는 888 Crew의 작업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 화려한 곳.
그 어떤 신나는 공연보다 신나는 곳.
우리들의 공간.
민지가 랩을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시선은 작업실에 둥그렇게 앉아있는 멤버들을 향해 있었다.
남들의 기대는 때론 지뢰
발목을 붙잡곤 놓치를 않네.
공연의 뒤엔 내 인생의 미래
에 대해 고민해 생각 중인 로뎅.
민지는 자신이 888 크루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준형이나 상현과 비교하면 떨어진다는 표현도 민망할 정도다.
그래서 가끔은 ‘쟤도 888 크루지?’라는 힙합 팬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난 광주 Not 홍대, 내 도시의 솟대
호미에서 보여준 건 내 절반도 못돼
여전히 못된, flow로 남을 혼내
근데 혼나는 애는 거울 속에 나네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한국에 드문 여성래퍼라는 면책권 덕분에 비판을 받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팀원들을 보면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우리의 상대는 타인이 아니고, 거울 속의 나라는 것.
어제 작업실에 있던 내가 오늘의 상대인 것이다.
Girl in the mirror. 내 신에게 빌어
내게서 랩 뺏어간다면 병명은 실어(失語)
남들이 기대하는 만큼, 우린 그 정도는 못해
그거보다 두 배는 해야 직성이 풀리네.
그러니까 그냥 하면 된다. 상현이 말했던 것처럼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은 목표의 부산물이다. 그들이 할 일은 표현하는 이다. 랩을 뺏어간다면 말을 못하는 사람들처럼.
난 마누엘, 난 가능해, 원래 인생은 다 그래,
라는 반응에, 남 다른 해, 답을 또 탐구해
날 가늠해, 보려는 다른 애, 들의 행동은 따분해
내가 바보래, 맘대로 해, 대신 그 입 좀 다물래
폭풍 같은 16마디가 지나갔다.
민지는 ‘다물래’라는 마지막 단어를 뱉고 나서야 자신의 랩이 끝났다는 걸 인지했다.
‘뭐, 뭐야? 끝났어?’
순간 너무 놀라서 마이크를 놓쳐버릴 뻔했다.
<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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