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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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코드네임’의 리더 드레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매니저 형! 아니, 씨바. 이런 게 어딨어요? 이 날은 확실히 쉰다면서!”
“그게 위에서 갑자기 지시가 내려와서…….”
“지시고 나발이고 이렇게 갑자기 스케쥴을 잡는 법이 어딨어? 아, 나 이 날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진짜 지랄 맞네, 씨발.”
“뭐야? 무슨 일인데?”
리허설을 끝내고 온 코드네임의 멤버들이 대기실로 우르르 들어왔다.
“6일에 스케쥴 잡혔어.”
“뭐? 아, 씨발! 진짜 더러워서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무슨 스케쥴인데? 야구장? 뭐야, 이거 한국시리즈도 아니고 그냥 준 플레이오프 개막전이잖아?”
“잠깐만, 이거 광주에서 하는 거야? 광주면 왕복 일곱 시간인데? 하…….”
“지랄하네.”
코드네임 멤버들이 험한 욕을 뱉기 시작하자 금방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삼촌뻘인 매니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했다.
코드네임(Code Name)은 올해로 데뷔 3년차를 맞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들의 컨셉은 힙합.
2000년대 초반, 아이돌 힙합 그룹 ‘원타임(1TYM)’이 메인스트림 힙합을 평정하며 엄청난 빅 히트를 기록했다. One Love, 쾌지나 칭칭, 핫 뜨거 등의 노래를 줄지어 히트시킨 것이었다.
그것을 지켜본 여러 소속사들은 원타임을 벤치마케팅하며 힙합 아이돌 그룹들을 양산해냈는데, 코드네임 역시 그때 만들어진 팀이었다.
다만 그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힙합 그룹이 망하고 사라졌다는 것과 다르게, 코드네임은 아직까지도 제법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작정하고 잘생긴 멤버들로만 구성한 탓이었다. 소위 얼빠(외모를 보고 몰려든 팬)라고 부르는 이들이 코드네임의 주된 팬층이었다.
때문에 힙합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힙합을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코드네임의 음악성을 비판했다. 물론 코드네임은 아랑곳 하지 않았지만.
매니저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자 드레드가 짜증을 내며 매니저를 밖으로 보냈다. 그리고는 대기실에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곧 대기실이 담배 연기로 가득찼다.
금방 음악방송 녹화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어차피 립싱크로 진행하기 때문에 별 상관이 없었다.
“오경 엔터라고 다를 게 없네. 전 소속사에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에이, 그건 개소리지. 그래도 여긴 정산은 확실하잖아. 엿같은 여사장들 비위 맞추면서 술 안 따라도 되고.”
“근데 왜 갑자기 스케쥴이 잡힌 거야?”
담배 연기를 푹 내뿜은 드레드가 매니저한테 들은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OMB에서 야구 전문 케이블 채널을 만든다고?”
“야구 전문이 아니라, 스포츠 채널인데 야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고 병신아.”
OMB는 오경Ent의 케이블 방송국이었다.
코드네임이 속한 오경 엔터테인먼트는 방송 콘텐츠, 언론사, 미디어 콘텐츠를 취급한다. 코드네임 같은 가수들은 미디어 콘텐츠 부 산하의 기획사 소속이었다.
“그래서 준 플레이오프부터 방송한다는 거야? 그럼 공연하는 것도 케이블 채널로 방송되겠네?”
“아, 시발. 대충 못하네?”
“대충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립싱크하는 새끼들이.”
“지랄하네. 너는 안하냐?”
드레드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대충해 시발. 열심히 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럼 공연 시간은 총 몇 분인데?”
“이십분.”
“와, 시발. 이십분 하려고 일곱 시간을 달려야하네. 우리 말고 다른 팀은? 걸그룹은 안 오냐?”
“몰라. 매니저가 뭔 이상한 아마추어들 이름 말해줬는데 기억이 안난다. 스케쥴 표에 없냐?”
“없어. 아마추어면 트로트 가수나 되겠지. 아니면 댄스 팀이거나. 급 떨어지네.”
“너 왜 아마추어 무시 하냐? 그 새끼들이 앞에서 공연을 병신같이 해줘야지 우리가 대충해도 빛나는 거야. 그래서 아마추어가 필요한 거지.”
드레드의 말에 멤버들이 낄낄거렸다.
“우와 이 새끼 창의력 대장이네? 발상의 유연한 거 봐라?”
“야, 근데 너 그년 따먹었냐?”
“아니 시발, 6일에 따먹으려고 했는데 스케쥴 가야 하잖아. 아, 생각하니까 개 빡치네.”
“이 더러운 새끼가 뭐가 좋다고 자꾸 여자가 붙는 거지?”
“더러운 새끼니까 더러운 년들이 붙나보지. 근묵자흑 모르냐?”
“이 씹새끼는 고졸인거 티내나 뻑하면 어려운 말이야.”
코드네임 멤버들은 줄담배를 피우면서 음악 방속 녹화가 들어가기 5분전까지 음담패설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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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Ent의 방송국인 OMB는 2006년 WBC의 개최가 확정되자마자, 야구전문 케이블 채널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를 시작했다. 야구의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한 것이었다.
결론만 말하면 야구를 위한 케이블 채널 개설하는 것은 무산이 났다. 하지만 OMB는 ‘베이스볼 스토리’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베이스볼 스토리는 영국의 축구 전문 프로그램처럼 경기를 중계하고 경기가 끝나면 선수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 심층적인 경기 분석, 다음 경기 예측, 뒷이야기 등등을 다루는 야구전문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10월 6일의 준 플레이오프였다.
그렇게 다가오는 첫 방송을 위해 노력하고 있던 베이스볼 스토리의 총책임자는 광주 타이거즈의 홍보팀장에게서 재미있는 제안을 듣게 되었다.
한광수 선수의 응원가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광주 UP의 공연 영상 송출에 협조를 바라는 것이었다.
“원래 준 플레이오프 때부터 초청공연을 했나?”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었습니다.”
“초청공연이라…… 공중파는 방송 안 되지?”
“한국시리즈는 방송될 때도 있는데, 플레이오프나 준 플레이오프는 거의 안 됩니다. 3년 전에 한 번 방송됐었습니다.”
“그럼 그거 우리가 방송하자. 공연 전 행사인 초청 공연부터 공연 후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전부 다룬다는 차별성을 내세우자. 원래 준 플레이오프 중계 전에 편성된 프로그램이 뭐야?”
“V 리그(배구 리그) 경기입니다.”
“딱 좋네. 내가 윗선에 얘기할 테니까, 그거 빼버리고 그 타임까지 우리가 채운다고 생각해. 광주 쪽에서는 광주를 대표하는 공연진이 나온다며? 인천 쪽에 이야기해서 그쪽에서 원하는 가수 있냐고 물어봐봐. 응원전부터 대립구도로 가면 좋잖아?”
“이제 며칠 안 남았는데 그렇게 급하게 진행해도 될까요?”
“뭐가 며칠 안남아? 오일 안에 그 정도도 진행 못해?”
“알겠습니다. 당장 진행하겠습니다.”
“약식 보고서는 퇴근 전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부하직원 죽어나는 소리는 무시한 채 베이스볼 스토리의 총 책임자가 주판을 굴리기 시작했다.
‘언론 플레이를 미리 좀 쳐놓으면, 공연에도 관심이 쏠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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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학 기자의 가을 야구 Talk! (2)
- 경기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또 하나의 요소. 응원!
지난 2월 KBO리그 시범경기에서 인천 우기형의 응원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우기형의 대구 시절 응원가 ‘우기우기, 우기차차, 우기형 안타.’를 인천 측에서 사용한 것. 소식을 접한 대구는 우기형의 응원가는 인천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중략)
이처럼 응원가는 야구장의 인기 요소이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의 응원가를 전부 외우고 있다.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자신들이 응원하는 구단에 대형 트레이드가 일어나면, 다음 경기 때 곧장 응원가를 부르기 위해서 ‘속성 응원가 암기 코스’ 등의 애정이 섞인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응원가가 단지 재미만의 요소일까? 그렇지는 않다. J대학 스포츠 과학부의 김연일 교수는 열광적인 응원을 받는 팀일수록 승리할 확률이 높다라는, KBO의 데이터를 베이스로 한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중략)
이번 광주 타이거즈 대 인천 스카이의 준 플레이오프 경기에는 더욱 재미있는 사연이 엮여있다. 그것은 초청 공연에서 벌어질 응원가 배틀이다.
이적 후, 6위였던 광주 타이거즈를 4위로 끌어올린 ‘가을 야구 사나이’ 한광수 선수의 응원가는 광수 UP. 광수 UP은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팀 888 크루의 노래 ‘광주 UP’을 편곡해 만든 곡이다.
타이거즈의 오랜 팬인 888 크루는 광주 UP을 한광수 선수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에 한광수 선수는 응원가가 마음에 드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888 크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이번 준 플레이오프의 축하 공연에 초청된 888 크루는 광주 타이거즈의 팬이자 서포터로써 공연에 임한다. 단순한 초청 가수가 아니라, 광주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든든한 우군이고 인천 스카이의 원정 팬들에게는 무서운 적군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천 스카이에는 그들을 응원하는 가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이번 준 플레이오프에 인천 스카이를 응원하는 가수는, 수많은 여성 팬을 보유하고 있는 힙합 그룹 ‘코드네임’이다.
코드네임의 드레드, 루키, 우성은 인천 출신이다. 4명의 멤버 중 3명이 인천 출신인 것이다. 코드네임은 이번 준 플레이오프 초청 공연에 인천 스카이가 이길 수 있도록 힙합 버전으로 편곡한 ‘연안부두’를 부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안부두는 인천 스카이가 삼미 슈퍼스타즈이던 시절부터 불리던 응원가다. 인천이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마침내 지금의 인천 스카이로 거듭나는 모든 과정을 함께 겪어온 응원가라는 뜻이다.
(중략)
또한 코드네임의 리더 드레드는, “888 크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뛰어난 힙합 그룹이라고 들었지만,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선배로써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 우리가 응원전에서 이긴다면 인천 스카이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코드네임의 멤버들은, “응원전을 이기는 쪽의 팀이 승리한다면 당연히 인천 스카이가 승리할 것이다.”라며 오랜 힙합 경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다채로운 볼거리와 스토리가 섞여있는 준 플레이오프 개막전. 광주 타이거즈의 팬들도, 인천 스카이의 팬들도, 혹은 강 건너 불구경 중인 다른 구단의 팬들에게도 이번 준 플레이오프는 꽤나 흥미로운 볼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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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준 플레이오프에 대한 공지가 수정되었다. 기존의 공지와 달라진 것은 입장 가능 시간이 오후 1시로 당겨졌다는 것.
그리고 888 크루와 ‘남행열차’를 부른 김수희 외에 코드네임이 축하공연 라인업에 추가됐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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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공연(15 : 00)
코드네임(Code Name)
888 Crew
김수희
시구(15 : 50)
시구자 : 우현택 광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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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들은 처음에는 코드네임이 추가된 라인업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코드네임의 팬이 아닌 이상 ‘그냥 연예인 한 명이 더 오는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이현학 기자의 가을 야구 Talk’가 공개된 이후로 상황은 반전되었다. 야구 커뮤니티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었다.
‘응원전을 이기는 쪽의 팀이 승리한다면 당연히 인천 스카이가 승리할 것이다.’
코드네임의 말이 광주 타이거즈의 팬들에게 불을 붙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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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se 14. 비 더 언더그라운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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