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77화 (77/309)

< Verse 13. 동그라미 >

그다음에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은 상미와 관련된 일이었다. 바로 상미의 웹툰이었다.

8월 말쯤 네이버 웹툰 서비스가 정식적으로 시작되었고, 상미는 아마추어로서는 거의 첫 주자로 웹툰에 연재를 시작했다. 상현이 줄기차게 웹툰 시장이 커질 거라고 세뇌를 하고 닦달을 한 덕분에, 상미의 세이브 원고는 꽤나 많았다.

상미의 시작은 ‘도전 만화가’란에서였다.

제목은 888 Crew.

본래는 ‘888 X 888’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었는데, 제목이 어려워서 진입장벽이 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상현의 권유로 제목을 바꾸게 되었다.

그 외의 제목 후보로는 ‘더 랩스타(The Rapstar)’와 ‘맥 썸 노이즈(Make Some Noise)’가 있었다. 그러나 ‘맥 썸 노이즈’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았고, 상현의 회심작인 ‘더 랩스타’는 상미가 적극 반대했다.

‘으, 더 랩스타가 뭐야? 유치하게.’

‘왜? 완전 멋있잖아!’

‘그게 멋있냐? 바다가재 아니야?’

상미의 반응에 상현이 입만 쩝쩝 다셨다.

상현에게 ‘랩스타’란 단어는, 가슴 떨리는 궁극적인 이상향 같은 존재였지만 상미가 싫다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상현은 상미의 웹툰에서 ‘스토리 작가’와 같은 포지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상미의 웹툰은 888 크루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니 음악에 무지한 상미가 옆에서 지켜본 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긴 힘들었다. 또한 상미가 보지 못한 곳에서 벌어진 일들도 상당히 많았다.

세종악기사의 공연. 움직여야지 작업.

888 크루의 첫 만남. 쇼 비즈니스와의 인터뷰.

상현이 가지고 있던 속마음. 크루원들과의 유대감.

쇼 비즈니스나 골든 핑거의 이경민을 향한 적대감 등등.

상미는 상현의 도움을 받아 80% 정도의 실화에 20% 정도의 허구를 섞어서 웹툰을 그렸고, 독자들의 반응이 제법 있었다.

아직 웹툰 인구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독자층만 더 많아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보였다.

‘조석 작가님의 마음의 소리가 언제 나오지? 그쯤부터 웹툰에 사람이 좀 몰렸던 것 같은데? 그리고…… 스마트 폰이 보급화 되면서 펑 터졌지 아마?’

상현의 기억처럼, 스마트 폰 보급화 이후로 대학 강의실에서 웹툰 한 번 안본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현재는 다음(Daum) 웹툰이 강세였지만 상현이 부득불 우겨서 상미는 네이버로 들어갔다. 때문에 하루 빨리 네이버 웹툰 시장이 커지길 바랐다.

“상미야. 네이버와 계약하고 정식으로 연재되기 전까지는 2주에 한 번씩만 올려.”

“왜? 많이 올려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사람몰이는 네이버에서 고용한 유명 작가들이 시작할 거야. 괜히 시장 개척하면서 고생만 뒤지게 하고 과실은 못 먹으면 안 되잖아?”

상미는 상현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상현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여전히 까불까불 거리고 오빠 알기를 쥐똥으로 아는 상미였지만, 그래도 둘의 유대감은 그 어떤 가족보다 끈끈했다.

마지막으로 상현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크루원들과 함께하는 곡 작업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동안 계속 해왔던 일이지만, 과거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명확한 ‘목적의식’이었다.

888 크루 멤버들은 클럽 호미 공연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것은 상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클럽 호미의 공연을 하면서 얻은 교훈들은 음악 작업에 방향성을 더해주었다. 그것은 ‘공연’과 ‘음원’의 차이였다.

공연곡과 음원의 차이는 단순히 신나는 노래와 덜 신나는 노래의 차이가 아니었다. 곡이 전달하는 바이브(Vibe)의 차이였다.

예를 들면, 이번 클럽 호미의 공연 곡 중 '백그라운드(Background)'나 '두드림(Do Dream)' 같은 곡들은 선곡이 실패한 곡들이다.

물론 광주 업 같은 곡들이 앞에서 이끌고, 힙합 팬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분위기가 더해져서 공연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백그라운드와 두드림이 보여준 바이브는 그들의 기준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가사 전달이 뚜렷하고, 실수 없이 공연을 이끈다고 해서 곡이 완벽하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상현은 개인적으로 ‘So Tight’를 부를 때 뭔가 미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라고 해서 이러한 상황을 단숨에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상현도 아직 음악 경험이 일천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888 크루 멤버들이 실마리의 끝을 잡아냈다는 점이었다.

“왜 두드림이나 백그라운드가 실패했을까?”

“실패란 표현은 좀 그렇지 않아요? 공연 자체는 괜찮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만족을 못했잖아.”

“흠…….”

준형이 생각에 잠겼다.

“너무 섬세한 감정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 가사를 전달하려다보면 목소리가 커지고, 강약이 죽어버리기가 쉽잖아요.”

“근데 그건 뮤지션의 역량이지 곡 자체의 문제점은 아니잖아? 솔직히 난 우리가 훨씬 잘해지고 나서 두드림을 불러도 무대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저도 그래요.”

박인혁과 준형이 토론을 시작하자, 가사를 쓰거나 음악을 듣고 있던 멤버들도 슬슬 이야기에 합류했다. 특히 두드림의 주인인 준형, 민지, 하연이 적극적이었다.

“두드림은 공연용 MR을 잘못 만든 거 같아요. 멜로디 부분에 리버브를 먹인 더블링을 깔았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요?”

“그래? 근데 그건 전달하려는 바이브의 문제랑은 별개 아니야?”

“아니죠. 라이브 스킬의 일종이죠.”

“아니, 내 생각에 그건 도망치는 거 같아. 더블링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것에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고 봐.”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상현이 속으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888 크루 멤버들의 음악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발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절대 기분 상하지 않고, 하나의 견해로 인정해줄 거라는 끈끈한 믿음. 신뢰.

때문에 의견을 개진하는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내 생각에 두드림은 벌스 순서가 잘못됐어. 하연이랑 민지가 여성 보이스라고 1, 3 벌스로 빠지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 준형이가 2 벌스로 들어갔다는 거 자체가 별 생각 없이 벌스를 구성했다는 증거야.”

“오빠 말은 알겠는데, 저희는 가사의 순서를 생각한 거예요. 제가 두드리고 준형이가 문을 열고, 민지 언니가 들어간다는 식의 전개잖아요.”

“아니지, 그건 가사를 쓴 뮤지션들만 알 수 있는 전개야.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전부다 문을 두드려서 성공을 이루겠다는 내용인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곡의 구성은 뮤지션의 몫이에요.”

“하지만 곡을 완성시키는 건 대중의 반응이야.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라고 대중성을 외면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는 너도 알잖아?”

하연과 김환이 의견을 교환하며 거칠게 충돌했다.

888 크루를 잘 모르는 이들이 보면 내부분열이라고 생각할 만큼 거칠다. 이러한 투쟁심은 어쩌면 힙합이라는 음악에 매료된 이들의 천성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신하연이나 김환이나 서로에 대한 서운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할 시간도 없다.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상대방의 의견이다. 상대방의 인격이나 존재가 아니라.

“상현아 넌 어떻게 생각해?”

마침내 하연이 상현에게 물었다. 이럴 때 상현의 역할은 하나뿐이다.

-달칵.

노래를 틀어주는 것뿐.

작업실 스피커를 통해서 두드림이 흘러나왔다. 모두들 생각을 멈추고 노래에 집중했다.

두드림의 인스트루멘탈은 민식이 형이 처음으로 작곡한 힙합 비트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드럼소스보다 관현악기의 비중이 더 크다.

내가 잡으려는 기회,

그건 아마 문을 두드린 횟수에 비례

누군가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난 더 세게 두드려 문을 부셔버릴게

“크, 죽인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하연의 가사 중 ‘난 더 세게 두드려 문을 부셔버릴게’라는 구절은 크루원 모두가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리듬을 타며 다함께 고개를 까닥거리던 크루 멤버들은, 음악이 끝나자마자 다시 거칠게 충돌했다.

상현은 이러한 과정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언어로 표현하진 못하더라도 가슴에 새겨지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제는 상현이 전투에 참전했다.

“내가 보기에 두드림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전적으로 준형이 탓이라고 생각해. 준형아, 네 랩에는 크게 부족한 게 있어.”

“그게 뭔데?”

“얼굴.”

진지하게 참전했지만 상현은 패전했다. 준형의 목조르기와 오민지의 꼬집기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888 크루가 준비하는 곡은 공연곡 뿐이 아니었다. 다른 곡들도 있었다.

우선은 888 크루의 첫 번째 믹스테잎.

믹스테잎(Mix Tape).

믹스테잎은 원곡이 있는 비트에 자신의 랩을 얹은 비상업적인 앨범을 뜻하는 단어였다. 믹스 CD라고도 부르지만, 처음 생겨날 때 카세트테이프가 주된 전달 매체였기 때문에 믹스테잎이라는 단어가 관용구처럼 굳어버렸다.

미국에서 믹스테잎은 아주 중요한 문화이자 등용문이었다. 유명 래퍼들 중  90% 이상은 믹스테잎으로 떴다. 무명 상태에서 착실히 발표한 믹스테잎 덕분에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메이저 씬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소속사에서 만들어낸 가수가 절대 다수인 한국 시스템과는 정반대의 시스템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도 도끼, 스윙스, 지코 등등처럼 믹스테잎으로 성공하는 래퍼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콜라보레이션이었다.

호미 공연이 끝나고 꽤 많은 뮤지션들에게서 피쳐링 제의가 들어왔다. 함께 공연했던 클럽 호미의 라인업들에게 온 것이 가장 많았지만 생각지 못했던 피쳐링 제의도 있었다.

우선은 쇼 비즈니스 사태로 기묘하게 얽힌 ‘인디 키드’. 인디 키드가 공연에 왔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드러머 김웅각에게 직접 전화가 왔었다.

그 다음에는 안성혁이란 발라드 가수였다. 톱 가수는 아니지만 나름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였기에, 상현 입장에서는 정말 뜬금없었다.

‘안성혁이라?’

심사숙고하던 상현은 인디 키드의 피쳐링 제의를 수락했다. 그러나 안성혁의 피쳐링 제의는 거절했다.

안성혁 소속사 기획실과 통화를 했는데, 그들이 MC몽과 김태우가 부른 ‘I love you, Oh thank you’같은 곡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발라드 랩이 좋다 싫다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상현은 지금이 언더그라운드에 올인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바쁘게 하는 일은…….

“이상현! 또 숙제 안 해왔냐?!”

“…….”

숙제 안 하고, 시험 대충 봐서 선생님들한테 얻어맞기에 바빴다.

‘아, 졸업하고 싶다.’

***

매달 25일은 힙합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왜냐하면 국내 최대의 힙합 커뮤니티인 ‘힙합엘이’에서 인터뷰를 공개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힙합엘이의 인터뷰는 ‘이달의 래퍼’라는 컨셉으로 기획이 되는데, 8월의 래퍼는 배가와 스타즈 레코드가 차지했었다. 클럽 마스터플랜 이후로 맥이 끊겼던 대규모 힙합 공연을 성사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9월 25일.

힙합 팬들은 말하지 않아도 9월의 래퍼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도저히 그들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아니면 사기였다.

힙합엘이 9월의 뮤지션 인터뷰.

888 Crew.

< Verse 13. 동그라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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