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2. 광주 UP! >
“아 왜 때려!”
“이 기집애가? 머리도 피도 안 마른 것이 누가 술 마시래?”
“아, 무슨 소리야! 내가 오빠보다 먼저 아빠한테 술을 배웠거든?”
“그건 어른 앞이잖아!”
“오빠도 저번에 술 마셨잖아! 오빠도 미성년자면서!”
“내가 왜 미성년자야!”
“오빠가 미성년자지 그럼 뭐야!”
“내 정신이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어이구 그러셔요? 그럼 내 정신은 할머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내 정신은 진짜 미성년자가 아닌데…….
결국 상현은 실랑이 끝에 상미에게 콜라를 먹일 수가 있었다. 솔직히 광주였다면 맥주 한두 잔 정도야 용인할 수 있었지만 괜히 타 지역이라서 조심하게 되었다.
잘 곳을 정하지 못한 게 가장 불안했다. 그러니 한 명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상현은 상미를 혼내고는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신하연! 신하연 어딨어!”
“응? 나 여기 있어.”
하연은 인혁과 우민호의 등치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있었다. 스타즈 레코드의 연습실에서 벌어진 뒤풀이에 참여한 다른 라인업들과 함께였다.
“너 이리와. 내 옆에 앉아있어.”
“오오! 로맨스!”
상현이 하연을 데리고 옆에 앉히자 몇몇 라인업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얘 술 마시면 안돼요.”
상현은 하연이 글라스 소주 한 잔으로 만취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뭐야, 너희 둘이 사귀어?”
“아니거든요!”
“무슨 그런 소리를!”
배가에 질문에 상현과 하연이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과 같다고 했지.”
“그런 게 아니라, 얘가 술이 엄청 약해요. 제 케어가 필요한 친굽니다.”
“그래, 그래. 원래 챙겨주다가 챙분나는 거지.”
“챙분이 뭐에요?”
“챙에 라임을 맞춘 정분의 강조형이라고나 할까?”
“형 전화 통화할 때는 몰랐는데 사람이 굉장히 재미없네요.”
“과연 그럴까? 네가 이 술을 마시면 형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미친 개그로 변해서 빵빵 터질 텐데?”
“안 마신다고요!”
배가가 기를 쓰고 상현에게 술을 먹이려는 이유는 상현의 기분이 업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업 된 기분을 틈타 이득을 챙긴다!
“그럼 약속하던가.”
“그치만 일 년 내내는 불가능해요.”
“그럼 다음 공연만이라도 하자니까?”
“생각해보고 연락드린다니까요. 형 여자 친구 없죠? 이 형 되게 집요하시네.”
배가는 상현을 예정된 Hommie 파티에 계속 세우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Hommie Vol.2에는 반드시 세우고 싶었다.
벌써 Vol.1의 엄청난 성공이 오히려 부담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시기가 너무 좋았으니까.’
개강 직전이라는 특수와 월디페의 고정 관객 흡수라는 상황이 빠지는 Vol.2 때는 몇 명의 관객이 올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오늘 공연에서 대박을 친 888 크루를 한 번 더 라인업에 세우면, 최소한 밥값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뭐가 문제야? 곡 있겠다. 경험도 했겠다. 한 번 더 하면 되지? 야동을 안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보는 사람은 없다잖아? 무대도 마찬 가지야.”
“그것 참 비유가 찰지시네요. 형, 안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지금 확언하기가 애매하다는 이야기에요.”
“왜?”
상현이 하연의 그릇에 고기를 놓아주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저희는 시간에 쫓겨서 곡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다음 공연을 약속하면 지금부터 새로운 곡들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어디까지나 888 크루의 모토는 즐기는 창작이에요. 안에 가득차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느낌.”
“흠…….”
상현은 미주를 통해 배웠듯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못 참겠다는 영감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 예술. 회사에서 야근을 시키듯이 억지로 쥐어짜내는 결과물이 타인을 흥분 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저희 스케쥴도 문제에요. 저랑 하연이랑 준형이는 고등학생이란 말이에요.”
“어차피 공부도 안하잖아?”
“그래도 여기 먹보처럼 먹고 있는 하연이는 곧 수능이란 말이에…… 악!”
상추쌈을 먹고 있던 하연의 손이 불을 뿜었다.
“죽을래? 먹보?”
“복스럽다는 이야기지. 허허.”
상현과 하연을 구경하던 배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현이 너 고2 아니야?”
“맞아요.”
“근데 무슨 수능을 봐?”
“아, 하연이는 고3이에요.”
“어? 연상이야? 하긴, 사랑 앞에서 존댓말은 사라지기 마련이지.”
“그게 아니라 제가 빠른 년생인데 상현이가 건방지게 말을 놔서 그래요.”
“그래, 그래. 존댓말 쓰는 부부 없잖아. 자연스러운 일이지.”
상현은 자꾸 하연과 자신을 몰아가는 배가에게서 신입생을 갈구는 예비역 선배의 냄새를 맡았다. 아, 오랜만에 맡는 아저씨 냄새.
“상욱아.”
“어……? 너 지금 나한테 상욱이라고 그랬냐?”
“사랑 앞에서 존댓말은 사라지기 마련이지. 그렇지 사랑하는 상욱아?”
“좋아. 말은 놓게 해줄 테니까 Vol.2 한다고 약속해. 우린 사랑하는 사이잖아.”
“아, 고민해본다니까요! 이 진드기야! 아 붙지 마요!”
배가와 상현의 꽁냥꽁냥(?)을 지켜보던 상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이들.”
“하하, 상욱이는 상현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본데?
“제가 보기엔 그냥 게이들인데요?”
상미의 말에 스타즈 레코드 소속인 우연우가 소리 내어 웃었다.
본래 배상욱은 처음 보는 사람을 친근하게 대하지 않는다. 성격이 모났다거나 낯을 가리는 건 아닌데,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가 아니라면 묘하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곤 했다.
‘하긴, 그 공연을 보면 누구라도 친해지고 싶겠지.’
우연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연습실이 좁아 보일 만큼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888 크루 멤버들은 잘 못 느끼는 모양인데, 뒤풀이에 참석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888 크루 근처에 앉아 있었다.
활달한 박인혁, 우민호, 김환 근처에는 이미 앉을 자리도 없었고, 이상현이나 신하연 근처에서 말 한 번 걸어보려는 이들도 꽤나 많이 보였다.
본래 예정된 뒤풀이 장소는 공연장인 Hommie였다.
그러나 공연은 할 수 있어도 술은 마실 수 없는 888 크루의 미성년자들은 스타즈 레코드 연습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어영부영 꽤 많은 라인업들이 따라왔다. 클럽 호미에서 준비한 화려한 뒤풀이를 뒤로하고 말이다.
심지어 공연 주최자인 배가도 얼굴만 잠깐 비추고 여기로 왔으니 말 다한 것이다.
‘얘들은 크게 될 거야.’
우연우는 추측 아닌 확신을 가졌다.
물론 순수하게 ‘랩 스킬’로만 따지면 이상현, 신준형을 제외하고는 엄청난 레벨은 아니다.
신하연이나 박인혁 같은 경우는 굉장한 포텐션이 잠재된 느낌이고, 김환이나 오민지 같은 경우는 솔직히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건 개개인으로 활동했을 때의 이야기다.
시너지를 보이는 888 크루를 통해 그들이 보여줄 결과물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엄청날 것이다.
6명의 래퍼들이 제각각의 색을 갖기도 어려운데, 그들에게는 그 색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영감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저 친구가 있겠지.’
우연우가 맥주를 홀짝이며 이상현을 관찰했다.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키 크고 잘 생겼다는 메리트를 제외하면 그냥 고등학생.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니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감히 표현하자면 그건 마치…….
“게이?”
“그래. 마치 게이…… 응?”
“우리 오빠를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요? 오빠도 혹시 그쪽 취향?”
상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연우를 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 이상현을 관찰했던 모양이었다.
우연우가 대답하지 않자 상미는 흥미를 잃고 상추쌈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한잔 걸 하게 걸치는 모양새로 콜라를 들이부었다.
‘귀, 귀여워.’
우연우는 물론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었다. 단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여동생에 대한 환상이 있는 사람이었다.
상현을 잠시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우연우는 888 크루의 마지막 공연 곡이었던, 퍽 더 쇼 비즈를 회상했다.
***
-앵콜! 앵콜!
-앵콜! 앵콜!
888 크루가 퇴장했음에도 우레와 같은 앵콜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수고했어요. 다들.”
“고생했어.”
“아, 아직도 손이 덜덜 떨려.”
“그런 거 치고는 누나 엄청 잘하던데요?”
그러나 888 크루는 쿨하게 무대 뒤로 내려와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현은 발갛게 상기된 상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배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배가 형. 형 덕분에 정말 재미있는 무대 설 수 있었어요. 정말, 너무 재밌었어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러나 배가를 비롯한 스타즈 레코드 멤버들은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이제 올라가셔야죠? 마지막 공연 파이팅입니다!”
상현이 두 손을 모으며 파이팅 자세를 취하자 배가가 헛웃음을 지었다.
“파이팅? 넌 지금 파이팅이란 소리가 나오냐? 더 파이팅처럼 맞아볼래?”
배가가 별안간 상현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상현이 악! 하며 배가의 등을 때렸다.
“형! 왜 이러세요? 저희 아직 이렇게 가까운 사이 아니잖아요!”
“저건 어쩔 건데!”
배가가 상현을 놔주며 무대를 가리켰다. 어느새 관객들이 외치던 앵콜 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들은 다른 것을 외치고 있었다.
-퍽 더 쇼 비즈!
-퍽 더 쇼 비즈!
우레와 같은 퍽 더 쇼 비즈 콜.
대부분의 관객들이 미소를 지으며 ‘퍽 더 쇼 비즈’를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전율이 이는 광경이었다.
물론 모든 관객이 퍽 더 쇼 비즈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힙합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도 많았고, 단지 이번 달에 개장한 클럽 호미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 힙합 팬들에게 전염되어 ‘퍽 더 쇼비즈’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오늘 888 크루의 공연을 본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대감의 발로였다.
“이 자식이 똥물을 뿌려도 유분수지!”
“똥물이라뇨…….”
“똥물도 저런 똥물이 없지. 저기서 어떻게 랩을 해?”
“스타즈 레코드가 올라가면 금방 가라앉지 않을까요? 이제 막 시작한 저희 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히트곡과 팬들을 보유하신 스타즈 레코드…….”
“닥치고! 너 퍽 더 쇼 비즈 공연용 엠알(MR)있어? 없어?”
상현이 가증스럽게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웃었다.
“저희 팀이 아직 곡이 몇 개 없어서요. 디제이 분께 드린 시디에 저희 노래 엠알이 전부 있긴 한데…….”
“그러니까…… 있단 말이지?”
“우연히도 그렇게 됐네요.”
배가가 또 한 번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아주 계획적으로 가증스러운 놈이네?!’
“야 이, 나쁜 자식아. 여기서 뭐해?”
“네?”
“무대로 올라가서 저것 좀 어떻게 하라고!”
“그치만 정해진 공연 시간이…….”
“내가 한 곡 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해!”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상현이 배가에게 경례를 붙였다. 그리고는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받고는 암전 상태의 무대로 올라갔다.
배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어쩐지 ‘퍽 더 쇼 비즈’를 안하더라니.
‘아니 잠깐. 그러면 저 놈은 앵콜이 나올 걸 확실히 예상했다는 말이야?’
< Verse 12. 광주 UP!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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