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63화 (63/309)

< Verse 10. 888 X 888 (完) >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같아서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인터뷰 안한다니까요.”

“아니, 그쪽이 뭔데 하고 말고를 정해요? 배가 씨 불러달라니까요?”

“내가 안한다고요.”

황주철은 그제야 스태프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안한다고? 마치 본인이 배가라는 말처럼 들렸다.

“혹시…….”

“절대 안합니다.”

스태프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황주철은 마지막 희망으로 후배한테 얻은 배가의 번호에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아주 단호한 답장이 날아왔다.

-안한다고 했잖아요? 공연보고 싶으면 줄 서서 기다리시죠. 그리고 마음대로 사진 찍어서 코멘트 다시면 고소할 겁니다. 저희 집에 돈 많은 거 아시죠?

황주철은 문자를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욕을 뱉으며 가장 뒷줄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안 그래도 무거운 카메라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황주철은 오기가 붙었다.

‘오냐, 니들이 인터뷰 하나 안하나 보자.’

이를 악문 황주철이 열심히 핸드폰을 붙잡고 전화를 돌렸다. 결국 그는 12번의 통화 끝에 클럽 호미 사장의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염병, 배터리도 별로 없네.’

번호까지 알았으니 거칠게 없었다. 황주철은 사장과 통화를 했다.

“아, 물론입니다. 예예. 약도도 포함하고, 클럽 호미라고 명시도 하겠습니다. 어휴, 홍보 효과야 말할 필요도 없죠. 저희 잡지 일 년 단위 정기 구독자만 삼만 명이 넘습니다. 아시죠? 전국 미용실에는 다 저희 잡지 있는 거? 하하하.”

황주철은 한참 전화기를 붙잡고 굽실거렸다.

“하하, 그냥 사장님이 배가 씨한테 전화하셔서 인터뷰 좀 성사시켜주시면 됩니다. 많은 거 안 바랍니다. 설마 배가 씨가 사장님 부탁을 거부하겠습니까? 아, 그리고…….”

황주철은 클럽 호미의 사장을 살살 긁으며 원하는 바를 말했다.

“오늘 게스트 중에 888이라는 팀이 있는데, 배가 씨한테 그 친구들 인터뷰도 성사시켜달라고 말 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주철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만약에 888 크루 인터뷰를 따낼 수 있다면?

‘이런 게 전화위복이지.’

호미 사장이 부탁하면 배가는 절대 인터뷰를 거절 할 수 없다. 매달 말에 클럽 호미에서 공연하기 위해서 배가가 쏟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말이다.

“예예. 아이고, 다 배가 씨 동생들인데 그 정도도 못할 리가 있나요? 배가 씨가 사장님 부탁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황주철은 마침내 클럽 호미 사장과의 통화를 끝내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클럽 안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티케팅을 하던 클럽 스태프가 그를 잠시 잡았지만, 사장님이랑 통화했으니 매니저한테 물어보라는 말 한 마디에 길이 열렸다.

‘888 인터뷰 따오면 사장 입이 찢어지겠구먼.’

888 인터뷰만 있으면 쇼 비즈의 조작 논란은 당연히 유야무야 해결되는 것이고, 인터뷰 역시 포장하기에 따라 큰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다.

클럽으로 들어온 황주철은 편한 마음으로 공연 전, 디제이 파티를 즐기고 있는 관객들을 찍기 시작했다.

***

“아! 형!”

“신호, 신호!”

“아, 또 걸렸어…….”

“아, 진짜 미치겠네.”

“조용해! 집중 안 되니까!”

박인혁이 벌컥 소리 질렀다.

“뭘 잘했다고 소리 질러요!”

“차라리 내가 갈고 닦아왔던 이니셜 D의 실력으로 운전을……!”

“준형아 그건 범죄잖아!”

“하연아! 지금은 인혁이 형의 운전 실력이 범죄라고!”

888 크루 멤버들은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있었다.

공연장이 아닌 도로 위에서.

‘인혁이 형을 믿다니. 내가 멍청했다.’

‘길치에 방향치에 감각치에, 생긴 건 넙치.’

상현과 준형이 한탄했다.

설렘 가득했던 서울 나들이가 레이싱 게임의 타임 어택(시간에 맞춰 들어와야 하는 게임 방식)으로 바뀐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나만 믿어! 형 베스트 드라이버다.’

박인혁의 호언장담을 믿은 것이었다.

888 크루는 호미 공연을 위해서 11인승 자동차를 렌트했다. 본래는 기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지만, 이번 공연을 위해 준비한 티셔츠와 현수막, 수건의 운반 때문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장인정신이었다.

첫 번째 장인정신은 우민호의 것이었다. 업체에 프린팅을 맡기기 위해서는 결국 컴퓨터 디자인 작업이 필요했는데, 우민호의 장인정신이 하루를 까먹게 되었다. 덕분에 배송이 다음 주로 밀렸고, 시간 맞춰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공장에서 직접 방문수령을 해야 했다.

두 번째 발단이 된 장인정신은 상현의 것이었다. 오랜만에 사업가의 기질을 발휘한 상현은 단가를 낮추고,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굿즈의 주문량을 엄청나게 올렸다.

티셔츠 100장, 현수막 10장, 두 종류의 수건 각 50장씩 100장.

그러다보니 제작일이 늘어났고, 공연에 맞춰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직접 인천공단에 방문해 수령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장인정신은 준형의 것이었다. 준형의 장인정신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착각이었다. 평소에도 준형은 약속 시간이나, 날짜에 대한 착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상현은 설마 준형이 ‘개학 날짜’를 착각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 이번 주에 개학 아니냐?’

‘다음 주 월요일이다.’

‘그래? 확실해?’

‘확실해.’

‘이상하다…… 내가 알기로는 이번 주였는데?’

‘다음 주라니까? 우린 그냥 공연 재밌게 하고, 일요일 날 서울에서 야무지게 놀고, 월요일 날 학교 가서 자면 돼.’

상현은 확신에 찬 준형의 말을 굳게 믿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금요일에 인천공단에서 물건을 찾는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었다.

마지막 장인정신은 박인혁의 허풍이었다. 박인혁은 절정의 초보 운전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금요일 날 예기치 못하게 등교를 한 상현. 상현은 재빨리 김환과 박인혁으로 구성된 기동대를 인천으로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박인혁의 호언장담이 상현의 걱정을 만류했다.

‘야, 형 베스트 드라이버야. 내가 인천까지 두 시간 반 안으로 찍어 줄게. 토요일에 출발해.’

‘길은 아세요?’

‘인천은 안 가봤는데…… 지도가 괜히 있냐? 그리고 운전 잘하는 사람들은 눈치로도 찾아간다니까?’

‘확실하죠? 그럼 토요일 날 새벽 여섯시에 출발하는 걸로 해요.’

‘무슨 여섯시야. 여기서 아홉시 반에 출발해. 넉넉잡고 한 시에 인천 도착하면 되지. 인천에서 신촌까지는 한 시간이면 될 걸?’

‘리허설이 네 시인데 괜찮겠죠?’

‘네 시면 인천항에서 점심으로 회 한사바리 먹고 가도 충분하겠네.’

상현은 정말 인혁을 굳게 믿었다. 정말로.

그런데…… 그런데…….

“아 형! 이제 어떡할 거예요!”

“공연 일곱 시라며? 우리는 거의 끝 타임이니까 여덟 시 넘잖아? 그 안에는 도착할 수 있어!”

“아니 지금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초청받아서 가는 게스트가 공연에 늦는 법이 어딨어요?”

“닥쳐! 정신 사나우니까!”

상현은 박인혁의 운전 실력을 보며 눈물을 머금었다. 차라리 그가 운전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현이 아무리 훌륭한 운전 솜씨를 가지고 있든 뭐할 것인가, 면허가 없는데.

“아, 누나는 왜 2종을 땄어요!”

“아 오빠! 오빠 때문에 불똥이 나한테 튀잖아요!”

“오빠는 왜 민지 언니한테 화를 내? 이게 다 바보 같은 인혁이 오빠 때문이지!”

“역시 내 편은 상미뿐이네. 으이구, 이리와 우리 상미.”

상미가 상현 속도 모르고 웃었다.

전주 월디페 때 상미를 태우고 전주까지 운전을 해왔던, 최후의 보루 오민지는 2종 보통의 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즉, 11인승은 몰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대체불가의 서비스를 하란 말이야!’

상현이 사업을 할 때 종종 부하직원들에게 하던 말이었다.

‘과거의 부하직원들아. 내가 수없이 언급했던 진정한 대체불가의 서비스가 이곳에 있도다.’

상현은 다시 한 번 눈물을 머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광주에서 인천까지 5시간 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운 박인혁. 그가 인천에서 신촌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반이었다.

아무리 러시아워가 만연한 토요일이라지만 말도 안 되는 기록. 길을 잘못 든 것만 세 번이었다.

그 외에도 광주에서 출발하며 멤버들을 태운 시간.

인천에 도착해서 물건을 수령한 시간.

휴게소에 들린 시간.

굶고 공연을 할 수 없으니 밥을 먹은 시간까지 포함, 막상 공연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이었다. 지각도 이런 지각이 없었다.

“달려! 달려!”

“옷부터 갈아입어야지!”

“아 맞다! 옷!”

“민지 누나! 사이즈 뭐에요? L이에요? XL이에요?”

“신준형 뒤질래! 나 S거든!”

“여, 여기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갈아입어야지! 아니, 인혁이 형은 그냥 여기서 입으면 되잖아요?”

“그, 그럴 순 없어!”

“영상……! 남는 건 영상 밖에!”

“민호 오빠! 그딴 거 찍을 시간에 사이즈나 찾아요! 수건! 수건 어딨어!”

“상미야! 내 핸드폰 목록에 보면 배가라고 있는데 우리 도착했다고 문자 좀 넣어줘!”

Hommie Vol.1을 보다가 잠시 담배를 피러 나온 관객들과, 클럽 호미 주변의 상인들은 난데없는 시장 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5명의 남자와 3명의 여자가 차를 들썩이며 소란을 떨고 있었다.

“민호 형은 먼저 가서 카메라 포지션이나 찾아요! 옷은 나중에 입고!”

우민호가 한손에는 티셔츠와 수건,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우다다다 달려갔다.

공연 사이에 잠시 담배를 피러 나왔던 관객들은 난데없는 소란을 구경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난리를 피우고 있는 이들이 부랴부랴 입고 있는 옷이었다.

“저 사람들…….”

“헐. 888 아니야?”

‘888 X 888’이란 문구가 새겨진 하얀색 티셔츠를 갈아입는 이들의 얼굴도 낯익었다. Hommie Vol.1 티져 영상에 등장했던 이들.

“맞다! 팔팔팔.”

“맞는 거 같은데?”

“뭐야? 이제 온 거야?”

소수의 관객들이 너도 나도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었다. 그들이 차를 뒤지며 뭔가를 찾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다. 누군가 소리 내어 물었다.

“팔팔팔 크루 맞죠?”

“팔팔팔이 아니라 팔백팔십팔이예요. 지금 몇 시에요?”

“아홉시 다 되가는데……?”

“으아! 지금 어느 팀 공연해요?”

“IK 끝나는 거까지 봤어요.”

“오, 갓뎀.”

IK 다음이 플레이라인. 그 다음이 888 크루다.

시간적으로는 약간의 여유가 있지만, 다음 순서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실감이 확 들었다.

“잠시 만요! 지나갈게요!”

먼저 들어간 우민호를 제외한 7명이 클럽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상현, 신준형, 김환, 박인혁, 우민호, 신하연, 오민지 그리고 이상미.

그렇게 8명은 마침내 클럽 Hommie에 상륙했다.

< Verse 10. 888 X 888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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