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erse 11. Hommie Vol.1 (完) >
준형의 묵직한 로우톤. 그러면서도 빠른 랩.
인혁의 하이톤과 껄렁 껄렁 어슬렁거리는 랩.
김환의 정박을 지키며 딜리버리를 극대화한 여유로운 랩.
민지의 날카로운 여성 보이스의 엇박자 랩.
하연의 멜로디컬하면서도 단단한 랩.
6명의 멤버가 다함께 고민해서 정한 Eight, Eight, Eight의 벌스 조합은,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16마디 안에 두 명의 래퍼가 각자의 색을 칠하는데, 그 색이 지저분하지 않고 적절하게 섞이는 느낌이었다.
특히 오민지가 가장 큰 수혜를 봤다.
사실 오민지는 크루 내에서 랩의 기본기가 가장 부족한 멤버였다. 하지만 김환이 정박이며 여유로운 랩으로 앞을 받치니, 오민지의 랩은 본래 랩보다 훨씬 세련되게 들렸다.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매일 칠(Chill: 놀다) 해도 더 위에 있다고
우리와 견주려면 네 나인(Nine) 어림없다고
후렴구는 상현의 생각처럼 점점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내심 기대했던 ‘완전 미치는’ 분위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원래 트랩 장르가 그렇다. 덫이라는 의미를 포함한 트랩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장르다.
사실 상현도 처음에는 트랩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하는 축이었다. 랩의 표현력과 단단한 스킬보다는 턴업(Turn-Up)하는 바이브를 우선시하는 그 특징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신도 모르게 샤워하면서 흥얼거리는 음악이 트랩이었다.
‘오늘만이 날이 아니니까.’
Eight, Eight, Eight은 멀리 보고 만든 곡이었다.
작은 의미로는 888 크루의 첫 단체곡이었고, 큰 의미로는 한국 힙합 역사 최초의 트랩 음악이라는 족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니까,
‘마무리는 내가 죽여야지.’
마침내 하연의 멜로디컬한 8마디가 끝나고, 상현의 차례가 도래했다.
상현은 목에 두르고 있던 888 로고가 새겨진 수건을 머리에 둘렀다. 때마침 눈치 빠른 준형이 현수막을 펼쳤다. 상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현수막 앞으로 당도했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로고가 수놓아진 현수막.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두 심볼이 교차하며 스웨거한 광경을 이루어내는 순간!
마침내 상현의 랩이 관중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비트로 시간 맞춰 출근하지
프리스타일로 시간을 때우곤 하지
집에 가면 또 마누라가 채근하지
야근을 핑계로 대곤하지
회사엔 Rhyme 업무가 빼곡하지
배껴 온 Track은 다 빼곤 하지
오늘은 더리 싸우스로 외근하지
Rhyme을 뭘로 하지? Recognize Me.
상현은 이제 꿈꾸던 삶을 살고 있었다. 회사가 아닌 비트로 출근하는 삶. 사회의 보편적 규칙이라는 ‘마누라’가 채근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삶.
회사엔 다른 업무는 없고 오직 라임 업무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트랩이라는 더리 싸우스 장르로 외근하는 날이었다.
‘그럼 외근 수당은 뭘로 받는 거야?’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관객들이 엄청난 환호로 수당을 주고 있었으니까. 그 어떤 물질적인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라는 수당을.
I'm Back. 난 Another. Next Level
내 관심사는 오직 에스트로겐
내가 랩으로만 너를 달아오르게 만들게
못 믿겠으면 이 자리에서 테스트해 볼래?
대학 졸업하고 넥타이 멜,
화이트 컬러 대신 방식은 블랙
피부는 노란색, 근데 알다시피
검은색이랑 섞이면 싹 다 검어지지
이전 삶에서 화이트 컬러로 대변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화이트 컬러도, 블루 컬러도 아닌 블랙 컬러의 삶이 자신의 삶이었다.
상현의 폭발적인 랩이 토해지자 사람들이 엄청난 환호를 질렀다.
트랩 뮤직 특유의 808 드럼이 잘게 쪼개는 박자. 거기에 단단한 랩이 이어지는데 어떤 힙합 팬이 견딜 수 있을까?
콰앙-!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정적’소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막을 끊임없이 두드리던 사운드가 일순간에 꺼지자, 관객들의 웅웅거리는 귀 위로 침묵이란 충격이 떨어졌다.
그때 준형이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내일 일요일인데 왜 몸을 사려?”
상현, 준형, 인혁, 환, 민호, 하연, 상미, 민지.
모든 888 크루의 멤버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MAKE SOME NOISE_____!”
관객들의 엄청난 함성소리를 배경으로 마지막 후렴구가 펼쳐졌다.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Verse 12. 광주 UP
……이처럼 Hommie Vol.1의 성공적인 개최에는 배가의 숨은 노력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필자는 앞으로 이어질 한국 힙합의 역사에 배가라는 이름이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5년 8월 27일에 벌어진 Hommie Vol.1 공연이, 한국힙합 역사상 최고의 공연으로 기록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공연을 직접 관람했던 힙합 팬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당신들의 함성과 환호가 만들어낸 오늘의 공연은 한국 힙합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고, 그 족적의 이면에는 자신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가 않는다. 필자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선은 오늘의 라인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한…….
(중략)
여기까지 꾹 참고 평론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참으로 오래 걸렸다. Hommie Vol.1의 히어로인 888 크루에 대해 언급하기까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은 스타즈 레코드와 배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필자가 이처럼 888 크루에 대한 언급을 제일 뒤로 미룬 것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평론 내내 888 크루의 공연에 대한 이야기만 떠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배가의 노력과 수많은 공연진들의 노고를 무시하고 말이다.
그렇다. 오늘부로 선언하는데 필자는 888 크루의 팬이다. 그러고 보면 불과 한 달 전에 888 크루를 비판하는 평론을 썼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게 다가온다.
오늘 그들이 보여준 힙합 바이브는 혁명적이었고, 그들의 무브먼트는 진보적이었다. 감히 한국 힙합의 고질적 문제를 통렬하게 걷어찼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888 크루가 랩을 잘하고, 공연을 잘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오늘 무대를 통해 만천하에 선보인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다.
독자들은 오늘 888 크루가 몇 개의 힙합 장르를 선보였는지 알고 있는가?
사실 나도 내 구분이 정확하다고 자신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오늘 선보인 6개의 곡 중, 장르가 겹치는 곡은 하나도 없었다. 힙합이라는 아주 큰 틀을 제외하면 말이다.
광주 UP은 ‘뉴 스쿨 동부 힙합’의 향기를 풍긴다.
동부힙합 특유의 드럼 소스를 가지고 왔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은 최근 유행하는 뉴 스쿨의 방식인 곡이었다. 올드 스쿨 붐뱁이 주류인 한국 힙합 앞에서 888 크루를 알리는 오프닝 곡으로는 아주 적절한 선곡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에 반해 다음 곡인 So Tight은 ‘뉴 스쿨 서부 힙합’의 사운드를 차용했다.
즉, 그들은 뉴 스쿨이라는 범주 안에 동부 힙합과 서부 힙합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중략)
Eight, Eight, Eight을 언급하며 트랩에 대한 설명이 장황해졌다. 트랩이라는 장르가 독자들에게 낯선 장르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며칠 내로 888 크루에 대한 평론을 한 번 더 적을 생각이다. 그때는 지금까지 간략하게 언급했던 888 크루의 공연 곡들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을 해볼 생각이다.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퍽 더 쇼 비즈’뿐이다.
888 크루가 Eight, Eight, Eight을 끝으로 무대에서 퇴장했을 때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모든 힙합 팬들이 그랬듯, 필자 역시 퍽 더 쇼 비즈의 라이브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배가에게는 또 한 번 미안하지만 나 역시 퍽 더 쇼 비즈 콜을 외쳤다. 그러나 그토록 극적인 전개를 예상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평론가가 할 말은 아니지만, 힙합의 신이 한국에 최초의 ‘랩스타(Rapstar)’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상황을 만든다는 망상까지…….
-힙합 평론가 류제현
***
Hommie Vol.1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아니, 성공적이라는 단어는 너무 스케일이 작았다. 그보다는 폭발적으로 끝이 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입장수익으로만 따지면 엄청난 금액을 번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999년부터 시작된 한국 힙합의 역사 내에서는 가장 큰 액수의 수익금이라고 했다.
‘시기가 좋았어.’
상현은 잘 익은 삼겹살을 주워 먹으며 생각했다.
그의 생각처럼 이번 공연은 시기가 아주 좋았다.
호미 볼륨 원(Hommie Vol.1) 공연 날은 8월 27일 토요일. 9월 1일에 개강을 하는 대학생들의 마지막 혼을 불사르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개강직전에 미친 듯이 놀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는 공연.
또한 매년 8월 중순에 수도권에서 개최되던 LOC 그룹의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의 부재를 노리는 것도 적절했다.
이번 월디페가 전주에 개최되면서, 매년 월디페를 즐겼던 많은 수의 수도권 인디 팬들이 붕 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Hommie Vol.1은 장르는 다르지만 공연 콘텐츠라는 유사점으로 월디페의 대체재를 자처했다.
배가 형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 줄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영리한 타이밍이었다.
‘지금 이러는 걸 보면 그렇게 머리 좋은 형은 아닌 것 같은데.’
상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상추쌈을 입안에 우겨넣었다. 상현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배가가 왼쪽으로 따라왔다. 휙 하고 오른쪽으로 돌리자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따라왔다.
“아, 형! 안 마신다니까요?”
“아, 왜! 인혁이가 그러는데 너 술 잘 먹는다던데?”
“그래도 안 먹어요. 여기가 바로 눈뜨고도 코 베인다는 한양 아닙니까? 크루 멤버들도 있고, 동생도 있는데 제가 잘 챙겨야죠. 취하면 안 돼요.”
“너희 크루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까?”
“그럼요!”
“리더는 벌써 맛이 갔는데?”
배가의 말에 상현이 뒤를 보니, 준형이 헤롱헤롱 웃고 있었다. 아, 저 망할 놈의 자식.
“너희 크루 맏형들은 이미 고주망태다.”
또 한 번 고개를 돌려보니 박인혁, 우민호, 김환의 눈은 이미 풀려 있었다.
“그리고 네 동생은 꽐라야.”
“네?!”
상현은 깜짝 놀랐지만 상미는 멀쩡했다. 대신 오민지랑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사이다 인척 하려고 사이다 병을 옆에 세워놨는데 음료색이 누렇다.
상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상미의 등짝을 때렸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상미가 도끼눈을 떴다.
< Verse 11. Hommie Vol.1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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