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68화 (68/309)

< Verse 11. Hommie Vol.1 >

“안녕하세요! 저는 16살 이상미라고 합니다. 이 웬수 덩어리 동생이고요, 888 크루에서 싸이월드 클럽 관리와 만화가를 맡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음이랑 네이버에 ‘888 X 888’이라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웹툰을 연재할 계획인데, 시간 나시면 한 번 읽어주세요! 오늘, 온갖 허세란 허세는 다 피운 이 사람들의 실체를 공개하겠습니다!”

상미의 당찬 외침에 의외로 큰 환호가 터졌다. 어린 여중생에 대한 배려치고는 좀 컸다.

신이난 상미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상미가 크루에 정식으로 들어온 것은 보름 밖에 안됐지만, 그 전부터 워낙 함께 어울리다보니 초창기 멤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888 크루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미주 누나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그러나 말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다. 준형의 할리우드식 화법(?)으로 이야기가 정리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체 곡은 저희 여섯 명이 만든 노래지만 노래를 부를 때면 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샤라웃(Shout-Out) 상미, 민호 형, 미주 누나, 그리고 밴드 L&S까지!”

박인혁의 ‘크, 할리우드’ 하는 소리가 들리자 888 크루 멤버들이 피식 웃었다. 박인혁이 맨날 하는 소리지만 맨날 웃기다.

“비트 주세요!”

준형의 외침에 ‘Eight, Eight, Eight’의 비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888 크루 멤버들에게는 익숙한 사운드.

하지만 관객들과 래퍼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장르인 트랩 비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트랩 뮤직.

트랩이란 남부의 래퍼들이 탄생시킨 장르로써, 서부 힙합의 잡다한 드럼 소스와 대비되는 ‘단단하지만 채를 썬 듯, 잘게 쪼갠 808드럼’이 이용되는 장르였다.

트랩 뮤직이 2010년 이후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된 것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트랩이 그동안에 없던 ‘제대로 된 힙합 클럽튠’이기 때문이었다.

트랩 뮤직 이전에 클럽에서 파티용으로 틀던 랩에는 제대로 된 힙합의 맛이 없었다. 힙합 팬들을 미치게 하는 맛이 없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정통 힙합 음악은 여러모로 클럽에서 틀기엔 덜 신나는 사운드였기 때문이었다.

4마디, 혹은 8마디를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루프(Loop : 반복)되는 드럼 소스.

그 위에 올라간 묵직한 랩.

이 같은 고유의 힙합은, 힙합 팬이 아닌 클러버들을 턴업(Turn-Up)시키기에는 2%가 부족 사운드였다.

때문에 클럽 DJ들은 ‘클럽용’ 힙합 음악을 틀었다. 일렉트로닉 힙합이나 크렁크(Crunk) 같이 더 자극적이고 더 리드미컬한 곡들을. 또는 화려한 사운드에 정통 힙합을 리믹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곡들은 역설적으로 힙합 팬들에게 거부를 당했다.

힙합 고유의 멋을 간직한, 제대로 된 힙합 음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클럽튠과 힙합 뮤직의 괴리 사이에서 트랩 음악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2005년 이후로 진화된 트랩은 클럽튠과 힙합 음악의 장점을 동시에 내포한 서던 힙합 장르였다.

거기에 또 하나의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면 따라 부르기 쉬운 중독적인 후렴구였다.

‘아주 간단하지만 어딘가 따라하고 싶어지는 훅.’

성공한 모든 트랩 뮤직은 아주 간결하고 매력적인 훅을 가지고 있었다. 절대 예외는 없었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 큰 유행을 일으킨 일리네어의 ‘연결고리’나 래 스레머드(Rae Sremmurd)의 ‘No Flex Zone’와 같은 곡처럼 말이다.

그리고 상현은 Eight, Eight, Eight에 트랩의 향이 물씬 나는 후렴구를 장착해놓았다. 분명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 노래를 몇 번 접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후렴구를 중얼거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매일 칠(Chill: 놀다) 해도 더 위에 있다고

우리와 견주려면 네 나인(Nine) 어림없다고

상현이 만든 후렴구가 스피커를 타고 관객들에게 토해졌다. 즉각 반응하며 손을 드는 사람도 있었고, 애매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현은 궁금했다. 후렴이 거듭되면 과연 계속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준형과 박인혁이 미친듯이 무대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하연과 민지가 무대의 앞쪽에서 리듬을 타며 뛰기 시작했다.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이 노래의 훅은 명확한 가사 전달보다는 멤버들 전원이 뛰어다니며 흥을 내는 것이 중요했다.

‘인혁이 형, 이 노래를 할 때는 형이 미친놈이 되어 줘야겠어요.’

‘봉인했던 내 몸의 용을 풀어줄 때가 된 건가…….’

예고했던 대로 봉인을 해제한 박인혁은 미친놈이 되었다. 인혁은 봉산탈춤과 캉캉 댄스를 접목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기 시작했다.

“We Eight! 위 에잇! 위 에잇! 위에 있다고 위 에잇!”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는 박인혁의 몸짓은 웃기면서도 열정적이었다. 무대 근처의 관객들이 박인혁의 몸짓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상미와 민호를 포함한 모든 멤버들이 Eight!을 외치며 방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상현은 아직도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객들의 어깨가 차츰 들썩이는 것을 느꼈다.

연이은 두 번의 후렴이 끝나고 선봉장인 준형의 랩이 시작되었다.

난 칠린(Chillin) 하거나, 볼린(Ballin)하거나,

힙합에 전부다 올인(All-in) 하거나,

멀리 보거나, 벤츠 Mercy나,

Rolex나 롤스로이스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 없지만!

깎아내린 듯이 딥한 준형의 목소리가 타이트한 랩을 뱉기 시작했다. 본래 준형은 중간 정도의 속도에 박자가 여유로운 랩을 선호했는데, 이번 곡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준형이 묵직한 탱크의 포격 대신 선택한 것은 기관총이었다. 두두두하는 랩이 쏟아지고 관객들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나 준형은 무자비하게 랩을 이어갈 뿐이었다.

우린 평생 닿지 못할 공간에 깃발을 꽂아

저기 달 바닥에

이제 음모론을 떠들어,

난 우주인데 내가 바다라고 말해

상현은 처음 Eight, Eight, Eight 비트에 얹어진 준형의 랩을 듣고 엄청나게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은 ‘20년의 경험치’라는 치트키 때문에 자신이 준형보다 월등히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할 수 없었다. 어느새 준형은 상현의 영향을 받아 치트키를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준형을 어깨로 밀치고는 박자를 타며 걸어 나왔다. 박인혁이었다.

간단한 랩, 단단하게

거친 비트쯤은 감당할게

담담하게, 적은 단어 안에

rhyme, flow, groove의 삼단합체

박인혁이 슬렁슬렁 랩을 뱉기 시작했다.

유들유들한 성격 탓인지, 박인혁은 항상 비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듯한 랩을 구사했다. 정박을 지킨다는 점이 약간 다르지만, 한국 뮤지션과 비교하자면 YDG 양동근과 비슷했다.

이런 박인혁의 랩 스타일은 타이트하고 빠른 비트와 어울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BPM이 느린 트랩 뮤직에는 너무도 어울리는 랩이었다.

준형의 딥하고 타이트한 랩과 대비되는 박인혁의 하이톤의 어슬렁거리는 랩은, 색다른 맛을 보여주며 묘한 대비를 이뤄냈다.

각각 8마디인 준형, 인혁의 랩이 끝나고 다시 한 번 Eight, Eight, Eight의 훅이 공연장을 울렸다.

처음 훅을 부를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낯설음에서 오는 어색함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that Crew!

처음 세종악기사에서 런 디스 타운을 공연할 때 느꼈던 기분. 랩 메탈을 어색해하던 관객들이 공연이 끝날 때쯤엔 신나서 날뛰던 그 기분.

‘힙합 클럽튠.’

트랩이란 장르의 정의처럼 공연장은 완전히 클럽으로 변해 있었다.

‘미쳤다.’

배가를 포함한 스타즈 레코드 멤버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이 뒤에 공연을 어떻게 하지?

솔직히 퍽 더 쇼 비즈의 이슈가 강렬해서 그렇지, 커리어로만 따지면 오늘 888 크루가 라인업 중 무게감이 가장 떨어진다. 몇몇 라인업들은 왜 888 크루가 엔딩 바로 앞이냐고 걱정한 사람도 있었다.

앞의 무대가 아무리 좋아도 후반부가 죽어버리면 그 공연에 대한 평가는 낮아지기 마련이니까.

‘내가 처음 공연할 때는 어땠더라?’

배가는 888 크루의 공연을 보며 벌써 8년도 더 된 과거를 떠올렸다.

호흡 관리 안 되고, 가사 까먹고, 바짝 얼어서 로봇처럼 삐거덕거렸던 과거가 떠올랐다.

‘상현이랑 준형이란 친구 빼면 다들 첫 공연이라지 않았나?’

도대체 어떻게 저게 첫 공연이란 말일까? 리허설도 안했는데.

그러나 배가는 888 크루 멤버들이 연습 장면을 카메라로 찍으며 셀프 피드백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가 공연할 때 분위기 완전 죽는 거 아니야?’

배가는 갑자기 걱정이 들었다.

버드맨(Birdman)이 미국 투어 중, 오프닝 래퍼 슬림피(Slim P)를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해고한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앞에서 너무 잘하니까 쫄린다.

“근데 이건 무슨 장르야? 비트가 너무 독특한데.”

“응? 그냥 웨스트 아니야?”

“이게 웨스트라고? 그러기엔 드럼 소스가 너무 깔끔한데? 웨스트 힙합 특유의 바이브가 아닌 거 같은데?”

스타즈 레코드의 프로듀서인 우연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사운드로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오는 888 크루의 비트는 너무나도 독특했다.

“이거 더리 싸우스(Dirty South) 아니야?”

“뭐? 더리 싸우스?”

“티아이나 구찌메인 앨범 곡들이랑 좀 비슷하지 않아?”

우연우는 문득 얼마 전에 나온 구찌 메인의 앨범 [Trap House]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더리 싸우스의 사운드와 유사한 면이 많았다.

‘말도 안 돼. 888 프로듀서가 누군데?’

사실 우연우는 싸우스 힙합 쪽을 잘 몰랐다. 아니, 현재 한국에서 싸우스 힙합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있을까? 어색하지 않게 흉내만 내도 박수를 쳐줄 것이었다.

그렇게 우연우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888 크루의 무대를 감상하던 중, 임현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근데 이게 888 크루 마지막 곡 아니야?”

“시간 상 그렇지.”

“그럼 퍽 더 쇼 비즈는?”

“어……? 그러네?”

배가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자신들이 무대에 올라갔는데 ‘퍽 더 쇼 비즈’ 콜이 나온다면?

‘이상현 이 자식, 이거! 알고 보니 엄청 나쁜 놈이었네?!’

그러나 배가의 투덜거림과는 상관없이 Eight, Eight, Eight의 무대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 Verse 11. Hommie Vol.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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