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66화 (66/309)

< Verse 11. Hommie Vol.1 (유료시작 편) >

정적 속에서 상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이고 힘들어라.”

상현의 너스레에 간간히 웃음이 들렸다.

“제가 어디 소속인 줄 아세요?”

888 크루!

“그럼 제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겠네요?”

광주-!

“맞아요. 광주 업이란 노래는 제가 사랑하는 광주에 대한 가사로 만들어진 노래에요.”

상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천 명이라는 숫자는 산술적으로 보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막상 눈앞에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실로 엄청난 숫자였다.

“그런데 여러분들 대부분은 광주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상현은 자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문구를 가리켰다.

하얀색 티셔츠에는 888 X 888이란 로고가 프린팅 되어 있었고, 또 그 문구 안에는 062 X RAP란 문구가 숨어 있었다.

“이제부터 각자 레퍼젠트하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해볼게요.”

서울-!

상현이 크게 소리치자 관객들이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어? 지금 여기에 서울 토박이들 없나요? 레퍼젠트 서울. 없어요?”

상현이 다시 한 번 소리 질렀다.

서울-!

뒤늦게 업! 이란 작은 소리가 터졌다.

“어? 별로 없네? 이게 끝인가요? 그럼 경기도로 넘어가볼까요?”

고개를 갸우뚱한 상현이 다시 소리 질렀다.

서울-!

업!

서울-!

업---!

이번에는 종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소리가 터졌다. 씩 웃은 상현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경기-!

업-!”

상현은 순차적으로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인천 등등 기억나는 모든 도시를 외쳤다. 업! 소리는 서울이 가장 컸다.

“이제 광주 대신 각자의 도시를 외칠 거예요. 그럼 광주 UP이란 노래는, 본인들의 도시를 리스펙하는 노래로 바뀌는 거예요.”

다시 와아아 하는 한 번 함성이 터졌다.

상현이 손짓하자 디제이가 비트를 재생했다.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상현이 광주 UP!이라고 외치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관객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수많은 도시들이 언급됐다. 서울, 경기, 인천, 부산, 대구, 울산, 심지어 제주도까지. 다양한 소리가 섞여서 알아들을 순 없었다.

그때, 누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Hommie UP이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 Hommie UP! 이란 소리가 클럽을 가득 채웠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상현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Hommie UP! Hommie UP!

Hommie UP! Hommie UP!

Hommie UP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마침내 콰쾅! 하는 드럼 소리를 끝으로 광주 UP 공연이 끝이 났다.

공연장은 한동안 환호소리로 들끓었다.

그 어떤 유명 가수의 공연 못지않은 열기였다.

상현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888 크루의 이상현이고, 랩 네임은 FiveSix라고 합니다. 제 랩 네임은 오늘 처음 밝히네요.”

상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만 내민 준형이 엄지를 치켜 올렸다가 곧 OK 모양을 만들었다.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

“888 크루에는 총 여덟 명의 멤버가 있습니다.”

이상현, 신준형, 박인혁, 김환, 우민호, 신하연, 오민지 그리고 이상미.

“그리고 한 명 한 명 모두 대단한 역량과 각자의 스웨거를 가진 친구들입니다.”

상현의 손짓에 준형과 하연이 올라왔다. 상현의 무대 덕분인지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특히 보기 드문 여성 래퍼의 등장에 남성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무대에 올라온 하연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일언반구도 없이 후렴구를 시작했다.

So, Tight- You don't know what i take flow

(꽤 멋져, 넌 몰라 내가 무슨 랩을 하는지)

So, Tight- my mommy, daddy is god

(꽤 멋져, 우리 엄마, 아빠는 신이야)

So, Tight- Cause I'm new god flow

(꽤 멋져, 왜냐면 난 신의 랩을 하거든)

So, Tight, Ti- Ti- Ti- Tight

남자 못지않게 단단한 하연의 랩에 공연장이 어느새 조용해졌다.

그 순간,

“Drop the Beat-!"

갑자기 준형이 버럭 소리 질렀다.

콰쾅하는 소리와 함께 쿨한 웨스트 사이드의 비트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준형이 양손에 들고 있던 888 크루 티셔츠를 뿌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여기요! 여기!

랩에 열광하는 이들, 티셔츠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드는 이들, 비트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공연장이 터질 것 같은 열기가 다시 한 번 뿜어져 나왔다.

***

오연주는 왼쪽으로 살짝 이동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와 자꾸 손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의도적이었다.

‘이런 걸 정말 여자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왼쪽으로 이동한다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른쪽의 남자를 피하려다 왼쪽의 사람에게 더 바짝 붙어야했다.

그러나 왼쪽에는 여자가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었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타인이었다.

‘덥다.’

클럽 안은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주는 처음 접하는 뜨거운 열기에 문화 충격을 느꼈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행동이 이 정도로 사람을 열광시킨다는 것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녀가 콘서트라는 장소를 경험해본 것은 몇 번의 클래식 콘서트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도 자의는 아니었고, 회장님 일가와 어쩔 수 없이 관람해야했던 자리였다.

연주는 콘텐츠를 다루는 오경 ENT로 재발령이 났지만, 여전히 공연 문화와는 큰 친분이 없었다.

“대단하죠?”

눈치도 없는 오른쪽의 남자, 홍경수가 귓속말을 했다.

더워 죽겠는데 바짝 붙는 것이 영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귓속말이 아니면 전혀 말이 전달되지 않는 환경 탓에 별 수는 없었다.

“그러네요.”

연주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긴 하네.’

사실 재미는 있었다. 그녀는 랩이라는 걸 전혀 모르지만, 사람을 휘어잡는 느낌이 있었다. 괜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끌고 가는 남자들의 데이트 코스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남자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만.

‘혼자 와서 봤으면 나도 방방 뛸 수 있었을 텐데.’

왼쪽의 여자들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미친 듯이 흔들기도 했다. 그 모습이 자유로워보였다.

연주도 한 번 따라 해보려다가 의상이 그럴 의상이 아니라서 손만 까닥거렸다. 공연장에 온다는 것을 미리 알려줬으면 하이힐과 세미 정장을 입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제 생각이지만 오 년 내로 힙합 씬의 파이가 굉장히 커질 것으로 예상돼요. 저희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죠.”

“그렇군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르기도 합니다.”

홍경수가 슬금슬금 오연주 쪽으로 다가왔다. 또다시 손이 살짝 스쳤다. 그러나 더 이상의 구체적인 행동을 하진 않았기에, 이게 수작인지 호감 표시인지 잘 모르겠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하긴 그러니까 오경 ENT 같이 회전률 빠른 곳에서 몇 년씩 썩어있는 거다.

홍경수와 오연주는 오경 ENT의 ‘미디어 콘텐츠 분야’소속이었다. 영화, 애니메이션, 연예, 음악, 공연 등등의 미디어 관련 콘텐츠 전반의 업무를 담당하는 곳.

제작, 수입, 수출, 배급, 유통, 홍보 등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라면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만간 오경 Media로 계열사 분리가 될 거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몸집이 큰 분야였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 콘텐츠 분야가 오경 ENT 자금 회전률의 60% 이상을 책임지는 분야라는 점이었다. 영화 제작과 같이 들어가는 돈이 많지만, 성공 시 그 영광도 큰 분야.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미디어 콘텐츠 분야는 다른 계열사에 비해 단기간에 큰 실적을 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때문에 오경 ENT의 미디어 콘텐츠 분야는, 단기간에 실적을 쌓아 주류 계열사에 편입하고 싶은 방계들이 침을 흘리며 노리는 곳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건설이나 금융, 전자 분야와 비교하면 벌어들이는 돈은 새 발의 피지만.

홍경수는 이런 오경 ENT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굳이 촌수를 따지면 오연주와 십이 촌 쯤 되는 사람.

홍경수의 특이한 점이라면 그가 미디어 콘텐츠 분야를 진심으로 좋아해서 일을 한다는 점과 오연주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점이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게 가능할까?’

오연주는 첫 눈에 반한다는 건 결국 외모가 자기 취향일 뿐이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업무적 성취욕이 높은, 나쁘게 말하면 일에 미친 부모님을 둔 연주는 어릴 적부터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의 만남에 있어서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버릇이 있었고, 그것은 곧 상대방을 분석하는 버릇으로 이어졌다.

연주는 상대방의 속내를 쉽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다. 지금껏 그런 연주의 판단을 벗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있었구나.’

고 부장의 일과 관련해서 만났던 이상현.

고등학생이지만 알 수 없는 면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다음에 나올 팀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팀입니다.”

“이름이 뭔가요?”

“플레이라인이라고, 두메인(Doomain)과 펄스(Pulse)라는 래퍼로 이루어진 듀오 팀이죠.”

“그렇군요. 재밌겠네요.”

이상현과 비교하면 홍경수의 속내는 너무 쉽게 읽혔다. 아마도 홍경수는 자신을 그와 같이 사내 정치에서 낙오된 인물로 보는 것이었다. 오경 ENT로 좌천된.

그래서 직계인 자신에게 이렇게 쉽게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미안하긴 하네.’

연주는 재발령이 났기에 자신의 편이 필요했다. 이게 그녀가 홍경수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 이유였다. 왠지 홍경수의 호감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찝찝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홍경수도 그 정도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홍경수가 모르는 것은 딱 하나였다.

‘내가 오경 ENT로 좌천된 것이 아니라는 점.’

오히려 그녀가 오경 ENT로 재발령이 난 것은 승리의 과실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고 부장의 비리를 밝히고 얻은 과실.

왜냐하면 오경 ENT의 미디어 콘텐츠 부서는 곧 오경 MEDIA로 계열사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니까.

연주는 오경 MEDIA의 실장 자리를 약속 받았다. 그때쯤 되면 홍경수는 아마 자신의 부하직원이 돼 있을 것이었다. 그것도 한참 아래의.

-플레이 라인!

-와아아!

플레이 라인의 공연은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 곡에서는 연주도 작게 후렴구를 따라 부를 정도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홍경수의 시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연을 즐기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공연진이 바뀌는 동안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연주는 그 사이 핸드폰에 도착한 몇 건의 문자 메시지에 답변을 했다.

-지지지직!

그때 난데없는 시끄러운 노이즈 소리가 들렸다. 노이즈 소리에 비례에 함성 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

-광주 UP! 광주 UP!

“왜 그러세요?”

“저 사람…….”

< Verse 11. Hommie Vol.1 (유료시작 편)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