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58화 (58/309)

< Verse 9. Twisted World >

“팀장님.”

“왜! 염병, 나쁜 소식이면 이야기 하지마.”

“그게…… 프런트에서 연락 왔는데, 협상결렬이랍니다. 테마송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데요?”

“어휴…….”

광주 타이거즈의 홍보부 팀장, 안철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날씨도 더워죽겠는데 도무지 쉬운 일이 없다.

“에어컨 좀 세게 틀어봐.”

“규정 온도 넘으면 프런트에서 지랄할 걸요.”

“염병…… 아니 파이러스 새끼들은 저작권료도 주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라이벌 팀이니까 아니꼽다는 거죠. 게다가 중심타자 아닙니까?”

“프런트에 꼭 사와야한다고 말했어?”

“씨알도 안 먹힙니다.”

광주 타이거즈와 울산 파이러스는 오래된 라이벌이다.

그 시작은 16년 전에 울산 파이러스를 우승으로 이끈 명감독을 광주에서 영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로 타이거스 - 파이러스 간의 트레이드가 있을 때마다 이런 저런 잡음이 많았다.

최근 광주 타이거즈는 울산 파이러스의 4번 타자인 한광수를 영입했는데, 한광수의 테마 응원가와 등장 테마곡을 울산 파이러스에서 절대 사수하는 중이었다.

“쪼잔한 새끼들.”

“따지고 보면 3년 전에 저희가 이왕효 선수 응원가를 킾한 게 먼저였죠.”

“내가 그거 주라고 말했는데 윗선에서 절대 안 된다고 염병 육갑을 떨었었지. 하여튼 멀리 볼 줄 모르는 새끼들이야.”

안철승 팀장이 육두문자를 뱉으며 담배를 물었다. 그러나 불을 붙일 용기는 없었다. 벽에 붙어있는 절대금연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럼 어떡하지? 한광수 응원가는 대체불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보통 응원가는 구단이 원곡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편곡을 거치기 때문에 2차 권리를 구단이 가지고 있다. 즉, 구단에서 팔지 않으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광주 타이거즈는 한광수라는 슈퍼스타를 영입하면서 중립지역의 팬들까지 끌어오는 청사진을 그렸는데, 그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었다.

입장 수입이 전부인 야구에서 응원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보통 한 경기에 부르는 노래는 적게는 50곡에서 많게는 60곡이고, 프로야구 전체에서는 600곡 정도의 응원가를 사용한다.

“저…… 그런데 한광수 선수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무슨 요청?”

“기존 응원가가 사용불가라면 다른 노래로 대체하고 싶답니다.”

“뭔데? 1년차 때 쓰던 노래?”

“아뇨. 아예 새로운 노래입니다. 들어봤는데 괜찮더라고요. 한광수 선수와도 잘 어울리고.”

“그래? 뭔데 들어나 보자.”

“근데 그게…… 문제가 있습니다.”

안철승이 질겅질겅 씹다가 끊어버린 담배를 뱉으며 인상을 썼다.

“뭔 놈의 문제가 그렇게 많아? 왜? 저작권자가 불분명한 노래야? 아님 그것도 타 구단 노래야?”

“아뇨. 반댑니다. 저작권이 아예 없는 노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작권이 없다니? 한광수가 만든 노래야? 아니, 그럼 한광수가 저작권자겠지.”

“아직 노래가 없는 노랩니다.”

안철승이 화를 냈다.

“노래가 없는 노래? 너 지금 나 놀리냐?”

안철승의 부하직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일단 들어보시죠.”

안철승은 부하직원이 주는 이어폰을 꼈다. 미리 준비했는지 컴퓨터 바탕화면에 곡이 있었다.

‘뭐야? 동영상이네?’

곡이 아니라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은 어두컴컴한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뭔 카메라 앵글이 이따위야?”

“아마추어가 찍어서 그렇습니다.”

동영상 속의 젊은, 아니 어린 남자가 곡에 대한 소개를 시작할 때, 부하직원이 동영상을 1분 정도 넘겼다. 갑자기 지지직- 하는 노이즈가 들렸다.

“이런 염병! 아오, 진짜!”

난데없는 소음에 열이 뻗친 안철승이 욕을 뱉는 순간, 경쾌한 비트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안철승은 간신히 욕을 삼키고 노래에 집중했다. 듣다보니 자동으로 집중이 되었다.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시작했던 안철승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3분짜리 노래가 순식간에 끝났다.

“이 노래, 제목 뭐야?”

“광주 업(UP)입니다.”

부하직원이 얼른 답했다.

“한광수 선수는 ‘광수 업’으로 바꿔 부르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 노래를 사용할 수 있다면 등장용 ‘테마송’과 안타를 쳤을 때 나오는 ‘메인송’을 둘 다 이 노래로 하고 싶어 합니다.”

“광수 업이라…… 잘 어울리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한광수 선수도 마음에 쏙 든 눈칩니다.”

한광수랑 잘 어울린다. 덩치 좋은 거포지만 인터뷰나, 동료들과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는 익살스러우니까.

한참 고민하던 안철승은 뒤늦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근데 노래가 없는 노래라는 게 무슨 개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 들으신 노래는 있지만, 음원에 등록된 노래가 없습니다.”

“응? 음저협에 없어?”

“음저협 뿐만 아니라, 그냥 어디에도 없습니다. 딱 저 라이브 영상 하나 있습니다.”

“쟤네가 노래 주인 맞아? 커버곡 아니야?”

“커버곡 아닙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L&S라는 밴드인데, 알아본 바에 의하면 노래 주인은 L&S 밴드의 객원 래퍼인 이상현이라는 고등학생입니다. 나름 유명합니다.”

안철승이 으으 하고 고개를 저었다.

“일 존나 복잡하네.”

“그쵸?”

광주 UP이라는 노래가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으면 일은 간단하다.

KBO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KBOP가 1년 단위로 저작권협회 등 관련단체 3곳에 돈을 지불하면 문제 해결이다. 물론 그 돈은 각 구단의 수익금에서 차감되고.

그런데 저작권 등록이 안 돼 있으면 이상현이란 친구와 쇼부를 쳐야한다. 한국은 무방식주의 저작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현이 저작자란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쇼부 와중에 이상현이란 친구가 돈 욕심을 부리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이상현이 갑이 되고, 홍보팀이 을이 되는 거다.

“아, 지미. 그냥 우리가 저작권 협회에 등록하면 안 되냐? L&S인가 뭔가 유명해? 대충 언플하고 우리는 몰랐다, 우연의 일치다, 하면 얼마나 좋아? 돈도 굳고? 욕이야 잠깐 먹겠지만?”

“제가 대충 산출해봤는데, 이곳저곳에서 저 동영상 본 사람만 만 명이 넘습니다.”

“아 염병! 난 처음 듣는 새끼들인데 뭐가 그렇게 유명해!”

부하직원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소리 지르는 안철승에게 쇼 비즈니스와 L&S, 888 크루, 언더 키드가 얽힌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줬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밴드랑 힙합하는 애들 사이에서 화제의 중심이라는 거네?”

“화제의 중심이 된 노래는 퍽 더 쇼 비즈라는 다른 곡이지만, 그 곡 안에 광주 UP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쇼 비즈니스 사 잡지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광주 UP 영상은 조만간 올라갈 테고,

그 곡 듣고 지역감정 느끼면 귀에 똥 박은 놈

안철승은 확인 차 ‘퍽 더 쇼 비즈’를 들었다. 확실하다. 일이 더럽다. 결국 이 노래를 쓰고 싶으면 이상현 개인과 쇼부를 봐야한다.

‘아 근데 이 새끼 재밌는 캐릭터네.’

안철승은 ‘룰라’나 ‘클론’이 부르던 노래 이후에 랩은 처음 들어보는데, 꽤나 재밌다.

“야. 일단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해보자.”

“말씀하시죠.”

“하나는, 우선 한광수 선수한테 다른 노래로 해도 되냐고 물어봐봐.”

“안될걸요? 완전 꽂힌 모양이던데.”

“아 씨! 일단 하라면 해!”

부하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이 이상현이라는 자식한테 찾아가서 살살 꼬드겨봐. 녹음도 공짜로 시켜주고, 야구장 무료 티켓도 준다고. 그러니까 그냥 응원가로 이용하면 안 되냐고 꼬드겨봐.”

“안된다고 하면 저작권 등록만 무난히 시켜야합니까?”

“그렇지. 이상현이란 놈이, 어 뭐야? 나 지금 호구 잡은 건가? 개인적으로 계약할까? 하는 생각은 절대 못하게.”

“알겠습니다!”

“가봐, 임마.”

부하직원이 사무실에서 나갔다. 안철승은 몰래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내리며 광주 UP 동영상을 몇 번 반복해서 봤다.

화딱지 나게 노래가 좋다. 한광수가 안타 쳤을 때 ‘광수 업!’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에이 젠장!”

마우스를 팽개친 안철승은 핸드폰을 꾹꾹 눌러가며 부하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상현 찾아갈 때 선물도 좀 사가고 똥꼬도 빨아주고! 아무튼 잘 보이란 말이야!

***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은 끝이 났다.

L&S는 차인현의 한번뿐인 삶, 아니 ‘One’으로 골든 핑거를 누르고 4강전에 진출했지만, 상현이 메인으로 선 4강 무대에서 패배했다.

‘언덕 위’라는 곡은 전주 월디페를 위해 상현이 절치부심해서 만든 곡이었는데, 실수가 너무 많았다. 차인현이 훔친 한번뿐인 삶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차서, 가사가 삐져나간 것만 같았다.

상현은 가사를 3번이나 까먹었고, 그 중 한 번은 2마디를 통째로 까먹기도 했다.

“수고했다.”

“죄송해요. 형…….”

“아니야. 네 덕분에 4강까지 진출했는데 죄송은 무슨.”

방민식의 진심이 담긴 위로에 상현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한 번만 더 이겼으면 준우승 상금 500만원이다.

거기서 한 번만 더 이겼으면 우승 상금 천만 원.

그러나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방민식과 L&S 멤버들의 모습은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상현은 이제 선택을 해야 했다. L&S에는 차인현이 있다. 밴드 L&S에게 있어 차인현은 대체 불가의 보컬.

문제는 상현이 이제 더 이상 차인현과 마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L&S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차인현과의 문제를 덮어둔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차인현에게 분노하는 걸까?’

상현은 전주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무의식 속에 있던 몇 가지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상현은 칼립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이런 상황은 단순히 좋아했던 노래 하나가 사라진 것뿐일 수도 있지만, 상현에게는 그 이상이었다.

밥값을 아껴가며 칼립의 앨범을 구매하고, 그의 스토리를 찾아보고, 가사들을 음미하면서 상현은 스스로를 칼립에게 투영시켰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가장이라는 부담감에 끝내 선택하지 못한 상현의 정신적 대체재 같은 존재.

칼립의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사에 진심으로 공감했고, 그의 성공에 진심으로 기뻐했었다. 그의 가사 덕분에 힘을 얻은 적도 많았다.

이런 칼립은 상현에게 있어 랩스타(Rapstar)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시작은 한번뿐인 삶이었고.

‘그러나…….’

상현이 차인현에게 분노하는 것에는 칼립에 대한 리스펙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면죄부였다.

차인현이 칼립의 노래를 훔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상현 때문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런 주제에 아주 경솔한 행동을 해버린 사람.

상현은 자신의 실수를 용서받기 위해서 차인현에게 더욱 화를 내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가 부모님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 동생의 더 큰 죄를 이르는 것처럼.

이러한 감정을 깨달았음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차인현은 칼립의 미래를 훔쳤고, 상현은 분노했다.

“우리 할 얘기가 있죠?”

차인현에게 전화를 건 상현의 첫마디였다.

< Verse 9. Twisted World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