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60화 (60/309)

< Verse 10. 888 X 888 >

마침내 차인현이 광주를 떠났다. L&S를 떠났다.

차인현은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오경 그룹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이제 밴드 L&S 소속이 아닌 오경 ENT 소속이 되었다.

전주 월디페 이후 상현과 차인현이 서로를 멀리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L&S와 888 크루 간의 사이는 여전히 좋았지만, 상현이 있는 곳에는 차인현이 없었고, 차인현이 있는 곳에는 상현이 없었다.

방민식이나 용준 같은 L&S 멤버들이 몇 번이나 이유를 물었지만, 차인현과 이상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차인현은 떳떳하지 못해서 입을 다물었고, 상현은 곡의 주인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또 하나, 상현은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현아 축하한다.”

L&S 멤버들은 진심으로 차인현의 성공을 기원했다. 대부분 차인현의 고통스러운 가정사를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모두들 아쉬움과 서운함을 간직한 채 환송회가 시작되었다. L&S 멤버들뿐만 아니라, 광주의 여타 밴드 멤버들과, 세종악기사 사장님, 888 크루 멤버들까지 환송회를 찾아왔다.

그 중에 상현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상현은 차인현을 축하해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계속 가난하고, 어렵고, 고통 받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의 가족이 항상 불행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틀렸다.

상현은 차인현이 계속 정당하게 음악을 했다면, 언젠가 빛을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선택한 길이야.’

상현은 스스로에게 느끼는 죄책감만큼 차인현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사라지기 어려웠다.

그것이 사라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차인현이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 혹은 끝까지 욕심을 밀어붙이는 시간.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은 마지막 기대감, 혹은 더 큰 미움이었다.

888 크루가 이런저런 일들을 기획하며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L&S는 차인현을 보내고 분위기가 침체되었다.

상현은 안쓰러웠지만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보컬을 구하는 수밖에. 이미 잡힌 L&S의 행사는 객원 래퍼인 상현이 함께 올라가기로 결정 났다.

그러나 며칠 뒤 888 크루 멤버들은 L&S 보컬 환영식에 참석해야 했다. 보컬이 벌써 결정된 것이었다.

888 크루 멤버들은 환영식을 하면서 새로운 보컬을 놀리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니, 지금 선배 앞에서 눈을 치켜뜨고? 뭐하는 건가요? 요즘 보컬들은 다 이런가?”

“어허…… 우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하여튼 요즘 보컬들은 문제라니까.”

“니들 진짜 다 죽을래?”

미주의 협박에 모두들 딴청을 피웠다. 그랬다. 새롭게 L&S 보컬로 합류한 것은 객원 키보디스트였던 미주였다.

본래부터 미주는 노래를 잘 불렀다. 실제로 홍대에서 밴드 생활을 할 때는 서브 보컬을 넘어서 투 보컬 체재로 활동을 했던 적도 있었다. L&S에서도 곧잘 백업 보컬을 맡기도 했고.

L&S가 전주 월디페에서 불렀던 붕어빵도 원래는 미주의 노래였다. 용준과 차인현이 작곡한 곡을 미주가 가사를 붙이고, 편곡을 하고, 멜로디를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미주 본인은 보컬에 큰 욕심이 없었는데, 그녀가 먼저 L&S의 보컬에 합류의사를 밝혔다. 내심 미주를 바라고 있었던 용준이나 방민식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미주는 자기가 사랑하는 L&S에 이상한 보컬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고 했었다.

‘의리가 있어.’

상현은 환영식에서 흐뭇하게 웃었다.

미주가 손이 좀 맵고,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을 때가 있어서 그렇지 참 사람이 바르다. 차인현 환송회에 갔던 준형의 말로는, 미주가 차인현에게 윽박을 질렀다고도 했다.

‘오빠, 돈이 그렇게 좋아? L&S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단 말이야? 어차피 그 곡 오빠 곡이라며? 그럼 나중에 가도 되잖아? 이제 막 월디페 끝나고 잘나가려는 찰나에 그러고 싶어?’

당황한 차인현은 아무 말도 못했고, 미주를 말리던 888 크루 멤버들은 내심 통쾌한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상현은 미주 환영식에서 신나게 놀았다. L&S가 앞으로 더 잘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보기 드문 키보디스트 보컬, 게다가 미주는 외모도 예쁘다.

십년만 지나면 언더그라운드 공연장의 70%가 여자 관객이지만, 지금은 남자 관객이 훨씬 많은 상황이니, 도움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털어낸 상현은 본격적으로 888 크루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이 끝나자마자, 클럽 호미(Hommie)의 공연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

2005년 8월.

힙합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공연이 드디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바로 스타즈 레코드의 리더인 배가(Vega)가 수많은 난관을 뚫고 성사시킨, 클럽 호미(Hommie)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파티였다.

2001년 12월 클럽 마스터플랜(MP)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힙합씬에는 제대로 된 언더그라운드 합동 공연이 없었다. 있어봐야 소규모 크루 공연이거나 거리공연 뿐.

때문에 클럽 호미의 공연에 수많은 힙합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번 공연이 잘되면 두 달에 한 번씩 공연할 수도 있다던데?

-아님. 배가가 언제 한 번 말했는데, 1년 동안은 무조건 공연 진행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했음.

-사업에 무조건이 어디 있음? 공연 병신 같고 관객도 존나 없으면 취소되는 거지.

-일단 이번 달 공연 매진시켜야함. 그래야 계속 진행되지.

-울산에서 가시는 분 없나요? 있으면 메시지 좀 주세요.

매니아 컬쳐 특유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은, 팬심의 일환으로 클럽 호미의 공연 티켓을 예약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산이나 대구 등 지방에서 함께 공연에 갈 사람을 찾는 글들도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힙합LE에서는 발 빠르게. ‘카풀 게시판’을 임시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그즈음 ‘Hommie Vol.1’이라는 시리즈 동영상이 힙합 커뮤니티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Hommie Vol.1’은 배상욱의 주도하에 공연의 라인업들이 찍은 영상이었다. 미공개 벌스, 혹은 공연곡의 일부분을 라이브로 공개하는 이 영상은, 많은 힙합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에 비례하는 논쟁을 일으켰다.

-불스(Bulls)는 라이브보다 녹음본이 좋음. 전형적인 스튜디오 엠씨.

-미친. 개소리도 그 정도면 인간문화재네. 불스는 특유의 먹통 비트 초이스 때문에 발성이 깎여 들려서 글지, 우리나라에서 땜핑으로 따지면 거의 원탑임.

-난 불스 영상보다 영일(Youngill)이 훨씬 낳던데?

-영일이 라인업 중에서 젤 구린데? 도대체 뭘 듣고 온 거냐? 그리고 뭘 낳음?

-우리나라가 존나 웃긴 게, 래퍼들은 자기들끼리 리스펙트하는데 팬들끼리 헐뜯고 지랄임.

-미국은 안 그럴 거 같냐? 글고 불스랑 영일이랑 사이 안 좋은데? 불스가 영일 팀에 있던 비트 메이커 빼가서 영일이 어디 공연장에서 존나 욕했었음.

-그거 진작 화해함. 조선시대에서 오셨나.

-근데 히든 게스트는 누구임? 공연 이주도 안 남았는데 왜 공개 안하지?

-멍청아 히든 게스트는 공연장에서 공개하니까 히든 게스트지.

-히든 게스트 에미넴임.

-개소리ㅋㅋㅋㅋ

Hommie Vol.1 영상은 총 5개로 구성되었고, 8월 10일부터 하루 간격으로 공개되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마이크만 간신히 보인 채 랩을 하는 래퍼도 있었고, 작업실에 앉아 편하게 랩을 하는 래퍼도 있었다. 인디 문화의 메카인 홍대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랩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길거리 공연 라이브를 영상 클립으로 만든 래퍼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Hommie Vol.1 클립이 힙합 리스너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각 영상의 조회수는 모두 2만을 육박했다.

5개의 영상을 가지고 누가 누구보다 낫네, 별로네 등등의 갑론을박을 벌이던 커뮤니티.

그곳에 하나의 영상이 더 올라온 것은, 공연 5일 전인 8월 22일이었다.

- Hommie Vol.1 Hidden Guest.

영상은 엄청난 인파가 몰린 야외 공연장에서 시작했다. 적어도 이천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손을 하늘 위로 들고 있었다.

손뼉을 치는 사람들,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두 손을 잡은 커플들, 잔디밭에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들…….

화면은 각양각색으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언뜻 지나가는 화면 사이로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이라는 현수막도 보였다.

기타 소리, 드럼 소리, 랩 소리.

사람들이 환호성이 터졌다. 동시에 화면이 어두워지며 환호성이 점점 작아졌고, 장면이 전환되었다.

이제 영상은 한 작업실을 비추고 있었다.

작업실의 스피커에는 비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통 90BPM 수준을 유지하던 2005년 한국의 붐뱁 비트보다 월등히 느린 비트. 그러나 하이헷이 박자를 잘게 쪼개 지루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소리.

작업실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비트를 배경 삼아 시끄럽게 떠들었다.

그 순간 비트가 사이로 콰쾅하고 피아노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두두!

비트가 엄청나게 커졌다.

동시에 저 멀리서 하나의 후렴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죽인 후렴구는, 눈앞을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굉음처럼 점점 커지더니 한 순간에 귀를 강타했다.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Crew!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Crew!

줌 아웃되는 카메라 앵글.

카메라는 이제 작업실 벽에 걸린 두 장의 포스터를 비췄다.

한 장은 클럽 호미의 공연 포스터.

나머지 한 장은 검은색 바탕에 ‘888 X 888’이란 흰색 글자가 새겨진 포스터.

그리고 영상은 끝이 났다.

40초짜리의 짧은 영상.

그러나 그 영상이 불러온 파급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히든 게스트가 888 크루라는 것이 밝혀지고, 많은 사람들이 퍽 더 쇼 비즈(Fuck tha Show biz) 라이브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20만 정도에서 멈췄던 퍽 더 쇼 비즈의 플레이 횟수가 며칠 만에 다시 25만까지 치솟았다. 언더 힙합 팬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거의 모든 언더 힙합 팬들이 퍽 더 쇼 비즈를 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888 크루의 영상이 링크 된 뒤, 커뮤니티에는 또 하나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바로 영상에 등장하는 비트와 후렴구에 대한 견해였다.

만들어지다가 만 비트 같다는 비평도 있었고, 전혀 새로운 느낌의 비트라는 호평도 있었다. 상반된 의견은 ‘We, Eight that Eight that Eight Crew’라는 후렴구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신선하다는 의견과 대충 만든 것 같다는 의견이 반반이었다.

붐뱁(Boom-Bap)이 주를 이루던 2005년 한국 힙합의 후렴구는 복잡한 서사구조를 이루는 게 보통이기에, 논란은 더욱 팽배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이들이 888 크루의 공연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Verse 10. 888 X 88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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