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55화 (55/309)

< Verse 8. 전주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 (完) >

***

L&S는 총 6곡을 준비했고, 상현은 3곡, 정확히 말하면 2곡과 1개의 벌스를 준비했다. 벌스는 첫 날 사용했고.

이제 상현이 참여하는 남은 곡은 2개.

그중 하나는, L&S와 상현의 인연을 만들어준 런 디스 타운(Run This Town)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벌스를 전부 한글로 새로 썼다는 것과 보컬 부분을 추가했다는 점.

물론 새롭게 쓴 만큼 곡은 더욱 좋아졌다.

‘런 디스 타운이면 14강 정도는 가볍게 통과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은 상현뿐만 아니라 L&S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 14강 대진표가 추첨되었을 때, 상현은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L&S VS Golden Finger

골든 핑거.

이경민이 베이스를 치고 있는 팀.

L&S는 세종악기사에서 악연으로 만났던 골든 핑거와 대결하게 된 것이었다.

광주 밴드 팬들에게는 두 팀뿐인 광주 밴드가 골육상잔을 벌이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겠지만, 상현은 대진이 마음에 들었다.

이경민은 쇼 비즈 사태 당시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했다.

심지어 맨 처음 힙합 게시판에 888 크루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는 의혹도 사고 있었다.

888 크루 멤버들은 BassLee이란 아이디가, 베이스 이경민을 의미한다는 추측을 했었다.

‘집으로 보내주지.’

L&S 멤버들과 상현은 자신만만한 상태로 그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서 신나는 무대를 꾸몄다.

Walk this way!

Walk this way-!

후렴구를 같이 부르는 이들이 꽤 많았다. 또한 그 중 몇 명은 흥이 나서 함께 뛰기도 했다.

멜로디와 가창력을 기반으로 한 골든 핑거의 무대도 괜찮았다. 하지만 상현은 L&S가 이겼을 거라고 확신했다.

두 팀의 무대가 끝나고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평을 시작했다. 그 중에는 언더 키드의 보컬과 드러머도 있었다.

“우선 L&S의 무대는…… 정말 신났습니다.”

언더 키드의 드러머 김웅각의 말에 심사위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랩 메탈을 하는 밴드는 흔치 않은데, 마치 린킨 파크와 제이지의 Numb/Encore를 보는 듯했습니다.”

Linkin Park & Jay-Z의 Numb/Encore은 광고 음악에도 많이 사용된, 한국에서도 빅 히트를 한 곡이었다.

대단한 호평을 들은 상현은 속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L&S 멤버들의 표정은 별로 밝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들이 린킨 파크나 제이지 만큼의 경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러머는 박자는 간신히 맞췄지만 지나치게 흥분해서 손과 발의 밸런스가 깨졌습니다. 고스트 노트가 죽어버리니 그루브가 전부 죽어버리죠. 본인도 알고 있죠?”

황인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타와 베이스도 마찬가지에요. 신나는 곡을 연주하는 건 좋은데, 연주자까지 신나 버려서 오버 스윙을 하니까 연주가 삐그덕거리는 겁니다.”

심사위원이 말을 이었다.

“래퍼 분은 랩은 잘했지만 리얼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컴퓨터 작곡용 가상 악기와 리얼 사운드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무대에서 본인의 실력을 완전히 보여줄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차인현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보컬만 흠잡을 곳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음역대는 높지 않았지만, 높지 않는 음역대로도 카타르시스를 주는 법을 깨달아가는 중인 것 같군요.”

그것을 끝으로 L&S의 심사평이 끝났다. 이어지는 골든 핑거의 심사평은 곡은 좋았지만 소화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연습량이 많아서 기본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설마……?’

상현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다섯의 심사위원이 투표를 했다. 3 대 2의 스코어.

“진출팀은……!”

사회자가 한동안 뜸을 들였다.

상현은 사회자를 재촉하듯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골든 핑거! 축하합니다! 골든 핑거가 다음 무대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골든 핑거가 다가와서 L&S 멤버들과 형식적인 악수를 나눴다. 이경민이 상현을 스쳐지나가며 비웃었다.

“더운데 집 가서 푹 쉬어라.”

이경민의 이죽거리는 표정에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상현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말했다.

“형들! 이거 언더 키드 사람들이 저희 안 좋게 봐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저희가 어떻게 골든 핑거한테 질 수가 있어요!”

“상현아.”

“말도 안돼요!”

“이상현!”

방민식이 강한 어조로 상현을 타일렀다.

“심사위원들은 공정하게 심사했어. 나도 우리 무대 뒤에 골든 핑거 무대 보면서 졌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관객들은 저희 무대를 더 좋아했어요. 호응도가 달랐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리는 다섯 명이 서로서로 잘나 보이려고 난리 발광만 했으니까. 에너지야 넘쳤겠지.”

오늘 L&S의 무대는 요리 대회에서 술과 안주를 내놓은 것과 같다. 사람들은 맥주와 안주를 먹고 좋아하겠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요리가 아니니까.

L&S는 관객들을 열광시켰지만 음악적으로 너무 흔들렸다.

“…….”

방민식의 표정을 본 상현이 입을 다물었다.

상현은 십 년 넘게 들었던 랩을 제외하고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서 이긴 줄 알았다. 솔직히 자만했다. 원래부터 골든 핑거는 광주에서 가장 잘나가는 밴드였는데.

“너는 음악하고 처음 져보는 거잖아. 그동안 다 이겼지?”

침묵하는 상현에게 갑자기 차인현이 입을 열었다.

평소에 상현에게 절대 말을 걸지 않는 차인현이기에 상현은 놀랐다.

“근데 나는 몇 년 동안 계속 져왔어. 작은 승리도 있었지만 질 때가 더 많았어.”

“…….”

“물론 지고 싶지 않아. 이제 더는 지면 안 돼. 뒤가 없거든.”

상현은 차인현의 가정사가 꽤나 복잡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그래서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거야. 이제 이기고 싶으니까. 근데 너는 처음 지는 거잖아. 그렇지?”

“……네.”

“그러니까…… 화내기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너를 돌아봐. 너에겐 아직 기회가 많으니까.”

차인현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대기실을 떠났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방민식이 덧붙였다.

“인현이 자식 말에 두서가 없네. 쿨한 척해도 속이 많이 상해서 그럴 거야.”

민식이 상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인현이 말처럼 패배에서 배우면 되는 거야. 화내기 보다는 열심히 한 골든 핑거를 이해하고,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상현은 고개를 푹 숙이며 네, 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L&S는 전주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 14강에서 탈락했다.

Verse 9. Twisted World

“전주까지 왔는데 맛집에서 모둠 파전과 막걸리는 한잔 하고 가야하지 않겠냐!”

어느새 기운을 차린 방민식이 점심을 먹다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전주 시내에 아주 유명한 모둠 파전과 막걸리 집을 벌써 알아뒀다는 것이었다.

“광주는 내일 가게요?”

“숙소는 더 사용해도 된다니까 괜찮지 않아?”

“나는 콜!”

미주가 검지를 흔들며 콜을 외쳤다.

“으이구, 우리 불쌍한 고삐리들은 전만 먹어야겠네?”

“하긴, 니들이 술 맛을 알 리가 없지.”

“형 술도 드럽게 못 먹잖아요!”

용준의 말에 준형이 발끈했다.

분위기는 다시 왁자지껄 제자리로 돌아왔다. 상현도 패배를 납득하고 골든 핑거를 인정했다. 부정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실력으로 진 것이다.

의외로 가장 침울한 것은 우민호였다.

“정말 잘했는데 왜 떨어진 거지……? 아! 아무래도 내가 합류한 것이 팀에 부정적인 기운을…….”

“형 죄송해요. 괜히 무겁게 장비만 들고 오시게 했네요.”

“응? 절대 아니야. 난 오늘 무대 정말 좋았어. 특히 너의 그 랩은…… 뭐랄까? 정말이지 사랑스러…….”

“워워, 거기까지.”

밥을 먹으며 상현과 말을 놓은 우민호였다.

“그래도 영상은 건질만한 게 꽤 많았어. 사람들도 많이 호응해줬고. 킾(Keep)해 놓으면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을 거야.”

“다행이네요.”

“그러고 보니 이 분은 누구야?”

상현과 민호의 대화 사이로 황인수가 끼어들었다. 상현은 뒤늦게 L&S에게 우민호를 소개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영상 디렉터에요. 새로 크루에 들어왔어요.”

“영상 디렉터? 너희 뮤직비디오 찍게?”

“네.”

“무슨 곡으로?”

“구체적인 건 믹스테잎을 내면서 생각해봐야죠. 세 곡 정도는 기본으로 찍을 생각이에요.”

“세 곡이나? 그걸 어디서 방송해준다고?”

현재의 인디 뮤지션들은 뮤직비디오가 낯설다. 뮤직비디오는 보통 뮤지션들이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들어가고, 회사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찍게 되니까.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영상 클립의 힘은 방송과 관계없이 중요해질 것이다. 구글 같은 대형 사이트들과 연동된 디지털 매체가 영상 클립에 파워를 실어줄 것이다.

무명의 아티스트가 앨범(믹스테잎)을 내고 괜찮은 영상 클립을 제작해 스타가 되는 경우도 왕왕 벌어지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쓸모가 있을 거라 믿어요.”

그러나 상현은 미래를 일일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려야 했다.

우민호는 L&S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방민식은 우민호와 인사를 나누며 상현의 추진력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정말 비디오 클립이 큰 가치를 갖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을 굳건히 믿고 영상 디렉터를 섭외하는 추진력이 부럽다.

‘나도 좀 만 더 겁대가리 없이 해볼걸.’

유쾌한 성격을 가졌지만 중요한 판단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신중해지는 게 방민식의 콤플렉스였다.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아직 어리잖아.’

다짐한 방민식이 벌떡 일어났다.

“우리 연습한다고 전주 시내도 못 가봤지? 시내 가서 길거리 공연이나 할까?”

“밥 좀 먹고요.”

“가서 길에서 군것질하면 되지.”

“형, 지금은 너무 더워요.”

“더위 따위!”

라고 외쳤지만 덥다.

“그럼 밥 먹고 팥빙수나 먹을까?”

더위에 축 쳐져있던 상미가 소리 질렀다.

“콜!”

L&S와 888이 함께 움직이니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들은 택시를 3대 잡아서 전주 시내로 향했다. 방민식은 차인현과 황인수와 함께 택시를 탔다.

“얘들아, 고생 많이했다.”

“아니에요. 형이 더 고생했죠.”

“형, 고생 많았어요.”

이상하게도 차인현의 표정이 밝았다. 요 며칠, 특히 전주에 와서는 엄청나게 어두웠는데 말이다.

“너 표정이 좋아졌다?”

“떨어지고 나니 개운하네요. 마음에 걸리는 일도 안 해도 되고.”

“마음에 걸리는 일?”

“개인사에요. 다음에 기회 되면 말씀드릴게요.”

개인사라는 말에 방민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전화 오는 것 같은데요?”

“응? 나?”

인수의 말대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번호에 부재중이 3건이나 와있었다. 방민식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방민식이 전화 통화하는 사이에 택시는 쭉쭉 나아갔다. 그는 ‘네네…….’, ‘네?’ 하는 말만 반복했다.

차인현은 창밖의 여름 풍경을 구경하며 떨어진 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때 전화를 끊은 방민식이 차인현과 황인수에게 말했다.

“인현아, 너가 용준이한테 전화해. 인수가 상현이한테 전화하고.”

“네? 뭐라고요?”

“택시 돌리라고 전해. 다시 체육관으로 가자.”

“택시를 왜 돌려요?”

방민식이 씩 웃었다.

“우리 팀이 심사위원 와일드 카드로 뽑혔대. 저녁에 있을 8강전 준비하라는데?”

“……헐?”

황인수가 대박! 이라고 소리 지르며 핸드폰을 두드렸다. 방민식의 재촉에 차인현도 핸드폰을 들었다.

잠시 뒤, 뻥 뚫린 도로에서 달리던 택시 3대가 동시에 유턴했다.

< Verse 8. 전주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 (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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