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80화 (80/309)

< Verse 13. 동그라미 >

***

상현이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곧 비트가 꺼졌다.

“다시 해도 될까요?”

“힘드시죠? 물 한 모금 드시고 하세요.”

안수미 조교의 말에 상현이 부스 밖으로 나왔다.

‘쉽지가 않네.’

게임 중에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으면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 묘한 긴장이 들었다.

상현은 전남대학교 김운철 교수의 연구실에서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랩을 하는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었다.

‘나는 자네가 랩을 할 때 특별한 소리를 낸다고 믿고 있네. 그래서 랩을 할 때와 말을 할 때의 목소리를 비교해 기록을 남기고 싶네.’

본래는 김운철 교수와 좀 더 자주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쇼 비즈니스 사태부터 클럽 호미의 공연까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너무 바빴다. 상현이 한가해지자 이제는 김운철 교수가 바빴고.

그래서 이번이 3번째 녹음이었다. 오늘은 김운철 교수가 없었고, 김운철 교수의 연구를 도와주는 안수미 조교가 대신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상현은 물을 마시며 익숙하지 않은 녹음 장비 앞에서 멍 때리고 있는 안수미에게 말을 걸었다.

“조교님은 김운철 교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어떤 말씀이요?”

“목소리에 힘이 있다는 것과 그 힘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의견이요.”

“음, 미국 학계의 논문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제법 있으니 안 믿는 건 아닌데…… 솔직히 완전히 믿긴 좀 힘드네요.”

안수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는 상현 군, 아니 상현 씨는…….”

“그냥 말 편하게 하셔도 되요.”

“음, 그럴까? 그럼 너는 교수님 말을 완전히 믿는 거야? 실험에 참가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건가?”

“아뇨. 솔직히 완전히 믿지는 않아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죠. 언령이란 개념은 신화에나 나오는 개념이잖아요. 그렇지만 뭐, 논문도 있다니 또 완전히 의심하는 건 아니죠. 비슷한 마음일걸요?”

“근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지금 같은 곡만 아홉 번째 녹음하는 거 알아?”

“그건 여기 장비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

말 그대로였다. 김운철 교수가 연구를 위해 세팅해놓은 장비는 대부분이 독일제인 고가의 장비들이었다. 상현이 작업실 장비를 마련할 당시 살 엄두도 못 냈던 것들. 덕분에 상현은 횡재한 기분으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원 가공용이 아닌 원래 소리 그대로를 받으려다보니 믹서(Mixer)를 비롯한 레코딩 인터페이스가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상현이 사운드를 추출시켜서 믹싱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런 전문적인 녹음실을 대여하려면 못해도 백만 원은 줘야겠지? 가수들이 앨범을 녹음할 때는 더 좋은데서 하려나?’

그러니까 상현은 연구에 참여 했다기보다는 믹스테잎을 녹음한다는 개념으로 랩을 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솔로곡 밖에 녹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팀원들과 함께하는 곡에서 자신의 사운드만 월등히 좋다면 밸런스 갭이 발생한다. 사운드 밸런스가 깨져버리면 상현의 부분은 좋을지 몰라도 곡 전체를 듣는데 피로감이 발생할 수가 있었다.

‘나도 언젠간 이런 장비들을 모아야지. 그러면 우리 팀원들도 다 같이 쓸 수 있으니까.’

상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쉬운 대로 솔로곡만 녹음을 하고 있었다.

“안 조교님,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까 다시 해볼게요.”

“그래, 준비할게.”

상현이 부스로 들어가 헤드셋을 착용하며 안수미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 담담한 듯 둔탁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이번 비트는 그동안 상현이 추구했던 뉴 사운드가 아니라, 현재 힙합 씬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스트 계열의 붐뱁 류의 비트였다.

곡의 제목은 'Crouching Writer'였다.

Crouching은 웅크린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였고, Writer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Crouching Writer는 웅크려서 가사를 쓰는 사람이었다.

상현이 크로우칭 라이터를 만들기 시작한 것에는 888 크루의 인터뷰에 대한 힙합 팬들이 반응 때문이었다.

888 크루의 힙합엘이 인터뷰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인터뷰가 게재 된지 3일 만에 역대 최고 조회수를 돌파했고, 인터뷰에 달린 댓글의 수도 기존의 인터뷰 클립에 비하면 다섯 배 이상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었다.

-아, 이번 인터뷰 너무 재밌네. 나는 이상미가 올린 글에서 ‘할리우드식 리더’나 ‘크 권위자’가 뭔 말인가 했는데 썰 풀리는 거 보고 한참 웃었네.

-얘네 존나 유쾌한 팀인듯. 팀원 밸런스도 좋고, 각자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고. 이상현의 말처럼 언젠간 서로 떨어지는 날이 오겠지만, 각자 독립된 뮤지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듯.

-Q : 쇼 비즈니스에게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Fuck.

아무 생각 없이 인터뷰 읽다가 이거보고 빵 터졌네. 이쯤 되면 아직도 침묵하는 쇼 비즈니스가 불쌍해진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지들이 맞을 짓을 했지.

-이젠 LE도 대놓고 쇼 비즈니스 까네요. ‘쇼 비즈니스 사에서 한 일은 인터뷰가 아닌 배설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것이 888 크루 최초의 인터뷰다.’

-근데 힙합엘이랑 쇼 비즈니스랑 규모로 비교하면 대기업이랑 동네 구멍가게 수준 아님? 저렇게 막 공격해도 되나?

-이것이 바로 힙합 전문 사이트의 힙합 정신 아니겠음?

-아, 나는 인터뷰 다 좋은데 이상현 인터뷰 분량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신하연이나 오민지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싶었는데…… 한국에 얼마 없는 여자 래퍼 아니냐?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888 크루가 자기들끼리 많이 닮아서 그래요. 음악적 가치관이 정리되기 전부터 음악을 같이 시작했으니까 생각도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말 잘하는 이상현이 대표로 인터뷰한 거 같은데?

-근데 왜 이상현이 리더가 아니지? 분위기를 보아하니까 크루 내에서도 에이스로 인정받는 거 같은데?

-리더랑 에이스랑 같냐? 에이스는 잘하는 사람이고, 리더는 인간적인 매력도 있고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지. 요구되는 롤 플레잉이 전혀 다름.

-아, 나 대구 사는데 053 X RAP 티셔츠 진짜 너무 너무 너무 갖고 싶다. 정말로 안팔까? 뮤지션들만 줄까?

-나도 저거 갖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안 팔지 않을까? 저렇게 단호하게 뮤지션들만 준다고 말했는데 그걸 팔기 시작하면 또 이런저런 말이 나올 듯.

-나 오늘부터 랩 시작함. 내 목표는 티셔츠다.

-와…… 조단(Jordan) 가지고 싶어서 랩 시작한 흑인 래퍼들은 많이 봤는데 티셔츠 가지고 싶어서 랩 시작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뉴에라 나오면 집도 팔 기세네.

-아니 근데 우민호가 존나 천재야. 어떻게 저런 걸 생각했지? 아아아 한정판 티셔츠 갖고 싶다. 나도 랩 시작할까.

-그래도 062 X RAP는 판매한다며. 우리 길가다가 그 티셔츠 입고 있는 사람 보면, 팔! 팔팔! 팔팔팔! 팔팔팔팔! 하고 소리 지르자. 그리고 거기 있던 힙합엘이 팬들끼리 정모를 하는 거야.

-미친새낔ㅋㅋㅋ

-아, 이 새끼 또라이네ㅋㅋㅋㅋ

-시바 광주 사람들은 좋겠다. 인천에서 광주까지 얼마나 걸리냐? 한 다섯 시간이면 가려나? 나도 광주 타이거즈 공연하는 거 보고 싶은데.

-헐? 광주 타이거즈 4위 확정 났나요? 우천 취소 때문에 경기 일정이 좀 밀리지 않았나요? 가을 야구도 며칠 미뤄진다던데.

-지금 울산 파이러스 8회 초 공격인데, 3 대 11임. 패색이 짙음. 이거 지면 광주 타이거즈가 이미 1승을 챙겼으니까 4위 확정.

-나 울산 파이러스 골수팬인데, 우리 팀이 지길 바라고 있다. 이딴 경기력이면 어차피 가을야구 가도 광탈임. 차라리 져서 888 크루가 공연하는 게 훨씬 이득일 듯.

-인천에서 광주까지 버스로 3시간 반밖에 안 걸려요. 기차타면 좀 더 빠르고, 자차 타면 3시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어요.

-근데 가을야구 축하공연이면 티비에 나오는 거 아님? 시구는 나오던데?

-시구는 경기 직전이라서 그렇고, 축하공연은 상황마다 달라요. 결승인 한국시리즈 같은 경우는 축하공연까지 거의 나오는데, 가을야구는 잘 모르겠네요. 그 앞 타임 프로그램이 어떻게 편성되느냐에 따라 갈릴걸요.

-티비에서 광주 UP 부르면 진짜 멋있겠네요. 루키들 중에서는 888이 가장 먼저 앞서나가는 느낌.

-경력이 좀 부족해서 그렇지 888 크루가 실력으로 따지면 루키는 아니죠.

-전 그거보다 888 크루의 최종 목표가 진짜 멋있네요. ‘888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평생 동안 기억하기를 바란다.’ 크, 생각해보면 이것보다 원대한 목표도 없을 듯.

-결국 한 시대를 풍미하겠다는 말이죠. 반짝 나타났다가 이미지 소비되면 사라지는 일회용 가수가 아니라.

-윗님 말이 정답인 듯.

팬들은 인터뷰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음악 외적인 정보가 전혀 없었던 888 크루에 대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난 말과 랩이 동일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음. 랩은 Thug Poet(거리의 시)이라고 불리는 음악임. 이상현은 인터뷰에서 ‘랩과 말’이 같다고 했는데, 그건 결국 ‘시(詩)와 말’이 같다는 이야기임.

어떻게 시와 말이 같을 수가 있음?

-근데 시와 랩도 동의어는 아니지. 거리의 시라는 것은 그냥 일종의 비유지.

-아니 근데 ‘플로우와 라임, 그루브를 살릴 수만 있다면 랩과 말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라는 가정은 왜 쏙 빼놓고 말하는데?

그니까 이상현의 말은, 랩을 너무 꾸미지 말고 실제 말하듯이 표현과 전달에 치중해야한다는 거지. 솔직히 지금 한국 뮤지션들 가사는 너무 경직되지 않았냐?

-윗님 말이 맞음. 너무 현학적인 단어들이 많음. 우리나라가 한문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잘 안 쓰이는 한문을 가져다가 쓰는 경우도 너무 많음. 이상현의 말은 실제 쓰이는 단어로 랩을 만들자는 의견의 일종인 거지.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이상현 이전에도 많이 논의가 됐고.

-내 생각에 이상현의 의견은 현실성이 없음. 가사와 말이 엄격히 구분될 수밖에 없는 게, 한글이란 언어 특성 때문임. 한국말은 서술어가 가장 뒤로 가는 게 당연한 건데, 그렇게 되면 라임을 ‘~다’로 밖에 맞출 수가 없음. 한국말은 외국어처럼 주어, 동사로 문장을 시작하는 게 아니야.

-‘퍽 더 쇼 비즈’가 보통의 랩처럼 써졌으면 과연 이만큼 관심을 받았을까? 현재 래퍼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적으로 라임을 찾는 것에 비해서 이상현은 ‘퍽 더 쇼 비즈’에서 분노를 여과 없이 보여줬음. 그러면서도 랩적인 면을 놓치지 않았고. 그래서 정체되어있던 씬에 큰 충격을 준 거고.

-걔가 괜히 N.W.A 비트를 골랐겠냐? N.W.A가 정체성이 흐렸던 힙합 문화를 가지고 흑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경찰을 공격한 거랑 같은 맥락이지. 솔직히 아직 한국 힙합은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지 못했고, 이상현이 추구하는 표현 방식은 적절하다고 본다.

-근데 왜 아무도 펀치라인 얘기는 안함? 난 그 부분이 제일 재밌던데. 이상현 이전에 펀치라인을 쓰는 사람이 있었나?

-문구점 가서 만득이나 최불암 시리즈 읽으면 동음이의어로 말장난하는 거 많이 나옴. 이거 모르냐? 백제신라고구려, 배 째실라 그려? 나 초딩 때 레전드였는데.

-미친놈

상현은 자신으로 인해 시작된 라임 논란에 약간의 기대감과 약간의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 Verse 13. 동그라미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