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65화 (65/309)

< Verse 11. Hommie Vol.1 >

***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2년차 대리인 문지연은 본래 음악이나 문화 공연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드림 엔터테인먼트에 취업한 것은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

‘어우, 땀 냄새.’

드림 엔터테인먼트는 공연 기획, 섭외, 장비 대여 등등의 무대 제작 일체를 담당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자본금의 압박으로 인해서 주체가 되어 행사를 기획하진 않았다.

주된 업무는 대기업이나 해외기업에 고용된 채로 외주를 보는 것이었다.

-와아아아아!

-플레이 라인! 플레이 라인!

귀를 울리는 함성에 문지연이 다시 인상을 썼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꼭 광신도들만 모아놓은 것 같다.

‘사장님이 오셨으면 같이 뛰고 난리일 텐데 왜 내가 온 거야?’

최근 드림 엔터테인먼트는 엄청나게 큰 행사를 맡았다.

바로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오경 그룹에서 진행하는 AIMMF(ASIA INDEPENDENT MUSIC & MOVIE FESTIVAL).

LOC 그룹과 라이벌 관계인 오경 그룹은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의 명성을 이기려고 엄청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보통 무대 제작과 기획을 위주로 하는 드림 엔터테인먼트가 ‘섭외’의 역할만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오경그룹(정확히 말하면 오경 엔터테인먼트)은 공연 기획팀 따로, 무대 제작팀 따로, 영상 제작팀 따로, 홍보팀 따로, 섭외 팀 따로 계약하며 돈을 쏟아 붓고 있었다.

물론 섭외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공연계에서 10년 이상 굴러먹은 드림 언테테인먼트 급의 회사가 맡기에는 조금 격이 떨어지는 일.

‘하긴 뭐, 홍보부 전무가 총괄하던 일이니까…… 격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

잘은 모르지만 사내 정치에서 밀린 홍보부 전무가 총괄하던 섭외 업무가 완전히 드림 엔터테인먼트에 위임된 것은 최근 일이었다.

듣기로는 어떻게든 비벼보던 전무가 또다시 하위 계열사로 좌천이 됐다나 뭐라나.

아무튼 뭐 어쩌겠는가, 갑이 하라면 하는 것이지.

때문에 문지연은 어울리지도 않게 클럽 호미의 파티에 파견되었다.

메인스트림에 끈끈한 인맥이 있는 사장님이 유명 가수와 방송계를 전담한다면, 자신과 같은 대리급들은 언더그라운드를 돌고 있었다. 인디 키드, 빅 피쉬, 스타즈 레코드 등등.

그리고 오늘 문지연이 맡은 역할은 스타즈 레코드의 최종 컨펌을 받아오는 일이었다.

보통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공연 섭외를 넙죽넙죽 받는 것에 비해서, 배가가 이끄는 스타즈 레코드는 좀 특이한 포지션에 서 있었다.

리더인 배가가 돈이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본인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연을 잘 받지 않았다. 심지어 미팅도 잘 안 해준다.

이쪽 계통의 일을 모르는 누군가는 섭외라는 업무를 멋지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결코 아니었다.

‘내가 입사 전에 그랬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섭외는 그냥 구걸이다.

어떻게든 얼굴 도장 한 번 더 찍고, 어떻게든 말 한 번 더 걸어보는 것. 그리고 애원하는 것.

때문에 문지연은 팔자에도 없는 클럽 공연에 와서 배가의 환심을 사야했다. 다행히 공연이 끝나면 한 번 만나주기는 한단다.

‘응?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오늘 임무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문지연은 주변이 너무 조용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어둠을 가르는 조명 아래 서 있는 한 남자였다.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활짝 펼친 현수막을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888 X 888

‘888 크루구나.’

문지연도 888을 알고 있었다.

888의 리더였나? 멤버였나? 아무튼 888에 속한 래퍼가 쇼 비즈니스를 디스한 것은 공연계에서 꽤 큰 이슈였다.

특히 쇼 비즈니스가 오경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쇼 비즈니스는 작년에 오경 엔터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문지연도 퍽 더 쇼 비즈라는 곡을 들어보았지만 초반부분만 조금 듣다 껐었다. 그녀는 도저히 정신 산만한 힙합과 친해지기 힘들었다.

그 순간, 스피커들이 일순간에 터지며 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어?’

그러나 그 소리는 쿵쿵거리는 드럼이나 무거운 베이스가 아니었다.

-지지지지직!

아주 시끄러운 노이즈였다.

귀를 찌르는 기분 나쁜 노이즈에 문지연이 인상을 팍 썼다. 들고 있던 현수막을 망토처럼 어깨에 두른 래퍼가 당황한 듯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실수야?’

그런데 주변 반응이 좀 이상했다. 시끄러운 노이즈에 인상을 쓰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소리 지르는 사람들.

웃는 사람들.

손을 드는 사람들.

문지연의 눈에는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이런 노이즈가 좋아? 미친 거 아니야?’

그 순간 마이크를 꽉 잡은 래퍼가 소리 질렀다.

“Respect to 광주!”

엄청난 성량이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전달됐다. 사람들이 두 손을 높이 들고 고함을 질렀다.

-광주 업이다!

-꺄아악! 광주 업!

-와아아아!

“Let's Go!"

문지연은 처음 듣는 떼창이 시작되었다.

***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상현은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이 2005년 맞아?’

별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았는데, 관객들이 알아서 미쳐있다.

광주 업 동영상을 꽤 많은 사람들이 본 것은 알고 있었다. 퍽 더 쇼 비즈에서 언급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렇게 후렴구를 외우고 있을 정돈지는 몰랐다. 후렴구를 외웠다고 해도, 이처럼 열광적인 떼창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순수한 힙합 팬들 앞에서 공연한 적은 없었다. 세종악기사, L&S8, 전주 월디페. 이 세 공연은 모두 밴드 플레이어나 대중들이 중심이 되는 무대였다.

상현은 막연히 짐작만 하던 2005년의 한국 힙합에 대해 확실히 깨달았다.

현재는 한국 힙합 씬은 과도기 상태다.

문화에 대한 애정이 똘똘 뭉쳐 엄청난 밀도를 형성하고 있는 과도기. 그리고 몇 년 안에 그 밀도가 너무 진해져 결국은 외부로 흘러나갈 것이었다.

대중문화, 대중음악, 대중의 취향에 힙합 혹은 블랙뮤직의 색이 칠해지는 것이다.

‘내가 그 흐름을 이끌고 싶다.’

미국에서는 80-90년대를 힙합의 골든 에라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한국의 골든 에라는 언제 일까?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2004-2007년을 힙합의 골든 에라라고 불렀다.

상현은 지금 한국 힙합 골든 에라의 중심에 서있었다.

“광주!”

“업-!”

“광주!”

“업-!”

부드러운 직선에서 받았던 호응과는 차원이 달랐다. 절로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광주역 도착 미녀들을 포착

예향의 도시답게 센스 있는 옷차림

무등산 정기가 내려앉은 도시

그 덕에 다른 곳보다 강한 억양 토씨

오늘 밤엔 다 모여라 금남로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난로

무등산 폭격기, 오늘도 품격 있게

형님 누나 동생들 전부다 성격 있제

라임 순간마다 관객들의 소리가 터졌다. 스피커를 통한 상현의 목소리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상현과 동료 래퍼들이 의아해할 만큼 열광적인 반응이었다.

‘이 반응은 뭐야?’

심지어 배가 역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물론 앞선 팀들도 큰 환호가 나왔다. 유명한 곡을 부를 때면 떼창도 나왔다. 그러나 광주 UP의 인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상현은 분명 랩을 잘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상현의 랩 스킬이 가장 뛰어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것이었다.

상현은 스킬보다 표현과 전달을 중시했다. 랩 스킬 위주의 붐뱁과 먹통 힙합이 주를 이루는 지금의 힙합 스타일과는 다른 방향성이었다.

거시기가 거시기 하는 것이 신기한 것이지

이 시끼가 멋있기만 하는 건 아따 좀 거시기

이미 고삐는 풀렸지 사투리를 뱉은 뒤

등번호를 세기지 우리는 전부 공육이(062)

그래 여긴 자랑스러운 광주 Love

10월엔 충장 축제와 비엔날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UP이 엄청난 지지를 받는 것에는 래퍼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상현의 쿨한 이미지였다.

내 불씨와 글씨를 통한 의심의 불식(拂拭)

하나둘씩, 사라지는 수식과 BullShit.

이렇게 한참을 들여다봐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2005년 식 가사와 상현의 가사는 전혀 달랐다. 퍽 더 쇼 비즈, 광주UP에서 보여줬듯이 상현의 가사에는 직설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쿨함’이 있었다.

또 하나는 888 크루가 이미지 소비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같은 유명세를 가진 팀이라면 메스컴에 자주 노출되는 팀보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팀이 더욱 각광받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888은 한국 힙합 팬들 사이에서 아주 유니크한 팀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광주 UP이란 곡의 주제였다. 출신 지역을 레퍼젠트하는 것은 본토 힙합에서 흔한 클리셰지만, 광주 UP 이전에는 한국에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은 주제였다.

“한 번 더! 광주!”

“업-!”

“광주!”

“업-!”

상현은 별안간 어깨에 두르고 있던 현수막을 펼쳤다. 양손으로 현수막을 펼친 모습은 등장 때와 같았다.

공연 중에 마이크에서 입을 떼는 행동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관객들이 후렴구를 대신 불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관객들의 몸짓으로 객석이 물결 쳤다.

그 순간 상현이 갑작스런 돌발행동을 했다. 현수막을 든 채로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숨은 것이었다.

조명 담당자가 당황했다.

사이드 조명을 키자니 애매하고, 현재 조명으로는 비출 수 없는 장소였다.

그 순간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와! 씨발!

-우와아아아!

-저거 뭐야!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062 X RAP (사진)

빛의 정체는 야광 프린팅이었다.

‘888 X 888’ 속에는 야광으로 ‘062 X RAP’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광주 UP! 광주 UP!

빛 광(光) 고을 주(州) 광주 UP!

문화와 예술의 도시 광주 UP!

우리가 살아가는 광주 UP!

두 번째 후렴구가 끝나는 순간 상현이 들고 있던 현수막을 허공에 던졌다. 또 한 번의 환호가 터졌다. 그러나 현수막은 생각처럼 멋지게 날아가지 않았다. 어설프게 펄럭거리다가 스피커 위로 떨어졌다.

현수막이 스피커 위에서 드럼 소리에 맞춰 진동했다.

그 광경에 멋쩍게 웃은 상현이 다시 랩을 이었다.

여전히 수많은 관객들이 상현의 라임 포인트에 함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미향의 고장. 전라남도 안

상다리 부러지게 먹어봐 한 상

아따 시방 자실 게 허벌나게 많어

욕하는 게 아닌 거 여기 사람들은 알어

오리탕, 떡갈비, 먹고선 다 뻑가지

요리만이 아냐 진짜는 밑반찬, 곁가지

순대는 초장, 콩국수는 설탕

어디 한 번 먹어보면 없어져 니 ‘설마’

우스게 소리지만 힙합 커뮤니티에 광주 UP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올 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진짜 광주는 순대를 초장에 찍어먹음?

그만큼 한국처럼 좁은 나라도 지역마다 문화의 색이 달랐다.

물론 상현은 지역감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서울에서 직장과 사업을 경험하며, 지역감정만큼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이 없다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자부심과 지역감정은 다른 것이었다.

빵이 먹고 싶을 때는 궁전제과로

광주의 낙원상가 세종악기사로

참이슬도 좋지만 우리 입엔 잎새주

순위는 상관없지 We love 광주 타이거즈

광주 UP. 광주 UP.

그래 자랑스런 고향 광주 LOVE

내 맘의 위치는 언제나 광주 옆

우리가 살며 완성하는……

“광주 업(業)---!”

상현의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울렸다.

어찌나 성량이 컸던지, 리버브가 없는데도 ‘광주 업’이란 소리의 잔향이 남아 업- 업- 업 하는 메아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곤 비트가 끊겼다.

이어지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던 관객 몇 명이 뻘줌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적 속에서 상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 Verse 11. Hommie Vol.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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