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세 명한테 동시에 얻어맞은 루키가 나가떨어졌다.
“미친 새끼들이!”
루키가 나동그라지자 코드네임 멤버들이 쇼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레드가 던진 재떨이가 상현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고, 그 모습을 본 인혁이 달려들어 드레드의 뺨을 후려쳤다.
“이런 씨발!”
나동그라졌던 루키가 일어나자마자 김환이 달려들었다. 루키는 다시 바닥에 처박혔고, 우성이 김환을 걷어찼다.
“뭐하는 거야!”
“그만! 그만!”
때마침 대기실로 들어온 코드네임의 매니저와 악기를 최종점검하고 온 우민호, 방민식, 용준, 황인수가 깜짝 놀라 두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덕분에 싸움은 더 커지지 않았다.
“놔! 놔봐! 저 개새끼들이!”
매니저에게 붙잡힌 코드네임의 우성이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전후사정은 모르지만 무조건 코드네임의 잘못일 거라고 생각한 매니저의 필사적인 만류를 뿌리치진 못했다.
우성은 매니저에게 붙잡힌 채로 욕을 퍼부었다.
“이런 씨발 놈들이! 너희 우리가 누군지 알아? 어디 거지같은 촌구석에 처박혀서 같잖은 음악 하는 새끼들이!”
“뭐! 어쩌라고! 앵무새마냥 회사에서 써준 노래에다가 춤만 추는 백댄서 새끼들이 감히 누굴 욕해!”
“뭐? 이런 씨……!”
“왜? 회사에서 그 뒤에 이어질 욕은 안 알려줬냐? 내가 알려줄까!”
박인혁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욕을 퍼부었다. 항상 유들유들하고 부드러운 박인혁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얼굴에다가 얼마나 분칠을 했으면 주먹에 분이 묻어? 아예 립스틱도 바르지 그랬냐?”
박인혁이 루키와 드레드를 때렸던 주먹을 보면서 소리 질렀다. 그러자 옆에서 욕을 하고 있던 준형이 욕을 하다말고 간신히 웃음을 삼켰다.
“아 형, 웃기지 말아요.”
“아니, 시발. 이거 봐.”
박인혁이 내민 주먹에는 그의 말처럼 허연 분가루들이 묻어있었다. 후- 하고 입김을 부니 분가루가 휘날렸다.
“흩날려라 천본앵이냐 시발?”
결국 준형이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그들을 붙잡고 있던 L&S 멤버들과 김환, 우민호도 난데없는 박인혁의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 거렸다.
그 모습에 코드네임 멤버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평소 남자다운 이미지와 반대로 두터운 화장을 하는 게 콤플렉스였던 그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코드네임 멤버들이 다시 욕을 뱉었지만 아까처럼 쉽게 달려들진 못했다. 아까는 사 대 사였지만 지금은 L&S까지 합쳐서 사 대 팔이다.
“씨발 새끼들! 너네는 이제 좆 된 거야. 너네 우리가 누군지 알지? 우리 기획사가 어딘지 알아?”
“어이구 무서워라. 뭐? 고소라도 하시게?”
박인혁이 비아냥거렸다. 루키가 이를 갈며 말했다.
“어디 계속 지껄여봐라. 태연한 척 하고 있는데 속으로 존나 쫄리지?”
“고소하려면 마음껏 해봐. 어디 어떻게 되나 한 번 보자.”
박인혁이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자 코드네임의 매니저가 안절부절 못했다. 이미 사건을 벌어졌고 어떻게든 해결해야하는데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게다가 박인혁이란 사람이 말하는 게 심상치가 않다.
뻥카가 아니라 진짜 뭔가 있는 거 같다.
매니저가 쭈뼛쭈뼛 888 크루에게 다가갔다.
“저,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그러나 상현이 다가오는 매니저를 저지했다.
“매니저님은 괜히 봉변당하신 기분인 거 아는데, 저 새끼들이 사과할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미친 새끼! 우리가 사과를 왜해? 먼저 주먹 휘두른 게 누군데?”
“너네가 먼저 미주 누나 때렸어? 안 때렸어? 사내새끼가 되가지고 여자를 때려? 얼굴에 분칠하니까 성정체성에 혼란이 왔냐?”
미주를 때렸다는 말에 앞뒤 상황을 정확히 모르던 L&S 멤버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험악해졌다. 또 한 번 고성이 오갔다. 이번에는 소란을 듣고 기겁해서 뛰어온 고원국 대리가 싸움을 말렸다.
“개새끼들. 너네 콩밥 먹을 준비해라.”
고원국 대리의 중재로 마침내 상황이 정리될 때쯤 루키가 이를 박박 갈며 박인혁에게 말했다. 그러자 박인혁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 한 번 해봐. 우리 부모님이 아주 잘나가는 검사와 변호사이시거든?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
“저, 저랑 먼저 말씀하시죠?”
검사와 변호사란 단어가 나오자 코드네임의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며 박인혁에게 달려왔다. 루키를 비롯한 코드네임 멤버들도 표정이 바뀌었다.
사실 코드네임은 전 소속사에 있을 때 큰 사고를 쳐서 계약이 파기되었었다. 게다가 막대한 금액의 위약금까지 물어줘야 했었다.
그때 코드네임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그들을 영입한 회사가 오경 ENT였다. 때문에 코드네임과 오경 ENT 간의 계약서에는 격투기선수의 계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폭력금지조항도 있었다.
물론 상대가 만만하다면 오경 ENT에서 적당히 구슬릴 수 있다. 하지만 현직 검사와 변호사를 부모로 두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누가 더 큰 잘못을 했는지는 따져봐야 알겠지만, 먼저 여자를 때리는 CCTV가 공개되면 코드네임은 그야말로 몰락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코드네임의 기세가 한층 누그러졌다. 888 크루 역시 연신 죄송하다는 매니저와 제발 참아달라는 고원국 대리의 얼굴을 보며 이성을 찾았다. 상현은 상미와 미주, 하연, 민지를 살폈다. 다친 곳은 없었다.
폭력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주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참는다는 선택지는 생각조차나지 않았다. 미주에게 손을 댄 저 자식을 죽여 버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상현은 여기 있는 그 누가 같은 상황에 처해도 똑같이 행동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니까.
“형, 지금 당장 나가서 대기실 다른데 잡아와요. 저 새끼들 얼굴 보기 싫으니까 최대한 빨리.”
“으, 응. 알았어.”
드레드가 매니저에게 명령했다. 그 순간 상현이 멈칫했다.
“너…… 왜 그래?”
“뭐?”
뜬금없는 상현의 물음에 드레드가 인상을 팍 썼다. 버릇 적으로 담배를 물으려다 고원국 대리를 보고 재떨이에 던져버렸다.
그때 상현이 다시 말했다.
“왜 그러냐고.”
“뭐야 이 새끼는?”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대가리를 맞아서 머리가 돌았냐?”
뵈는 게 없이 싸울 때는 몰랐는데 드레드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쉬어 있었다. 상현은 저런 목소리를 잘 알고 있다. 술을 엄청 먹고 토하다보면 위액이 역류해서 목이 상하는 것이다.
사회초년생 때 회식이 끝나면 신입사원인 동기들의 목소리가 늘 저랬었다.
“그 목소리 공연을 한다고?”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드레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목소리로 어떻게 공연을 할 거냐고.”
“뭐야, 너 매니저 지망생이냐? 우리 매니져 하고 싶어?”
코드네임 멤버들이 드레드의 말을 듣고 비아냥 가득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대에 대한 걱정은 없어보였다.
상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자식들 립싱크하려는 거구나.’
어쩐지 드라이 리허설은커녕 드레스 리허설도 하지 않는다 싶었다. 코드네임이 립싱크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보컬이 많이 들어간 AR을 깔고 하는 줄 알았다. 힙합에서 립싱크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코드네임의 태도를 보면 인혁의 말이 맞았다. 그냥 백댄서.
힙합은 거리에서 탄생한 음악이고 원을 그리는 음악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나 코드네임은 말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새끼들이 한국 힙합하면 대중들에게 거론되는 팀이라니.’
상현은 문득 클럽 호미 공연의 뒤풀이 자리에서 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똥물을 한 바가지 뿌리면 그것을 씻어내려고 깨끗한 물 백 바가지가 필요해. 무슨 말인지 알지?’
상현은 이런 자식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오늘 코드네임의 공연을 보고 ‘저런 게 힙합이구나’라고 생각할 관객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더 이상 말을 섞기가 싫어졌다.
때마침 안철승 팀장과 코드 네임의 매니저가 들어와서 코드네임을 여분의 스태프 실로 이동시켰다.
“어디 공연 얼마나 잘하나 보자.”
“거지같은 음악 하는 새끼들이 해봤자 뻔하지.”
끝까지 이죽거리던 코드네임이 대기실에서 나갔다. 코드네임을 안내하던 안철승 팀장은 복도에서 욕을 하는 코드네임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얼굴을 보아하니 코드네임이 진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888 크루 애들은 멀쩡했는데 이 놈들은 맞은 티가 좀 났다.
‘맞을 짓을 했겠지. 덜 맞은 거 아니야?’
직접 겪어본 바로 의하면 888 크루나 L&S는 아주 괜찮은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코드네임은 업계 평판보다 더한 쓰레기들이었고.
안철승 팀장은 스태프 실에서도 비좁고, 더럽고, 냄새가 나는 방으로 코드네임을 안내했다.
코드네임이 나가고 888 크루의 대기실은 잠시 조용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미주였다.
“상미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언니도 괜찮아?”
“괜찮아.”
“다행이다.”
상미가 미주의 손을 잡았다. 오민지나 신하연은 싸움 중에 겁을 먹었지만, 상미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하고 있었다.
“환이 오빠가 거기서 우성의 코뼈를 부러트렸어야 하는데!”
상미가 허공에 주먹을 휙휙 휘두르자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내가 오늘 이 일 반드시 웹툰에 넣을 거야. 저 정신 나간 사람들이 가수라고? 힙합을 한다고?”
“근데 상미야 코드네임이라고 직접 언급하면 퍼블리시티권에서 성명권 침해에 걸려.”
“아 그럼 코드네임펜이라고 하면 되지. 그건 상관없지?”
“음. 그럼 상관은 없을 걸? 내가 엄마한테 물어볼게.”
박인혁이 말하자, 준형이 물었다.
“형 근데, 진짜로 부모님이 그렇게 잘 나가는 분들이셔요?”
“어? 아니야. 두 분 다 업계 평판이 좋긴 한데, 진짜로 그렇게 잘나가면 내가 광주가 아니라 서울에 있겠지.”
“근데 왜 그렇게 말했어요?”
“아, 빡치잖아. 그리고 거짓말은 안했다? 우리 부모님 아주 잘나가는 검사랑 변호사 맞아. 주말마다 등산동호회 잘 나가시는.”
“미친놈.”
박인혁의 재미없는 개그에 김환이 어이없는 웃음 지었다. 준형이 덧붙였다.
“흩날려라 천본행은 진짜 2005년도 최고의 개그였어요. 이 형은 어떻게 싸움 중에도 사람을 웃기지?”
“크, 그게 바로 이 형님의 위대한 점이 아니겠느냐.”
웃음이 터졌고 대기실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모든 게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 찝찝하고 열 받는 마음을 완전히 풀어버리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한동안 날아간 도시락이나, 미주의 클러치, 재떨이 등등을 정리하던 888 크루와 L&S 멤버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제대로 보여줄 준비됐죠?”
“말이라고 하냐.”
“형들, 오늘 연주 실수하면 진짜 저 화낼 거예요.”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너나 가사 까먹지 마라.”
“저 거지같은 새끼들이 우리 뒤 타임이지? 공연할 엄두도 못 내게 해줘야지.”
“저런 새끼들이 힙합 이미지는 다 망치고 있는 거야. 오늘 관객들이 저 새끼들 보고 힙합은 저런 거구나 라고 생각하겠지?”
준형의 말에 상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 관객들은 그런 생각 못할 거야.”
“왜?”
“우리가 앞 순서니까.”
“크.”
상현의 선언에 박인혁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은 2시 40분이었다. 888 크루와 L&S 멤버들은 재빨리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경기장 입구와 이어진 라커룸의 복도에서 대기했다.
“어우, 한바탕했더니 곧 공연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나네.”
“나도.”
“너무 긴장 풀지 마. 갑자기 긴장하면 별로 안 좋아.”
그때 스태프가 다가와서 지금 가야된다는 말을 건넸다. 888 크루와 L&S 멤버들은 야구장 한 가운데에 지어진 무대로 이동했다.
-둥둥둥둥!
-와아아아아!
-광주! 타이거즈!
벌써부터 시작된 응원전이 무등경기장 곳곳을 달구고 있었다. 응원가 음악 소리도 들렸고, 이곳저곳에서 부딪치는 막대풍선의 소리도 들렸다.
스태프들과 함께 무대를 가로지르는 888 크루와 L&S에게도 시선을 쏠렸다.
마침내 첫 공연 곡 Why Commin의 공연진인 박인혁, 김환, 오민지가 무대로 올라섰다.
<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