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랩스타-47화 (47/309)

< Verse 6. Fuck Tha Show Biz >

“엉. 팔팔팔 크루 놈들의 쇼 비즈 인터뷰 내용이 문제야. 나도 봤는데, 일단 어린놈의 새끼들이 싸가지가 없던데?”

“근데 걔들이 싸가지가 없는 게 우리랑 상관이 있나? 광주면 볼 일도 없을 텐데?”

“이게 밴드 플레이어들 쪽에서 먼저 큰 이슈가 돼서 짜증나는 거지. 인터뷰를 보면 팔팔팔 크루가 밴드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래퍼들이 밴드를 무시하는 뉘앙스야.”

“팔팔팔 크루가 래퍼를 대표하는 듯한 인터뷰다?”

“그래.”

배상욱이 혀를 찼다. 래퍼라고 어깨에 힘주고 갱스터힙합인척 하는 애들은 언제나 꼴 보기 싫은 법이니까. 특히 그처럼 씬을 정말 사랑해 인생을 건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커뮤니티에 인터뷰가 있나?”

“누가 전문을 타이핑해놨어.”

“흠, 집에 가서 봐야겠다. 근데 넌 연습 안하냐?”

“하려고 온 거야. 그리고 애당초 연습시간은 여덟 시잖아? 지금 일곱 시다.”

동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이 엄청난 부자여서 금수저 물고 태어난 래퍼라는 평가를 받는 배상욱이었지만, 이런 성실함은 도저히 그를 금수저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배상욱이 리더로 있는 스타즈 레코드(Stars Record) 멤버들이 연습실로 속속 모여들었고, 곧 공연 연습이 시작되었다.

배상욱은 연습을 끝내고, 클럽 호미 관계자와 술을 한 잔하고, 자취방에 도착할 때까지 888크루의 이슈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가 888 크루를 기억해 낸 것은 책상에 놓여있던 ‘88담배’ 때문이었다.

비 흡연자인 배상욱이었지만, 동료들이 그의 자취방에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놓고 간 담배들이 가끔씩 보였다.

‘참, 888 크루랬지?’

피곤했지만 뒤늦게 떠오른 궁금함에 컴퓨터를 켰다.

하이텔, 나우누리 등의 통신 동아리 게시판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이제 한국 힙합을 대표하게 된 커뮤니티는 ‘힙합LE'였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힙합 뮤지션, 팬들이 서식하는 사이트.

힙합 게시판에 들어가자마자 ‘888’이라는 단어가 엄청나게 보였다.

일정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1주일간 공지처럼 게재되는 추천글들도 모두 888에 관련된 글이었다.

“뭐야, 진짜 난리도 아니네?”

생각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에, 배상욱은 가장 추천이 많은 글을 클릭했다.

-한국 힙합이 미국 힙합을 수용함에 있어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거창한 제목을 가진 글이었다. 문단도 딱딱 나눠진 것이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라는 냄새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작성자 명을 보니 한국에 얼마 없는 힙합 평론가가 작성한 글이었다.

***

제목 : 한국 힙합이 미국 힙합을 수용함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

필자는 한참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888 크루의 인터뷰를 오늘 아침에야 접했다.

인터뷰 내용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그동안 힙합 문화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광주에도 힙합 크루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에 박수를 보낸다(물론 우리가 모르는 크루들이 과거부터 존재했을 수도 있지만).

홍대의 플레이어들과 부산, 대구의 플레이어들이 전부였던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광주 플레이어들이 보여줄 음악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하다. 광주 지역의 고유한 색깔을 보여줄 작업물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러니 그들이 음악 커리어를 부정적 이슈로 시작했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생략)

그렇다면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래퍼들이 가진 감성을 한국 래퍼들이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을까? 필자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겠다.

우리는 게토(Ghetto)에 살지 않으며, 경찰에게 불공정한 대우와 구타를 당하지도 않는다. 나스처럼 다른 갱스터들이 겨눈 총구 앞에 놓인 적도 없다.

우리에게 잠은 죽음의 사촌이 아니다. 한국 래퍼들은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으며,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러한 문화적 요인을 무시하고 단지 미국 힙합의 ‘스웨그(SWAG)’만 차용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래퍼들이 흔히 물질적인 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기회의 차별을 받는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들의 음악으로 그것을 이루어냈다는 자부심의 의미가 크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Get that money’는 그 자체로 멋이고, 스웨그다. 삶을 사는 방식이고, 인종차별을 이겨낸 자아실현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내가 돈을 버는 방식 이외에는 전부다 엿먹어!’라고 하는 것이 리스펙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스웨그의 힛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적 근거’이다.

근거라는 단어는 문화 예술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근거가 신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사실처럼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필자는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888 크루는 과연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밴드 음악을 랩 음악보다 열등한 장르로 볼만한 근거를 말이다.

이 질문을 다른 질문으로 치환해보겠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증명했는가?

물론 절대 오해하면 안 되는 건, 음악성을 증명했다고 해도 밴드 음악을 비난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생략)

사실 필자는 888 크루 이슈가 불편하다.

한국 힙합 씬이 기형적으로 비좁지 않았다면?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이 동의어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긍정적인 이슈들이 있었다면? 이 사건이 이렇게 이슈가 될 만한 일인가 싶다.

또한 888 크루의 인터뷰를 게시판에 처음 언급한 ‘bassLee’님의 ‘이래서 힙합이 욕먹는 거다’라는 글에도 아쉬움이 있다.

bassLee님은 글에서 ‘888 크루의 무례함 = 힙합퍼들의 보편성’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오류는 888 크루의 인터뷰를 본 독자들이 ‘한국 힙합퍼들은 다 저래.’라고 생각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들이 흔히 래퍼를 떠올릴 때 90년대 웨스트 사이드의 갱스터 래퍼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예전 칼럼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건 전적으로 할리우드 영화 속 이미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가능성이다. 888크루의 멤버들이 한국 힙합의 이미지를 망쳐버렸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888 크루를 비판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은 지양해야한다.

현재 888 크루의 싸이월드 게시판은 하루에도 2페이지가 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중 7할은 밴드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써진 비난 글이고, 2할은 힙합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써진 비난 글이다.

그리고 888 크루는 이러한 글들을 ‘피드백 게시판’이라는 게시판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필자는 888 크루의 인터뷰는 비판하겠지만, 이러한 대처는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쇼 비즈니스와 인터뷰를 한 두 명의 래퍼들이 아직 정신적인 성숙함을 이루지 못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생략)

***

“이 형님, 참 말하는 거 좋아하셔.”

배상욱은 무려 10페이지가 넘는 빡빡한 칼럼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제 흥미가 더 동한다.

‘도대체 뭐라고 인터뷰를 한 거야? 이 자식들은?’

그는 곧장 인터뷰 전문을 찾아보았다.

칼럼을 읽으면서 미성년자란 말에 약간의 동정심을 갖게 된 배상욱이었지만, 인터뷰 전문을 읽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건 좀 심한데.’

특히 그가 화난 부분은 음악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됐다는 것을 자랑스레 말한 것과, 공연 곡들을 하루 이틀 만에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동성애 코드를 이용했다는 사진도 역겨웠다.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의 사진은 조작의혹까지 들었다.

‘왜 그렇게 동료들이 화를 냈는지 알겠다.’

배상욱은 정말 한국 힙합씬이 커지길 바랐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건설 회사 회장님이 아버지였지만, 유산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힙합에 헌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오년을 넘게 씬에 헌신하면서 느낀 점은, 문화의 이미지가 좋아지긴 어렵지만 나빠기는 정말 쉽다는 점이었다.

‘똥물을 한 바가지 뿌리면 그걸 치우기 위해서 깨끗한 물 백 바가지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의 입장에서 888 크루의 인터뷰는 정말 똥물이다.

그것도 정기 구독자 수 1위를 기록하는 잡지에다가 싼 똥이다.

배상욱은 한참동안 게시판의 글들을 읽었다.

이슈가 된지 3일 밖에 안됐는데, 벌써 게시판의 5페이지가 넘는 글들이 대부분 888 크루 이야기였다.

‘어차피 힙합이 디스리스펙트의 문화인데 이정도가 뭐 어때서?’라는 뉘앙스의 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

한참 글을 읽다보니 벌써 시계가 새벽 3시 반을 향하고 있었다.

‘쯧, 얘들은 홍대에서 활동은 못하겠군.’

비난의 댓글 중에 익숙한 아이디들이 보인다. 홍대 씬의 주축이 되는 래퍼들의 아이디.

배상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익스플로러 창을 종료하려고 했다. 그때 조회수 0의 방금 막 올라온 글이 하나 보였다.

-888 크루 해명곡? 올라왔다.

‘해명 곡?’

흥미가 동해 글을 클릭하자 인터넷 주소 하나와 짧은 글이 보였다.

-888 크루 클럽에 해명곡? 디스곡? 아무튼 곡 하나 올라왔다. 와, 근데 이거 존나 쩌는데? 얘네 뭐하는 놈들이야? 그리고 이 랩 내용이 사실이면 쇼 비즈가 엿 좀 먹어야겠는데?

아무튼 N.W.A라니.. 깔 수가 없다.

배상욱은 해명곡이라는 낯선 단어와 N.W.A라는 낯익은 단어에 확 눈이 갔다.

곧장 링크된 주소를 클릭했다.

888 Crew라는 로고가 새겨진 싸이월드 클럽과 연결됐고, 어렵지 않게 노래를 찾을 수 있었다.

“오……?”

퍽 더 쇼 비즈(Fuck tha show biz).

곡명을 보는 순간 기대감이 들었다. tha라는 낯익은 표기법과 N.W.A라는 단어를 보았기 때문에 곡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었다.

Fuck tha police의 오마쥬.

-달깍

새벽인 탓이라 마우스 클릭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배상욱은 이어폰 대신 모니터링 헤드셋을 연결했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어?”

너무 익숙한 비트가 들렸다. 이건 원곡의 비트다.

아니, 비트뿐만 아니라 곡의 시작이 원곡이랑 똑같았다.

롤링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노래 500선에서 425위를 차지하고, 노래 제목이 하나의 슬로건이 되어, 디자인, 로고, 그래피티 등의 다른 장르로 무수히 전환된 노래.

N.W.A의 Fuck Tha Police는 래퍼들이 N.W.A 법정의 검사와 판사가 되어 경찰들을 심판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MC REN은 인트로에서 검사와 판사를 소개하며 법정의 개회를 알린다.

상현의 퍽 더 쇼 비즈(Fuck Tha Show Biz)는 MC REN의 인트로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M.C.Ren, Ice Cube, and Eazy muthafuckin E.’라는 검사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MC REN의 목소리가 피치 아웃됨과 동시에, 비트가 끊기며 정적이 흘렀다.

곧 정적이 깨지며 상현의 랩이 비트와 함께 터졌다.

배상욱은 랩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충격을 넘어서 현 시대를 뛰어넘는 ‘Next Stage(다음 단계)’를 느꼈다.

‘이걸 고등학생이 만들었다고?’

비트 편집, 자유롭고 창의적인 레퍼런스, 가사, 랩, 라임. 나무랄 곳이 없다.

그러자 배상욱은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혁명은 새로움에서 시작한다. 다음 세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과거를 뒤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낯설고, 비판을 받는 것이다. 피카소가 그랬듯이.

보통 선지자들의 작품은 보통 후대에 빛을 발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듯이.

그런데 이 친구의 랩은 그렇지 않다. 분명 2005년의 한국 힙합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는데,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무대에서 보고 싶다.’

배상욱은 욕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실제 라이브 무대를 보면 어떨까? 혹시 스튜디오 엠씨는 아닐까?

그는 새벽 내내 이달 말에 예정된 클럽 호미의 라인업을 붙잡고 고민에 빠졌다.

***

< Verse 6. Fuck Tha Show Biz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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