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52화 (52/309)

< Verse 8. 전주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 >

8월 12일 금요일은 LOC 그룹이 후원하는 전주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의 전야제였다.

본격적인 뮤지션 서바이벌은 다음날인 13일부터 시작이었지만, 12일부터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초대가수 라인업이 전야제인 12일과 폐막식인 15일에 가장 빵빵하기 때문인 듯 했다.

L&S 밴드 멤버들은 공연 하루 전인 12일에 미리 전주에 도착했다. 리허설 때문이었다. 13일에도 리허설을 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페스티벌인 만큼 만전을 기하고 싶었다.

‘랩은 비장의 무기니까, 상현이 너는 리허설 할 때 랩은 하지 말고 사운드만 체크해. 정할 것 없으면 노래라도 부르던가.’

방민식의 말에 상현은 리허설 무대에서 생각도 못했던 노래를 부르고 내려와야 했다.

“으으. 쪽팔려.”

“뭐가 쪽팔려.”

사운드 밸런스를 잡던 미주가 무대 밑에서 물을 건네며 물었다.

“으으, 노래를 너무 못 불렀어요.”

“뭐 어때? 다른 보컬들도 노래는 대충대충 부르고만.”

“다른 보컬들은 대충 부른 티가 나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부른 티가 난단 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대충 부를 걸…….”

“이제 보컬도 탐내시나?”

상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는 사이 미주는 방민식의 부름을 받고 무대로 다시 올라갔다.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사람 정말 많네.’

상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는 후원사 LOC의 로고가 박힌 현수막, 천막 등이 보였고, 그 사이를 사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우리 공연할 때도 이렇게 많아야 하는데.’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발이 벌어지는 전주 종합 경기장의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반경 1Km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노점상들이 포진해있었고, 공원 산책로에는 나들이를 즐기는 가족과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이 넘쳐 났다.

부러운 광경이었다.

‘상미랑 여행이나 한 번 가야겠다.’

상미랑 둘이 가는 것보다는 888 크루를 다 이끌고 가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다들 상미랑 친하고, 시끌벅적한 것이 더 좋으니까. 근데 그럼 가족 여행이 아닌가? 상미랑 둘이 가야 하나?

상현이 갑자기 떠오른 여행이란 화두로 고민하는 사이, L&S의 리허설이 끝났다.

내일 경연에 참여해 경쟁할 여러 밴드들이 대기 중이니까 다들 적당히 연주하고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고수는 실력의 3할을 숨긴다지?

‘난 오늘 10할을 숨겼는데.’

잘 하지도 못하는 노래를 했으니.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 민식이 형. 더운데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방민식이 땀을 닦으며 기타를 챙겼다. 그때 베이시스트 용준이 상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 덥다. 참, 상현아.”

“네?”

“이 문자 봐봐.”

용준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서 상현에게 건넸다. 어리둥절하게 받은 폰에는 ‘노래 더럽게 못하네.’라는 문자가 와있었다. 전송자 명은 부라더.

“부라더? 이거 누구에요?”

그때 상현의 뒤통수를 딱 치는 사람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준형이 서있었다.

“준형아!”

상현은 갑작스런 준형의 등장에 놀랐다. 미주를 비롯한 L&S 멤버들도 갑자기 등장한 준형을 반겼다.

“웬일이야? 못 온다며?”

“후후, 가족 일정 취소됐습니다. 형님.”

“바로 온 거야? 언제 가는데?”

“형들 우승하는 것까지 보고 가려고요.”

“크, 역시 준형이가 사회생활 할 줄 알아.”

용준이 준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때 상현이 준형의 뒤통수를 딱 때렸다. 반가운건 반가운거고 복수는 복수니까.

거의 한 팀처럼 지내는 L&S의 전주 페스티벌에 888 크루 멤버들도 단체 응원을 오기로 결정했다. 도저히 뺄 수 없는 일이 있는 박인혁을 제외하고는 각자 스케쥴에 맞춰 전주로 모여들고 있었다.

본래 못 온다던 준형까지 등장하니 L&S 멤버들은 기분이 좋았다.

“상미는 민지 누나가 책임지고 데려온데. 민지 누나 며칠 전에 면허 땄다고 어머니 차 끌고 온다던데?”

“뭐? 자동차? 불안한데……. 민지 누나 운전 잘해?”

“나야 모르지. 운전하다가 싸움은 잘할 거 같은데?”

“그건 그래.”

“환이 형은 더 일찍 올 수 있는데 ‘그 사람’ 데리고 오느라 좀 늦을 거래.”

“응. 아까 통화했어.”

준형과 상현이 수다를 떠는 사이에, L&S 멤버들은 각자의 악기를 숙소에 가져다놓으러 갔다.

드럼은 주최 측에서 관리 해주기로 했기에, 드러머인 황인수가 미주의 키보드를 들어주었다. 미주는 어차피 남자 숙소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자리에 남았다.

“오, 누나 완전 여왕님이네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인수 형을 부려먹다니.”

“더우니까 가만히 있어. 누님 지금 몹시 덥다.”

“옷이 하늘하늘 거리니까 그렇죠. 왜 이렇게 덥게 입었어요.”

미주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무릎 정도로 오는 검은색 치마에 프릴이 들어간 세련된 셔츠였는데, L&S건 888이건 예쁘다고 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미주가 준형의 등짝을 때릴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준형이 문득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아 맞아. 하연이도 지금 전주라고 했어.”

“응? 벌써 전주라고?”

“어어. 친한 사촌 언니가 이 근처에 자취한다던데? 그래서 얼굴 볼 겸 조금 일찍 온데.”

“야 근데 하연이는 사촌 언니 집에서 잔다고 쳐도, 너는 오늘 어디서 잘래? 크루 이름으로 팬션 예약한건 내일부턴데?”

“찜질방 가서 자야지.”

“보호자 없잖아.”

“엄마나 아빠랑 통화시켜주면 되지 않을까?”

“흠…….”

상현은 준형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이제는 이런 미성년자다운 고민이 어색하지 않다고 새삼 느꼈다.

공원에서 Only one을 부르며 마음을 정리한 뒤로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하연이가 Only one을 기억하는 것 같단 말이야.’

상현은 작업실에서 하연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콧노래였긴 했지만 분명 Only one의 멜로디였다.

‘지금 부르는 노래 뭐야?’

‘응? 내가 무슨 노래를 불렀지?’

아마 무의식중에 들은 노래의 멜로디를 얼핏 기억하는 모양이었지만, 상현은 내심 긴장했었다.

Only one의 내용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조만간 888과 L&S 멤버들에게 부모님의 이야기를 할 생각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가 아주 미래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음악가들은 계기만 있다면 음악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기도 한다.

‘조심해야겠다.’

Only one은 그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고, 탐이 나는 노래지만 칸예 웨스트 이외의 사람이 부르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았다.

만약 상현이 Only one이란 노래를 훔쳐온다면, 그 결과물에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똑같은 비트를 찍을 수도 없으며,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가 친 키보드를 따라할 수도 없다. 또한 칸예의 무심한 듯, 가슴을 울리는 보컬을 따라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흥행할 수도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노래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상현에게는 그런 노래가 몇 곡 있었다. 절대 망치고 싶지 않은 노래.

예를 들면 칼립의 ‘한번뿐인 삶’ 같은 곡 말이다.

“밥 먹으러 가자!”

L&S 멤버들이 악기를 모두 운반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전주에 왔으니 비빔밥을 먹어야 하는지, 더워죽겠으니 냉면을 먹을지를 한참 설왕설래하다가 식당으로 향했다.

***

LOC 그룹은 탄생부터 음악과 관련이 있는 그룹이었다. 그룹의 첫 시작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산하에서 기미가요를 비롯한 일본의 노래들을 수입, 배포하면서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친일 숙청 기간에 몸을 사리다가 언론, 예술, 출판, 유통, 신문, 방송, 패션 시장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LOC 그룹은 전통적으로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예술과 언론을 이용했고, 덕분에 윗선의 비호를 받아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군사정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념가요, 선동가요 등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IMF가 끝나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 국민의 정서에 반미, 반일 감정이 깊어졌고, LOC그룹은 친일 그룹으로써 굉장히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심지어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심각성을 느낀 LOC 그룹 홍보부가 이미지 쇄신의 돌파구로 시작한 것이 ‘대한민국 독립 예술의 후원’.

대학가요제, 5.18 문학제, 독립 영화제 등등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다양한 독립 예술에 적극적인 후원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중 이미지 쇄신의 가장 뛰어난 성과가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의 개최와 후원이었다.

올해로 4년차를 맞이하는 월드 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까지 포함해, 년 평균 3만 명 이상이 찾는 전통적인 페스티벌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올해인 2005년은 광복절까지 포함해, 총 4일 동안 축제를 진행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광복절 바로알기’ 등의 부스를 추가해 친일 이미지를 없애려는 마케팅도 눈에 띄었다.

친일과 권력 줄타기의 역사를 알고 있는 상현은 LOC 그룹을 싫어했지만,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페스티벌을 보며 내심 감탄하기도 했다.

이번 전주 월드와이드 페스티벌은 축하공연과 작은 부스들을 제외하면 크게 2개의 경연대회와 2개의 음악회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경연대회는 밴드 서바이벌. R&B 서바이벌.

음악회는 판소리, 80-90년대 가요 재해석.

유명한 가수가 오는 축하공연을 제외하고는 관중들의 관심은 서바이벌에 쏠려 있었다.

무대 크기만 봐도 서바이벌은 중앙 특설 무대였고, 음악회는 작은 무대였다.

밴드 서바이벌의 우승 상금은 천만 원.

R&B 서바이벌의 우승 상금은 오백만 원.

L&S 멤버들과 미주, 상현은 천만 원을 노릴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

쿵쿵하는 드럼 소리와 저 멀리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관중들의 소리.

쾌적한 에어컨 바람을 타고 흐르는 긴장된 기색.

L&S는 무대 뒤의 대기실에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 긴장된다.”

“다음다음이 저희죠?”

“응.”

평소 공연 전에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 황인수와 방민식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물만 연신 들이켰다.

“형, 물 그만 마셔요. 오줌 마려요.”

“인수야, 담배피고 오자.”

“아까 폈잖아요.”

“그래도.”

무대에 오르는 멤버인 이상현, 신미주, 방민식, 황인수, 용준, 차인현 중 둘 뿐인 흡연자가 밖으로 나가고, 대기실은 고요해졌다. 저 멀리서 연주 중인 팀의 쿵쿵 울리는 드럼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렸다.

“으, 수다쟁이 둘 사라지니 너무 조용하네.”

미주의 말에 상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차인현은 본래 말이 많지 않았고, 용준이 형은 엄청 시끄러운 사람이지만 공연 직전에는 입을 다무는 습관이 있었다.

“팔팔팔 사람들은 다 와있나?”

“네. 상미랑 준형이, 하연이랑 민지 누나가 객석에서 보고 있대요.”

“인혁 오빠는 못 온다고 했고, 환이 오빠는?”

“누구 좀 데리고, 오늘 저녁에 올 거예요.”

“누구?”

“비밀이에요.”

미주와 상현은 긴장을 풀 겸 수다를 떨었다.

“넌 별로 긴장 안하는 것 같다?”

“긴장 중이에요. 그래도 오늘 제 파트는 짧잖아요.”

상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서 드럼 소리가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스텝이 문을 열더니 ‘다음 순서에요. 대기해주세요.’라고 말하고는 휙 사라졌다.

< Verse 8. 전주 월드와이드 인디 뮤직 페스티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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