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75화 (75/309)

< Verse 12. 광주 UP! (完) >

광주 UP 뮤직비디오는 예상했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촬영이 진행되었다.

본래 촬영 일정은 금요일 오후부터 토, 일요일까지 3일간이었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토요일 저녁쯤에는 대부분의 촬영분량이 완성됐다.

남은 것은 일요일 저녁에 예정된 거리 공연이었다.

888 크루 멤버들은 광주 UP의 가사 진행에 따라 광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고속버스터미널 - 광주역 - 비엔날레 - 금남로 - 세종악기사 - 궁전제과 - 광주 타이거즈 홈구장(무등 경기장) 등등.

멤버들은 가사에 충실했다. 곡에서 말하는 것처럼 초장 찍은 순대나 설탕 뿌린 콩국수를 먹기도 했고, 잎새주 한 병을 원샷하는 박인혁의 모습도 찍혔다.

고원국 대리의 요청에 따라서 무등 경기장에서 찍은 컷이 많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 환이 형! 엔지! 엔지!”

“뭐? 왜? 방금 내 혼이 실린 제스쳐 못 봤어?”

“얼굴이 너무 못생겼어요. 다시 찍어야 할 거 같아요.”

“……그럼 다음 생에 찍을까?”

오히려 굉장히 재밌었다.

888 크루 멤버들은 촬영을 진행하면서, 그들을 구경하는 인파들에게 일요일 구시청 사거리에서 진행될 888 크루의 길거리 공연을 홍보했다.

뮤직비디오에는 우민호가 미리 킾 해놓았던 전주 월디페 공연 영상과 클럽 호미의 광주 UP 공연 동영상이 쓰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광주 내에서의 공연 장면도 필요했다. 아무래도 광주 UP의 뮤직비디오가 광주 타이거즈의 팬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 때문이었다.

“고 대리님은 저희 때문에 주말도 뺏기셔서 어떡해요.”

“어차피 집에 가봐야 절 반겨주는 건 원룸의 바퀴벌레뿐인데요. 뭘.”

“…….”

“왜 그렇게 보세요?”

주말까지 반납한 고원국 대리의 열정.

우민호의 감각적인 디렉팅.

그 둘이 합쳐지자 크루원들은 뮤직비디오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세종악기사에서 대여한 앰프를 구시청 사거리에 설치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윽고 카메라가 거치되자, 주말을 즐기던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888 X 888’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포스터와 현수막을 부착하는 것을 끝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 되었다.

모두들 눈에 확 들어오는 크루 티를 입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한 눈에도 공연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광주에서 힙합 음악을 하는 888 크루라고 합니다!”

준형의 외침에 작은 호응이 들렸다. 싸이월드 클럽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찾아온, 888 크루를 좋아하는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호응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구시청 사거리는 보통 일행을 기다리는 공간이었다.

카메라도 있고, 스피커도 있으니 구경하는 정도.

이런 분위기에서 길거리 공연의 시작을 김환, 박인혁, 오민지가 커피머신으로 끊었다.

다방 커피,

한국적 감성을 옮기는 내 연필

내 시계는 명품 아닌 돌핀

랩 할 때마다 혓바닥이 펌핑

설탕 3, 프림 3의 박인혁이 랩을 시작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박인혁과 비트의 흥겨움 때문인 듯했다.

버스킹(Busking).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얻기 위해 길거리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 행위.

2010년이 넘어가면서 한국에도 꽤 많은 버스커(버스킹 뮤지션)들이 나타나지만, 아직은 낯선 문화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라인딩!

블루 마운틴, 이건 클라이밍(Climbing)!

“감사합니다. 커피머신이었습니다!”

커피머신을 시작으로 공연이 이어졌다. 생소함과 신기함 때문인지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어느새 888 크루를 중심으로 둥그런 원이 만들어졌다.

“어어, 거기 케이블 밟지 마세요!”

“카메라! 아, 거기 잘생긴 형 카메라 치지 말라니까!”

길거리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격이 없는 것에 있었다.

보통의 공연은 스테이지라는 장치 때문에 뮤지션과 리스너 사이에 거리감이 생긴다. 물론 그 거리감이 뮤지션들을 차별화시키고, 리스너들에게 동경과 호기심을 갖게 하지만 꼭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 반해 거리공연은 뮤지션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공연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함께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또한 공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서프라이즈 이벤트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식적인 공연보다 게릴라 공연이 더욱 즐거운 일일 수도 있었다.

“아, 이건 예정에 없던 곡인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저희 크루 단체곡 한 번 불러도 될까요?”

좋아요, 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Eight, Eight, Eight이 시작됐다. 클럽 호미의 공연에 왔던 몇몇 관객들의 귀 찢어지는 환호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아직 모든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려 있는 건 아니었지만, 카메라 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연신 핸드폰을 놀려댔다.

썩 좋지 않은 앰프와 마이크였지만 공연은 신났다.

888 크루 멤버들은 연신 888 크루, 광주, 빛고을 등등을 레퍼젠트하며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흔쾌히 전기선을 빌려준 김밥 가게를 홍보해주기도 했고, 박인혁이 오기 부리며 프리스타일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한 남자가 와서 여자 친구 생일인데 이벤트 좀 해도 되겠냐고 해서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저기 카메라가 왜 있는지 알아요?”

상현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저희 888 크루가 이번에 광주 타이거즈의 응원가를 불러주게 됐어요. 여러분 한광수 선수 아시나요?”

야구의 열기가 높은 도시답게, 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광수 선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가끔 나오기에, 인지도가 높았다.

“지금 이 노래는 한광수 선수 응원가로 쓰일 거예요.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광주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혹시 뮤비에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게 싫으신 분이 있으면 잠깐 옆으로 비키셔도 좋습니다.”

아무도 비키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 누나, 그러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거예요? 가방 열렸는데?”

“어어?”

상현의 농담을 시작으로 광주 UP이 시작되었다.

상현 뒤에 옹기종기 모인 크루 멤버들이 업!을 외치는 순간에 무릎을 굽혔다가 피며 리듬을 탔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모습을 금방 캐치했다.

“광주!”

“업-!”

광주 업은 언제 불러도 신나는 노래였다. 같은 도시와 시대를 공유한다는 느낌은 금방 관객들을 끈끈하게 만들었다.

“광주 업!”

“광주 업!”

광주 업을 마지막으로 길거리 공연이 끝이 났다.

관객들은 아쉬워했지만 더 이상 준비된 비트도 없었고, 영업 방해라고 주변 상가들의 클레임이 들어왔기에 더 미룰 수는 없었다.

“10월 중순! 전대 후문의 부드러운 직선에서 888 크루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저희 클럽에 꼭 들려주세요!”

계획 중인 ‘888 Crew Show’의 홍보를 끝으로 사람들이 슬슬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치 카메라를 담당하던 고원국 대리와 카메라를 들고 뛰어 다니던 우민호가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재료는 모두 모아졌고, 이제 편집 밖에 남지 않았다.

타이거즈의 홍보부에서 퀄리티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아마 삼사일 내로 홈페이지에 올라갈 것이었다.

‘어느 정도로 홍보 효과가 있으려나?’

상현도 막연한 기대가 있을 뿐,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예전 쇼 비즈니스와 했던 준형의 인터뷰처럼 ‘광주 힙합 = 888 크루’라는 굳건한 이미지를 갖고 싶었다.

‘한광수 선수가 잘 좀 하면 좋겠는데.’

안타를 칠 때마다 곡이 한 번 더 플레이 되는 게 아닌가?

상현은 전생, 현생을 합쳐서 처음으로 야구 선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

“오빠! 시작한다!”

“어어어!”

상현이 라면을 끓이다 말고 TV앞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오후부터 기다리던 스포츠 뉴스가 드디어 시작하고 있었다.

여자 아나운서가 멘트를 시작하자 상현이 환호를 질렀다.

“오예!”

한광수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첫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프로야구 소식입니다.

광주 타이거즈의 한광수 선수가 드디어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수많은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광수 선수는 5타수 3안타 1홈런으로 절정의 타격감각을 과시했습니다.

주영민 기자입니다.

-지난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을 앞두고 극적으로 울산 파이러스에서 라이벌 광주 타이거즈로 이적한 한광수 선수.

라이벌 팀 간의 대형 트레이드였던 만큼 많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한광수 선수는 트레이드 직후 당한 허벅지 부상 때문에 4주간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팀 훈련에 복귀해 데뷔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던 한광수 선수는, 오늘 9월 8일 광주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타이거즈 맨으로서의 첫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상현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봤다. 응원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아직 몰랐다. 뉴스 내용을 미리 알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상현은 한광수 선수 데뷔 예정이었던 9월 7일에 크루원들과 다 함께 야구장을 갔었다. 그러나 출장이 불발되면서 맥이 빠졌었다.

대신 이제는 제법 친해진 고원국 대리 덕분에 라커룸에서 한광수 선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안타 좀 쳐주세요.’

‘네?’

‘안타를 치셔야 응원가가 불리잖아요.’

‘어? 혹시 광주 업?’

들어보니 한광수 선수 여자 친구가 미국에서 살 때부터 엄청난 힙합 팬이라고 했었다. 여자 친구 덕분에 우연히 광주 업을 듣게 되었고.

뉴스는 이제 한광수 선수의 안타 장면을 보여주었다.

1루타, 2루타, 그리고 홈런.

마지막으로 아슬아슬하게 3루에서 아웃되는 장면이 나왔다.

-네 번째 타석에서 아웃이 되지만 않았다면, 한광수 선수는 프로야구 통산 13번째 사이클링 히트(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순서에 상관없이 치는 것) 기록을 달성할 뻔 하기도 했습니다.

광주 타이거즈의 팬들은 라이벌 팀의 영웅에서, 이제는 홈 팀의 영웅이 된 한광수 선수에서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광수 업! 광수 업!

-빛 광 칠 수 광수 업!

뉴스를 주시하던 상현과 상미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우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서로의 팔을 찰싹 찰싹 때렸다.

“나왔다!”

응원가가 방송을 탄 것이었다.

뉴스는 한광수 선수의 MVP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상미는 상현보다 더욱 흥분해서 날뛰었다. 그동안 광주 타이거즈 홈페이지에 올라간 광주 UP 영상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한광수 선수가 데뷔를 하지 않은 탓이었지만, 상미는 계속 그걸 아쉬워했었다.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상미가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서 충천시키던 핸드폰을 가져왔다. 상현도 얼른 핸드폰을 열었다.

-야 봤지?

-봤냐?

-상현아! 뉴스 봤지?

-야 KBS에 나왔다. MBC 나왔냐?

벌써부터 발 빠른 크루원들의 문자가 폭주하고 있었다.

‘에이씨, 카카오톡은 언제 나오는 거야?’

한 명 한 명한테 답장을 하려니 귀찮았다. 그러나 상현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실은 전혀 귀찮지 않았다.

그렇게 두 남매는 삼십 분이 넘게 아무 말도 없이 핸드폰만 두들겼다. 둘 사이로 은은하게 라면 타는 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 Verse 12. 광주 UP!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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