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78화 (78/309)

< Verse 13. 동그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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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엘이 - 매거진 - 인터뷰

인터뷰어 : 랜스 디(Rance D)

인터뷰이 : 888 Crew (신준형, 이상현, 이상미, 김환, 박인혁, 우민호, 신하연, 오민지)

9월 25일

[인터뷰] 888 크루

흔히 최초의 한국어 랩은 홍서범이 1989년에 발표한 ‘김삿갓’이라고 한다. 그러나 홍서범의 김삿갓을 랩의 적통으로 보기에는, 랩의 필요충분조건인 라임 사용의 전무함이 아쉽다.

90년대에는 대중가수 현진영,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이 랩 댄스라 불리는 장르로 한국 힙합의 시작을 알렸고, 비슷한 시기에 015B, 신해철 등이 노래에 랩을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

그 뒤로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업타운, 지누션, DJ DOC 등의 ‘오버그라운드 힙합’이 출범했다. 그와 동시에 하이텔(BLEX), 나우누리(S&P) 등의 통신동호회와 여러 대학의 동아리, 클럽(마스터플랜)을 중심으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처음으로 태동했다.

한국 힙합 씬은 1999년 이후 나름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물론 아직도 ‘그들만의 리그’에 가까웠지만, 크루와 레이블이 생겨나고 그들의 음악을 듣는 리스너가 생겨나며, 2005년에 이르기까지 씬의 기틀을 닦고 있었다.

하나의 장르가 주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많은 운이 필요하다. 시기가 맞아야하고, 사회적 변화를 수용해야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슈퍼스타’가 필요하다.

명절마다 전 연령대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씨름판이 쇠락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만기 이후로 걸출한 슈퍼스타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힙합 팬들은 언제나 랩스타를 기다려왔다. 런디엠씨나, N.W.A, 우탱클랜처럼 힙합 골든 에라의 문을 열었던 랩스타들을.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빠른 시일 내에 랩 스타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것도 개인이 아닌 팀으로 말이다.

이번 ‘9월의 뮤지션’은 모든 분이 예상했던 대로 888 크루다. 필자는 쇼 비즈니스 사에서 한 일은 인터뷰가 아닌 배설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것이 888 크루 최초의 인터뷰다.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8명의 888 크루 멤버들을 만났다.

(참고로 LE는 녹음 파일과 인터뷰 타이핑 원문을 888 크루에게 전달했다!)

*

LE : ‘쇼 비즈니스 사태’와 ‘클럽 호미’의 공연 이후로 한국 힙합팬들 사이에서 888 크루가 굉장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아직 888 크루를 모르는 힙합 팬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신준형 : 안녕하세요. 888 크루의 할리우드 식 리더 신준형입니다. 888 크루는 8명의 멤버로 이루어져있고, 아시다시피 주된 활동지는 광주입니다.

LE : 소개가 재밌습니다. 이상미 양이 올린 ‘888 크루의 실체’ 조회수가 몇인지 알고 계시죠?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할리우드 식 리더가 뭔가요?

박인혁 : 제가 붙여준 별명이니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 보면 되게 도식적으로 뻔한 장면들이 많잖아요? 손발 오그라들게 감동을 유발하는……. 근데 준형이가 딱 그래요.

쇼 비즈니스 인터뷰가 나오고 나서는 갑자기 크루원들 모아놓고 하는 말이, ‘형들은 888 크루로 커리어를 시작하실 필요가 없어요. 크루를 탈퇴하신다고 해도 절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죠. 크, 할리우드.

(지면으로 옮기면서 편집 됐지만, 박인혁 씨는 ‘크‘라는 감탄사를 여섯 번 정도 사용하셨습니다. 과연 크 권위자)

LE :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888 크루는 정말 난데없이 씬에 등장했어요. 이끌어주는 선배 뮤지션도 없고요. 그래서 그런지 정보가 너무 부족한 건 알고 계시죠?

일동 : 네 (웃음)

이상현 : 약간 첨언하자면 음악적으로는 밴드 L&S가 저희를 이끌어줬습니다. L&S가 없었다면 부드러운 직선의 공연도 없었고, 쇼 비즈니스와 트러블도 없었고, 전주 월디페에 참가하지도 않았겠죠.

래퍼로 따지자면 스타즈 레코드의 배가 형이 저희를 이끌어준 뮤지션 선배님입니다. 호미 공연 때 신생팀에게 30분이나 할애해 준 것도 엄청난 호의였죠.

아, 그리고 광주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대부인 세종악기사의 홍 사장님도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시고요.

LE : 아, 그러고 보면 L&S와 888 크루의 관계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의 설왕설래가 많군요. 그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도록 하고, 888 크루에 대해서만 먼저 묻겠습니다. 우선 888이라는 크루 네임은 무슨 뜻인가요?

신준형 :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8의 모양이 ∞(Infinity)를 세웠다는 상징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1차원적인 의미로 음악이 팔팔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박인혁 : 뭐? 그런 촌스러운 의미도 있었어?

이상현 : 게다가 크루를 만들 당시에는 저와 준형이 밖에 없었는데, 저희가 둘 다 88년생입니다. 둘을 합치면 8888이 되지만, 크루원들이 ‘팔자’하나 정도는 합친다는 의미에서 888이라고 지었습니다.

박인혁 : 뭐야? 그런 멋진 의미도 있었어?

(박인혁 씨의 말은 모두 무시당했습니다)

LE : 본래 이 질문은 예정에 없었는데 팔자를 합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묻고 싶군요. 가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우선 888 크루는 자신들이 현재 한국 힙합 씬의 래퍼들과 다른 면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이상현 : 저희 멤버들끼리는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공유하다보니 음악 스타일이 닮는 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며 추구하게 된 음악적 방향성이 현재 한국 힙합과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LE :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상현 : 아무래도 힌트를 주신대로 가사적인 면에서 많이 다르겠죠. 랩 스킬은 가사의 형태를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LE : 흔히 리스너들은 888 크루의 가사가 몰입도가 깊다고들 합니다. ‘로우하다, 재미있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등의 의견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상현 : 전부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가사를 쓸 때, 가사를 쓴다는 생각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 전달하는 것이고,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뜬금없지 않아야죠. 만약 친구한테 학교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어제 교무실에 불려갔는데, 그래서 티비 봤어?’라고 하면 이상하니까요.

또한 재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학교에는 헤이아치라고 불리는 선도부 선생님이 있는데, 친구한테 ‘매일아침 보는 헤이아치’라고 라임을 맞춰 말하면 재밌어하겠죠.

저희가 가사를 쓰는 방식은 말과 똑같습니다.

우선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가사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정말 써야 되는 단어가 있는데 라임이 맞지 않는다면, 라임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재치 있는 라임이나, 힙합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일상적인 단어’, ‘펀치라인’ 같은 것을 고민합니다. 듣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요.

LE : 그럼 말과 가사를 동일하게 보신다는 말인가요?

이상현 : 플로우와 라임, 그루브를 살릴 수 있다면 말과 가사가 구분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흑인들의 인터뷰 장면에 비트를 깔고 ‘흑인이 말할 때 비트를 틀면 랩이 된다.’고 코멘트한 유머 영상 시리즈도 있지 않습니까?

LE : 그렇군요. 그런데 방금 펀치라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나요? 제가 알기로 펀치라인은 희극 용어 아닌가요? 코미디에서 사용되는?

이상현 : 펀(Pun)이 동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이란 의미고, 펀치라인(Punchi Line)은 농담의 핵심이 되는 구절이라는 의미입니다. 한국말로는 기똥찬 언어유희 정도가 되겠군요.

LE : 아, 미국 래퍼들의 펀(Pun)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러니까 벌스의 핵심이 되는 펀이 펀치라인이다?

이상현 : 비슷합니다. 다만 펀치라인이 반드시 중의적 의미를 내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펀치라인이 펀보다 큰 의미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LE : 그렇다면 본인이 쓴 펀치라인을 몇 개 정도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현 : 음…… 제 노래 중에 움직여야지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목 그대로 ‘노력하자’라는 메시지를 담은 곡입니다. 너무 고민하고 재보지 말고 해버리자! 라는 다짐이 주제가 된 곡이죠.

그래서 생각한 펀치라인이,

성공은 마치 아침.

해보기 전엔 찾아온 걸 몰라 아직.

여기서 ‘해보다’는 영어로 따지면 ‘Do’와 ‘Look at the Sun’의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Eight, Eight, Eight의 후렴구입니다. 알다시피 단체 곡인 Eight, Eight, Eight은 888 크루의 포부와 스웨거, 자부심을 내세운 곡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최고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곡의 후렴구를 보면,

We Eight! 매일 칠해도 더 위에 있다고

우리와 견주려면 네 나인 어림없다고

여기서 칠(Chill)은 원래 영어로 ‘즐기다’라는 의미입니다. ‘나인’은 ‘나이는’의 발음상 표기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We Eight. 우리는 8이니까 네가 아무리 7해도 우리가 더 위에 있다. 우리는 젊고, 네 나인(Nine) 너무 많다, 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동음이의어, 그러니까 중의적인 의미를 사용하지 않은 펀치라인이 있습니다.

퍽 더 쇼 비즈에서, ‘Succeeding You, Father’이라는 부분은 그 한 문장으로 곡 전체를 커버하는 라인입니다. 쇼 비즈니스 사를 죽이고 노이즈 마케팅까지 계승해버리겠다는 의미니까요.

LE : 아, 이렇게 들으니까 정말 재밌습니다.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그럼 888 크루의 다른 분들이 쓴 펀치라인은 또 뭐가 있을까요?

(중략)

LE : 퍽 더 쇼 비즈의 가사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혹시 가사를 통해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아니면 이 얘기는 꼭 해야겠다라든지?

신준형 : Fuck.

박인혁 : Fuck.

우민호 : Fuck.

김환 : Fuck.

이상현 : 팀원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니까 저는 다른 이야기를 좀 해야겠네요. Fuck-You.

LE : 퍽 더 쇼 비즈가 언더그라운드 팬들에게 888 크루를 알렸다면, 반대로 광주 UP은 대중들에게 888 크루의 이름을 알리고 있죠?

맨 처음 커뮤니티에 야구 응원가로 광주 UP이 쓰인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도 믿지 않았는데요. 어쩌다가 한광수 선수의 응원가로 광주 UP이 채택된 것인가요?

이상현 : 사실 광주 UP이 한광수 선수의 응원가가 된 것에는 별다른 백 스토리는 없습니다. 한광수 선수의 여자친구분이 광주 UP을 좋아했고, 팀을 이적하던 한광수 선수가 여자친구를 통해 노래를 듣고 광수 UP이라는 응원가를 떠올린 것뿐입니다.

LE : 그럼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찍게 됐나요? 영상이 아주 재미있는데 우민호 씨가 모두 기획한 것인가요?

(중략)

LE : 제가 광주는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듣기로는 야구의 열기가 대단한 도시라고 들었습니다.

오민지 : 네. 열기가 대단하죠.

LE : 그럼 유명세 같은 것을 실감하시나요? 뮤직비디오에 모든 멤버가 나오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은데요?

신하연 : 저번에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와서 혹시 야구동영상에 나온 분 아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맞다고 하니까,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경악을 한 적이 있습니다.

LE : 경악이요?

신하연 : 그…… 남자들 사이에서는 야구동영상이 다, 다른 의미로도 쓰인다고…….

남자일동 : (폭소)

박인혁 : 뭐야! 왜 그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안 알려줬어?

우민호 : 만약 제가 옆에 있어서, ‘그 야↗(구↘)동↗(영상↘)을 찍은 감독이 접니다.’라고 했으면 완전 웃겼겠네요.(웃음)

신준형 : 근데 하연이나 민지 누나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알아보는데, 저희 사내놈들은 누가 알아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아니, 알아보고도 말을 안 걸었나?

이상현 : 뮤직비디오가 광주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게재된 지가 얼마 안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한광수 선수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것도 얼마 안됐고요.

LE : 그럼 시간이 흐르면 888 크루가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웃음)

이상현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박인혁 : 야, 그거 말해버려.

우민호 : 그래, 말해 말해.

이상현 : 아, 아직 확정된 게 아니잖아요.

LE : 뭔지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고 꼭 멘트를 달 테니까 뭔지 말씀해주시죠.

이상현 : 내일 모레 정도면 결정이 나는 일이라서, 그때 저희 크루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도록 하겠…….

이상미 : 저희 공연해요! 광주 타이거즈 홈구장에서!

LE : 네? 광주 타이거즈 구장을 대관했다는 말씀인가요?

이상미 : 그게 아니고, 광주 타이거즈가 가을야구에 진출하면 타이거즈 첫 경기가 무등경기장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저희 888 크루가 초청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습니다!

이상현 : 아, 이건 아직 확정된 게 아닙니다. 광주 타이거즈가 남은 3경기 중에 2경기를 이기면 가을야구 자력진출이고, 1경기를 이기면 울산 파이러스의 잔여경기 결과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LE : 그럼 이 인터뷰가 힙합엘이에 공개가 될 때쯤이면 결과가 나와 있겠네요? 만약 광주 타이거즈가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힙합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겠는데요?

이상현 : 그럴까요?(웃음) 뉴욕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을 때, 양키스타디움에서 프랭크 시나트라를 초청해 ‘Theme from New York, New York’을 공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모든 뉴욕 시민들이 ‘뉴욕- 뉴욕-’을 따라 불렀다고 하는데, 저희도 언젠간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LE : 한광수 선수가 광주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된다면 영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중략)

< Verse 13. 동그라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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